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 시비 앞에서
발가락 문드러지며
전라도길 걸어걸어
피맺힌 그리움을
달랠 길 없는 님들인데
문둥인
누명을 씌워도 되나요
애기 잡아먹었다고?
*문둥이
서정주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문둥이가 보리밭에서 애기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무서워 보리밭 근처를 지나갈 때면 소름이 돋아
숨이 차도록 뛰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아프다
그 소문의 발원지가 바로 이 시였을까?
아니면 그런 소문을 듣고 이 시를 썼을까?
서정주 시인!!!
친일로 얼룩진!!!
자랑스런 황국신민 운운 하며 우리 청년들을 일제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던 사람!!!
그로인해 잘못 쓰여졌다고 보이는 "부락"이라는 단어를 살펴본다
“부락(部落)”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시골에서 여러 민가(民家)가 모여 이룬 마을. 또는 그 마을을 이룬 곳‘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쿠라 훈민정음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2010》에 보면 “부락은 부라쿠(部落)라는 일본말로 일본국어대사전 《다이지센(大辞泉)》에는 ’비교적 소수의 민가가 모여 사는 지역이란 뜻도 있지만 부락민이란 천시의 뜻도 있다. 일반적으로 비인간(非人間) 집단을 일컬으며 1922년에 대대적인 부락민 철폐운동이 있었다.”라고 풀이하고 있지요.
그러면 어찌해서 좋지 않은 말인 “부락”을 쓰게 되었을까요? 이는 아마도 일제강점기 잡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의 영향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인부락》은 1936년 11월 14일 창간 제1집을 낸 시 전문지인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서정주가 편집 겸 발행인이었습니다. 서정주는 “부락”이 무슨 말인지 알고 쓰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이들 지식인들이 “부락”이란 말을 동인지 이름으로 쓰는 바람에 좋은 말인 줄 알고 대중이 쉽게 따라 썼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ㅡ우리문화신문
*부락이란 단어를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소마부락' "한성부락"하며 써 왔다. 소위 앞선 사람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가
아무튼 서정주님의 문둥이라는 시는 생각해볼 여지가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