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담(46) 계장이 허름한 초가집 문 앞에 도착하자, 주인 A(76) 할머니가 뛰어나와 얼른 문 앞을 가로막았다.
"우째서 왔소?"
"양귀비꽃 보러 왔소."
"아, 없당게롱!"
김 계장이 집을 뒤졌다. 헛간에 1m 길이의 무 줄기처럼 생긴 양귀비 아홉 줄기가 걸려 있었다. 줄기마다 눈깔사탕만 한 열매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김 계장이 눈을 부릅떴다.
"으메, 이렇게 큰 다래는 처음 봤네. 칼집도 다 냈구만요. 즙도 벌써 다 묵어 부렀소?"
집주인 A 할머니가 그제야 울상을 지었다.
"실은 우리 영감이 무릎이 아파서 좀 멕였소. 한 번만 봐 주쇼잉. 섬에 약이 워디 있소?"
위 글은 소설의 한 장면이 아니다. 국내 일간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조선일보 2009.6.12. <사람과 이야기> 코너 ‘영감이 아파 양귀비를…’에서 발췌)의 일부다. 평상시 우리가 접해온 기사와는 사뭇 다르다.
뉴스는 육하원칙을 중심으로 통계와 수치를 앞세운다. 또한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과 표현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기사는 그렇지가 않다. 육하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사건의 결과를 서둘러 전달하지도 않았다.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와 같은 서술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직접적인 서술어 대신에 ‘양귀비 밀경작(密耕作)을 단속하는 경찰관과 단속에 걸린 할머니가 나눈’ 생생한 대화로 채웠다. 뉴스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사투리를 대화체 안에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현장감을 살렸다. 만약 전형적인 서술어와 표준어를 사용하여 이 상황을 그렸다면, 현장의 긴박감이나 단속에 걸린 할머니의 암담한 심정이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존의 뉴스 전달방식과는 다른 이 기사는 ‘파격’으로 인해 독자에게 신선한 여운을 준다.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주목받는 글쓰기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근래 가장 각광받던 글쓰기 형식이 ‘스토리텔링’이다. 그러나 이젠 ‘스토리텔링’을 넘어 ‘내러티브’ 글쓰기가 대세다.
신문기사의 새로운 방식인 내러티브(Narrative Report)란 삶의 현장을 담아내는 새로운 보도 형태로서 ‘뉴스’와 ‘이야기’가 결합된 스토리 뉴스를 말한다. 형식으로 따지자면 기사보다 오히려 소설에 가깝다. 이야기가 들어있는 서사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내러티브가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허구나 상상력의 동원이 아닌 실제 있는 사실만을 바탕으로 기술한다는 것이다. 언론 분야 최고의 상인 퓰리처상 수상작들이 대부분 ‘내러티브 기사’로 쓰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존의 기사 형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세상 속 세상’을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내는 내러티브 스타일은 ‘개인을 입구로 해서 사회적 현상을 은유하는’ 글쓰기다. 즉 주제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하나, 또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 구조적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방식이다.(박재영․이완수 교수, ‘역피라미드 구조의 한계와 논의’ 참고. 2008년)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삽화 속 으스스한 폭발처럼 공포가 다가왔다. 전조는 바닥의 울림, 날카로운 폭발, 산산 조각난 창문이었다. 첫 번째 고층빌딩에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균열과 불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잠시 후 쌍둥이 빌딩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다음 날 <뉴욕타임즈>가 선보인 톱기사의 서두다. 육하원칙 보도 기사에 익숙한 국내언론과는 단연 차별화된 형식이다. 1면 톱기사를 정보가 아닌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향후 뉴스의 중심이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선언이었으리라. 정보 전달이라는 신문 본연의 임무에 치중하느라, ‘사람냄새 나는 정겨운 이야기’들을 문학에게 넘겨주었던 신문이 지나온 뒤안길을 돌아보게 된 것일까. 이제 그 같은 내러티브적인 전달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에 몸담고 있는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 신문에서 내러티브 기사는 아직 드물다. 일부 매체에서 역삼각형 구조를 탈피하려는 노력은 하고 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뉴스는 역삼각형 기사다. 물론 탐사보도와 같은 긴 기사(long journalism)에서 조금씩 내러티브를 선보이고 있으며, 본격적으로 ‘내러티브’를 내건 기사들도 혹간 눈에 띈다. 그것은 확실히 재미있게 읽힌다.
기존의 지면과 기사 방식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운, 삶과 현장의 깊숙한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담아내기엔 내러티브 스타일의 기사만큼 적절한 형식이 없다.
서사 구조의 이야기를 통해 지혜를 전해주는 글쓰기 방식인, 내러티브 글의 본질은 단연 사람이다. 사건 결과나 정보 전달에 비중을 두는 글이 정보형 글이라면, 내러티브 글을 쓸 때는 ‘사람’과 ‘사건의 과정’에 중점을 둔다. 자살 사건기사를 예로 들어보자. 일반 기사에서는 사건의 개요와 통계가 많이 나오지만, 내러티브에서는 특정 개인이 왜 자살을 시도했고, 어떤 고민과 생각을 했는지 기사를 통해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한마디로 ‘갈등에 빠진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해쳐나가는가’를 지켜보는 것이 내러티브 글이다.
출처: 봉은희작가의 <세상은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린다>(해피데이)
bongcoms@naver.com / 010-9830-5888
첫댓글 접근!
감사드립니다
유럽은 !
항상 감사드리옵고
감사드립니다
매일 근사하소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번 멘토 축제에서 [글쓰기] 이벤트를 주고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참가입니다. 많은 멘토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방법이 있다면.....
제안해 주십시오.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글쓰기] 이벤트는 별도 TFT구성도 환영합니다. 하루 아침에 글쓰기가 할 수 없기에
몇 차례 모임과 토의...코칭도 좋습니다. 협회가 할 수 있는 해법이라면...응원해 드리겠습니다.
눼~~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께서 제안하신 내용에 동감합니다.
모든 배움의 영역이 다 그러하듯, 글쓰기 & 책쓰기 또한 1회성의 짧은 만남으로
열매를 거두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지요.
'효율적인 잔치'가 되도록 연구/고민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Narrative Report" 새로운 방식 ,,흥미롭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