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la Scriptura Tota Scriptura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36
요한복음 20장 21-23절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찬의 또 다른 이름으로 미사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보냄 혹은 파견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찬과 저들의 미사가 같은가 할 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점에 있어서 다른가? 우르시누스는 1569년 성찬과 미사의 차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첫째, 성찬은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만이 의롭다 함을 얻게 한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교황주의자의 사제들은 미사가 그때 그 자리에서 행해지는 일에 따라서 의롭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를 위해 드리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하셨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교황주의의 사제들은 우리가 성찬을 통해 베풀어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게 아니라 성찬을 통해 베풀어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셋째, 성찬은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단번에 행하신 제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반면 교황주의자들은 우리의 구원이 자주 반복되는 미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미사 자체가 구원을 위한 방도로 있는 겁니다.
넷째, 성찬은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육체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거나 혹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육체로 들어오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다섯째,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사를 이루신 후 승천하셨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미사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의 몸이 제단 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화체설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본질이 변화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성례가 그대로 유지되며 표의 본질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사를 주장하는 자들은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사라지고 그 부수적인 요소들만 남는다고 가르칩니다.
일곱째, 성찬의 의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과 그의 유일한 제사를 확증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미사의 의도는 현재 행해지는 행위에 대한 생각을 확증하는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의 제사를 부인하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 여덟째,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미사는 떡과 포도주의 형체 밑에서 그를 예배합니다.
이런 차이들은 결국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0문에서 말한 것처럼 교황주의의 미사가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제사를 부인하는 것이요, 저주받을 우상숭배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오늘은 천국 열쇠권에 대하여 살필 것인데, 82문에서 천국의 열쇠들로 성찬에서 제외되는 사람에 대하여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일단 81문에서 누가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할 때 자기 죄로 인하여 자기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슬퍼하면서도 자기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자기의 믿음이 더욱 강건해지고 자기의 삶이 바르게 고쳐지기를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믿지도 않고 불경하다는 것을 자신의 고백과 삶으로 친히 드러내 보이는 자들에게도 성찬을 허용해야 하는가? 82문은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지고 되고, 하나님의 진노가 온 회중에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런 자들이 삶을 회개했음을 보이기까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규례를 따라 천국의 열쇠들로 그들을 성찬에서 제외시킬 의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때 천국의 열쇠들이란 무엇인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3문에서 85문은 이런 천국 열쇠권에 대하여 가르치는데, 열쇠라는 말은 자물쇠를 잠그거나 여는 데 사용하는 물건을 뜻합니다. 이런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국 열쇠권, 즉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3문을 보시면,
83문. 천국의 열쇠들이란 어떤 것들입니까?
답. 거룩한 복음의 선포와 교회의 권징, 혹은 기독교 교회로부터의 출교인데, 이 둘을 통하여 천국이 신자들에게는 열리고 불신자들에게는 닫힙니다(마16:19, 요20:22-23).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20장 21절 이하 23절이 천국 열쇠권에 대한 내용의 말씀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난 뒤 부활하셔서 제자들이 모인 장소에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9절에 의하면 안식 후 첫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는데, 오시면서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이 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하늘로 올라가실 것이고, 그때는 더 이상 예수님께서 육체로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히브리서의 증거처럼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히1:2) 성육신하여 말씀하신 그런 방식으로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어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이때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어 생령이 된 것 같이, 특별히 사도들에게 성령을 주어 성령으로 일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만 그 복음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요, 또한 성령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결국 사도행전에서 성취가 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즉 복음을 전하여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 대하여는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반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는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천국 열쇠라고 하는 것은 죄 사함을 받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천국 열쇠권을 받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것은 복음을 전파했을 때 회개가 있으면 죄 사함을 선포하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요, 반대로 복음을 전파했을 때 회개하지 않으면 죄 사함을 선포할 수 없기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도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셨지만, 여전히 주체는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저들을 보내시는 분으로 있으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올바른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열쇠권을 소유하시면서 맡기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맡기셨지만 그 열쇠의 소유자, 그 열쇠를 가지고 실제로 시행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7절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그러나 이 권세를 누구에게 맡기셨는가?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모든 제자가 아니라 특별히 사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사도들의 경우 비상직분입니다. 사도 이후로는 항존직분으로서 말씀으로 섬기게 하실 말씀 사역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복음 선포만이 아니라 교회의 권징 또한 열고 닫는 천국 열쇠권과 관련된 내용인데, 이 부분은 조금 있다가 좀 더 자세히 살피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요리문답 83문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거룩한 복음의 선포와 교회의 권징을 통하여 천국이 신자에게는 열린다는 것이고, 반면 불신자에게는 닫힌다는 것입니다. 그 권세를 쥐고 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고, 그가 승천하시면서 그 권세를 사도들에게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84문에서 거룩한 복음의 선포를 통한 천국의 여닫음을, 85문에서 교회의 권징을 통한 천국의 여닫음을 설명합니다.
