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우리가 삼위일체의 영광과 신비를 굳게 믿어 진리로 하나 되게 하소서.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태초의 모습을 우리는 카오스라고 부릅니다. 혼돈과 아득한 그 무엇, 뭐라고 이름붙일 수도 없는 광활함과 까마득한 어둠이 충만한 곳으로 상상합니다. 그 때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습니다. 천지를 만드셨으나 아직 모양도 없고 어떤 형체도 없습니다.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서서히 하느님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창조의 첫 날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감탄해 마지않습니다.
첫날은 낮과 밤, 둘째 날에는 하늘이 열리고 푸른빛으로 가득 찬 세상에 온갖 과일과 열매가 풍성하니 사흗날의 참 보기 좋은 하느님의 세상입니다. 나흘째가 되는 날에는 하늘의 창공에 빛나는 별들을 달아놓습니다. 닷새 날에는 물에 사는 생물들 하늘을 나는 새들을 지어내시지 이 또한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드디어 이 땅과 하늘의 온갖 짐승들과 곡식들과 과일들을 기르며 다스리게 할 인간을 지어냅니다. 그로 인하여 하느님의 뜻을 물려 받아서 참 좋은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인간의 형상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형상을 본으로 삼았습니다. 외형상으로 이제는 거의 신의 모습에 다름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오늘의 시편 8편에는 창세기의 저 창조과정을 다시금 시인으로 하여금 노래하게 합니다. 엿새 동안에 온 세상과 그리고 그 세상에 사는 뭇 생명체들을 지어내시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주십니까?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시편 8편 3-6)
시공간을 넘어서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특히 AI시대의 초입에 들어서며 이제는 인간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혼돈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어떤 혼돈의 무질서, 카오스가 우리를 기다릴지 우리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여전히 묻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상황의 급변함에 따라 인간을 넘어서는 지능과 정보를 소지한 또 다른 지능형 ‘인간’을 직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어느 때에라도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고 칭찬을 받을 만한 우리의 언행과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묵상해야 할 때라고 보여 집니다.
인간의 지위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유’와 ‘성찰’의 최상위의 존재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인식적인 존재로서는 더 이상 우리 스스로가 최고의 존재임을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염없이 나아가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열 한 제자들
오늘의 2독서에서 바울로는 마지막 3차전도 여행을 마치면서 당부의 말씀을 전합니다. 서로 뜻을 같이하여 평화를 이룩하라고 말입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세상을 가득 채우는 뭇생명들을 지어내시고 마침내 이를 다스릴 인간을 내셨습니다. 보기에 참 좋은 세상인 우리의 지구에 대해,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1980년)에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이 코스모스에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할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부릅니다. 이 명칭은 1990년 2월 14일,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1호가 지구로부터 약 64억 km(40억 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에 붙여진 것입니다.
하느님이 지어내신 이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을 살아갈 책무는 인간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다스리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창백한 푸른 점 위에 평화는 요원합니다.
오늘 복음말씀도 주님께서 거듭 강조하는 것도 다름 아닌 ‘평화’입니다. 참으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이 좋은 세상에 평화를 이룩하기를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임무와 소명을 받은 자가 다름 아닌 제자입니다. 제자들 중에서는 의심하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평화를 이 땅위에 세워나갈 제자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형식에서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참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하느님은 원하십니다. 제자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세우는 일입니다. 제자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서로 사랑할 때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을 이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창백한 푸른 섬, 우리의 소중한 이 땅에 전쟁이 사라지고 마침내 평화로운 섬이 되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