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1일
1951년 바비 톰슨(뉴욕 자이언츠), 1978년 버키 덴트(뉴욕 양키스), 2011년 댄 존슨(탬파베이 레이스). 이 세 선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미국 메이저리그(MLB)에는 오랜 역사 속 수많은 홈런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이 세 선수의 홈런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극적인 홈런이었다. 1951년 톰슨의 홈런은 이른바 ‘세상에 울려 퍼진 한 방’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면서 소속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1978년 덴트의 홈런은 양키스에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안겨줬고 이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발판이 됐다. 2011년 존슨은 와일드카드 탈락 직전에서 팀을 구해내는 9회 말 2아웃 동점포를 쏘아 올렸다.
역사는 짧지만 KBO 리그 역시 페넌트레이스의 향방을 가르는 최종전의 한순간이 있었다. 특히 ‘미라클 두산’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두산 베어스가 이런 극적인 순간을 많이 만들어냈다. 비록 홈런은 아니었지만 9경기 차 역전 우승을 이끈 2019년 박세혁의 끝내기 안타, 1999년 두산의 드림리그 1위를 만든 강혁의 끝내기 안타 등 중요한 순간 두산은 뒷심을 발휘해 경기를 가져왔다. (물론 그사이 2013년 LG 트윈스의 2위를 확정 지은 이병규(9번)의 역전 2타점 2루타를 허용한 아픔도 있었다.)
롯데 관련 연재물에 두산 이야기는 왜 나오게 됐을까. 1999년 강혁의 끝내기 안타를 허용한 팀이자 이 패배로 인해 131번째 경기까지 지켰던 1위 자리를 내줬던 팀이 롯데여서? 아쉽게도(?) 이번 편은 1986시즌을 다루기로 했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다. 1986년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하며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준 롯데가 기적을 만들었던 건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베어스가 이 글에 이름을 올리게 된 걸까.
1986년 4월 2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OB와 롯데의 경기. 이날 롯데는 7회 초 1사 1, 2루 찬스에서 3번 타자 한영준의 2루타가 나오며 먼저 2점을 냈다. 그러나 이어진 7회 말 수비에서 에이스 최동원을 투입하고도 한 점을 내주며 롯데는 위기를 맞이했다. 여기에 최동원이 8회 말 2사 2루에서 OB 김형석에게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맞으며 결국 롯데는 2대 3 역전패를 기록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최동원’, ‘김형석’, ‘홈런’ 이 세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계를 다시 돌려 같은 해 9월 17일로 가보자. 8월 초 7연패 폭탄을 맞았던 롯데는 이날 경기 전까지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2위와 무려 11경기 차로 멀어진 상황이었다. 이미 후기리그 5위를 확정한 롯데는 이날 열리는 OB와의 경기 자체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시즌 19승을 기록 중이던 에이스 최동원이 1984년부터 시작한 20승 행진을 3년 연속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다른 팀의 사정은 달랐다. 최소 2위를 확정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해태 타이거즈는 그렇다 쳐도, 17일 경기 전까지 1경기 차를 유지하던 2위 OB와 3위 MBC 청룡은 이날 무조건 승리해야만 플레이오프에 오를 수 있었다. 여기에 승률 0.826(19승 4패)을 기록 중이던 OB 선발 최일언은 이날 패배하게 되면 승률 1위 자리를 해태 선동열(24승 6패, 0.800)에게 내줄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경기는 잠실(롯데-OB), 전주(MBC-해태), 대전(삼성-빙그레)에서 동시에 열렸다. 순위 결정과 아무 관계가 없던 대전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두 경기는 1986년 후기리그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일전이었다. 오후 2시, 세 구장에서 일제히 ‘플레이 볼’이 선언됐다.
롯데는 1회 초부터 최일언에게 집중 4안타를 뽑아내며 먼저 2점을 얻었다. 최동원은 1회 말 김형석에게 희생플라이를 내주며 한 점을 실점하기는 했으나 8회까지 OB 타선을 단 4안타로 틀어막았다. 그 사이 롯데는 8회 초 유두열의 적시타로 한 점을 더 도망갔다. 여기에 잠실 경기보다 먼저 끝난 전주 경기는 MBC가 신예 에이스 김건우의 호투 속에 9대 4로 승리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났다면 MBC는 32승 4무 19패, OB는 32승 2무 20패가 되면서 MBC가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는 결말로 1986년 프로야구가 마감될 상황이었다.
이제 OB는 단 한 번의 공격 찬스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9회 말 선두타자 김광수가 안타로 살아나가기는 했지만 최동원의 구위를 보았을 때 득점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1회 OB의 첫 득점을 이끌어 냈던 김형석이었다. 피하는 승부를 모르던 최동원은 볼카운트 0볼 2스트라이크를 만들며 김형석을 압박했다. 그러나 김형석에게는 4월 23일의 좋은 추억이 뇌리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김형석은 완벽히 그날의 경기를 재현했다.
최동원이 피하지 않고 던진 3구째 몸쪽 속구를 노려친 김형석은 우익수 유두열이 잡을 수 없는 타구를 만들었다. 백구(白球)는 잠실야구장 펜스를 넘어 관중석에 그대로 꽂혔다. 2점 홈런. 경기는 3대 3 동점이 됐다. 김형석은 환호했고, 최동원은 마운드에서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는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경기 분위기는 OB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이어 등장한 4번 신경식은 기운이 빠진 최동원을 공략, 중견수 키를 넘기는 3루타를 터트렸다. 롯데 중견수 홍문종은 타구를 잡아 곧바로 유격수 정영기에게 송구했고, 정영기는 3루수 김용철에게 공을 뿌렸다. 그런데 이 송구가 그만 뒤로 빠지고 말았다.
평소였으면 3루수 뒤로 백업을 들어갔을 투수 최동원이 허탈한 마음에 이를 지키지 않았고, 결국 신경식이 홈을 밟았다. 2시간 50분의 혈전은 다소 허무한 결말로 마무리됐다. 롯데의 3대 4 역전패. OB는 이날 승리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하며 해태와 후기리그 우승 결정전에 돌입하게 됐다.
9월 17일 김형석의 한 방(과 신경식의 결승 득점)은 많은 걸 바꿔놓았다. OB는 웃었고 MBC는 울었다. 8회 1사에서 내려간 최일언은 패전을 지우고 타이틀을 차지하며 웃었다. 승률왕을 놓치며 트리플 크라운에 실패한 선동열과 3년 연속 20승이 물 건너간 최동원은 울었다. 그리고 이날 패배한 4위 삼성과의 승차를 9경기 차로 유지한 5위 롯데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경기 후 김형석은 인터뷰에서 “홈런을 노리지는 않았으나 최동원 선배가 투 스트라이크 이후 도망가는 피칭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노렸습니다. 마침 몸쪽 빠른 공이 날아와 때린 것이 홈런이 됐습니다”라고 말하며 홈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노리지 않았던 홈런이 두 팀과 세 명의 선수를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 1986년 9월 17일 롯데-OB전 박스스코어(사진=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
PS. 김형석의 극적인 홈런이 나왔던 1986년 9월 17일은 추석 전날이었다. 거인군단은 23년 뒤인 2009년 추석 전날(10월 2일)에도 곰을 만났다. 거인이 만든 송편 냄새를 맡았을까, 두산은 이날 열린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그 유명한 ‘김현수 거르고 김동주’를 만들어내며 12대 3 대승을 거뒀다.
양철종 / 칼럼니스트
야구공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