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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촌 남장식
나주시 초등학교장 (전)
나주시 교육지원청 교육행정자문위원 (전)
월간 ⌜삶을 가꾸는 사람들⌟ 객원기자 (전)
한·중 문화교류회 부회장
광주여행문화원 이사
사진작가.
서호문학 회원.
은발의 향기 8집, 13집 공저.
남도사랑예술단 색소폰 연주자.
아내의 손
아내와 처음으로 무등산에 올라갔다.
골짜기 마다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고사리를 만지면 손끝이 간지러울 것 같고
진달래를 만지면 손끝에 꽃물이 들것 같다.
숨이 차서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내는 봄 냄새를 맡는 듯 코를 킁킁 거린다.
부부만의 시간이 참 좋은가 보다.
아내의 손에 내 손을 포갰다가
놀라서 눈을 밑으로 깔았다.
무엇을 만지며 살았기에
무엇을 붙잡고 살았기에
손등이 아니라 거북이 등이요
손바닥이 아니라 발바닥이다.
오물조물 만지고 있으니
자꾸만 가슴이 아린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 하늘을 쳐다봤다.
빛바랜 낮달이 두 개로 어른거렸다.
아내가 볼까 봐
살며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내의 손은 눈물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나보다.
연애편지 사건
내가 군복무를 할 때, 우리 중대장님은 아주 멋진 해병장교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가 수려하여 귀티가 좌르르 흐르는 미남이었다. 장부의 기개가 넘쳤고 성격도 호탕해서 병사들도 모두 잘 따랐다. 나는 행정병이었기 때문에 중대장님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고 신임도 두터웠다.
귀신 잡는 해병들만 득실거리는 병사 안으로 ‘또르르 또르르’ 귀뚜라미가 목청을 돋우어 가을을 불러들이던 밤, 술기가 거나한 중대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내일 꼭 부쳐야 하는데 많이 취해서 쓸 수가 없구나! 네가 잘 읽어보고 아침까지 석 장 분량으로 답장을 써 오너라.” 라고 하면서 편지지가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책상 위에서 편지 한 통을 집어 나에게 내밀었다.
겉봉에 ‘서울에서 이미○ 드림’이라고만 쓴 두툼한 편지를 한 주일에 한 번씩 중대장님에게 전할 때마다 ‘이 여인이 누구일까?’ 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편지였다.
남의 편지를 읽는 것은 감정이입이 안되기 때문에 흥미도 없는 것이지만, 답장을 써오라는 명령에 편지를 꺼냈다. 파란색 볼펜으로 살짝 흘려 쓴 글씨가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편지를 읽어 내려갈수록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 여인이 감히 사모님과 두 살배기 아들을 둔 우리 중대장님과 뜨거운 사랑에 빠져있는 연애편지였다. 감정이 여리기만 한 스물한 살의 나에게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연애편지를 쓰려면 연애를 해 본 경험이 있어야 그 감정을 절절히 묘사를 할 수 있으련만,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 봐도 대책이 서지 않았고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벽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막연했다. 더구나 내일 아침까지라는 시한부 조건은 나를 더욱 조급하고 초조하게 했다. 한참을 고심하다가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한 번 더 읽어보고 또 읽어 보았다. 석 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였지만, 알맹이는 ‘사랑한다.’ ‘그립다.’는 말이 전부인 것 같았다.
감이 잡혔다. 답장도 ‘사랑한다.’ ‘그립다.’는 두 말을 표현만 다른 문장으로 뜨거운 감정을 넣어 정연하게 늘어놓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해병 상병 남장식은, 해병 대위 서○구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 이미○에게 연애소설을 읽었던 기억과 학교 다닐 때 펜팔을 해본 경험까지 모두 끄집어내어 진력을 다해 답장을 썼다.
창가에 달빛이 서성거리는 가을밤, 고독에 몸부림치는 가냘픈 여심을 요동치게 할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쓰고, 고치고, 또 다시 쓰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써야 할 말은 다 써버린 것 같고, 필력도 이미 바닥이 났지만 편지지는 아직도 석 장에서 서너 줄의 공백이 남아 있었다. 그냥 봉투에 넣으려는데 석 장도 못 채우는 빈약한 필력을 알량한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참의 진통 끝에, 한 줄을 띄우고,
‘추신 : 미○씨만이 아는 뜨거운 나의 입김을 봉투 속에 가득 담아 보냅니다.’라고 덧붙였다.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어 봉투에 넣을 때, 활기 찬 기상나팔소리가 조용한 아침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가을볕에 흠뻑 젖은 코스모스가 가는 허리를 하늘거리던 어느 날 오후, 대대본부 인사과에서 ‘각 중대 모범사병 1명씩 추천하여 보고하라. 10일간의 특별휴가이므로 선발에 신중을 기할 것.’ 이라는 전언통신문이 하달되었다. 공문을 열람하던 중대장님, 시선은 공문서에 고정해 놓은 채 입으로만 불쑥 “남장식! 휴가 가고 싶나?” 하고 물었다.
