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저 시온으로
오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온을
세우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 현재도 우리가 교회에 와서 누리는 것만이 아니라 순종의 법, 희생의 법, 복음의법, 순결의 법, 헌납의 법을 시켜서 자신을 시온으로 세우기를 바라신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개인이 마음이 청결해지고, 가족은 영이 거하는 가정을 만들며 서로사랑하고 하나님 어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생활 하며 자녀들이 그렇게 가정을 이루도록 돕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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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장로들에게 시온의 도시가 세워질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의 첫 인상은 기대와 많이 달랐다.
그들 중에는 그곳을 충실한 성도들이 있는 번화한 산업 도시로 생각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인디펜던스는 인구 밀도가 낮은 변방의 개척지였고,
그들이 익숙하게 누리던 것보다 문명의 수준도 뒤떨어져 있었으며,
그곳 사람들은 성도라기보다 접경 지역의 거친 정착민에 가까웠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저 시온으로 오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온을 세우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현실이 기대에 못 미칠 때 우리는 주님께서 1831년에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릴 수 있다.
“너희는 … 너희 하나님의 계획과, 많은 환난 후에 뒤따르게 될 영광을 지금 너희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느니라.”(교리와 성약 58:3)
그렇다.
삶은 환난과 심지어 사악함으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많은 의를 이룩[할 수 있다.]
이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27~28절) 또한 『성도들』, 제1권, 127~133쪽을 참조한다.
6월 2일~8일: “훌륭한 대업에 열심히 노력하여”: 교리와 성약 58~59편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manual/come-follow-me-for-home-and-church-doctrine-and-covenants-2025/23-doctrine-and-covenants-58-59?id=p1&lang=kor#p1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응답하셨다. “너희는 서쪽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미주리 땅으로 … 갈지니라.”
이제, 시온의 땅은 오하이오가 아니라 미주리였다. 콜스빌 성도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정착하게 될 첫 번째 교회 회원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이주 준비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계시를 받은 지 2주 만에 폴리와 콜스빌 지부 회원들은 커틀랜드를 출발하여 배를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배 안에서, 폴리는 시온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 눈을 감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매시간을 버텼다. 그녀는 당시 55세였고, 상태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폴리의 아들인 뉴얼은 여행 길에서 장례를 치를 것을 대비해 배에서 내려 뭍으로 관을 짤 나무를 사러 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폴리는 시온이 아닌 곳에는 절대 묻히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콜스빌 성도들이 떠난 후, 뒤이어 선지자 조셉과 시드니, 에드워드 파트리지도 교회의 몇몇 장로들과 함께 미주리로 떠났다. 그들은 주로 육로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시온에 대한 자신들의 소망을 전파했다.
조셉은 인디펜던스에 있을 교회에 관하여 낙관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올리버와 선교사들이 커틀랜드에서 그랬듯이 그곳에도 분명 강한 지부를 세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몇몇 장로들에게 했다. 일부 장로들은 그 말을 예언으로 받아들였다.
잭슨군 주변 지역에 이르렀을 때, 이들 일행은 눈앞에 펼쳐지는 구릉지들과 대초원을 보며 감탄했다. 성도들이 사용할 드넓은 토지가 있는 미주리는 시온을 세우기에 이상적인 곳 같았다. 그중에서도 근처에 큰 강이 흐르고 인디언 영토와도 인접해 있는 인디펜던스는 하나님의 성약의 백성들이 집합하기에 완벽한 곳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도심에 들어섰을 때, 장로들은 실망스러워했다. 이들 일행 중에는 조셉이 한 여성의 마비된 팔을 고치는 것을 보고 교회에 들어온 에즈라 부스라는 전직 목사가 있었는데, 그의 눈에 인디펜던스는 그저 암울하고 낙후된 곳일 뿐이었다. 도심은 재판소와 상점 몇 곳, 통나무 집 몇 채가 전부였다. 선교사들이 침례를 준 사람들도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지부는 조셉이 기대했던 것만큼 강하지 못했다. 에즈라와 몇몇 장로들은 미주리로 가라는 인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조셉이 진정 선지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었다.
