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시간 : 24.10.26 13~18시
장소 : 시청역 7번 출구
참여 : 아사달 통사님, 박진우 통사님, 청년위원장 김연우 통사
ㄹ 살리기 서명 35인
이승만기념관 반대 75인
1. 대안문 앞을 지날 때부터 예수 믿으라는 함성이 울렸다.
진짜 예수가 살아있었으면 십자가에 못박았을 인간들이 예수 이름을 잘도 팔고 다닌다. 시끄러워.
2. 오후 1시가 되자마자 현장에 도착해서 아사달통사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현수막은 걸었지만 책상 구하기가 어렵다 하셨다.
나도 뭘 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량해를 구하고, 골목 투섬플레이스에서 화장실을 리용할 겸,
점심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3.아사달 통사님도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나 혼자만 점심 먹는 건 렴치가 없으니, 미안한 마음에 뒤편의 김가네에서 군만두, 고기만두를 포장해서 드렸다.
동선도 줄일 겸 샌드위치 포장할걸-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사달 통사님은 샌드위치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ㅎㅎ
그런데 샌드위치나, 빵들은 류통기한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거나.
비위생적인 환경(세균이 묻은 손이든, 기계든, 뭐든)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 '비위생적인 환경'은 리윤 추구, 빨리빨리 라는 명목 아래에서 묵인된다. 력사를 상실한 로동현장의 비극이다.
4. 서명운동을 하면서 뿌듯했지만, 곤란한 사람들도 있었다.
첫 번째로 본인도 서명을 하셨으면서, "이승만에 대해 똑바로 알 건 알면서 이런 일을 해라~~"라며 가르치려는 어르신.
알고 있으니까 이런 서명운동을 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밝혀진 이승만의 악행은 반도 채 안 되지만,
임정 시절 직무유기와 공금 횡령, 분란 조장, 반민특위 해체, 4.3 량민학살, 골령골 학살, 조봉암 선생님 사법살인과 부정선거...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들만 합쳐도 말이 필요없는 수준이다.
송현광장 사건이 끝났어도 윤깡통 정권의 이승만 미화는 여전하다. 이런 건 진작에 다른 분들이 주도하셨어야 했다.
그런데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나선 것이다.
5. 아사달통사님과 지인 분께서 이바구 하실 때, 나를 쏘아보다가 가던 중절모 어르신도 있었고
초불시민들 다 보는 앞에서 왜 반대하나요? 난 찬성합니다 이러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이분들도 어찌 보면 력사를 잃고 세뇌된 피해자들이다.
6. 서명하려고 하다가 친구가 눈치줘서 안 하는 젊은 아이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젊은 분들도 1차 때보다는 많이 서명해 주셨다.
아기랑 동행한 부부도 서명했고, 젊은 커플 중 한 사람도 서명에 참여했고, 그 외에도 좀 있었다.
룡산공원 이승만기념관 반대 운동은 20~30대의 참여가 제일 중요하다.
같은 룡산의 리태원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은 또래 친구들이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피해자들을 수 차례 모독한 윤깡통이 하필 룡산에 이승만기념관을 세우겠다는 것은,
죽은 아이들과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그래서 더더욱 침묵하지 말고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연설을 하셨던 김재연 대표, 용혜인 대표도 윤깡통 정권을 비판했던 기백으로
이승만기념관 반대 서명에도 련대해 주셨으면 한다.
7. ㄹ 살리기 서명(두음법칙 폐기)은 했으나, 이승만은 무섭다고 머뭇거리는 고등학생 아이도 있었다.
아사달 통사님은 뒤풀이 끝나고 귀가하면서 이 사실을 안타까워하셨는데, 난 그 아이의 심정을 리해한다.
10년전, 안녕들 대자보 때도 징계받는 아이들(지금은 20대 중후반)이 많았고,
초불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을 서울교육청에서 대놓고 사찰한 일이 2013년에 있었고,
서명했다가 들켜서 징계받거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할까봐 두려웠을 수도 있고.
"너 시위 간거 알려지면 엄마/아빠가 해직당한다고!" 라는 소리를 부모님께 들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대학입시, 직업학교 선택에 지장이 생길 수 있고... 왜라이또 친일파들이 교육판을 어지간히 망쳐놓았다.
8. ㄹ살리기 강의를 아사달통사님께 물어보시는 분도 두 분 계셨다.
이승만기념관 반대와 같이 하니, ㄹ 살리기도 덩달아 주가가 올라간다.
아사달통사님은 스스로를 노토리어스한-기분나쁜- 이라고 롱담 섞어 자조하실 때가 있는데.
다들 말 안할 뿐. 아사달통사님의 진정성을 알아주고 있다.
ㄹ살리기는 갈 길이 멀지만, 이 정도도 장족의 발전이다.
9. 진우통사님은 행진에 참여하셨고, 나는 아사달통사님과 리태원추모제 부스를 둘러봤다.
나는 '메모 한마디'란에 "나도 너였다. 너도 나였다"라는 내용의 쪽지를 남겼다.
나도 그때 리태원에 있었을수도 있고,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이다.
10. 시청 뒤편의 감자탕/순대국집에서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전개할지.
사민필지 복사를 어떻게 할지 등등 이바구를 했다.
서명 도중, 글자 칸이 작아서 버벅거리시는 분들도 계셨고, 차후 참가자 집계할 때 더 편하게 하기 위해
다음 주에는 각 페이지마다 이승만기념관 반대 몇회차 를 명확히 표기하고, QR도 보기 좋게 배치하고,
칸 간격과 크기를 더 키워야겠다(례시 - 1페이지당 10인, 1회당 20p)
원래는 밥값 좀 아끼자-에서 시작했지만, 순대 맛도 가격대비 깔끔했고, 같이 주신 양파, 새우젓, 김치도 좋았다.
뒤풀이 맛집 선정도 좋지만, 력시넷은 조직인 만큼 지출, 사업비도 고려해야 하고. 다른 분들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운동은 밥심이지만, 과소비는 정신과 력사를 타락시킨다.
첫댓글 립체적인 글입니다. 읽는 분들이 현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겠습니다.
쉬지않고 외치시느라 애 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명을 한주한주 거듭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여러가지 일도 많았고 보람된 탕탕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