84문. 거룩한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어떻게 천국이 열리고 닫힙니까?
답. 신자들이 참된 믿음으로 복음의 약속을 받아들이면 언제든지 그들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께 진정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서 신자들 개개인과 전체에게 선포하고 공적으로 증언할 때에 천국이 열립니다. 그리고 반대로, 회심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모든 불신자들과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자들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할 때에 천국이 닫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다가올 세상에서 이러한 복음의 증언에 따라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85문. 교회의 권징을 통하여 어떻게 천국이 닫히고 열립니까?
답.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서도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교리나 생활을 지속할 경우 형제로서 거듭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류들과 악한 생활에서 돌이키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실을 교회 곧 치리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나 혹은 교회가 지명한 자들에게 권고 받은 이후에도 그 권고들을 멸시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성례와 성도의 사귐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켜야 합니다(마18:15-20, 고전5:3-5,11-13, 살후3:14-15). 또한 하나님께서도 친히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들을 제외시키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진정 돌이키기를 약속하고 또한 입증할 때에는 그들을 다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지체로 받아들입니다(눅15:20-24, 고후2:6-11).
천국 열쇠권, 다시 말해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청지기가 그 맡은 집의 열쇠를 맡고 있는 것에서 빌려온 하나의 비유적인 어법입니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천국 열쇠권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그가 승천하시면서 사도들에게 이 권세를 위임하셨다고 말했지만, 위임받았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그 권세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해야 할 청지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권세를 받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신 뜻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천국 열쇠권이 마태복음 16장에서는 교회에게 맡겨진 것으로 말씀하기도 하시는데, 13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때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대답합니다. 이어 15절에서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는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7-18)고 하시면서 19절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러니까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교회로 하여금 천국 열쇠권를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가톨릭의 마태복음 16장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데, 저들은 반석을 베드로 개인으로 이해하고 반석 위에 교회를 세워 천국 열쇠권을 시행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 권한이 베드로 개인에게 있다고 이해합니다. 이런 해석에 근거하여 그들은 베드로를 교회의 기초라고 주장하며, 그런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여깁니다. 심지어 교황은 교회의 머리라고까지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고, 비록 사도 베드로가 고백했지만 그 고백은 모든 사도의 고백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해는 요한복음 6장에서 드러나는데, 67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요6:67-70)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가려는지를 묻고, 거기에 대하여 시몬 베드로가 답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이것 역시 신앙고백의 내용인데, 이때 사도 베드로가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베드로의 고백은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사도들의 고백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은 바로 그런 사도들의 고백, 사도가 말한 진리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신앙고백을 한 사도들이 반석이 아니라 사도들이 고백한 대상이 반석이십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증거 하기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는 말씀도 있지만 곧 바로 이어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2:20)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린도전서 3장 11절은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베드로전서 2장 6절에서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반석은 사도들이 고백한 대상 외에 누구도 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이고, 그런 교회는 천국 열쇠권을 가지고서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를 누구로 보느냐의 문제가 등장하는데, 어떤 이들은 회중으로 봅니다. 