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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장소 : 전남 완도군 청산도 7 산 환종주 트레킹
(청산도 7 산 : 오산, 대봉산, 대성산, 대선산, 고성산, 보적산, 매봉산)
산행일자 : 2023. 11. 11.(토)
산행코스 : 신흥해수욕장 ~ 신흥리 보리마당 ~ 오산(333m) ~ 대봉산(379m) ~ 대성산(346m) ~ 대선산(313m) ~ 고성산(225m) ~ 읍리고개 ~ 보적산(335m) ~ 범바위(전망대) ~ 범바위 삼거리 ~ 매봉산(389m) ~ 상서재 ~ 상서 돌담마을 ~ 신흥해수욕장 (17km, 6시간 반 소요)
산행참석 : 19 백두.
▶ 즐거운산행팀은 슬로길 6~7코스를 걷고 매봉산에서 7 산 종주팀과 합류하여 하산.
: 신흥해수욕장 ~ 7코스 목섬 ~ 6코스 구들장길 ~ 매봉산 ~ 신흥해수욕장 (17km)
<백두산우회 19주년 청산도 트레킹 일정>
◈ 10일(금)
- 23:00 영등포 출발.
- 23:30 서초문화예술회관 출발.
◈ 11일(토)
- 05:00 완도항에 도착하여 아침식사
- 07:00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청산도행 배 출발.
- 07:50 청산도(50분 소요) 도청항 도착.
- 08:30 신흥해수욕장(10분 소요)에 도착하여 산행 시작.
▶ 청산도 7산 종주
▶ 즐산팀은 슬로길 6~7코스 및 매봉산 트레킹
- 16:30 신흥해수욕장에서 산행 및 트레킹 종료.
버스로 숙소 이동.(10분)
- 17:30 숙소(청산빌리지펜션)에서 19주년 기념 연회.
◈ 12일(일)
- 06:30 아침식사 및 짐정리.
- 07:30 범바위 입구로 이동(버스)하여 트레킹 시작.
▶ 청산도 슬로길 1~5코스 트레킹
- 12:00 숙소에 도착하여 트레킹 종료.
점저식사 및 주변정리.
- 14:20 숙소 출발하여 도청항으로 이동.
- 15:00 청산도 도청항 출발.
- 16:00 완도항 도착하여 서울로 출발.
- 22:00 서울 도착.
< 산행 및 트레킹 지도>
한 해도 거르지않고 백두산우회 생일이면 진행하여야 하는 섬산행에는 단순히 무박2일에서 1박2일이 된다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제약과 조정을 거쳐야 하는 고려사항들이 발생한다. 우선은 그 섬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백두들의 2일간을 만족시켜 줄 콘텐츠가 있느냐일 것이지만, 아울러 배가 뜰 수 있는지를 포함한 날씨와 20여 명이 연회와 잠자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숙소, 그리고 노정에서 불가피한 두세 차례의 매식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올해도 기대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19주년 섬산행을 계획해야 하는 때가 되었지만 예전보다 훨씬 높아진 제약들을 충족할 만한 섬 산행지를 찾기가 그리 녹록지가 않다. 이제는 서해안과 전남 해안을 벗어나 경남 해안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에 따라 여러 섬들을 고려해 보았지만 코로나 이후 많이 약해진 적응력을 감안하면 마땅한 선택지를 찾기가 어렵다. 그렇게 이리저리 우리나라의 수많은 섬들을 뒤적이다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콘텐츠가 있어서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 필요한 편의시설도 어느정도 갖춰져 있고, 특히 코로나 기간에 일부 백두들이 다녀온 곳이라 숙박시설도 그리 고민해서 찾지 않아도 될 전남 완도군의 청산도를 금번 주년 산행지로 정했다.
<청산도>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위치하며, 완도에서 남동쪽으로 19.7㎞ 지점에 있다. 면적은 33.27㎢이고, 해안선 길이 42㎞이다. 서쪽에 대모도(大茅島), 동쪽에 황제도(皇帝島), 남쪽에 여서도(麗瑞島)가 있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청산도는 임진왜란 이후 주민들이 입도하였다고 하며, 1866년(고종 3)에 청산도에 진(鎭)이 설치되었다. 1895년에 진이 폐지되고, 1896년에 완도군 청산면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지명은 물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 하여 청산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여 선산(仙山) 또는 선원(仙源)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지질은 대부분 산성화산암류와 불국사화산암류로 형성되어 있다. 대봉산(大鳳山, 379m)·매봉산(梅峰山, 385m)·보적산(寶積山, 330m) 등의 산지가 발달하였다. 동쪽이 지대가 높으며, 평야는 서쪽과 중앙에 펼쳐져 있다. 복잡한 해안선 사이로 해식애가 발달해 있다. 1월 평균기온은 1.0℃, 8월 평균기온은 27℃, 연강수량은 1,285㎜, 연강설량은 5㎜이다.
