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로 졸고 한 편 올립니다.
반갑습니다.
갯바위에서
강 돈 묵
섬은 언제나 밀려오는 파도의 울음을 못 들은 체하였다. 그럴 만도 했다. 제 몸뚱이를 에워싸고 있는 바닷물들의 보챔에 정을 주었다가는 끝이 없을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에 걸쳐 칭얼거리는 그 꼬락서니를 바라보기에도 지겨웠을 테니까. 하지만 섬은 한번도 파도를 꾸짖어 내치지 않았다. 혼자 보채다가 제 풀에 겨워 스스로 물러나게 하였다. 섬은 언제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물에 동요함 없이 제 모습을 지켜나갔다.
이곳에 온 지 벌써 스무 해하고도 몇 해가 지났다. 주민등록을 옮기면서 나는 이곳 섬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소망일뿐이었지,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밖에서 굴러온 사람일 뿐이었다. 이런 현상은 섬 지방에는 흔히 있는 것이기에 참을 수 있었다.
이사 와서 처음 내가 한 일은 앞으로 살아갈 곳에 대한 정보 획득이었다. 나에게 정보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또 그런 것들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터득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짬이 나면 길을 나섰다. 조급하지 않게 접하겠다는 각오로 모든 길을 걸어서 답파해 나갔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 지형이 내 손바닥에 들어있다고 생각될 무렵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살아온 삶과는 다른 이곳의 현상과 사람들의 사고 방향에 나의 것을 끌어다 붙이는 일에 전념했다. 섬과 동화하기 위해서는 무던히 노력해야 하고,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 필요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늘 화합과 동화에 대한 염원으로 나를 살게 했다. 눈을 그쪽으로 집중시키다보니 매사가 또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어느 하나 조화를 이루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두가 한데 어울려서 호흡하고, 같이 생존하려 노력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가장 신기한 것은 산을 보기 위해 산에 올라가도 바다까지 보여주는 곳이 섬이었다.
산에 오른다. 숨이 가빠 허덕이는 사람에게 골바람은 시원하게 다가와 볼을 어루만진다. 금시 지친 육신에 활력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일어선다. 시원하게 트인 다도해가 시야에 들어온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니 그들이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그마한 섬들과 바다가 오순도순 이마를 맞대고 있다.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화합한다. 산도 혼자만이 존재하지 않고 바다와 공존을 도모한다. 그들은 늘 그렇게 정겨웠다며 내게 다가왔다.
바위에 걸터앉아 있으면 저절로 ‘산바람 강바람’이란 동요가 흘러나왔다. 비록 강바람은 아니어도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한데 어우러져 섬 자락을 휘몰아가는 듯이 느껴진다. 한 폭의 수채화가 눈앞에 전개된다. 그들은 은은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가는 서서히 멀어져간다.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목선 하나가 나의 시선을 움켜잡는다. 이 배에서는 ‘어부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바람소리에 실려 온 것일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산새의 울음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소리와 화합하는 갈매기 소리가 있다. 산새 소리가 맑은 소리를 내며 스치고 나면 먼 데서 갈매기의 소리가 달려와 함께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어느새 그 소리들은 의식 속에서 하나의 소리로 뭉쳐서 화음을 이룬다.
섬에서 살면서 참 좋은 화음을 자주 듣는다. 하루가 아니고 벌써 스무 해가 넘도록 그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 이토록 자연이 주는 화합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도 느닷없이 혼자라는 생각을 떠올릴 때가 있다. 이제 소통이 되겠구나 싶어 가슴을 열고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가 이내 벽에 부딪혀 절망도 한다. 아직도 상대는 문이 견고하게 잠겨 있음에 놀란다. 다 열려 있다고 판단이 되어 한발을 디밀려 하면 그 문은 열린 게 아니라 굳게 닫혀 있다.
오늘도 나는 외로움에서 길을 나선다. 다시 열린 문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바닷가 갯바위에 홀로 앉는다. 역시 앞에서는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가깝게 들려오고, 먼 데서 산새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더러 바닷바람이 찾아와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오늘은 파도가 유난히 높다. 하얀 포말이 일어난다. 그리고는 아우성을 치며 갯바위에 매달린다.
부서지는 파도에 시선을 준다. 끝없이 보채며 갯바위와 대화를 시도하나 그것은 파도의 일일뿐. 이내 좌절하여 포말로 물러나고 만다. 다시 용기를 내어 다가서나 역시 갯바위에서 미끄러지고 만다. 매달리고 매달리며 파도가 온힘을 다하다가 손톱이 뒤집어져 하얗게 부서져도 갯바위의 가슴은 언제나 차갑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다가서는 파도. 앞에 와서 절절하게 애원해도 끝내 무표정한 갯바위. 파도의 몸부림을 바라보다가는 나는 일어서고 만다.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다. 저리 무표정한데, 저리도 냉정한데 어쩌겠는가. 나는 영원한 나그네가 된다.
나는 갯바위에서 미끄러지는 포말을 바라보는 날은 온몸에서 뜨거운 열이 솟는다. 그 증상이 심하면 며칠 드러눕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갯바위 앞에서 처절하게 부서져 드러눕고 마는 포말처럼 나도 그렇게 되고 만다.
갯바위는 감정의 골이 없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다. 자신이 쌓아올린 아성을 굳건히 지키고만 있는 갯바위 앞에서 나는 언제나 부서지는 포말인 것이다. 아무리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호응하고, 산새와 바닷새가 함께 한 하늘을 비상한다 해도 갯바위의 마음이 굳어 있음을 어찌하랴.
그래도 갯바위에서 낚싯대를 담그고 앉아 있다. 언젠가 갯바위가 파도를 부드럽게 안아 들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영원히 그것을 바라볼 수 없다 해도 나는 낚싯대를 담글 것이다. 이미 이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겼으니, 그것은 나에게 부여된 끝없는 숙명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한폭의 수채화를 감상 하듯~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
영원한 나그네가 아닌~ 멋진 풍경에서 화합하시며 건필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끝없이 보채며 갯바위와 대화를 시도하나 그것은 파도의 일일뿐. 이내 좌절하여 포말로 물러나고 만다. 다시 용기를 내어 다가서나 역시 갯바위에서 미끄러지고 만다. 매달리고 매달리며 파도가 온힘을 다하다가 손톱이 뒤집어져 하얗게 부서져도 갯바위의 가슴은 언제나 차갑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다가서는 파도. 앞에 와서 절절하게 애원해도 끝내 무표정한 갯바위. 파도의 몸부림을 바라보다가는 나는 일어서고 만다...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다. 자신이 쌓아올린 아성을 굳건히 지키고만 있는 갯바위 앞에서 나는 언제나 부서지는 포말인 것이다. / 본문 부분 발췌
우리의 인생이 그러한 것 같아요. 굳건히 버티고 선 장벽 앞에 언제나 번번이, 무참히 부서지는 포말이 되고마는 ..
그런데도 다시 저마다 인생의 갯바위로 엉금엉금 다가갈 수밖에 없는... 또다시 외면당한다 해도 그리할 수밖에 없는
좋은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바닷가에서 두 팔 벌리고
"아, 가슴이 탁 트린다."고 고함치는 사람은 관광쟁이라고 하지요.
실상 갯바위에서 바라본 파도는 애소하듯 처절하게 울음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아무리 보채고 다가가도 내밀리고야 마는 파도.
그 포말을 바라보면서 동화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더위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