신앙고백을 한 회중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천국 열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는 사도들, 말씀 사역자를 중심으로 한 회에게 천국 열쇠권을 주셨다고 봅니다. 이때 말씀 사역자를 중심으로 한 회는 치리를 비롯한 말씀 사역을 위해 부르신 목사와 교회를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 부르신 장로라는 직분으로 구성된 회입니다. 당회요, 노회요, 총회와 같은 회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자체는 85문 교회의 권징과 관련해 ‘교회 곧 치리회’라는 표현은 하지만 그 치리회가 누구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교회 곧 치리회’라고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는 것이 ‘교회나 혹은 교회가 지명한 자들에게’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한 우르시누스의 해설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은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의 내용, 교회에게 주어진 열쇠의 권한은 무엇이며, 거기에는 어떤 부분들이 있는가에서 “출교는 심각한 범죄자를 - 노골적으로 악행과 완고함을 드러내는 자를 - 신자들의 교제에서 배척하고 제외시키는 것인데, 이 일은 장로들의 판단에 의거하며 온 교회의 동의를 받아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권위와 또한 성령의 권위로 시행하는 것으로서, 그 범죄자를 부끄러움에 둠으로써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대의에 욕이 되는 것을 조심스럽게 경계하게 하기 위함이다.”
세 번째 질문의 내용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 권한은 누가, 누구를 향하여, 어떤 절차로 시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르시누스는 복음의 선포와 관련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를 맡은 자들에게 열쇠의 권한이 맡겨져 있다고 말하지만, 권징과 관련해서는 ‘온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조금 이후 요리문답의 표현처럼 “교회적인 치리나 권징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나 진노를 선언하는 일이 한 사람이 사사로이 하는 것이 아니고, 온 교회가, 혹은 최소한 모든 사람들의 동의에 의하여 이 목적을 위해 선출된 자들이 온 교회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런 설명들은 장로교 입장에서 볼 때 다소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84문 거룩한 복음 선포와 관련해서는 말씀 사역자들에게 그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말씀 사역자는 말 그대로 교회에는 말씀 사역과 관련하여 주께서 세우신 직분이요, 직원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보면 말씀 사역과 관련하여 신약 시대 어떤 직분들이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왜 이들을 세우셨는가?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때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는 비상 직분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사도의 경우는 주께서 세우신 12사도와 가룟 유다가 제외됨으로 비상적인 방식으로 제비 뽑은 맛디아, 그리고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선지자는 신약 시대의 선지자로 사도행전 11장, 13장, 15장에 보면 그 시대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행11:27, 13:1, 15:32). 복음 전하는 자의 대표적 인물로 전도자 빌립을 들 수 있는데(행21:8), 일곱 집사 중 하나이면서도(행6:5) 그는 복음 전도자로 복음을 전하면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했습니다(행8:38). 빌립 집사와 관련된 이런 내용을 보면서 집사도 세례를 베풀 수 있다고 보시면 안 되고 교회의 직원으로 비상직분에 속한 자, 복음 전도자, 다시 말해 말씀 사역자로서 세례를 베풀었던 겁니다. 그러나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비상직분에 속한 자들입니다. 교회의 항존직분이 아닙니다. 교회가 있는 동안 항상 존재하는 직분으로는 목사와 교사가 있는데, 이때 교사는 목사로서의 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비상직분에 속하는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의 직분은 없습니다. 대신 항존직분으로 목사를 세워 그들을 통하여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는데, 복음을 선포함으로 천국 열쇠권을 시행하게 됩니다. 요리문답이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복음의 약속을 선포함으로 그 약속된 바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것이 천국 열쇠권으로 푸는 내용입니다. 