2022년 기준으로 인구는 2,269명이이다. 취락은 중앙 및 서부 해안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3.67㎢, 밭 4.43㎢, 임야 23.06㎢이다. 농작물로는 보리·고구마·콩·마늘·참깨 등이 생산된다. 근해에서 삼치·멸치·도미·민어·갈치·쥐치·장어·문어·낙지 등이 어획되며, 굴·미역·김·톳 양식이 이루어진다. 매년 음력 1월 15일에는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훈련장을 기념하기 위한 신앙제가 행하여지고 있다. 관광지로는 서편제 촬영지, 지석묘와 하마비, 지리해수욕장, 신흥리 풀등해수욕장 등이 있다. 2007년 12월에는 국제슬로시티에 가입하였다. 2012년에는 구들장논이 우리나라 농업유산 1호로 지정되었다. 교통은 완도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가야 할 섬(島)이 정해지자 인력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날씨를 제외하고 기타 여러 준비 사항들은 차질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완도에서 청산도로 들어가는 첫배가 아침 7시에 출발하므로 완도항이나 근처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가 않을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막상 아침식사를 예약하려고 전화를 걸어보면 두세 곳의 식당이 7시에, 나머지 대부분의 식당이 9시 반 이후에 문을 연다고 하여 첫배를 예약한 우리가 이용하기에는 불가했다. 아마도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이용객도 많이 감소했고 인건비도 올라 새벽 영업을 포기한 듯하다. 인터넷 지도를 뒤진 끝에 완도항에서 조금 떨어진 순두부집에 아침식사를 겨우 예약했지만 출발 3일 전에 식당 쥔장이 집안 행사 때문에 문을 닫는다고 연락을 해 오는 바람에 다른 대안을 찾느라 난리를 치고서야 완도 들어가는 입구 근처의 식당을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청산도가 남해 바다 중에서도 외해에 속해 있어서 내해와는 달리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뱃길이 닫히게 되는데, 서울에서 출발하는 금욜도 높은 파도로 뱃길이 닫힌 상태이고, 토욜 아침의 출항 여부는 토욜 아침에 결정된다고 한다. 몇 해 전에 진도 팽목항에서 높은 파도로 관매도를 들어가지 못하고 진도와 접도에서 이틀을 보냈던 경험이 있던 터라 부랴부랴 해남과 강진에서 백두들이 걸어도 좋을만한 트레킹 코스와 숙소를 찾아보며 백두산우회 전용 버스 몸을 싣고 서울을 출발한다.
아침식사를 예약했던 완도항 부근의 개성순두부 쥔장이 급하지 않은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는다고 하여 급하게 예약한 완도대교 건너면 바로 나오는 원동기사식당에서 집밥같은 아침식사를 하고,
완도항 인근의 떡집(떡둥이)에서 예약해 놓았던 생일떡을 찾아 버스에 싣고서,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마침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어 청산도행 배가 뜬다고 한다. 일단 청산도에 들어가기만 하면 몇 해 전 백령도에서 처럼 나오는 배가 뜨지 않아도 내가 할 걱정은 없으니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져 편안한 마음으로 출항을 기다린다.
완도항에서 청산도로 가는 배는 하루 6차례 운항하는데, 사람은 8,700원 차량은 67,700원(승용차)이며 시간은 50여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리고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아서 승선을 못하게 되면 무척이나 난감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완도항 여객선터미널에서 7시에 출항하는 퀸청산호에 올라,
모든 우려와 걱정일랑 완도항에 내려놓고 청산도로 향한다.
선실에서 잠시나마 좀 편안한 잠을 청해보려던 온갖 노력을 포기하고 선미로 나서니, 날씨가 청명하여 고흥반도의 천관산쯤도 가늠되고,
19주년 기념 섬 산행지인 청산도 위로 떠오른 밝은 태양이 어서 오라며 영접을 나와있다.
북동쪽 신지도와 생일도 방향
서쪽 대모도 방향.
남쪽 제주도 방향.
