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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3. 11
오늘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동일본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일어났지요. 지진 이후 발생한 쓰나미로 2만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습니다. 게다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가 손상되고 냉각용 전원이 지진·쓰나미로 멈추면서, 멜트다운·수소폭발을 일으켰습니다.
동일본대지진 10년을 맞는 일본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생각해보고, 한국의 대일본 전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대일본 전략이 어떤 결말을 낳을 것인지, 그것이 우리 국익에 정말 최선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동일본대지진 10년을 앞두고 일본 미디어에선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천재(天災)는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인재(人災)를 왜 막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과 복기(復棋)가 물론 많았습니다만,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쓰나미·원전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 3월1일 후쿠시마원전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 모습. 사고 이후 10년 지났지만 본격적인 폐로작업은 아직 시작조차 못한 상태다. / 로이터 연합뉴스
◇ 동일본대지진 이후 10년 지났지만, 후쿠시마원전의 본격 폐로작업엔 아직 손도 못대
게다가 쓰나미·원전사고 피해는 실제로도 현재진형행입니다. 2개만 예를 들게요. 지난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대지진 이후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등 피해 3개 현의 가설주택과 재해공영주택에서 혼자 살다 숨져 경찰에 신고된 경우만, 2011년부터 작년까지 614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68%였고요. 상당수가 아무도 모른채 숨진 고독사였습니다. 또 NHK 조사에 따르면, 원전사고로 피난한 주민 16만 명 중 4만 명이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진재해 관련 사망’이라고 인정된 사람의 수는 2316명(1월 8일 현재)에 달했고, 사망자 4명 중 1명은 살던 현 바깥에서 숨졌습니다. 이것만 해도 무척 슬픈 일이지만, 이는 대지진 이후로도 여전한 수많은 피해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의 일본 상황은 매우 좋지 못합니다. 대지진 이후 10년을 맞기 바로 직전에 같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일본 사람들이 또한번 공포에 질린 것도 있었고요. 이번 지진이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여진인지, 아니면 또다른 대지진을 예고하는 징후인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끼리 의견이 분분합니다. 무엇보다 국가경제적으로, 동일본대지진의 피해가 복구되기는 커녕, 앞으로가 더 문제인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 심각합니다.
가장 심각한게 복구 재원 마련입니다.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제염(토양의 방사능 오염을 줄이는 것)에 들어간 국가예산만 이미 5조엔(약 53조원)입니다. 지난 3월 2일 참의원 예산위에서 도쿄전력 사장이 답변한 내용에 따르면, 제염·보상·폐로(원자로를 폐기하는 것)에 지금까지 든 비용은 11조2000억엔(약 120조원)이었습니다.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예측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원전사고 복구에 들어갈 총비용이 80조엔(약 84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 정부 1년 예산이 500조원대입니다. 일본이 원전사고 뒷처리에만 한국정부 연간 예산보다도 훨씬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투자가 아니라 복구일 뿐이죠. 사고만 터지지 않았다면 쓰지 않아도 될 곳에 천문학적 돈을 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동일본대지진 관련 피해만 심각할까요? 아니죠.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신음하고 있는 코로나사태로 일본도 경제가 오랫동안 마비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내수경제 비중이 한국보다 훨씬 큽니다. 한국은 GDP 대비 수출 비중이 약 40%인데 비해, 일본은 20%도 안됩니다. 그만큼 내수가 안돌아가면 타격이 더 큰 구조이지요. 물론 한국도 매우 어렵지만요.
