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골문 - 무정시대
서법 예술(書法藝術)의 기원은-갑골문?
한자의 역사를 말할 때 시원은 어디일까? 갑골문이 나타날 때는 이미 2-3000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 문자(漢文)의 발생은 실용적인 수요에서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처음에는 그림을 그렸다. 중국 미술의 기원과 문자의 기원이 같다고 보는 이유이다. 회화가 심미적 수요에서 비롯하였듯이 서예 예술도 심미적 욕구로 나타났다. 회화와 서예 예술이 나타난 배경은 같으나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서법 예술과 회화의 차이점이라면 서법 예술은 사회적 수요(문자로서 기능)가 더 우선이었다. 심미적 표현보다는 기교적 성숙을 더 중요하게 보았다. 문자는 수 천 년의 긴 역사를 지나오면서 실용적인 문자 부호에서 미적 표현을 하기 시작하였다. 실용적인 목적에서 예술적인 목적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때를 갑골문을 쓰던 시기로 본다. 즁귝 문자사에서 상나라의 갑골문을 중요시하는 이유이다.
갑골문이 형성되는 때는 상형(그림 형상)에서 시작하여 추상의 부호로 바뀌는 시기이다. 이 과정을 지나가면서 하나의 규율이 생겼다. 문자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규범을 보면 평형(平衡), 대칭(對稱), 비례(比例), 균균(均勻), 공간 분포 등의 규율이 만들어졌다.
문자이 기능은 어디까지나 표의(表意)이다. 상형만으로는 문자의 기능을 다 하기가 어렵다. 반드시 부호화 해야 한다. 갑골문이 형성되는 시기가 이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갑골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시기에 따른 예술적 품격의 차이 등으로 변화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문자와 서법 예술의 자이는 무엇일까?
문자는 의미를 읽어야 한다. 서법 예술이라고 하면 감상을 한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감상에는 문자의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갑골문은 3천 자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해독하는 글자 수는 1400자 남짓이라고 한다. 갑골문의 의미를 한자를 읽듯이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문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도 갑골문의 형상만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갑골문은 형상에서 변화해 오면서 형상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문자의 배치에도 규율을 적용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글의 뜻을 읽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요소들이 감상의 대상이 된다.
갑골문의 구조는 이미 중국 문자의 구성 원칙을 모두 갖추었다. 중국 문자는 대상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가 가장 기본이다. 상형문자에서 오늘의 중국문자의 구조로 발전하였다고 말한다. 갑골문에는 인체, 동물, 자연물, 사람이 만든 기물을 본 뜬 상형자가 제일 많다. 상형자라고 하여 대상물을 간단한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아니고 이미 약정된 부호로 하여 만들었다. 예를 들면 동물을 표시하는 부호는 아주 간단한 선으로 직립한 모양이나 옆 모습을 나타냈다. 머리 부분은 위에 놓아서 세로로 쓰기 편하도록 하였다. 얼굴은 왼쪽으로 향하도록 하여 행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가도록 하였다. 상형 이외에도 중국 문자의 여러 구성 규범이 이미 갑골문에 나타나 있다.
갑골문은 기본적으로 칼끝을 이용하여 새긴 글이다. 도구는 청동이거나 날카로운 옥돌이다. 새기는 도구에 따라서 글자체에 차이가 나타났다. 새기는 방법을 보면 갑골에 칼로서 직접 새기는 단각법(單刻法)이 대부분이다. 드물지만 붓으로 글자를 먼저 쓰고 난 뒤에 새기는 모각법(摹刻法)도 있었다. 모각법으로 새긴 글자의 필획은 대체로 가늘고 양 끝이 예리하다. 필획이 연결 부위가 각(角)이 지고 글자의 모양이 모가 난다. 모각법은 붓 자국에 따른 필획을 안과 바깥의 두 번에 걸쳐서 새기므로 가운데 부분이 두툼해지고 필획이 부드럽다. 필획의 연결 부분이나 글자의 모양이 둥글다. 청동기 명문의 서풍을 닮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서법 예술을 감상할 때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읽으려고 한다. 그러나 한문의 의미를 읽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읽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갑골문은 읽지 못하면서도 감상을 한다고 생각하면 서법 예술의 감상에서도 반드시 의미를 읽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지금까지 갑골문 연구자들은 자형(字形)을 해석하고, 글자의 뜻을 판별해내는 데 시간을 보냈다. 문자 연구가로서는 너무나 당연하다.
서예가가 서법 예술의 차원에서 갑골문을 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갑골문의 문자 형태를 원형이었던 그림의 형태로 환원하여 표현할 수는 없을까?
현대 중국 서예가인 허복동(許福同)은 월주(月舟-우리나라에서 반달이라는 동요에서 달을 조각배로 표현하였다. 월주도 그런 뜻이다.)라는 작품에서 검은 색 종이 위에 문자 표현은 흰색으로 하였다. 月은 전서로 초생달을 그렸다. 舟는 배모양으로 표현하였다. 검은색 배면에 흰 색 점을 찍어서 별을 표현하였다. 감상자는 배의 흘러감과 초생달을 통하여 세월의 흐름으로 감상할 수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로 감상할 수 있다.
서예인들이 갑골문으로 작품을 만든다면 붓으로 칼로 새긴 문자부호를 붓으로 쓴다는 것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림으로 환원하여 재미 있게 표현한다면 굳이 문자의 의미를 모르고서도 감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첫댓글 자료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