목적지인 청산도가 가까워짐에 따라,
작은 바위섬을 기준으로 제주도의 위치가 우에서 좌로 이동하여,
청산도항이 뱃머리 너머로 가까이 다가서더니,
50여 분 남짓 걸려 청산도 도청항에 도착하여,
백두산우회 19주년 기념 1박2일의 여정을 보낼 청산도에 도착하여,
느림을 상징하는 달팽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청산도의 서쪽에 자리한 도청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남짓만에 동쪽에 위치한 신흥리 풀등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신흥리>
입주 당시의 마을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59~1789년의「호구총수」에 나타난 기록으로 보면 해의리와 신흥리로 되어있으며, 일제시대에는 불당곡(상산포)과 해리라고 불렀다고 하며 1896년의 호적대장 상의 기록에 신흥로 표기된 것을 근거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리 처녀 흰쌀 서말 못먹고 시집간다"는 예기가 있는데, 옛날에는 신흥리 마을이 하도 가난하기로 유명하여 딸이 시집갈 때까지 쌀 3말을 못머고 시집간다고 하여 "신흥리 처녀 쌀 서말 못먹고 시집간다"라고 전해내려오고 있다.
신흥리 표지석과 나란히 세워진 '단합 화목 애향' 비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슬로길 6~7코스 트레킹을 하는 즐산팀은 항도(목섬)로,
청산도 7 산 종주팀은 들머리인 신흥리 보리마당으로 출발한다.
<청산도 7 산 종주산행>
청산도를 이루는 산들은 높이도 고만고만하고 웅장하다. 청산기맥(靑山岐脈)을 이루는 오산(烏山, 333.5m), 대봉산(大鳳山, 379m), 대성산(大成山, 343m), 대선산(大仙山, 311m), 고성산(古城山, 224m), 보적산(寶積山, 330m), 호암산(虎岩山, 235m), 매봉산(鷹峰山, 385m)의 여덟 개의 산(7산에 범바위(호암산)를 추가함)의 산줄기는 C자형으로 청산도를 동서남북으로 가른다. 청산기맥의 어느 산에 오르더라도 청산도의 빼어난 '청산여수(靑山麗水)'를 바라볼 수 있다. 청산도 7 산 종주산행은 ‘청산여수(靑山麗水)’를 느끼기에는 최고의 코스다.
청산 팔경은 항도귀범(項島歸帆), 오산낙조(島山落照), 대봉연사(大逢蓮寺), 대성야우(大城夜雨), 고성귀운(古城歸雲), 호암숙무(虎岩宿霧), 보적청람(寶積靑藍), 응봉추월(鷹峰秋月)이다. 청산 팔경은 청산기맥으로 이어진 여덟 개의 산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청산도 일주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면,
우측으로 신흥리 풀등해수욕장의 '풀등'이 살짝 드러나 보이고,
<풀등>
풀등은 강물 속에 모래가 쌓이고 그 위에 풀이 수북하게 난 곳으로 흔히 하류에 많이 생긴다. 비슷한 말로는 모랫등, 초배(草背), 초서(草嶼)라 부르기도 한다.
모랫등이란 하천의 한가운데에 상류로부터 흘러들어온 모래가 쌓여 섬의 형태를 띠게 된 지형을 말한다. 지형, 유속 또는 강물의 흐름변화에 따라 장기적으로 상당한 크기의 섬이 되거나 육지와 연결되기도 하고, 깎여서 사라지기도 한다. 퇴적작용에 의하여 형성되므로 하천의 상류보다는 중류나 하류에 주로 형성되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에 생긴 모랫등 중 커다란 섬이 된 것은 시가지의 일부를 형성한다. 한강의 여의도, 평양 대동강의 능라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모랫등이 커져서 일정한 규모가 되면 풀이 자라면서 작은 생태계가 형성되는데, 이것을 별도로 풀등이라 한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가 대표적이다. 풀등은 수중 모래섬인 셈이다.
신흥리의 풀등은 썰물 때면 3~5시간 동안 보였다가 밀물 때가 되면 다시 사라지는 신기하기만 한 섬으로, 풀등 또는 풀치라고도 부른다.
