1월 8일
새벽에 죽은 아내註 002의 기제사를 지냈다. 옥천沃川 상주 전계선全繼善 형제의 위장慰狀 답장을 받았다.
1월 9일
치중致重에게 답장을 쓰고, 또 화분의 매화 한 가지를 꺾어 보냈는데, 그 참에 고시古詩 한 편을 지어 보내고, 아울러 지난번에 보내 준 시 두 편에 차운하여 봉투에 봉하여 부쳤다. 식산息山 어른께 편지를 쓰고, 화산花山 여러 어른께 ‘계구戒懼’·‘혈구絜矩’ 두 글을 논변한 여러 장의 편지를 부쳤다.
1월 17일
아침에 들으니, 영휴永休가 지난밤 술시戌時에 죽었다고 한다. 매우 슬프다. 병은 비록 고질이었으나 그래도 따뜻한 봄날을 맞아 깨어나기를 바랐는데,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사람이 선비답게 얌전하고 문장과 글씨도 뛰어났으니, 너무 애석하다.
1월 23일
식산(이만부) 어른의 답장을 받았는데, ‘계구戒懼’·‘혈구絜矩’ 제설에 관한 논변은 나의 견해와 대략 같다. 문언文彦 상가에서 바야흐로 내달 초9일에 장례 치르고, 초2일에는 또 모부인母夫人의 이전 묘를 옮겨 새로 마련한 묘지에 합장할 계획인데, 궁핍한 집에서 두 가지 큰일을 치르려니 모양새를 갖추기가 극히 곤란하여 보기에 안타깝다.
1월 25일
소교小橋에 가서 채씨蔡氏 아저씨의 병 상태를 물어보았다. 영양 현감 강박姜樸註 014이 회맹제會盟祭註 015에 참석하는 일로 서울로 올라가다가 진촌津村 주막에 이르러서 칙사의 행차 때문에 물려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을로 돌아가려고 오후에 그의 종 집에 온 것을 보러 갔다가 굳이 만류하는 바람에 그와 더불어 베개를 나란히 하고 조용히 담론을 하였으니, 다행이다. 피차간에 얼굴을 알게 된 것은 비록 늦었으나, 마음을 안 것은 이미 오래였기 때문에 한번 만나 보니 구면과 같았다.
1월 26일
영양 현감 강박이 새벽에 떠났는데, 오늘은 안동 읍내에서 잘 것이라고 한다.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1월 27일
치중致重의 답신을 받았는데, ‘계구戒懼’·‘혈구絜矩’에 관하여 논한 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