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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을 모시었습니까? / 2026년 8월 30일 주일 예배
본문 / 에스겔 45:1-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성소로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을 자기 손으로 이방인에게 넘겨주셨습니까? 자기 백성을 이방인들에게 넘겨 수치와 조롱과 멸시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하나가 되는 지극히 거룩하고 영광스런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거룩한 성소를 자기 손으로 이방인들의 손을 빌려 다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파괴해 버리신 겁니다. 왜 하나님은 거룩한 성소를 이방인의 손에 넘기셔야 했습니까? 왜 하나님은 거룩하게 구별하신 자기 백성을 심판에 넘기셔야 했습니까?
하나님이 더 이상 그 성소에 계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성소가 거룩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상에 임재하시는 거처 즉 처소인 성소, 성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택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사람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었고 지금 이 시대에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이 성소를 이방인의 손에 넘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호세아 1:9.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왜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습니까?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게 하려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믿게하셨습니까? 왜 나를 찾아오셨고 왜 나를 그 은혜로 부르셨습니까?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려는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 그 영광을 영원토록 함께 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된 겁니까?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에서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정한 세상이 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정한 세상을 불러와서 부정하게 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겁니다.
이스라엘은 은혜로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을 모셔야할 그들의 몸, 그 성전, 그 성소의 지성소인 그들의 마음과 영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부정한 세상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흘리신 그 은혜의 보혈로 나를 사셨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사는 주님의 것이 되어야 하지만 주님을 마음과 영 자기 몸의 지성소에 모시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거룩한 성도는 극히 소수인 겁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은 그 부정한 이스라엘을 떠나시고 결국에는 성소를 파괴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신 것처럼 지금 교회 안에서 자신의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오래 전에 자기 마음과 영에서 떠난 것도 모르고 우상숭배의 습관과 종교적 형식만 남아 입으로 주여 주여만 하며 자신을 속이고 속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지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면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주님이 나를 아신다고 할까요?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자에게 주님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들의 마음과 영 즉 몸의 지성소에는 하나님이 없었다는 겁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다! 과연 지금 내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었습니까? 과연 나는 누구입니까?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 참 쉽지 않다! 천국 가기 정말 쉽지 않다는 겁니다. 과연 누가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에서, 간사하고 교활한 어둠의 주관자인 마귀가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이 타락한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과 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그 순결한 믿음을 배우고 그 순전한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겠습니까? 주님은 생명의 길은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정말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는 것을 우습게 여깁니다. 적당히 교회 다니며 주여 주여 하면 가는 줄 압니다. 그런데 주님은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들어갈 자들이 많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사야 10:22.
전도서에서 증언합니다.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냈어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여인에게 불잡히리로다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이 못하였느니라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전도서7:25-29.
분명히 이 보령 땅에도 금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양이 너무 적고 희귀할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도 그렇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가짜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 더 귀하다고 노래하였는데 주를 사랑하는 그 마음 즉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주님을 모시고 육체의 정욕와 세상의 탐심을 십자가에 날마다 못을 박으며 주님의 뜻을 받들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은 정말 금보다 희귀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그 은혜를 믿음으로 은혜를 받은 자답게 사는,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은 아주 적은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들은 적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결코 믿음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은 보험이 아니라고 했지 않습니까? 보험금으로 자기 전재산을 지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보험을 누가 들겠습니까? 만약을 대비해 아주 적은 일부분을 지불하고 많은 것을 보장받는 겁니다. 지금 성도들의 믿음이 그렇습니다.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는 믿음이 보험으로 되는 줄 압니다. 아주 작은 것을 희생하고 구원을 받을 줄 아는 것입니다. 착각은 이 세상에 있을 때 깨는게 좋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지혜가 있다는게 뭐겠습니까?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어렴풋이라도 아는 것입니다. 지금 내 믿음으로는 안 되는구나! 어림도 없구나! 그것을 깨닫고 인정할 때에 회개가 나오고 결단이 서는 것입니다. 안 된다는 것을 안 되는 것으로 인정해야지 미련하고 교만하게 안 되는 것을 된다고 억지를 부리고 나는 믿는다고 되는 것입니까?
정말 이 시대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 신앙의 연조와 직분과 상관 없이 기초를 다시 닦아야 합니다. 목사도 믿음의 기초가 없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주님과 그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겠습니까? 주님과 그 복음이 즉 하나님 나라가 내 목숨을 버리고도 남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그 진리를 믿는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쓸모없고 가치 없는 손가락 하나를 보험으로 드리고 마는 것입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아야 할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12.