반면에 복음의 약속을 선포함에도 불구하고 회심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모든 불신자들 위에, 그리고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자들 위에 머물러 있다고 증거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천국 열쇠권으로 매는 내용입니다. 전자는 천국의 문을 여는 것이고, 후자는 천국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이 일을 말씀 사역자로 부름 받지 않은 자가 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나 85문 교회의 권징과 관련해서는 말씀 사역자만이 아니라 다스리는 장로와 함께 행하도록 하신다는 것이 장로교의 입장이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교회의 항존직원으로 목사를 말했지만 목사 외에도 성경은 장로와 집사에 대해 말씀합니다. 일단 목사의 또 다른 명칭으로 감독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하는데, 디모데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딤전3:1)라고 하면서 감독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합니다. 특히 5절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돌본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목사는 감독과 함께 장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요 감독만 장로로 있는가?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직원으로 장로가 있다고 할 때 장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책망하여 바르게 하는 장로입니다. 교훈과 치리를 겸한 장로, 즉 목사입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을 맡은 자는 아니지만 주의 말씀에 따라 치리하는 장로입니다. 둘 다 장로이지만 장로 겸 목사의 직분이 있고, 목사는 아니지만 장로의 직분이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라는 직분 외에 집사라는 직분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절 이하가 감독에 대한 내용이라면 8절부터는 집사에 대한 내용인데,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라고 하면서 집사와 관련된 내용을 설명합니다.
로마서 12장 6절에서 8절을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장로정치 질서의 신적 권위를 다룬 「유스 디비눔」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서 이 구절을 크게 두 가지 항목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일반항목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항목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항목입니다. 일반항목에는 예언과 섬김으로 나뉘는데, 6절 하반부와 7절 상반부입니다. 예언은 목사와 관련된 것이고, 섬김은 집사와 치리 장로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구체적인 항목인데, 예언이라는 항목 아래 가르침과 권면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하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권면으로 이해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항존직분으로 목사와 교사가 있다고 말했는데, 목사로서의 교사, 즉 목사가 곧 교사라는 의미입니다. 유스 디비눔은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교사, 권면한다는 의미에서 목사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섬김의 항목에 집사와 치리 장로가 있다고 할 때 구제하는 것, 그리고 긍휼을 베푸는 것은 집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제와 긍휼 사이에 있는 다스리는 자는 치리 장로와 관련된 내용으로 설명합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세 가지 직분,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있다고 할 때, 목사와 장로는 둘 다 장로로서 교회를 돌보는 자요, 다스리는 자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으로 다스리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합당한 자로 설 수 있도록 다스립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20장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한 말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28-3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5문에서 교회의 권징을 통해 어떻게 천국이 닫히고 열리는가 할 때 교회의 권징은 교회, 그러나 교회 전체가 아니라 장로들에게 주신 권세입니다. 이때 장로는 치리와 함께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 즉 목사와 말씀을 가르치지는 않지만 말씀으로 다스리는 장로가 권징을 행하게 됩니다. 무엇에 대하여 권징하는가? 요리문답이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교리나 생활을 지속할 경우 형제로서 거듭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류들과 악한 생활에서 돌이키기를 거부한 자들이 교회 곧 치리회에 보고되었을 때 권징을 행하게 됩니다. 또한 교회나 혹은 교회가 지명한 자들에게 권고 받은 이후에도 그 권고들을 멸시하는 자들을 권징하게 됩니다.
이런 권징의 순서와 관련해서는 마태복음 18장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15절부터 보면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5-18) 여기서 권징의 네 단계를 볼 수 있는데, 처음 두 부분이 사적 권징이고 이후 두 부분이 공적 권징입니다.