이 세상에 휴가 가고 싶지 않은 졸병이 어디 있으랴. 그런 물음은 신병훈련소 정신교육 교본에 쓰여 있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나도 “가고 싶지만 참습니다.” 라고 교본에 쓰여 있는 대답을 했다. 그런데 중대장님의 반응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좋아! 참지 말고 갔다 와. 내 연애편지도 써야하지만, 네 연애편지도 써야 되지 않겠나? 이번 휴가는 보상휴가이자 애인을 구하는 특별휴가임을 명심하도록!”
결재판을 내 책상위에 놓고 행정실을 나가는 중대장님을 향해 나는 벌떡 일어나 “넷, 명심하겠습니다." 라고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창밖의 코스모스가 긴 목을 쑤욱 내밀고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상추밭에서
아니 이럴 수가·······, 하룻밤 집을 비운 사이에 상추밭이 쑥대밭으로 변해 버렸다. 손바닥보다도 더 넓적넓적한 이파리에 푸른 윤기가 넘치던 상추를 몇 포기만 남겨놓고 몰강스럽게도 뜯어가 버렸다. 대 여섯 평이 넘는 상추밭에 발가벗은 몸뚱이만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모습이 차마 보기에도 애처롭다.
나는 교사시절 어느 섬마을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섬이었다. 끝없이 확 트인 해수욕장이며, 산등성이의 뻗어 내림이 줄기차면서도 유연한 산봉우리들, 빠삐용 영화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 해변의 절벽에서 바라보는 붉은 낙조, 정갈스럽에 쌓아 올린 마을 돌담길······, 모두가 나에게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곳이었다. 산수가 아름다운 곳은 인심도 후덕하다고 했던가.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툇마루를 서성거리던 늦가을,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마당 한 쪽 빈터를 파고 상추씨를 뿌렸다. 모진 겨울을 이겨낸 새싹들은 봄을 머리에 이고 쏘옥쏘옥 다투어 올라오더니 외투 속까지 파고드는 따스한 햇볕을 먹으면서 하루하루 보기가 다르게 잘 자랐다. 잎이 넓어질 때마다 빈 땅을 일구어가며 정성스럽게 옮겨심기를 되풀이 하다 보니, 상추밭은 어느새 대여섯 평이 넘게 넓어졌다.
나는 상추밭에서 아침 저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상추들을 짓누르려고 텃세를 부리는 잡초를 뽑아주고, 갈증이 나지 않도록 부지런히 물도 주었다. 상추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너풀너풀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고, 혼자 사는 외로움도 잠시잠시 잊을 수가 있었다.
찬거리 때문에 부담스러웠던 아침, 저녁 식사 문제도 상추 몇 잎 뜯어다가 된장 한 숟갈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고, 뒷맛도 개운했다.
비료 한 줌, 농약 한 방울 먹어보지 않고 파도소리, 솔바람소리만 먹고 자란 상추인지라 광주에 가지고 가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면, 유기농 체소라고 모두들 좋아했다. 도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인기가 좋았던 상추였는데, 토요일에 잠깐 집에 다녀오느라고 하룻밤을 비운 사이에 몽땅 뜯어가 버린 것이다.
이랑사이를 살펴보니 촘촘한 곳의 상추를 솎아다가 듬성듬성한 곳에 옮겨심기도 하고, 호미로 김매기까지 하는 여유를 부렸다. 발자국을 보니 한 사람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 마을에서도 떨어진 길갓집인데다 한 뼘쯤 자란 코스모스가 울타리요, 그것을 밟고 넘나들면서 생긴 길이 출입문이라 일보기가 더욱 용이했으리라.
너무나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얼른 상추밭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는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찡한 울림이 왔다. ‘더불어 사는 세상, 내 것만 고집할 게 뭐 있느냐. 내가 가꾸어 놓은 상추를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고.
한 치의 여유로움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내 것에만 집착했던 옹졸한 생각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상추를 더욱 열심히 가꾸었고, 집을 비울 때면 그러한 일은 간혹 되풀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보면 양파를 담은 큼직한 비닐봉지, 포동포동 살이 찐 마늘 묶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 봉지, 잘 손질하여 냉동시킨 생선, 벌겋게 익은 감 바구니, 고구마 바구니가 가끔 툇마루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혼자 사는 삶이 너무 안쓰러워 누군가가 몰래몰래 놓고 갔으련만,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체 널름널름 받아먹기도 마음이 편치 않은 선물이었다. 인적이 드믄 곳이라 누구를 붙잡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 더욱 답답했다.
