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유튜브에서 가끔 보게 되는 성지순례 방송을 보고 들으면서 의문스러운 몇 가지를 보게 되었지요. 기존의 출애굽기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지요.
그중에 몇 가지들을 살펴보게 됩니다.
1. 홍해를 건너는 출애굽 여정
출애굽 여정을 답사하신 솔로몬 왕께서 세우신 기념탑이 자신의 조상들이 건너온 홍해 양쪽에 세우셨는데 이집트(시나이반도) 쪽에는 없어지고 아라비아반도(사우디) 쪽에만 남아 있다면서요.
이집트 국경 내에 있는 홍해(현 수에즈 운하)를 건너 시나이반도로 갔다고 출애굽이 됩니까?
시나이반도는 어느 나라 소유였던가요?
지금까지 교회에서 가르쳐 준대로 하면 이집트지역을 헤매고 다닌 꼴이 되는데 어떻게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집트 쪽에서 홍해를 건너면 다른 나라인 당시의 미디안 광야 아라비아반도로 건너가야 출애굽 아닐까요?
2. 시나이반도와 시내 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국경을 정해 주셨지요?
창세기 15장 18절에 아브라함에게 북은 유프라데스강에서 남은 이집트 강(애굽 강)이라고 민수기 34장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기에 위 아래가 강물 색갈인 파란색에 가운데는 다윗의 별이지요.
성경 말씀 기준으로 봐도 기존의 성지순례 여정은 출애굽이 아니라 출애굽을 못하고 이집트 국경 안을 돌고 있는 여정으로 보입니다. 시나이반도 끝에 시내 산이라는 곳은 출애굽 그 당시 이집트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청동기 시대의 구리 광산이 있던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대가 이 구리 광산을 지키고 있는 그곳으로 출애굽하여 갔다는 것이 되지 않나요?
이집트 군대가 두려워 남쪽 길로 돌고 돌아 이집트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는 것인데, 좀 이상합니다.
그곳을 다녀오신 분들 중에 성경을 읽으시고 지각이 있으신 분에 의하면 시나이반도 끝에는 이백만에서 삼백만 정도의 인구가 텐트치고 거주할 공간이 없고 그런 흔적도 없다는 것이지요.
다만 그곳에는 카톨릭의 캐더린 수도원이 있다면서요?
시나이 반도 자체가 지금이나 그 당시도 이집트 소유인데 시나이 반도를 헤매면서 무슨 출애굽이라는 것인지요?
하나님의 전폭적인 배려로 출애굽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요?
그런 오류들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왜 이런 엉터리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을까요?
3. 통곡의 서쪽벽
예루살렘의 성지순례 코스로 성전의 서쪽 통곡의 벽을 유다 인들이나 이방의 순례객들이 중요한 탐방코스로 다녀가시는데 그곳은 헐다가 남겨진 성전의 서쪽벽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서쪽벽 옆에는 감옥으로 사용하던 건물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면서요.
만약에 통곡의 서쪽벽이 성전의 일부로 남아 있게 되었다면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을 성전 옆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 옆에 감옥이라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지금의 서쪽벽 즉 통곡의 벽은 안토니아 요새 안에 총독관저(사령관 관사120m×45m) 건물 일부였고 현재의 4Km 정도의 아주 작은 성벽 둘레와 안의 넓이로 추정하면 로마군의 병영터였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열왕기 상 1장을 보시면 33절에 다윗 왕께서 연로하시어 운명하시기 직전에 제사장 사독과 대언자 나단과 경호 대장에게 명령하시기를 내 아들 솔로몬을 내 노새에 태우고 기혼으로 인도하여 가서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라고 하시었지요.
기혼 샘으로 가서 아들 솔로몬을 왕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전 옆에 기혼 샘이 있었기 때문 아닙니까?
이 말씀 기준으로 하면 성전 터는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기혼 샘으로 가서 옛 성전 터를 찾아야겠지요.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준으로하면 성전의 서쪽벽은 말도 되지 않지요.
2절에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하셨잖습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성전 터는 흔적이 없는 것이 맞지요.
현재 알 아크사 모스크와 황금 돔 이슬람사원이 있는 곳은 과거 안토니아 요새로 이두메 출신 안티파테르의 아들 대 헤롯의 후원자였던 로마 율리우스 시저의 2인 자인 마르크스 안토니우스 장군을 위하여 B.C.31년에 세운 사령관 관사(총독관저) 아닌가요? 요세푸스께서는 총독관저가 왕궁 같았다고 했다면서요.
