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불화] <11> 돈황석굴 249굴 285굴
벽면에 불교, 천정에 도교…궁극의 이상세계 구현
돈황은 실크로드 중심지이며
구법 행 떠난 승려의 집결지
이질 요소 자연스럽게 결합해
불교 사원에 도교 신화 등장
힌두교 등 다른 종교 그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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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석굴 285굴 복희와 여와 그림.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도상은 바로 복희(伏羲)와 여와(女媧)다. 복희는 구부러진 자(曲尺)를 들고 있고, 여와는 원을 그리는 컴퍼스(規)를 들고 천의와 같은 옷을 입고 마치 날아가는 듯하다. 복희와 여와의 사이에는 보주를 들고 있는 두 역사상과 천마, 머리가 9개 달린 구수룡(九首龍) 등 다양한 신수가 그려져 있다.
복희와 여와는 고대 신화의 주인공으로서, 중국에서는 복희와 여와를 민족의 시조인 남매로 숭배해왔다. 한나라 때의 돌에 새긴 그림인 화상석(畫像石)이라든가 당나라 때의 채색한 비단 그림인 백화(帛畵) 등에는 복희, 여와 남매가 결합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들은 대부분 인면사신(人面蛇身)의 형태, 즉 상반신은 인간이며, 하반신은 뱀의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고 보니 고구려의 벽화고분에도 복희와 여와가 그려져 있는 것이 생각난다. 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오회분 4호묘(6세기말~7세기초)의 묘실 북쪽 천정에는 수목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용의 몸체에 사람의 얼굴을 한 복희와 여와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복희는 삼족오(三足烏)가 뚜렷하게 그려진 일상(日像)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으며, 여와는 두꺼비가 그려진 월상(月像)을 받치고 있다. 깃을 댄 날개옷을 걸친 신선같은 모습은 285굴의 복희, 여와와 유사하지만 곡척과 규를 들지 않고 해와 달을 받쳐 든 모습이 고구려식 버전인 것 같다.
이처럼 249굴과 285굴 등 서위대에 개착된 석굴에는 서왕모와 동왕공, 복희와 여와 등 중국 신화 속 인물과 풍신과 우사, 뇌공과 전모 등 자연을 바탕으로 한 신들부터 사신, 구수룡, 도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들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석굴의 벽면이 아니라 주로 천정부분에 그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종교적인 색채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소재를 택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 석굴에 유독 신화적 요소가 집중적으로 그려진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결해서 해석하기도 한다. 285굴은 당시 과주자사(瓜州刺史)였던 동양왕(東陽王) 원영(元榮)이 후원한 굴인데, 그의 부임 이후 돈황석굴의 구조가 중심탑주식(中心塔柱式) 석굴에서 복두식 석굴로 바뀌었으며, 이 시기의 돈황에는 불교 사원과 함께 도교 사원이 병존하면서 다수의 도교 경전이 편찬되었다고 한다.
즉 당시 돈황에는 불교뿐 아니라 도교도 유행하고 있었기에 불교사원 속에 도교적 신화 요소가 강하게 등장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후 투르판(高昌)의 아스타나고분에서 여러 점의 복희여와도가 발견된 것을 보면 돈황에서 시작된 중국 신화적 요소는 실크로드까지 전래되었던 것 같다.
도교적 신선과 신수들이 천정부분에 집중적으로 그려진 것은 천상세계 속 이상향을 구현하려던 당시 돈황인들의 바램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다. 속세를 떠나서 선계(仙界)에 살며 젊음을 유지한 채 장생불사하는 신선과 사악함을 물리치는 신령스러운 신수(神獸)는 불교도들이 구현하려는 이상세계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벽면에는 불교적 요소로, 천정에서는 도교적 요소를 표현함으로서 그들이 추구했던 궁극의 이상세계를 석굴 안에 구현했던 것이 곧 249굴과 285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돈황석굴 249굴 북쪽면의 동왕공을 담은 모습.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돈황 석굴은 불교사원이다. 366년 창건된 이후 오늘날까지 줄곧 불교사원으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돈황 석굴에는 순수한 불교적 소재뿐만 아니라 도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등 타종교와 관련된 그림들도 볼 수 있다. 중국과 서역을 잇는 실크로드가 개통된 이래 돈황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런 이질적 요소가 나타나는 것은 쉽게 이해할만 하다.
