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이후라 부동산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낙찰을 받으면 5백~일천만원은 남았다. 그래서 나는 꾸준하게 이일을 하면 밥은 굶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경매법원에 출근하고 2년여가 지난 어느날인가 부터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경매법원에 드나들었다. 심지어는 애기를 업은 아주머니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입찰참가를 하며 생각지도 못한 금액을 적어 냈다. 그들이 쓴 금액으로 낙찰을 받으면 남는것이 없었다.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입찰법원에 처음 온듯한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낙찰금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낙찰을 받았다. 나는 부동산에 찾아가 부동산 분위기를 물어보았다. 지금도 부동산이 움직이는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단지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조금 늘어나 전세를 내노면 금새 빠져나간다고 했다. 매매가격에 변동이 없는데 그들은 무슨수로 높은 금액으로 낙찰을 받을까? 나는 의아심이 들었다. 그 후 6개월 정도 나는 한건도 낙찰을 받지 못햇다. 경기는 IMF외환위기를 점점 벗어나고 있었다. 실물 부동산이 움직이기 전 경매 부동산이 먼저 움직였던것이다. 경매와 급매를 비교해 급매보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이면 낙찰을 받아갔던것이다. 향후 부동산이 움직일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들이 법원에 와서 낙찰을 받았던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했
던 경험상 그들이 쓰는 금액으로는 도저히 입찰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부동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장에 가보면 급매 물건들이 싹 들어갔다고 한다. 급매 물건이 들어가니 부동산 가격이 올라갔다. 전세가격이 들썩들썩 하더니 매매가격도 갑자기 따라 올랐다. 매매물건이 없어 웃돈을 주고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몰렸다. 그러니 입찰금액이 감정가격의 120~130%를 상회했던것이다. 나는 부동산가격 메카니즘을 모르고 낙찰받은 사람들을 바보 취급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바보였던것이다. 6개월 동안 낙찰을 받지 못하자 안달이 났다. 낙찰을 받지 못한다면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기존에 벌어놨던 돈으로 생활을 했지만 이런 샹태로 계속 지낼수는 없었다. 목동에 살고있던 동서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다. 한가지 종목을 알려주며 투자해보라고 했다. 2천만원 정도를 투자했다. 한달정도 지나 반토막이 났다.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주식을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챠트를 알려주는 책을 구입했다. 증권회사에서 개최하는 투자공식 교육도 받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주식투자를 했다. 처음엔 1억정도로 시작을 했다. 건넌방에 PC와 TV 두대를 설치하고 아침 8시가 되면 건너방으로 출근했다. 나는 문을 걸어잠그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그날 아침 예상 시황을 보고 미국주식시장의 움직임도 파악했다. 막대그래프로 차트를 분석하고 사고자 하는 주식을 골랐다. 나는 그 어렵다는 주식 단타시장에 뛰어 들었다. 1억원을 투자하면 한번에 2~3백만원은 쉽게 오르고 내렸다. 눈이 핑핑 돌아갔다. 알지도 못하는 주식용어를 들어가며 주식채널을 유심히 살폈다. 추천 주식의 그래프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분치기 초치기에 들어갔다. 주식시장이 끝나기전 까지 방에서 나가지 않았고 오로지 모니터에 집중했다. 한달 정도 지나 투자금의 20%가 날아갔다. 나는 잠을 자지 못햇다. 미국시장의 변동에 따라 국내시장이 움직였다. 그러니 미국시장이 열리기전 잠에 들 수 없었고, 미국시장이 끝나기 전 새벽같이 일어나 시황을 살폈다. 나는 삼성전자, 현대차, 국민은행, 네이버 같은 종목으로 단타를 했다. 그때 삼성전자의 1주 가격은 20만원이 채 안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하게 낮은 가격이다. 대형종목을 투자하다보니 움직임이 적어 나는 소형종목에 투자를 했다. 흔히 말하는 동전주였다. 아무것도 모르먼서 차트가 조금 움직인다 싶으면 뛰어들었다. 상한기 따라잡기, 하한가 투자 기법 등 별 이상한 책과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나름의 투자방법을 연구했다. 오늘 1백만원이 깨지고 내일 10만원을 벌어도 전날 깨진건 생각안하고 오늘 번것에 기분이 좋았다. 상장폐지된 주식을 5번이나 샀다. 부동산에서 벌었던 것을 주식으로 다 까먹었다. 나는 점점 피폐해졌다. 살아도 사는것 같지 않았다. 나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다. 그건 투자가 아니고 투기도 아니고 도박이었다. 나는 산을 오르며 생각했다.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아무도 나의 흔적을 찾지 못하겠지 산아래 푸르른 녹음이 나에게 손짓을 보내는것 같았다. 흔들리는 가지보다 내 마음이 더 흔들렸다. 가지고 있던 자금도 점점 줄어 들었다. 어쩔수없이 나는 다시 경매법정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경매법원에서도 부동산보다 주식에 관심이 가졌다. 핸드폰만 켜면 주식창을 볼 수있게 증권사 앱이 나타난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헤메고 있을 때 나는 A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내가 살고있는 인근동네에 살았다. 나는 인천법원으로 다녔기에 대부분 사람들이 인천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A 사장은 서울에 살고 있어 급속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그의 첫인상은 건달같았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업으로 인생경험이 많았다. 그는 성격이 우락부락했다. 그리고 인천 태생으로 인천에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에게 경매 노하우를 알려주고 그는 내가 어려워하던 명도와 관련된 일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를 만난 후 나는 계속 그와같이 경매 사업을 하게되었다. 어떤 때는 같은 물건에 공동투자도 했다. 그는 인상이 험악하고 성정 자체가 거칠었다. 그러다보니 거주자들을 만나러 가면 그들은 기가 죽었다. 확실이 혼자 다닐때보단 일보기가 편했다. 나는 좀더 세심하게 부동산가격을 조사하고 부동산의 추세도 알아보고 미래가치도 예상해가면서 부동산투자를 하게되었다. 어쨌거나 죽으란 법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