그 후 66년 유대 전쟁 때 무너지고 70년 티투스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다지요.
성경 말씀이 언제 틀린 곳이 있었나요?
총독 관사 건물 벽 일부를 성전의 남겨진 서쪽 벽이라는 것에 대하여 재고 하셔서 기드론 골짜기 가까운 곳에 기혼 샘을 기준으로 다시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성전이 존재하고 있을때 로마 총독 관사를 헤롯이 지어 헌정 했다고 하니 무너지지 않은 성전에 겹치게 되지요.
이스라엘은 로마 관할 중에서 종교문제로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는 곳이다 보니 항상 신중하였겠지요.
마가복음 15장 16절에 군사들이 그분을 끌고 프래토리움이라 하는 집회장으로 들어가 부대를 함께 모으고 에서 Praetorium이라는 단어가 나오지요?
프래토리움이 무엇인가요?
사령관 관사 앞 넓은 대리석 뜰이 아닙니까?
솔로몬 왕궁과 성전을 피하여 위쪽에 건축한 성벽 안에 사령관 관사 앞뜰로 죄인처럼 주님을 묶어서 끌고 들어가 거기서 주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조롱하며 가시나무로 왕관을 만들어 그분의 머리에 씌워 얼굴 전체가 피범벅 되시게 한 곳 아닌가요?
밤에는 관사 옆 지하 감옥에 주님을 가두고 다음 날 통나무(십자가, 헬라어 성경 σταυρόζ 버팀목 지지대=요한복음 19장 17절)를 지시고 인류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 표현으로 대신 속죄의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골고다를 오르신 것 아닙니까?
마태복음 12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에게도 기적(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니까 주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적으로 사람의 아들이 밤낮 사흘 동안 땅의 중심부에 있을 것이다. 라고 대답하셨지요.
그러면 혹시 골고다 그곳은 아담과 이브(하와)께서 사탄 옛 뱀에게 속임 당하시어 인류 최초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된 그 현장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로마제국이 다스리는 식민지 중에서 가장 극심하게 폭동이 잦은 곳이 팔레스타인 유다 지역이라서 로마 군인들의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성벽을 쌓고 그 중앙에 사령관 숙소를 짓고 옆에 죄수를 가둘 감옥까지 마련하여 유다 인들과 단절된 공간 안전한 병영터를 설치하였다는 것이지요.
만약에 현재의 예루살렘 성이라는 곳이 유다 인들이 쌓았던 시온성이라면 왜 솔로몬의 왕궁과 다윗왕의 묘를 피하여 위쪽 산에 축성했을까요?
더구나 요세푸스께서도 이곳을 원래는 바리스(Baris)라고 불렀으나 후에는 안토니아라고 불렸는데 안토니가 지배하고 있을 때 붙였던 명칭으로 아구스도나 아그립바도 도시를 점령하면 자신의 이름을 붙여 불렀던 사례까지 들면서 성전의 북쪽에 인접해 있는 요새라고 명확하게 설명하지요. 하바드 판 유대 전쟁사 1권 92페이지를 참조했습니다. 처음에는 휘스톤판을 읽었으나 나중에는 하바드판도 읽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총독 폰티우스 필레트(본디오 빌라도)도 악하다고 하였었는데 그 이후로 부임하여 오는 로마 총독들은 더 악랄하여 과중하다고 해서 세금이 명령한 금액에 못 채우면 성전 금고를 약탈하여 부족한 세금을 채워가는 악행에 대하여 유다의 젊은이들이 격분하였고 열심 당과 시카리들이 분노하여 로마에 대한 저항운동이 일어났을 때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로마군에 의한 유다인 살해 소식이 예루살렘에 퍼지면서 격렬한 저항이 다시 폭발하게 되어 연로하신 원로들의 눈물로 호소하시는 만류도 소용없이 66년에 봇물처럼 터져 저항이 확대되자 북쪽 다마스커스에 주둔하던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진압에 실패하자 그리스에 주둔해 있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로마 군단들이 갈릴리를 시작으로 남쪽으로 진격하고 이집트에 주둔한 티투스군이 북상 진군하여 마침내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로마에서는 사도행전 18장의 클라우디우스의 양아들 네로 황제가 68년에 자살하게 되면서 정국이 사분되는 혼란을 수습하러 베스파니아누스가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로마로 귀환한 후 황제가 되어 폭동진압이 중단된 예루살렘을 70년에 재차 그의 아들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진압하게 되지요. 베스파니아누스(69-79)의 장남 티투스(79-81)도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되고 그의 동생 도미티아누스(81-96)도 형 다음으로 황제가 되어 초기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박해하여 요한 사도께서 팟트모스(밧모 섬)으로 유배되신 것 아닙니까?