우측 상산포 방향 갈림길를 지나 도로를 따라 잠시 더 진행하면,
이 길이 청산도 슬로길 8코스 해맞이길이라는 표지판도 세워져 있고,
이내 청산도 7 산 종주의 들머리인 신흥리 보리마당에 도착하여 오산과 대봉산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보리마당>
신흥리 상산포 위 진산리로 넘어가는 평탄한 곳이 있는데 이를 지칭하는 말로, 옛날 주민들이 공동으로 보리를 타작한 마당이라 하여 보리 마당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그곳에서 약 500m 진산리로 가는 길에 위치한 물벅은 고랑이 있는데, 옛날 밤이 되면 어린애 울음 소리와 무서운 귀신이 나타나 사람을 헤친다고 하여 지금도 사람들이 밤만 되면 혼자 가지 않는 곳이며 무서운 곳으로 소문나 있다.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첫번째 봉우리인 오산을 향해 오르는데,
진돗개를 데리고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주민을 만나 인사를 건네니 모든 견주들처럼 자기 개는 절대로 사람을 물지 않는다며 인사를 건네는데,
정작 쥔을 따라 내려오던 진돗개는 우리와 절대로 마주치기 싫다는 듯 발길를 돌려 힘든 오름길로 사라져 버리고,
지그제그로 이어지던 수레길이 좌측 산허리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우측 정비된 등로로 들어서서 오르면,
바위들도 널려있는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다소 완만해지며 잘 정비된 숲길이 걷는이를 편안하게 하는지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껴입었던 겉옷을 벗어 배낭에 갈무리하며 7 산 종주에 대한 긴장도 함께 내려놓는다.
가벼운 몸가짐으로 변신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숲길을 따라 오르면,
그저 전망바위쯤으로 보이고 네이버지도에도 별다른 표시가 없는 오산(烏山, 268m) 정상에 도착하는데,
이정표에는 이곳을 오산으로 표시하고 있지만 일부 지도에서는 다음 봉우리인 333봉을 오산으로 표시하기도 하며,
키높이의 돌탑이 있는 정상에서는 청산도의 가운데를 차지한 들판과 이를 둘러싼 매봉산~보적산 능선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보적산 좌측으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한라산.
시원한 전망을 선사하고 있는 오산을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서,
좌측 양지마을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안부를 지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일부 옛 지도에 오산으로 표기하는 333.5봉을 지나고,
빼곡한 관목과 넝쿨이 들어찬 능선으로 이어진 정비된 등로를 따라 내려서다가,
다시 안부를 지나 오름길을 오르면,
우측 신지도 방향.
좌측 보적산과 상도 방향.
좌.우로 조망이 트인 전망바위를 지나게 되고,
남쪽 매봉산과 보적산 방향.
우측 안골과 진산리 갯돌해변 너머의 북동쪽 생일도 방향.
<안골>
안골은 골짜기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마을을 다시 부흥시킨다 하여 부흥리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돌아본 333봉 방향.
하얀 억새가 가을임을 확인시키는 잘 정비된 등로를 잠시 더 오르면,
청산도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청산도는 물론 주변 섬들 조망도 시원한 대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대봉산(大鳳山, 378.8m)>
전남 완도군 청산도의 중앙에 위치한 산으로, 양중리, 국산리, 부흥리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산의 남측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천이 흘러 곡저부를 형성하여 양중리 등의 취락을 이룬다. 그 이름처럼 활개 치듯 청산도 전체를 감싸 안는 형세다.
남쪽 매봉산, 보적산, 고성산 방향.
서쪽 대선산과 대모도, 소안도 방향.
북쪽 완도 상황봉과 신지도, 생일도 방향.
동쪽 상산포 보리마당에서 오산을 거처 대봉산에 도착하는 용현 형님.
대봉산 정상 인증.
오늘 오르게 될 청산도 7 산 중에서 오산에 이어 벌써 두 번째인 대봉산에서도 멋진 조망을 선사받았기에 앞으로 오를 5개의 산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며 대봉산을 뒤로하고,
최근에 정비한 듯 보이는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우측 진산리, 국화리 주민들이 좌측 부흥리로 넘나들던 부흥기재를 지나고,
바로 성터의 흔적으로 보이지만 축대를 쌓아 만든 헬기장을 지나,
정비를 하지 않았다면 진행에 땀께나 흘렸을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다가,
너덜처럼 바위들이 쌓여있는 능선 오름길을 올라 높지 않은 봉우리를 지나면,
잠시 평지 수준의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청산지가 언뜻 보이더니,
오르내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능선길을 잠시 더 따르다 보니,
그냥 능선인데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어서 살펴보니 삼각점(청산 11)이 있는 대성산(343.4m) 정상이다.