◇ 원전피해 복구에 100년... 한국 국가예산보다도 훨씬 많은 800조원의 비용 투입돼야
코로나가 일본경제에 특히 타격을 입힌 것은 도쿄올림픽 개최 연기와 함께 왔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국가·지자체는 물론, 올림픽에 맞춰 큰 돈을 들여 이벤트를 준비해왔던 민간기업들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IOC의 재원 유지(IOC의 주수입원인 거액의 중계권료 계약 문제)와 일본 집권당 입지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개최는 강행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해외관객 유치 없이 개최만 강행할 경우, 올림픽 관련 손실만 5조엔(약 53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즉 원전사고 복구의 부담, 코로나로 인한 내수경제 파탄, 일본 부흥을 보여주려던 올림픽이 빚잔치로 끝날 가능성 등 거대한 ‘트리플 펀치’로 일본경제가 신음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본이 여전히 저력을 갖고는 있지만,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에게 늘어가는 불안감, 상실감,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와 도쿄올림픽 연기의 동시 직격’이 일본 기업에 큰 피해를 입혔다는 건 덴츠 실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덴츠는 일본 최대·최고 광고회사이지요. 지난달 16일 덴츠가 발표한 작년 결산에 따르면, 1595억엔 적자였습니다. 2019년 808억엔 적자에 이어 2년 연속 적자. 덴츠가 2년 연속 적자를 낸 것은 처음이고요. 적자폭도 과거 최대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올림픽 개최를 중단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많은 돈을 들였지만, 더 큰 피해를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개최 강행은 ‘죽창으로 B29를 떨어뜨리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유명한 자민당 저격수이기 때문에 한 말이기도 하겠지만, 이 말은 의미 심장하지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들어선 자민당 아베 정권, 이후 야심차게 일본의 부흥을 보여줄 상징적 이벤트로 준비했던 올림픽이 거대한 빚잔치로 끝나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아베는 일본 군국주의 향수에 젖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인물이고, 특히 초등생 때인 1964년 도쿄올림픽을 보면서 일본의 부흥에 감격했고, 그래서 총리가 된 뒤 2020년 도쿄올림픽으로 그 영광을 재현하려 했습니다. 행사를 너무 크게 벌리면 뒷감당 못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20년 도쿄올림픽을 크고 화려하게 열기 위해 민·관을 이끈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이었을 겁니다. 시이 위원장이 한 말은 ‘자민당이 그런 생각으로 아직도 올림픽을 강행하려 하는데, 이건 일본 군국주의 말기, 미국이 B29 폭격기로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 때에 일본인들에게 죽창을 던져 폭격기를 떨어뜨리라고 하는 것, 즉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지요.
올해 7월로 잠정 연기된 도쿄올림픽은 오는 3월25일 후쿠시마현 발 성화봉송으로 공식 행사를 시작합니다. 이런 이벤트를 통해 일본의 부흥, 후쿠시마원전 피해지역의 부흥을 전세계에 알리려던게 전 아베정권의 계획이었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습니다. 현재로선 올림픽이 열린다 해도 해외관객을 유치해 경기부양을 할 가능성도 희박한 상태이지요. 해외관객 없는 개최강행은 돈만 들고 경기부양은 없는 꼴입니다. 현재 정황으로 볼 때, 도쿄올림픽이 일본 경제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최악의 형태로 강행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 천문학적인 원전피해 복구비, 코로나사태로 인한 내수 붕괴, 도쿄올림픽 연기로 인한 손실 등 ‘트리플 펀치’에 신음하는 일본
다시 후쿠시마 원전 피해복구 문제를 언급해 보겠습니다. 지난 2월14일 일본의 TV아사히는 취재진을 사고원전 현장에 보내 상황을 심층보도했습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현재도 사고 현장에는 매일 4000명의 작업자가 방사선량 측정계를 가슴에 차고 작업중입니다. 하지만 복구가 완료되는 쪽으로 가고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복구에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본격적인 폐로작업은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입니다.
사고 원자로를 폐로, 즉 분해해서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 하는데 이게 매우 어렵습니다. 방송에 출연한 도쿄전력 후쿠시마원전 폐로작업 언론담당은 “(사고원전 중 하나인) 1호기에 (잔해 철거작업을 하면 방사성물질이 비산될 수 있음으로) 다시 커버를 씌우는 것(한번 씌웠다가 중간작업을 위해 제거한 상태)을 2023년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후 잔해 철거작업을 2~3년 걸려 진행하고, 그 이후(2026년경)부터 내부 핵연료를 꺼내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1호기에서 핵연료를 꺼내는 것은 폐로작업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어려운 작업인데요. 핵연료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사용후 핵연료. 두번째는 녹아내린 핵연료인데요. 1호기에서 녹아내린 핵연료만 279톤으로 추정되는데, 꺼내는게 지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작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1호기 구조물의 2층까지 들어가 조사했을 때, 시간당 80~100밀리시벨트의 높은 방사선량에 화들짝 놀라 긴급 탈출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일반인의 연간 피폭한도가 1밀리시벨트이니 엄청난 거죠.
게다가 녹아내린 핵연료가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조차 아직 제대로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폐로작업은 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태입니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은 녹아내린 핵연료 추출을 포함한 폐로를 앞으로 20~30년 만에 끝내겠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건 모든게 순조롭게 진행됐을 때, 그리고 여러 시나리오 중 최단기간인 쪽을 선택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미야노 히로시 일본 원자력학회 후쿠시마 제1 원전 폐로검토위원회 위원장은 “안전을 감안해 시간을 두고 폐로작업을 할 경우 100년쯤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사고 피해가 오래가고 또 재정적 손실이 매우 장기적으로 일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겠죠.