그전에 참혹한 사건은 이 안토니아 요새 안으로 쳐들어간 유다 젊은이들이 오백명 가량의 로마군을 무장해제 시키고 나가라고 평화적인 협상까지 해놓고 비무장 상태로 성 밖으로 나가는 로마군을 지켜보던 이스라엘 젊은이들 중에서 비무장 로마군을 칼로 치자 이를 시작으로 전원을 몰살시켜 버리는 놀라운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지요.
이 소식을 접한 로마의 네로황제가 분노하여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예루살렘을 밀어버리라는 잔혹한 명령이 내려져 예루살렘 성이 포위된 것이지요. 혼란의 와중에 남쪽의 비적 떼들마저 성안으로 잠입하여 약탈을 자행하다가 함께 포위당하여 갇혀 있을 때 이들의 내분으로 식량창고에 불을 질러 갑자기 기근 속에 굶주리게 되었다지요.
참혹한 굶주림의 여러 날 후에 고기 삶는 구수한 냄새가 성안에 퍼져서 그 근원지를 찾아 수색할 때 배신감에 분노한 비적들마저 기겁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지요.
칼을 들고 소리치며 쳐들어가자 먹다가 비적들을 쳐다보는 여인들의 풀어진 눈동자가 예사롭지 않았다지요.
아기를 삶아서 머리를 맞대고 뜯어 먹고 있는 귀부인들의 놀랍고 처참한 광경에 냉혹하고 비정하다는 비적들마저 할 말을 잃고 참담해 하였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인들에게 환심을 사보려고 헤롯이 시작한 공사가 84년이나 걸려 64년에 완공한 성전마저 바벨론 군대에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던 같은 날 70년 5월 9일에 로마군들이 전부 헐어서 아름답고 값비싼 성전의 대리석들과 성전 안의 보물들마저 다 약탈하고 유다 젊은이들 10만이나 포로가 되어 로마로 끌려가 골로세움을 건축하는 노예로 전락하였고 성전 안에 보물들은 로마군들이 약탈하여갔다는 증거로 골로세움 근처 티투스 개선문에 양각되어 있어서 지금도 유명 관광지로 되었지요. 나머지 유다인들은 디아스포라가 되어 전 세계로 흩어져 가게 되지요.
주님의 말씀대로 성전의 돌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되었겠지요.
통곡의 벽은 원래 132년부터 135년까지 바르코크바에 의한 재차 봉기하였을 때 잔혹하게 진압한 로마제국이 유다 인들에게 예루살렘에 입성을 금한다는 포고령을 동판에 새겨 곳곳에 붙여서 남아 있던 유다인들마저 또 다시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에 흩어져 떠나 갈 수 밖에 없었지요. 후에 하루만 입국이 허용되는 날(예루살렘 멸망의 날 유대력5월9일)에 들어와 유랑의 떠돌이가 된 서러움을 로마인들이 떠나고 없는 총독 관저의 남겨진 서쪽 벽에 의지하여 통곡하여왔던 것이 아닐까요.
성전터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다윗 왕의 묘와 솔로몬 왕궁터도 사라진 곳을 돌면서 옛날을 회상하다가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던 일들이 지속되어 오다가 어느 때부터인지 남겨진 성전의 서쪽벽이라고, 통곡의 벽이라고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된 것이 아닐까요.
솔직히 정치적인 사항들까지 할 말이 많지만 참을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십자군 전쟁 때에도 언급이 없었고 더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헬레나 여사의 예루살렘방문과 성묘교회를 건립 당시도 성전 서쪽벽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지요. 총독관저 였던 서쪽벽은 이슬람에 의해 두번이나 더 높혀지고 흙을 채워 이슬람 사원 2개 주변으로 넓은 광장이 조성된 것이지요. 결국 성전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집트 관할에서 이슬람으로 넘겨져 알 아크샤 모스크와 황금 돔사원을 성전 터 위에 건립하였다고 가정해 보세요.
유다인들이 받아드릴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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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시간 되는대로 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