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작품상
달챙이숟가락
유 로
달챙이숟가락이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가려울 때 등을 긁어주는 효자손처럼 시어머니께서 유일하게 과일을 긁어 드시는 숟가락이다. 지금은 야채 깎는 칼이 나와서 잘 쓰지 않지만,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숟가락은 감자나 생강을 까는 데 쓰이기도 했다.
친정엄마는 이 숟가락을 달챙이숟가락이라고 불렀다. 그냥 닳아지는 숟가락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예부터 가마솥의 누룽지를 긁거나 음식재료를 손질하는데 주로 많이 썼기 때문에 끝이 닳아져 반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친정집에는 놋으로 된 달챙이숟가락이 있었지만, 우리 집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얇고 작달막한 달챙이 숟가락이 있다. 놋숟가락과는 다르게 그리 험하게 쓴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닳아져 끝이 날카롭다. 약간 굽고 일그러져 날렵하니 과일을 긁는데 그만이다. 시집올 때 부엌살림을 챙겨주시던 엄마는 여벌로 쓰시던 달챙이숟가락을 주시면서 “이 숟가락도 필요할 테니 가져가 쓰거라.”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며 무슨 대견한 살림이라고 하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장난처럼 가져와 쓰던 것인데, 몇 번의 부엌살림 정리에도 버려지지 않은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시어머니는 늘 이 숟가락으로 과일을 긁어 드셨다. 그래서 어머니방 탁자에 놓아두고 쓰시게 했다. 그런데 며칠째 아무리 찾아도 그 숟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과일과 함께 보통 숟가락을 드리니 둔해서 잘 긁히지 않는다고 하신다. 결국, 과일을 갈아서 드렸지만, 너무 잘게 갈린 과일이라 맛이 없다며 오로지 그 숟가락만 찾으셨다.
어렸을 적, 부뚜막에서 보았던 놋쇠로 된 달챙이숟가락. 그 숟가락은 필요한 곳에 쓰이면서도 숟가락 대접을 받지 못했다. 가족들의 수저를 모아두는 수저통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뚜막 위에서 뒹굴거나 플라스틱 통 속에서 주걱이며 솔과 함께 더부살이를 했다. 새삼, 친정집 부엌에서 엄마가 쓰시던 달챙이숟가락이 생각난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우리에게 누룽지를 긁어주고, 감자의 포실포실한 맛을 전해주었던 숟가락에 담긴 추억이 정겹게 다가온다. 감자 껍질을 벗기면서 언니와 무슨 수다를 그리 떨곤 했을까. 양푼에 가득한 감자가 줄어드는 재미에 빠르게 긁었던 기억, 나중에서야 감자의 하얀 분가루가 얼굴에 튄 것을 보며 서로 깔깔거리곤 했었다.
친정엄마가 쓰시는 물건 중에는 이처럼 오래된 물건이며 정감이 가는 물건이 많았다. 음식을 만들 때 손수 재료를 찧고 빻아서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며 아직도 쓰고 있는 돌절구며, 수십 년 쌀을 담아온 쌀독, 키, 맷돌, 다듬잇돌……. 지금은 어쩌다 시골에서 쓰기도 하지만 거의 사라진 물건들이다. 살아가면서 엄마가 쓰시던 물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족을 위해 정성을 쏟았던 마음은 물론, 살뜰하게 살아오신 흔적을 만나는 것 같아 뭉클해진다.
엄마는 일반 숟가락과 달챙이숟가락을 엄밀히 구분하셨다. 그러면서도 놋그릇을 닦을 때는 비록 숟가락 축에 못 끼었지만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으셨다. 뿐만 아니라 요강까지도 윤이 나도록 닦아 놓곤 하셨다. 그리고 시집올 때 언제 쓰게 될지 모른다며 요강도 싸 주셨는데, 꽁꽁 싸놓았던 그것을 시어머니의 병환 중이나 아이들 키울 때 요긴하게 썼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세월의 흐름만큼 닳아지고 휘어진, 잃어버린 달챙이숟가락을 찾듯, 불혹이 지나서야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챙이숟가락의 이지러진 모습은 친정엄마의 손가락과 많이 닮아있다. 오래전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의 일인데, 엄마는 손가락의 지문이 닳아 없어져 지문을 찍지 못했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 키우느라 시달리고, 고되고 험한 농삿일에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으니 어디 손을 돌 볼 겨를이 있었겠는가. 손바닥은 쭉쭉 갈라져 피가 나곤 했는데, 닳아지고 터진 손의 지문을 만들기 위해 약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고, 골무를 만들어 끼곤 하셨다. 세월이 흐른 지금,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돌아가 휜 것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시어머니께서 애타게 찾던 달챙이숟가락이 한참 만에 나왔다. 어머니 침대 귀퉁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간 손때가 묻고 깊은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제 보니 숟가락은 그렇게 묵묵히 긁어내는 일에만 힘쓴 것이 아니었다. 모름지기 사람들의 마음에 끝없이 정을 떠주고 사랑을 주던 물건이었다. 숟가락 축에도 못 끼어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자기 몸을 갈아내면서 더 날렵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면, 기특하기 그지없다. 나도 친정엄마처럼 달챙이숟가락을 닦아 본다.
“남을 해하거나 폐를 끼치며 살면 안 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그저 베풀며 살아야지.”
엄마가 평상시에 하시던 말씀을 닳아빠진 달챙이숟가락이 들려준다. 베풀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닳아 없어지는 자기 모습에 보람을 느끼는 것 또한 값진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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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베풀되 보답을 구하지 말고,
남에게 무엇이든 주었거든 후회하지 마라.
恩施勿求報 與人物追悔
오늘 달챙이숟가락을 꺼내 닦으며 『명심보감』에서 읽었던 문구를 음미해 본다. 어느 물건이든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아름답고 소중하다. 어디에 의미를 두든 그 존재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
오늘 달챙이숟가락을 닦으며 내 마음의 때도 벗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