<대성산(大成山, 343m)>
전남 완도군 청산면 부흥리, 지리, 도청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이 관목숲으로 덮여있어서 별다른 조망이 없다.
대성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보적산 방향.
대성산을 뒤로하면 앞쪽으로 대모도가 보이며 따르던 등로는 직진의 능선을 두고 직좌틀하여,
사면으로 이어진 급경사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면,
옛사람들의 피난처로 사용됐음직한 돌담이 나타나며 등로는 다소간 완만해지더니,
우측 도청리 방향 정비되지 않은 등로가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좌측의 운치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면,
우측 도청리와 지리 방향으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진 지리재(풍막골고개)를 지나게 된다.
<지리재/풍막골고개(205m)>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풍막골과 청산면 부흥리 깊은골 사이의 고개지점이다. 풍막골(풍마골)은 고구마를 맨 처음 들여와서 재배하였던 곳으로, 당시 다른 곳에서는 결실이 잘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고구마(감자)가 잘되었다고 하여 지금도 지명 이름을 풍마골이라 전해 오고 있다.
풍막골고개를 지나 상록 관목숲으로 이어진 멋진 등로를 따라 오르는데,
우측으로 조망의 트이며 새벽에 떠나온 완도가 바다 건너로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콩짜개덩굴이 바위와 나무를 예쁘게 단장하고 있는 너덜지대를 오르면,
대선산분기점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고성산 방향인 좌측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우측 400m 지점의 대선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우측 대선산 방향 등로로 들어서서,
완만한 안부를 지나 오르면,
관목숲으로 둘러싸인 공터를 지키는 대선산(311m) 정상석이 나타난다.
<대선산(大仙山, 311m)>
전남 완도군 청산면 부흥리, 도청리, 읍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대선산(大仙山)은 청산도가 고려 시대 선산(仙山), 선원(仙原)이라 불렸던 시절 청산도의 지명에서 이름 붙여진 듯하다. 그 당시에는 도청리, 도락리, 읍리, 당리의 진산이어서 한자로 선산 앞에 '큰 대(大)'를 붙여 대선산이라 하였을 것이다.
다시 대선산 갈림길 삼거리로 돌아나와 우측 고성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제법 호젓한 내림길 등로가 이어지다가,
등로 우측에 있한 조망바위에 들러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청산도를 굽어보며 여유로운 가을을 음미한다.
동쪽 부흥리와 양지리 방향.
남동쪽 가야 할 고성산 방향.
남서쪽 화랑포 방향.
다시 찾고 싶은 조망바위를 뒤로하고 정비된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우측 읍리 방향 갈림길이 있는 재골고개를 지나고,
<재골고개(145m)>
전남 완도군 청산면 읍리 재골과 청산면 부흥리 승모사 사이의 고개지점이다.
작은 바위들이 듬성듬성 나타나는 급하지 않은 오름길을 오르면,
성터의 흔적으로 보이는 석축이 둘러진 제법 널찍한 정상부에 오석의 정상석이 자리한 고성산 정상을 지나게 된다.
관목으로 둘러싸여 별다른 조망이 없는 고성산 정상.
<고성산(古城山, 224m)>
청산면 읍리와 부흥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고성산(古城山)은 약 300m 정도 되는 옛날 성터가 산을 두르고 있는 산이라 해 붙여진 이름으로, 그 옛날 왜적이 침입했을 때 완도 상왕산으로 위급함을 알리던 봉화대 터로 짐작된다.
별다른 조망이 없는 고상산을 지나 내림길로 들어서면 가야 할 보적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빼곡한 관목터널로 이어진 등로를 따르다가,
묘지를 지나 완만한 등로를 따르면,
읍리와 신풍리를 잇는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읍리큰재(새골고개)를 지나게 된다.
<읍리큰재/새골고개(115m)>
전남 완도군 청산면 읍리 새골, 도깨비골과 청산면 부흥리 청산초교 동문교(폐교)가 위치한 밤나무골 사이의 고개지점으로 청산도의 서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2차선의 청산로가 지난다.
읍리큰재 전경.
호젓한 등산로를 따라 이동통신탑을 지나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이내 등로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편안하게 이어지고,
다시 가팔라지는 오름길을 조금 오르면,
앞쪽으로 가야 할 보적산이 지척으로 보이지만 아무런 표식이 없는 213봉을 지나게 된다.