▲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 스틸
◇ '날씨의 아이' ‘귀멸의 칼날’에 나타나는 일본 사회의 불안·상실감... 일본 정황도 감안하며 한·일의 미래세대 이익에 부합할 전략 세워야
그래서 글 처음에 말씀드린대로, 동일본대지진 10년을 맞는 일본의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겁니다.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그런 심리를 대변하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일본의 2019년 영화관 흥행 1위 ‘날씨의 아이’, 2020년 1위 ‘귀멸의 칼날’의 사례입니다.
우선 ‘날씨의 아이’에서 도쿄는 항상 비가 내립니다. 이 비는 일본인을 짓누르고 있는 폐색감,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상징합니다. 저는 작년 1월 도쿄에서 ‘날씨의 아이’를 만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인터뷰했었는데요. 그때 신카이 감독은 일본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그런 불안·두려움에 대해 자세히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작품에서 도쿄의 풍경을 세밀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에 대해 ‘이 아름다운 풍경이 (언젠가 닥칠지 모를 큰 재해로)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심리도 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한국인들이 금방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복잡함이 담겨 있지요.
‘귀멸의 칼날’은 또 어떤가요? 한국에서도 최근에 개봉돼 인기를 얻었지만 엄청난 히트 수준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작년 코로나가 심한 상황에서 개봉됐는데도, 역대 극장흥행 1위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코로나라는 초비상 상황, 극장에 모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가 지금 일본인의 감성·심리를 제대로 찔렀다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요. 글쎄요. 잘만든 작품, 감동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코로나라는 비상 상황에서 일본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갈아치울만큼 대단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크게 위로받았다는 일본인이 많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가족을 악귀에게 빼앗긴 주인공이 하나 남은 여동생을 지키고 악귀를 소탕하러 간다는 얘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예전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악귀가 되어버린 존재들의 상처와 눈물과 사랑과 희생이 묘사됩니다. 여기서 악귀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얘기하면 대지진과 같은 큰 재해일 수도 있고요. 또 안팎으로 위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본사회를 지배하는 불안감, 폐색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일본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들을 두렵고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존재일 수도 있을 겁니다.
동일본대지진 10년을 시작으로 여러 이야기를 말씀드렸는데요. 그러면 본론을 얘기드려 보겠습니다. 일본에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가장 큰 도움이 되고, 동북아 평화·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일본의 상황, 특히 일본인들의 심리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못합니다. 이럴 때 외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공격’을 받게 되면, 더 수동적·방어적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취하는 ‘과거사 바로잡기’가 우리 입장에서는 정의이고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일본인의 일반적인 정서를 감안하면 공격적인 행동으로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보다 겉모습이 언론·정치권 등을 통해 증폭되면서, 모든 것이 악화일로로 치닫게 될 수도 있지요.
이럴 때에 한국이 전략적으로 실리를 취하는 방법은 양국의 사이를 어떻게든 좋게 만들어 경제 협업으로 양국 이익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훨씬 많은 기회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의 전략적 협업을 고려할 때, 현재의 중국이 일본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잊었을리 없지요.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그런 역사문제조차 자국경제의 실리를 위해 활용하는 고도의 전략을 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국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역사문제를 끄집어내고, 역사문제를 잠시 덮어두는게 자국에 더 큰 이익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처럼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일본에서는 사회 전체를 짓누르는 상실감·폐색감·열패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선진국이고, 나쁜 의미로든 과거에 세계를 호령하던 강국 중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일본 우파들이 한국에 대해 묵과할 수 없는 언행을 저지르는 것은 일본의 우파 지지층의 반발심리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금의 한·일 상황이, 한국에 우호적이고 과거사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입장을 가진 일본 좌파, 중도 혹은 일반인까지 적으로 돌리거나, 이들이 한·일 협력의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중국은 일본과 협업해 결국은 중국의 더 큰 이익을 도모하는, 매우 전략적인 접근법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입니다.
우선 산업정세 얘기부터 해볼게요. 친환경차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죠. 일본은 하이브리드카를 개발·보급해 전기차로 이행하기 이전까지의 시장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유럽은 하이브리드 대신 디젤로 과도기를 장악하려 했죠. 유럽은 당연히 일본의 하이브리드카를 강력 견제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2015년 폴크스바겐의 디젤 사기가 발각되면서 유럽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제와서 유럽이 일본식 하이브리드를 대거 채용할리 없습니다. 그래서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보급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겁니다. 유럽은 이미 전력 사용량의 50%가 재생에너지이니, 이런 에너지를 활용해 전기차를 빠르게 보급하는게 말이 됩니다. 그리고 일본 하이브리드카가 더 크는 것을 막고, 유럽의 자동차·에너지 산업을 키워야 하겠지요.