신앙의 연조는 길고 직분은 받았지만 여진히 믿음의 기초를 온전히 닦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자신의 몸 안에, 그 마음과 영 안에, 인생 안에 하나님을 모신 믿음의 집을, 하나님의 집을, 성전을 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뭐가 잘 못된 것일까요?
여전히 내 몸은 내 것이고 자신의 마음과 영의 지성소 즉 주인의 자리에 앉자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겁니다. 자신을 위한 인생으로 자신을 위해 사는 겁니다. 육신을 위해 육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쟁기는 어떻게 잡았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없으니 세상을 돌아보는 겁니다. 은혜를 받았지만 삶의 목표와 방향을 주님께로 정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생활에 영적인 믿음의 질서가 없으니, 십자가가 없으니 육신을 위해 육신으로 분주하게 정신 없이 사는, 향방없는 자가 되는 겁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누구를 위해 사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것에 사로잡혀 끌려가는 겁니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을 위해 살지 말라고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사는 이방인들의 삶이라고 하셨지만 자신의 마음의 지성소에 주님을 모시지 않는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무시하고 그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하며 반대로 삽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자신을 외면하고 자신을 속이고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겁니다. 답이 없습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예레미야 5:31.
마지막에는 어찌 되겠습니까?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과 귀머거리가 되었으니 어찌 되겠습니까?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그 마지막이 어찌 되겠습니까? 내 삶의 마지막 날이 안 오겠습니까?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안 오겠습니까? 심은대로 거두고 행한대로 갚아주겠다고 하신 그 날이 안 오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날이 안 오겠습니까? 내가 어디로 갔는지 그 믿음으로 영원한 세계가 판결나는 날이 안 오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안 올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 날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지옥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천국에서 영원한 위로를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심판을 받고 지옥에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그 고통을 알기나 합니까? 사람들이 믿지를 못합니다. 가면 가는 거지 합니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그 고통을 영원히 받는 그 지옥을 모릅니다. 알 수가 없으니 두렵지가 않은 겁니다.
지윽을 모르니 천국을 알지도 못합니다. 천국의 소망도 없습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 즉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의 믿음입니다. 자기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에 육체의 정욕과 탐심과 죄와 세상을 못을 박아 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기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나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과연 나는 내 마음과 영 그 지성소에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였습니까?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하면 소망이 없습니다. 내가 삶으로 내놓는 그 결과물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보험료를 조금 낸 것으로 자신을 속이겠습니까? 보혐료를 다른 사람보다 상당히 많이 내면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자기 의와 열심과 행위로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열심과 행위도 없습니다. 내는 보험료도 보잘 것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행위에서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이 있습니까? 이 교회에서 내가 드리는 헌금이 얼만데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내 지분이 상당해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헌금 액수가 작아서 차마 그런 생각은 못하십니까? 만약 헌금 액수가 상당해지면 그런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덮어놓고 평안을 전하지 않겠습니다. 평안이 없는데 평안을 전하면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기회가 있을 때 살피라고 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대속의 은혜 앞에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지금 나는 영적인 깊은 잠에 빠진 것은 아닙니까? 주님이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처럼 한 때는 은혜를 기쁨으로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험과 고난을 만나자 실망하고 두려워하며 주님께 등을 돌린 것은 아닙니까? 세상의 재물의 유혹과 정욕과 탐심과 걱정으로 은혜를 떠난 것은 아닙니까? 영적인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마음이 두꺼운 가죽으로 덮여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함께 섬기며 세상을 사랑하고 교만해지고 포악해지며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까?
자기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는 믿음에서 나오는 그 정성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못합니다. 주님을 섬긴지가 이 삼 십년이 넘었는데도 그렇습니다. 진짜 대단한 겁니다. 하나님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리와 영으로 예배하지 못하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첫 단추가 잘 못 되었는데 뭘 기대하겠습니까?