213봉을 지나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등로의 웃자란 풀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통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고,
다만 거미줄만이 귀찮게 하는 완만한 내림길 등로를 따르면,
좌측 청계리와 우측 읍리 구장리를 잇는 4거리 안부 고개지점을 지나면 편백나무 조림지로 들어서게 되는데,
완만하던 등로가 제법 가파르게 바뀌며,
이내 다시 억새가 피어있는 빼곡한 관목숲 오름길로 이어지더니,
보적산 정상부 직전의 절벽암릉을 만나 좌회하여 오르게 되고,
아래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그리 어렵지 않게 절벽을 좌회하여 올라 절벽 위에 서면,
지나온 고성산, 대선산, 대성산, 대봉산, 오산이 모두 시원스레 조망되며,
아침에 버스에서 내려 7 산 종주 산행을 시작한 신흥리도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에 오를 매봉산도 한눈에 조망된다.
서쪽 소안도와 대모도 그리로 청산도항 방향.
남쪽 여서도 방향.
보적산 정상을 향해 다소 평탄한 암릉길을 따르면,
우측으로 읍리와 당리의 마을들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가야 할 범바위도 내려다 보이더니,
이내 빼어난 조망이 펼쳐지는 청산도 보적산 정상에 도착한다.
<보적산(寶積山, 330m)>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청계리와 읍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군사 1일간의 양곡이 싸여있는 형국이라 보적산이라 하였다. 산 정상에 오르면 범바위와 청산도의 매봉산, 고성산, 대선산, 대성산, 대봉산, 오산등 청산도의 6개 산을 모두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탁 트인 조망이 아주 빼어나다.
서쪽 보길도 방향으로는 내일 걸을 구장리와 화랑포 해변 그리고 당락리 마을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오늘 걸은 봉우리들이 뿌듯하게 조망되며,
동쪽으로는 슬로길 5~6코스를 걸은 즐산팀과 합류하게 될 매봉산이 지척이고,
남쪽으로는 잠시 후에 만나게 될 작은범바위와 범바위가 내려다 보이는데,
제주도는 바다에 떠 있는 것인지 구름에 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보적산 정상 조망(동영상 01'07")
범바위를 향해 보적산 정상을 뒤로하고 급경사의 암릉길을 내려서는데,
우측 보길도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서 먼바다를 바라봐도 좋을 반석바위가 산꾼을 유혹하지만,
좌측으로 보이는 매봉산에서 즐산팀과의 만남을 남겨두었기에 걸음을 재촉하면,
널찍한 반석바위가 나오며 가파르던 등로가 한결 완만해지며,
앞쪽으로 어서오라 손짓하는 작은범바위의 모습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노라면,
'명풍치유 하늘길' 이정표가 있는 편백숲으로 들어서게 되고,
이내 범바위입구 삼거리에서 범바위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포장된 길을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면,
범바위주차장(전망대주차장)에 들어서게 된다.
범바위주차장에서 우측의 도로는 바로 범바위로 이어지지만, 좌측의 작은범바위 방향으로 오르면,
잠시 전에 올랐던 보적산이 꾀나 높아 보이고,
이내 봉우리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범바위에 도착하게 된다.
작은범바위에서 약간 오른쪽 방향 능선으로 이어진 등로로 내려서면,
가야 할 범바위전망대와 범바위가 다가서더니,
커다란 우체통이 눈길을 끄는 범바위 전망대를 지나게 되고,
범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범바위라 불린다는 범바위에 도착한다.
<범바위의 유래>
범의 머리 모양을 닮아 범바위라 부르며, 한 호랑이가 바위를 향해 포효한 소리가 자신의 소리보다 크게 울리자 이곳에 더 큰 호랑이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놀라 섬 밖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범바위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강한 자성으로 범바위 부근에서는 나침반 이 작동하지 않아 신비의 바위라고도 불린다.
범바위를 오를까 고민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백두들.
