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춘란이 한창 꽃대를 올릴 철이다.
춘란의 본디 이름은 '봄을 알린다'는 뜻을 지닌 보춘란(報春蘭)이다. 난력(蘭曆)으로 따지면, 춘란이 피면 비로소 새해가 열리고 그믐 한란(寒蘭)이 지면 그 해를 마감한다. 그래서 춘란과 한란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난초로 꼽는다. 춘란은 흔하고 기품이 허약하며 특히 향기가 없다 하여 한란에 비해 푸대접을 받아왔는데, 놀랍게도 지난 10년 새 판세가 뒤집힌 형국이다.
지난해 가을, 14촉짜리 춘란이 경매에서 7천400만 원에 낙찰됐다. 촉당 530만 원꼴로, 국내 경매 사상 최고 가격을 기록했다. 이 난을 출품한 애란가(愛蘭家)가 언론을 통해 밝힌 사연이 무척 흥미롭다.
그는 15년 전 전남 화순에서 만난 춘란 4촉의 기개가 범상치 않아 600만 원에 샀다고 한다. 난의 기개는 주로 잎에서 풍긴다. 예전의 흔한 춘란과 달리, 짧고 곧추선 잎사귀의 가장자리에 줄무늬가 더해져 기개의 충만함이 넘쳤다. 그는 4촉을 매일 '문안'하듯 보살핀 결과 14년 새 150촉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150촉을 줄잡아 계산하면 7억 9천300만 원이며, 투자수익률로 따지면 무려 132.5배이다. 매년 거의 2배 장사를 한 셈으로 이런 횡재가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아무나 가능한 일이 아니며, 전문가라 해도 시간과 열정은 물론이고 행운도 따라야 될 일이다.
요즘 이런 명품 춘란의 몸값은 불황에도 고공비행 중이다. 애란가들이 인터넷에 소개한 춘란 중에는 촉당 1천만~2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도 여럿이다. 꼿꼿한 잎사귀에 광택과 줄무늬 혹은 얼룩무늬가 어우러지고, 꽃 모양과 빛깔이 선명하면서 은은한 향기를 더하면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명품 춘란이 어찌하여 갑자기 나타난 걸까?
춘란의 변신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그 배경이 궁금하다. 춘란의 군락지인 남해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다소 오른 것 외에 뾰족한 변화는 없다. 지구온난화로 법석을 떨지만, 변이종이 여기저기 튀어나올 정도는 아니다. 춘란이 아니라, 춘란을 보는 사람의 눈이 변해서 생긴 일이다. 해외에서 들여온 값비싼 난에 열광했던 국내 애란가들이 토종 난에 관심을 가지면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춘란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한 것이다. 한국 애란가의 성숙해진 심미안이 토종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더하면서 찾은 보물이다.
상록초본(常綠草本)인 춘란은 아열대와 온대지역에 주로 서식한다. 대체로 잎이 길고 많아 기세가 약한 데다 향기조차 없는 탓에 싸구려 취급을 면치 못했다. 이런 고정관념을 깬 '한국춘란'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교차가 큰 한반도 남해안의 독특한 자연환경이 만든 토종이며, 동양란의 종주국인 중국은 물론 대만과 일본에서 보기 어려운 명품으로 원예업계의 '한류 스타' 감이다.
농림부와 환경부는 우선 남해안에 서식하는 80여 토종 난의 서식생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군락지를 지정·보호하는 한편, 찾아낸 명품 토종의 조직을 배양하여 신품종을 농가에 보급하면 남해안은 동양란의 메카로 부상할 성싶다. 남해안은 춘란뿐 아니라 독특한 화훼식물종(種)의 보고이자, 위기에 처한 한국화훼산업을 되살릴 비장의 카드이다. 다음 회(3월 13일) 주제는 '산수유'이다.
박중환/'식물의 인문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