자동차는 일본 산업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테슬라, 그리고 유럽발 전기차 공세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 중국이 일본에 손을 내민겁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친환경차 로드맵을 제시한 상태인데요. 이 전략을 보면,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맞서 일본과 산업적으로 손을 잡아 힘을 키운다는 전략이 잘 드러납니다. 중국은 2035년에도 전체 신차의 절반을 하이브리드카로 채울 계획입니다. 일본이 강한 하이브리드카 말입니다. 일본과 장기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그림을 일본에 보여준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일본과의 과거사를 잊은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중국을 보면 어떤가요? 일본을 자극하는 언행을 안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자국 이익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정세를 이끌기 위해, 역사문제도 어떠 의미에서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작년 중국에서 도요타·혼다 등은 각각 200만대 가까운 차를 팔았습니다. 앞으로 중국의 하이브리드카 시장이 확대되면, 일본 자동차산업의 중국 의존도는 더 커질 것입니다. 중국의 로드맵에 따르면, 앞으로 중국의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계속 커져 2035년에 연간 1500만대 시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미국이 전부 일본의 하이브리드카 기술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이렇게 키워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결국엔 중국의 속내가 있다는걸 일본이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또 중국에서 그렇게 많은 하이브리드카를 팔게 되면, 관련 기술도 중국 쪽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겁니다. 하지만 단기와 중장기 득실을 따져봤을 때, 일본도 자국에 이익이라고 본 것일테고, 중국도 그런 관계·득실을 생각하며 일본에 카드를 내민 것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중국은 내연기관차로는 어차피 세계 최고가 못되니까 앞으로 전기차로 갈텐데요. 결국 전기차와 함께 자율주행·모빌리티서비스 플랫폼으로 미국과 세계 시장을 양분한다는 것이 목표일 것입니다. 이미 IT에선 성공했지요. 세계가 구글·아마존·페이스북 손아귀에 들어갔는데, 중국만 자체 생태계를 탄탄히 갖추고 있으니까요.
어차피 중국은 모빌리티서비스로 자국시장만 장악해도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미·중 경제전쟁 중에 일본 자동차업계 그리고 일본 정치권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일본이 하이브리드카로 중국에서 돈 벌게 해주는 것 정도는 용인할 수 있습니다.
또 탄소중립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국은 유럽처럼 급하게 전기차로 이행하기 어렵습니다. 전기차에 쓸 전력의 그린에너지 비율이 유럽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본 하이브리드카를 대거 받아들이며 탄소중립의 중간 이행 과정에서 실리도 도모하고, 기술이전도 받으면 되는 거죠. 일본 입장에서도 기술 일부는 중국으로 넘어가겠지만, 결정적인 경쟁력을 일본이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중국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것일테고요.
저는 한국의 다음 세대가 기존 세대보다 더 높은 소득을 얻고, 더 행복하게 살고, 그런 여유 속에서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러면 경제가 더 강해져야 합니다. K컬쳐가 융성해진 것도, 어쩌면 그 이전 세대가 열심히 일해 이만큼 경제를 일궈 더 높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과거를 잊자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요구할 것은 계속 요구해야 하겠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상실감·폐색감에 휩싸여 있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어떤 부분에서 요구하고, 어떤 부분에서 협력해야 하는지 좀더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한국 입장에서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겠지만, 현재 일본정치권에서 한국을 대하는 반응의 일부는 일본 국민의 보편적 정서를 반영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한국에 무조건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아니죠. 작년 일본 넷플릭스에서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장기간 시청순위 1위에 오를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는데요. 유튜브에서 이 드라마의 일본명으로 검색해보시면, 일본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느낀 감동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올린 감상 소감 콘텐츠가 수천·수만건에 달합니다. 이것을 ‘국뽕’의 관점에서 “우리 콘텐츠가 최고지”라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콘텐츠산업이 일본시장에서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있는게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콘텐츠의 저작권을 상대적으로 존중하는 나라이지요. 일본에서 인기인 한국 콘텐츠에 대해 PPL이든 다른 방법이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일 관계만 좋아지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수익 안정성을 높이는데 일본 시장이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날씨의 아이’ ‘귀멸의 칼날’ 등을 보면, 극장 수입 이외에도 다양한 PPL, 기업과의 연계 마케팅을 통해 더 큰 수익을 창출하는 노하우는 일본 쪽이 능합니다. 한·일 관계만 좋아지면, 한국 콘텐츠가 일본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은 물론, 양국 관계를 더 좋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양국 협력을 통해 한국의 젊은 세대가 더 많은 무대에서 더 크게 활약하고, 더불어 한국 경제가 부강해질 수 있도록, 더 전략적인 접근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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