매봉산에서 즐산팀과의 약속 시간에 늦어질까 염려되어 서둘러 범바위를 뒤로하고 매봉산 들머리를 향하면,
도로 우측의 '범바위 전설'과 '신비의 섬 청산도' 설명 비석이 설치되어 있고,
<범유다(범+유(有)+다(多)) 삼각지대>
『범+유(有)+다(多)는 '범이 많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범바위 주변으로 상도(무인도)와 청산도 남서쪽의 권덕 마을을 잇는 삼각형 안쪽에는 자철석이 많아 자기장의 자력 작용이 활발하다고 합니다. 자철석은 지구에 많이 있는 광물이지만 범바위처럼 큰 형태로 영향을 주는 곳은 드문 편입니다. 범바위의 이러한 특징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플로리다 제도 부근의 버뮤다 삼각지대와 뉴질랜드 북쪽 솔로몬 제도의 아이언 버텀(Iron bottom)에서도 나타납니다. 버지니아 논문에 따르면 자기장은 뇌의 특정 회로를 제어해 '행복한 마음'을 이끌어낸다고 합니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유도해 실금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며, 자기장을 이용한 '체외 자기장 신경치료'가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범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이로운 자기장을 느끼며 활력과 생기를 받아가시길 바랍니다.』 (청산도 범바위 비문)
<범바위의 전설>
『푸르름 가득한 태초에 성스러운 땅이 있었으니 이곳을 청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만물을 두루 살피던 신선은 범에게 이르기를 청산의 생기를 이어갈 열 가지의 생명을 십장생이라 할 터이니 그들을 모이게 하라고 시켰습니다. 범은 십장생에 포함되지 않자 자신이 십장생이 되고 싶었던 범은 그만 나쁜 마음을 먹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신선은 크게 노하여 오늘 밤 달빛이 바다에 비추기 전에 청산도를 떠나라고 범에게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신선에게 혼이 난 범이 바쁘게 섬을 떠나려고 했지만 자꾸 뒤처지는 아기범 때문에 애를 태웠고 산의 정수리를 넘으려는 순간 달이 바다를 비추고 섬광이 떨어졌습니다. 천지간에 덮였던 어둠이 가시고 난 뒤 어미범과 아기범은 커다란 바위가 된 채로 청산에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청산도에는 사슴이 없는데 이는 범이 사슴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범바위는 권덕리 마을에서 바라보면 마치 범이 웅크리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바닷바람이 세게 불면 기이한 소리가 들려 청산도 주민들은 "바람이 많이 부네"를 "범이 많이 우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모이고 널리 퍼지는 청산도에서 끝이 없는 생을 꿈꾸었던 벌이 바위로 서서 느림객들을 맞이합니다.』
범바위주차장으로 돌아나와 왔던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잠시 전에 내려섰던 보적산 갈림길을 지나고,
차량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도로를 따르면,
읍리큰재에서 헤어져 보적산과 매봉산 사이의 안부에서 만나기로 했던 용현 형님의 모습이 보이고,
<청산도 피내리 꼬랑>
청산도 청계리는 "청산가서 글 자랑하지 마라"라는 시원이 생긴 곳이다. 왜구의 침입경로는 청계리 뒤편 장기미에 선박을 정박해 산을 넘어 마을을 침탈하였다.
장기미에서 청계리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은 보적산 아래 계곡을 타고 들어오는 길 하나뿐이다. 청계리 주민들은 이웃 주민들과 연계하여 장기미에서 갯돌을 주어 보적산 중턱 계곡을 끼고 있는 곳에 모아 두었다가 왜군들이 계곡으로 침범해 올 때 돌로 쳐부쉈다. 대승이었다. 왜구의 시신이 계곡을 메우고 피가 계곡에 흐르면서 피 꼬랑이 되었다. 그래서 "피내리 꼬랑"이라 부르게 되었다.
우측 청산도 슬로길 5코스 장기미해변 방향 갈림길인 범바위입구 삼거리에서 좌측 길로 진행하다가,
이내 우측 시멘트포장 농로로 들어서서 잠시 진행하면,
'매봉산등산로' 이정목이 있는 매봉산 들머리가 나온다.
매봉산 정상을 향해 꾀나 가파른 등로를 오르면,
좌측 청계리.원동리 방향 갈림길을 지나고,
다소 완만해진 호젓한 등로를 따르는데,
매봉산 정상에 도착한 즐산팀의 총무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30여분 늦을 듯하다고 답하고는 걸음을 부지런히 놀려,
매봉산 정상부가 보이는 능선을 지나서 오르면,
매봉산 정상을 다녀온 후 좌측 상서재로 내려가게 되는 삼거리갈림길에서 우측 매봉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약간 가팔라진 오름길을 올라,
작은 돌탑을 지나면,
좌후방 덕우도 방향으로 생일도를 비롯한 올망졸망한 섬들이 돌아다 보이고,
하얀 억새가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하늘거리는 편안한 등로를 이어가는데,
좌측 푸른 바다 멀리로 2018년 14주년 섬산행 때 갔던 거문도가 제법 뚜렷이 조망되고,
아련한 거문도 섬산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더 편안한 등로를 따르면,
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며 너즈레를 떨고 있는 즐산팀들이 기다리는 매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매봉산((鷹峰山, 384.5m)>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청계리와 상동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산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384.5m이다. 옛날 이곳에 매가 있어 매사냥을 했었다 하여 매봉산이라 하였다. 산 정상에 오르면 말탄바위, 범바위와 보적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매봉산에서 바라본 장기미해변, 말탄바위, 범바위, 범바위전망대, 작은범바위, 보적산과 서쪽 보길도 방향.