중국에서 서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서회랑을 통해 돈황 지역에 도달하고, 이곳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즉 돈황은 서역과 인도로 구법을 위해 길을 떠나던 승려들의 집결지였으며, 실크로드를 통해 이루어지던 동서양 교류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화가 이루어지는 수대 이전의 초기 석굴에는 인도와 서역적인 색채 뿐 아니라 중국 고대 신화 속의 인물과 동물, 신선 등이 표현되기도 한다. 돈황 석굴에서 이런 벽화를 볼 수 곳은 서위시대(535~566) 때 개착된 249굴과 285굴이 대표적이다. 두 굴 모두 석굴 천정이 4벽에서 중심부 쪽으로 기울어지는 복두형(覆斗形)으로, 천정의 4면 상부에 구름을 그려서 천계를 표현한 후 그 아래에 산악, 수목, 신수(神獸)와 신선 등을 배치하였다. 이런 그림은 돈황의 다른 석굴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매우 흥미롭다.
249굴은 천정 가운데 연꽃무늬가 그려져 있고, 하부에는 산악을 돌면서 사냥하는 장면 등 인간세계가 그려져 있다. 연꽃무늬와 수렵도 사이에는 불교적 내용에 중국 고대의 신선사상을 융합하여 그려진 하늘이 표현되어 있다. 천정의 서쪽 면에는 손이 넷인 사비(四臂)의 아수라가 큰 바다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두 손은 높이 들어 해와 달, 수미산을 받쳐들고 있다.
돈황석굴 249굴 동쪽면 벽화로 마니보주, 호인 등이 그려져 있다.
아수라의 오른편에는 뇌공(雷公)과 그의 아내인 전모(電母)가, 왼편에는 풍신(風神)과 우사(雨師)가 배치되었는데, 뇌공은 11개의 북을 주변에 두르고 북채를 휘두르는 듯한 모습이며, 풍신은 거대한 바람주머니를 짊어진 모습이다. 동쪽 면에는 상부 중앙에 두 역사(力士)가 마니보주(摩尼寶珠)를 들고, 양쪽에서 비천 2구와 주작, 공작이 보주를 찬미하고 있으며, 그 아래 물구나무서기 등 잡기(雜技)를 하는 호인(胡人)들이 그려져 있다.
남쪽 면에는 봉연(鳳輦)을 타고 가는 서왕모(西王母), 북쪽 면에는 사룡거(四龍車)를 탄 동왕부(東王父)가 그려져 있다. 서왕모는 곤륜산의 동쪽 산인 남풍이라는 곳의 구슬로 장식된 연못과 금으로 지은 궁궐에 살고 있는 여신들의 우두머리이며, 동왕공은 서왕모의 배필로 서쪽에서 남신들을 관장한다고 한다.
서왕모에 대해서는 기원전 3~4세기 경의 고서인 <산해경(山海經)>에 처음 나타나는데, “(서왕모는) 그 형상이 사람 같지만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하고 휘파람을 잘 불며 더부룩한 머리에 머리꾸미개를 꽂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249굴에는 이외에도 도마뱀, 들소, 백조 등과 인면수신(人面獸身)의 기묘한 괴수들이 그려져 있어, 그야말로 신화 속 인물로 가득하다.
285굴은 돈황 석굴군의 거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데, 북쪽 벽의 공양자 군상 가운데에 ‘大代大魏大統四年歲次戊午八月中旬造’라는 명문이 남아있어 대통 4년인 538년에 처음 개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공개된 석굴 중에서 가장 풍부한 내용을 보여주며, 비하라(vihāra)식 구조, 천정 하단에 그려진 35구의 선정비구도(禪定比丘圖), 서벽의 양 측감에 안치된 선정비구좌상(禪定比丘坐像) 등으로 보아 수행을 위한 석굴로 조성되었던 것 같다.
천정은 말각조정의 형태에 중국식 천개 양식이 병용되어 있어, 서역 양식이 중국 양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복두형 천정의 네 면에는 중국 고대 신화 속 인물들이 가득하다. 천정의 네 모퉁이에는 재화와 음식을 탐하는 탐욕스러운 괴수인 도철(饕餮)이 몸에 여러 개의 술과 두 개의 풍탁을 내려뜨리고 큰 눈을 부릅 뜬 채 모든 악령을 먹어 없애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
도철의 옆에는 커다란 눈을 똑바로 뜨고 다리를 벌린 2구의 뇌신이 서있는데, 주위에는 둥근 뇌고(雷鼓)가 11개 그려져 있다. 이외에 날개 달린 우인(羽人)과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신(四神) 중 서방의 백호, 남방의 주작, 북방의 현무가 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