이런 상황에 실망을 느낀 것은 조셉도 마찬가지였다. 페이에트와 커틀랜드도 작은 마을이긴 했지만, 인디펜던스는 말 그대로 벽지에 있는 교역소에 불과했다. 이 마을은 서부로 통하는 길의 출발점으로, 모피 사냥꾼이나 가축 몰이꾼, 농부와 영세 상인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조셉은 평생 그쪽 일에 종사하는 이들을 봐 왔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특히 더 통제가 안 되고 거칠어 보였다. 그에 더하여, 선교사들을 수상쩍어 하는 정부 관리들은 인디언들에 대한 선교 활동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해도 훼방을 놓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조셉은 낙심하여 주님께 여쭈었다. “어느 때에 광야가 장미처럼 피어나겠으며, 어느 때에 시온이 그 영광 중에 건설되겠으며, 어느 곳에 당신의 성전이 세워[지겠나이까?]”
미주리에 도착한 지 6일째 되던 날인 7월 20일, 조셉은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조셉에게 “이 땅[은] … 성도의 집합을 위하여 내가 지정하고 성별한 땅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더는 다른 곳을 바라볼 이유가 없었다. 주님께서 미주리를 “약속의 땅이요 시온 성을 위한 장소”로 선언하셨기 때문이었다. 성도들은 최대한 많은 토지를 매입하고, 집을 짓고, 밭을 경작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재판소 서쪽에 있는 높은 지대에 성전을 세울 것이었다.
한편, 주님께서 시온에 관한 당신의 뜻을 밝히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성도들은 여전히 인디펜던스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에즈라 부스처럼 에드워드도 그 지역에 제법 큰 지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자신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회복된 복음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런 곳에 그들은 시온을 세워야 했다.
그는 교회의 감독으로서 시온의 토대를 놓는 책임이 상당 부분 자신에게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성도들을 위한 약속의 땅을 준비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땅을 매입하여, 시온으로 와서 헌납의 법을 지킬 성도들에게 기업으로 나눠 줄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려면 에드워드 본인은 미주리에 남아야 하며, 가족들도 이제 시온으로 완전히 이주하도록 해야 했다.
에드워드는 시온 건설에 힘쓰고 싶었지만, 많은 계시와 새로 맡은 책무, 그리고 그 지역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느 날, 그는 인디펜던스와 그 주변 땅을 조사하던 중에 조셉에게 이곳이 그 근처의 다른 땅만큼 좋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선지자의 결정이 불만스러웠고, 성도들이 어떻게 시온을 세울 수 있을지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저는 보입니다.” 조셉은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며칠 후, 주님께서는 조셉과 에드워드, 그리고 교회의 여러 장로들에게 당신의 뜻을 다시 한 번 계시하셨다. “너희는 이후에 임하게 될 일들에 관한 너희 하나님의 계획과, 많은 환난 후에 뒤따르게 될 영광을 지금 너희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느니라. 대저 많은 환난 후에야 축복이 오느니라.”
이 계시에서 주님은 에드워드의 불신을 꾸짖으셨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기의 죄[를] …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할지어다. 보라, 그의 사명이 그에게 주어졌으니, 다시 주어지지 아니하리라.”
주님의 경고로 에드워드는 마음을 낮추었다. 그는 마음의 눈이 멀었던 것에 대해 주님께 용서를 빌고, 조셉에게 자신이 인디펜던스에 남아 성도들을 위해 시온의 땅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그의 마음 한편에는 아직도 눈앞에 놓인 막중한 임무에 대한 염려가 남아 있었다.
에드워드는 아내 리디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수 있을 정도로 내 책임을 다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소.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길 바라오.”
커틀랜드를 출발한 지 3주 만에 폴리 나이트와 콜스빌 성도들은 마침내 인디펜던스에 도착했다. 드디어 인디펜던스의 대지를 밟은 폴리는 힘없이 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녀는 급속도로 쇠약해지고 있었으나, 다행히 그 지역에서 최근에 개종한 두 회원이 방을 내 주어 폴리는 비교적 편안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나이트 가족은 정착할 곳을 찾아 주변 지역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인디펜던스 인근 시골 지역이 아름답고 쾌적한 데다 토지도 비옥하여 개발을 하고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주민들도 낯선 이들에게 친절한 것 같았다. 커틀랜드에서 온 몇몇 장로들과는 달리 콜스빌 회원들은 이곳에 시온을 세울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12 많은 환난 후에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history/saints-v1/12-after-much-tribulation?lang=kor&id=p11-p14#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