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적인 관점을 통한 주관과 객관의 분리 불가능성
A라는 사람이 한손에는 스피드건을 들고 다른 손에는 물병을 들고 시속 10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기차를 타고 있다고 하자. 기차를 타고 있는 중에 A가 0.5리터짜리 물병을 들고 물을 마신다고 하자. 그런데 기차 밖 길가에 스피드건을 들고 서 있는 B가 A에게 전화를 걸어 A에게 묻는다.
“그 물병의 속도는 얼마입니까”
그런데 A는 기차안에 타고 있으면서 물병을 들고 물을 마시고 있으니 A에게는 물병의 속도는 정지하고 있는 것이다. A가 스피드건으로 물병의 속도를 측정해도 0에 수렴하는 값이 나온다. 그런데 기차 밖에 있는 B가 스피드건으로 측정했을 때 물병은 시속100km로 날아가고 있다. 물론 A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B는 A에게 말한다.
“당신은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물병은 시속 100km라고 스피드건이 측정했습니다.“
A는 대답한다. “아닙니다. 제가 측정한 스피드건에 물병은 정지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만약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속 100km로 날아가는 물병속의 물을 제가 무슨 재주로 마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당신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B가 대답한다. 그렇다면 서로의 스피드건 값을 사진찍어서 보기로 합시다. 확인해보니 둘 다 맞는 말을 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객관이란 두 개의 값을 가지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객관이란 수학과도 같은 계산값을 가지는 상태를 말한다. 1+1은 수학적으로 2가 된다. 그것이 객관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즉 객관이라 말하기 위해서는 누가 측정해도 물병의 속도는 정지해 있거나 시속 100km 둘 중에 하나여야 한다. 이것은 양자물리학적 개념이 아니라 고전 물리학인 갈릴레이의 상대론의 시각이다. 즉 고전물리학에서도 속도라는 것은 고정된 값이 아니라 누가 그 대상을 관측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외부에 실재하는 무엇을 측정한다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통적인 값이 나와야 함에도 이렇게 관찰자의 상태에 따라 외부 대상을 측정한 값이 다르게 나온다는 것은 외부에 객관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정말 있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이것을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공전하는 속도는 시속 11만km이며 초속으로 환산하면 초속 30km이다. 즉 1초에 약 30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이 속도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15초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속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 밖의 관찰자가 봤을 때 시속 11만 km미터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음에도 주변의 모든 세상이 정지해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즉 A의 시선에 바라본 물병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지해 있는 것처럼 A가 보는 것일 뿐이고 B의 시선에서 바라 본 물병은 시속 100km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객관이라 믿는 사태도 주관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항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물병의 속도는 관찰자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항시 바뀌는 값이다. 그러므로 물병의 속도 값은 고정된 값이 있을 수 없다. 즉 용수보살께서 말씀하신 공이란 이야기다. 나아가 물병속의 물은 누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더럽게 보일수도 있고 깨끗하게 보일수도 있고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약일수도 있고, 사람을 익사시킬 수 있는 흉기 일수도 있다. 이렇게 주관과 객관은 서로 어떤 관계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항시 다른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와서는 관찰자에 따라 시간조차 다르게 측정된다. 모두가 부인할 수 없이 동일하다고 믿고 있던 시간의 값조차 관찰자의 측정 위치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물병과 기차의 예시에서 더 나아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아이디어를 살펴보자.
우주선 안에 우주인이 타고 있다. 만약 우주선이 그 상태에서 갑자기 가속을 한다면 그 안에 타고 있는 우주인의 몸은 뒤로 쏠릴 수밖에 없다. 비슷하게 우주선이 날아가는데 갑자기 큰 행성이 뒤에서 출몰해서 중력으로 우주선을 끌어당긴다고 하자.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우주선에 타고 있는 우주인의 몸은 역시 뒤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이때 우주인은 자기 몸이 쏠리는 이유가 갑자기 가속한 우주선때문인지 뒤에서 큰 행성의 중력의 당김으로 인해서 쏠리는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 아인슈타인은 그 상황과 비슷한 어떠한 물리적 실험장치를 쓴다하더라도 우주인은 그 쏠림이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중력과 가속도는 동일한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중력에 관한 모든 효과를 전부 가속도의 효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속하는 물체에서 보면 빛이 휘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가속도는 중력의 계산 값과 같으므로 중력이 강한 곳에서도 빛의 휘어짐이 발생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라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외부의 객관적측정값의 기준이 되는 지점은 측정자가 직접적으로 느끼는 효과로만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아인슈타인 이전까지는 외부에 측정값을 독립적으로 갖는 객관적인 실체가 있다고 믿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외부대상의 상태가 그대로 관측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관찰자가 대상과 어떤 관계적 맥락을 갖느냐에 따라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관찰자가 관측하는 대상은 그 대상 자체의 속성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관찰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와 대상사이에 어떤 관계적 맥락이 맺어지느냐에 따라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객관이란 주관과 함께 연기하여 있는 것이지 주관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이 있을 수 없다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 동안 우리가 객관 주관이라 나눠왔던 이분법이 허상이라는 것임을 증명하는 실험인 것이다. 즉 주관과 객관은 분리할 수 없는 연기관계에 있다. 고정된 값을 갖는 외부적 실체는 있을 수 없으며 모두가 다 연기하고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과학에서도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와..ㅎㅎ 연기법을 과학을 근거로 설명하는 영상이나 글을 보았지만 이렇게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는 것을 못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내용을 다 이해하는건 아니지만요 ^^ 마치 다 이해 된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한번에 읽었습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