코스모스가 살랑바람에 하늘거리던 어느 날, 철 지난 상추밭을 정리하다가, 지나가는 마을 아주머니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더니,
“상추 뜯어가는 사람도 모르시면서 쌀, 마늘 몰래 놓고 간 사람 찾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면서 삥긋이 웃더니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 뒤를 코스모스와 장난하던 살랑바람도 따라 나섰고, 내 눈도 따라 갔다. 아주머니가 이고 가는 가을 하늘이 그날따라 어찌 그리도 파랗던고.
나도 얻어 쓴 건데.
개미 쳇바퀴 돌듯 토요일과 일요일은 항상 주례를 서는 날이다. 예식장 전속 주례로 이러한 날들이 2년 째 되풀이 되고 있다. 주례를 서는 날은 항상 바쁘게 서둘러야 하고 긴장이 된다. 신랑 신부와 평소 깊은 인연이 있어서 주례를 서는 것과 똑같이 주례로서의 정성과 도리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욕탕을 들러 이발소에서 머리를 다듬고, 까만 정장으로 말쑥하게 차려입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평상시 외출을 할 때는 승용차를 이용하지만 주례를 서는 날은 혹시 모를 사고로 시간을 다투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항상 지하철을 이용했다.
N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갔더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집을 나설 때는 구름만 몇 점 떠 있었는데, 어느새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 버렸는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자로 재듯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다니는 길인데 비 때문에 실수를 범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상시라면 비를 맞아도 훌훌 털어버리면 용모가 다소 흐트러진다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오늘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예식장 건물을 바로 코앞에 두고 무척 당황스러웠다.
출구에서 막연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서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빗물이 줄줄 흐르는 비닐우산을 접으며 들어오더니 내 곁을 스쳐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내 눈도 우산을 따라 갔다. 그 때 아주머니가 획 돌아서더니 “어르신 이 우산 쓰고 가세요.” 라고 하면서 계단을 몇 걸음 다시 올라와 나에게 우산을 건네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아주머니의 호의에 “아이고, 고맙습니다!” 라는 말로 답례를 하고 반갑게 우산을 받았다. 만사가 시원스럽게 해결된 기분이었다.
몸뚱이 하나 겨우 가릴 수 있는 1회용 비닐우산이었지만 펼쳐들고 출구를 나서는 나의 기분은 양양했다. 그러나 번개처럼 마음을 스치는 생각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되돌아서 우산을 접으며 계단을 황급히 뛰어 내려갔다. 그 때 아주머니는 매표를 하려고 지갑을 열고 있었다. “아주머니, 잠깐만.” 아주머니가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는 사이 나는 민첩한 동작으로 표를 사서 아주머니에게 내밀면서 “우산 잘 쓰겠습니다.” 라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등 뒤에서 아주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얻어 쓴 건데.”
오늘 결혼을 하는 신랑은 농촌에서 과수원을 한다는 38살의 건장한 청년이었고, 신부는 인형처럼 예쁘면서도 앳되어 보이는 22살의 베트남 처녀였다.
예식장을 나오는데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고마운 비닐우산에 의지하여 지하철역 입구에 들어섰다. 한 청년이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빗줄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것 쓰고 가세요.” 하고 우산을 청년에게 건네주었다. 청년은 표정이 밝아지면서 우산을 받더니 “어르신, 고맙습니다.” 하고 꾸뻑 절을 하였다. “괜찮아요, 나도 얻어 쓴 건데.”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나는 지공선사(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노인)가 되어 눈을 지그시 감고 상념에 잠겼다. 비오는 날 우산보다 더 요긴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우산이 절실했던 나에게 비닐우산을 건네준 아주머니가 생각할수록 고마웠다. 그 아주머니는 지하철에서 내리면 당장 우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더 조급한 나에게 주지 않았던가. 나 또한 지하철에서 내리면 당장 필요하겠지만, 그 청년에게 건네주었고.
누군가의 손에서 아주머니에게 건너 왔다는 비닐우산이 내게로 왔고, 내가 요긴하게 쓰다가 청년에게 건너갔다. 오늘 그 비닐우산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빗속 릴레이에서 배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염려해 주는 따뜻한 인정도 함께.
주자가 정해지지 않은 릴레이에서 나는 몇 번째 주자였을까. 그 릴레이가 청년에게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누구에게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구로 나오니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역 구내의 TV 앞에 앉아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나왔다.
동네 슈퍼의 처마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비닐우산이 달랑달랑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3천원이라고 했다. 1회용 비닐우산의 정찰가격은 3천원이지만 오늘 내가 받았던 인정의 정찰가격은 얼마나 될까, 내 마음의 계산기로는 계산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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