남쪽 상도와 여서도 방향.
청산도 7 산 종주의 마지막 매봉산 정상에서 함께한 백두들!
매봉산 인증을 남긴 백두들이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정상을 뒤로하고 하산길에 나서면,
북서쪽 생일도 방향으로 다도해상의 섬들이 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 있고,
동쪽 수평선에는 거문도는 물론 백도도 희미하게 가늠되며,
아련한 5년 전 거문도에서 기억 조각들을 저마다 꺼내어 맞추어 보며 생일도를 향하는 듯 내려서면,
매봉산 오름길에 지나왔던 삼거리 갈림길에서 상서재 방향으로 우틀하여 진행하고,
이제 하산길만 남은 터라 더욱 편안해진 마음으로 능선 내림길을 따르다가,
상서재에 도착하여 원래 예정했던 직진의 동촌리 방향 거친 등로를 두고 좌틀하여 상서 마을로 향한다.
상서재에서 좌틀하여 상서 마을 내림길로 들어서면,
제법 가파른 돌계단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이내 매봉산 날머리에서 포장 농로로 나서게 되고,
포장 농로를 따라 내려가면 아침에 올랐던 대봉산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며,
등로가 상서 마을의 다락논 사이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도로 우측에 슬로길 상서마을 이정표를 지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매를 매단 넝쿨이 덮고 있는 커다란 나무와 노란 유자나무가 있는 밭을 지나게 되고,
이내 청산도 상서 돌담마을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상서마을 돌담길>
상서마을은 조선 인조 때 난을 피해 섬으로 들어온 밀양 박씨와 언양 김씨, 나주 임씨가 정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의 돌담은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고 있다. 섬 지방의 전형적인 구조인 강담(흙을 쓰지않고 돌로만 쌓은 담)으로 쌓았는데, 이는 바람이 많은 섬 지방의 환경에 적합한 축성 형식이다. 이 마을의 담장은 전체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비슷한 높이로 지역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자연석으로 견고하게 쌓았다.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 당시 마을길을 넓히면서 일부 담장을 옮겨 쌓아 원형의 일부가 변형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옛 고향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상서 마을 돌담에 기대어선 손 점장.
상서 마을을 지나는 청산도 슬로길 7코스 돌담길을 따르며,
그 옛날 우리네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돌들이 쌓인 돌담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사이에,
상서마을회관에서 차도로 접속하여 신흥리 해수욕장을 향하면,
우리가 슬로길 7코스 돌담길을 걷고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이내 아침에 출발했던 신흥리 풀등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청산도 7 산 종주산행을 마감하고,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19주년 기념 연회가 진행되는 당락리의 청산빌리지펜션으로 향한다.
<백두산우회 19주년 기념연의 이모저모>
청산도 당락리의 청산빌리지펜션의 잔디 마당에서,
칼바람도 무색하게 열정을 뽐내며 세계 각지에서 공수해 온 산해진미같은 먹거리로 품을 잡아보다가,
더욱더 맹렬하게 불어오는 북풍에 기세등등하던 백두들의 열기조차 차츰 사그라들어,
내년부터는 생일잔치를 조금 앞당기자는 의견이 힘을 얻으며 연회자리를 실내로 옮겨,
백두산우회가 결성된 이후 19년이란 세월이 흘러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우리의 열정은 더욱 뜨겁게 이어가자며,
"행복하게 ~, 사랑하며 ~, 아름답게 삽시다!"를 외친다.
그렇게 우리들 각자의 추억과 바램들을 함께 나누었음에도 시간이란 4차원의 세계에만 남았을 뿐!
어디에서 본 글귀가 생각난다.
젊어서는 희망으로 살고,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고~~~!
오늘 우리 모두는 추억이 아닌 바램과 희망을 얘기하며,
내일, 내년, 그리고 50주년에는 뭘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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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년 동안 아름다운 산행과 행복한 추억을 함게 했습니다.늘 산행 안내와 산행기 감사드립니다.20주년 산행도 기대합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