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2일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공공기관 72곳(자회사 80곳)을 평가한 결과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50.4점으로 낙제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후한 평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관이 제출한 서면으로 조사를 진행한 탓에 애초 현장 상황을 제대로 담기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점수를 좋게 받으려는 자회사의 꼼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공공기관이 유명무실한 노사공동협의회를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낙찰률를 폐지했다는 긍정 평가를 받으려 애초 낙찰률이 적용된 금액을 예정가격으로 산정하고, 이를 100% 지급한 곳도 있었다.
“기존 낙찰률 적용해 예정가격 산출”
공공운수노조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자회사 노동실태 증언대회’를 열었다. 현장노동자들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명재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 지부장은 “정부는 원·하청협의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상견례만 했을 뿐 제대로 된 협의체를 진행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정 지부장은 “정부가 유일하게 정확하게 지적한 것은 코레일 자회사 노동자의 임금체계가 복잡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 임금수준 개선률을 파악할 수 없다고 한 것 하나”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한계를 개선하려 모·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 설치·운영을 권고한 바 있다.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되면 용역시절 적용되던 낙찰률을 폐지해 노동자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산산이 부서졌다.
한국마사회 자회사 한국마사회시설관리㈜ 소속 김선종 한국마사회지부장은 “정부 평가 내용을 보면 (마사회가) 낙찰률을 임의적용하지 않고, 산정된 예정가격의 100%를 반영해 계약금액을 결정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용역시절 낙찰률을 적용하던 금액을 예정가격으로 산정해 100% 지급한 것으로, 이번 자회사 평가가 얼마나 ‘평가를 위한 평가’에 그쳤는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에 따르면 공공기관 72곳 중 낙찰률을 폐지하고 예정가격대로 자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공공기관은 18곳이었다. 현실은 평가와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모·자회사 차별 해소는 요원하다. 권오상 인천공항지역지부 부지부장은 “정규직 전환자는 공사 정규직에 비해 1년에 약 두 달을 더 일하고 있다”며 “공사 정규직 대비 정규직 전환자의 평균연봉은 3분의 1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인천공항시설관리·인천공항운영서비스·인천공항경비, 세 개 자회사 노동자 약 70%는 교대근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정규직 노동자는 주간·야간·비번·비번(33.3시간), 정규직 전환자는 주간·주간·야간·야간·비번·비번(44.3시간)으로 근무를 수행해 주당 노동시간이 약 11시간 차이가 난다. 노조는 자회사 노동자가 연 577.8시간 정도를 더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직영화해야” vs “자회사 운영 개선”
불완전한 실태조사 결과가 드러나자 노동자들은 평가 지표 수정을 요구했다. 조지현 철도노조 철도고객센터지부장은 “평가를 하면 당사자들의 의견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기관이 제출한 서면으로 평가하고, 노동자는 배제했다”며 “신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방두봉 지역난방안전지부장은 “정부 평가는 임금·처우개선 중심으로 돼 있고, 안전 분야는 없다”며 “평가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자회사인 지역난방안전은 지역난방안전수송관 점검·진단, 감시시스템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한다. 도로 위 맨홀 안에서 작업해 위험요인이 뒤따르지만 충분한 인력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에도 배관이 터지는 사고가 났다고 한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무분별하게 생겨난 공공기관 자회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두고 노동계와 전문가의 의견이 나뉘었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은 “새로 생긴 자회사든, 기존 자회사든 기존 용역업체와 다를바 없는 인력공급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자회사를 재직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팀장은 “자회사와 모회사의 격차가 커질수록 노사관계가 단절·분리돼 재직영화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현실의 어려움을 이유로 계속해서 직접고용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경영학)는 “자회사 전환의 양면성이 뚜렷하다”며 “만약 직접고용만을 주장했다면 현재 전환 논의가 끝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자회사 중 기타공공기관 지정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장기적으로 자회사 전문성·안전성·독립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며 “남은 자회사가 운영원칙을 제대로 세워 평가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법안을 개정해 자회사 설립과 해산 및 운영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