먼저 형제가 죄를 범하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죄를 범했을 때 개인 대 개인으로 권면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경우 두세 증인의 입으로 권면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때는 교회에 말하라고 권합니다. 이때 교회는 치리회를 의미하고, 목사와 장로를 구성하고 있는 회를 의미합니다. 이때 형제의 죄를 모든 교회에게 공개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의 치리회를 통한 권면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고집한다면 마지막 단계에서 이방인과 세리 같이 여기도록 합니다. 소위 출교의 내용입니다. 요리문답에서는 성례와 성도의 사귐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킨다고 되어 있는데, 출교에 앞서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도 있고, 그래도 교회의 치리를 듣지 않으면 결국 성도와의 사귐에 있어서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출교까지 행하게 됩니다.
이런 내용이 천국 열쇠권으로 천국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징을 받은 자가 진정으로 돌이키기를 약속하고 입증할 때는 닫았던 천국의 문을 열어 주는데,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지체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내용에 있어 요리문답은 마태복음 18장 18절,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말씀에 따라 지상에서 천국 문을 닫으면 하늘에서도 닫히고 지상에서 천국 문을 열면 하늘에서도 열리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즉 성도의 사귐에 있어 참여하지 못하도록 금지될 때 하나님께서도 친히 그리스도의 나라에게 그들을 제외시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모든 권징이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만큼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출교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천국 백성에서 제외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에서 개혁파 신앙은 정죄의 대상이 됩니다. 그들은 우리를 참된 교회로부터 나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들이 볼 때 우리는 출교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 백성에서 제외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권징이라면 마태복음 18장 18절의 말씀에 거짓됨이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만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교리나 생활을 지속해서는 안 되고, 혹 그런 자리에 있더라도 말씀을 통한 권면, 혹 죄가 드러나 형제의 권면이 있을 때 돌이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혹 교회의 권징을 통해 출교되는 일이 있더라도 거기가 돌이킬 수 없는 자리까지 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라도 돌이키면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주의 몸 된 교회는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권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신구약 통틀어 권징의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악인들과 완악한 범죄자들을 그의 백성에 포함시키지 않으시고, 그 백성의 교제로부터 그들을 제외시키셨습니다. 한 부분만 언급하자면 민수기 15장 30절과 31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지리라”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만 하더라도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 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세례를 받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권징이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특별한 명령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앞서 본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이나 그 외 여러 서신들을 통해 우리는 권징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서도 권징은 필수적입니다. 아무런 구별 없이 아무나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사탄의 나라와 혼합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교리와 예배의 순결을 보존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권징은 필수적이며, 성례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권징은 필수적이며, 교회의 안정을 위해서도 권징은 필수적입니다.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도 권징은 필수적이며, 교회에서 추문을 미연에 방지하여 연약한 자들이 다른 이들의 악한 모범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데 있어서도 권징은 필수적입니다.
그 외 여러 가지 이유에서 권징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권징, 다시 말해 교회 정치와 세속 정치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권징은 교회가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속 정치는 재판간이나 통치자가 행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법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시민법이 기준입니다. 또한 전자는 영적입니다. 영적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무엇을 행하는 바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권징을 행하되 그것을 통해 저들의 양심을 일깨우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칼의 권세를 사용합니다. 세속적인 어떤 형벌을 줄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적입니다. 또한 교회는 여러 단계의 권면 절차가 있으며, 범죄자가 그 죄를 인식하고 회개하면, 징벌 절차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즉시 징벌 자체가 멈춥니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자는 범죄자가 회개하더라도 곧바로 형벌이 멈춰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권징은 범죄자의 변화와 구원을 추구하지만, 국가의 통치자는 정의와 사회의 평화를 추구합니다.
오늘날 권징에 대한 부분이 교회 안에서 약해지는 듯 한 인상이 있지만, 왜 권징이 필요한가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결국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잘못에서 돌아서게 하고 오히려 복음에 합당한 선한 열매를 맺도록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표지로 말씀과 성례와 권징이 있다고 할 때 권징이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라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때문에 말씀과 함께 말씀에 합당한 권징에 대하여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