저는 전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회 생활은 어떻게 하나 말입니다. 직장은 어떻게 다니나? 세상에서는 나를 위해서 육신을 위해서 내 자아를 숭배하기 위해서 열심과 정성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은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위한 그 동기에서 몸이 아파도 괴로워도 지겨워도 행위가 나옵니다. 자아숭배자로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위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신앙에 열심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하여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열심과 행위를 원하는 것 같습니까? 전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열심을 내면 안 됩니다. 사랑과 은혜가 없는 상태에서 열심을 내면 안 됩니다. 무서운 사람이 됩니다. 교회는 자아를 숭배하는 직장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자아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 무덤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가 없이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제일 무섭습니다. 언제 그 교만하고 사악한 뿔로 들이받을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 반드시 흉기가 됩니다.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교회를 마귀의 소굴로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정성 없이 하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 소망있다고 봅니다. 사랑과 은혜가 없으면 즉 내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주님을 모시지 않으면 정성 없이 대충 적당히 신앙생활을 해야 맞는 겁니다. 열심이 없어야 됩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우리 아들은 교회도 안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없는데 어거지로 끌어오면 뭐하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말입니다.
아직 때가 아닌 겁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겁니다.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때에 그 마음과 영에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이제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인 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없는데도 나는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라고 자신을 속이며 율법에 지독하게 열심을 내던 자들이었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없는 자들이 교회에서 흉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인 겁니다. 그러니 목사는 어떻하겠습니까? 제가 보는 눈이 없겠습니까? 은혜와 사랑이 없는데도 열심을 내면 반드시 때가 되면 그 정체를 드러내는 겁니다. 여러분은 전에 봤던 사람들처럼 흉기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앞잡이는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저 이대로 가면 되는 겁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마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누니라" 로마서 3:31.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정성과 힘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 10:2-3. 증언합니다. 올바른 지식이 무엇입니까? 자기 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의에서 나오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아닙니까? 그 진리와 복음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아낌 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을 먹물을 삼아도 다 기록할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고 아무리 알려고 해도 다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왜 이렇게까지 사랑하시는지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나의 그 흉악하고 끔찍한 죄를 다 가져가셔서 나를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저주와 치욕과 심판을 받으시고 다 속량하고 그 은혜를 믿을 때에 모든 죄를 다 대속해주시고 기가막히게도 의롭다까지 해주시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그 은혜와 사랑 안에서 믿음으로 나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내가 하나님이라고 타락한 그 교만한 자아와 그 육적 자아를 숭배하기 위한 정욕과 탐심을 못을 박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느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드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이 그대로 내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영혼의 지성소 그 주인의 자리에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모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나를 사셔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드린 겁니다. 나는 이제 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이 진리가 마음과 영에서 믿어지고 삶에서 이루어져 믿음으로 확증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아멘!
하나님의 집, 성전, 지성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모신 거룩한 자들에게 뭐가 나옵니까? 하나님의 의와 영광과 기쁨을 위한 열심이 나오는 겁니다. 행함이 나오는 겁니다. 열매가 열리는 겁니다. 빛이 나오는 겁니다. 소금이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겁니다. 착한 행실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의 용사가 되는 겁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겁니다. 순종이 나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을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한 무익한 종으로 말입니다.
히브리서가 증언하는 믿음의 선진들이 다 그래서 고난을 받아도 기뻐하며 옥에 갇혔어도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치도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과 영에서 믿음으로 받을 때에 즉 마음의 지성소에 주님을 영접하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순종이 나온 것입니다. 원수조차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이 마음의 지성소에 모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죄와 싸우고 자신과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사망과 심판을 이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마음와 영으로 믿고 그 지성소에 주님을 모신 이 믿음을 세상과 마귀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세상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긴 것이 아닙니까?
세상을 이기고 있습니까? 육신을 이기고 있습니까? 마귀를 대적하고 이기고 있습니까? 죄를 이기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은혜를 받은 많은 성도들이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사랑하고,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함께 섬깁니다. 죄에 종노릇하며 육신을 위해 살며 마귀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회색옷을 입고 넓고 편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과연 그 길은 끝은 어디일까요? 나는 지금 누구입니까?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중에도 기회는 있다는 마귀의 속삭임에 미혹에 빠져 잠을 자겠습니까? 지금이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고 돌이킬 때가 아닙니까?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바로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깨우고 잠에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저는 파수꾼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저는 나팔을 붑니다. 지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잠은 깊어집니다.
한 번이라도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받았었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정말 나를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 그 사랑에 열심을 내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에 열심을 내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기 원합니다. 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까? 내 죄가 십자가에서 대속되었습니까? 내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의 용광로 안에서 내가 다 녹아져서, 정욕과 탐심이 다 녹아져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님이 내 안에 사는 자로, 주님을 마음과 영의 지성소에 모신 자로,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