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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문을 닫듯 숨을 닫은 그대여
모든 것 비워내도 염장한 생은 남아
화려한 색채에 갇혀 어느 땅을 다스리나
소년왕 짓누르는 울음집이 새고 있다
그 울음 범람하여 나일은 흘러가도
지상의 그리움 하나 띄울 수가 없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미라는 크게 ‘자연 미라’와 ‘인공 미라’로 나뉜다. 한자로 ‘목내이(木乃伊)’로 표기되는 미라는 ‘몰약((沒藥·mirra)’을 의미하는 포르투갈어가 일본을 경유하여 한국에 알려졌다. 영어의 미라(mummy)는 시신의 ‘방부처리’를 뜻하는 라틴어(mumia)에서 유래되었다.
투탕카멘(Tutankhamen)의 기억은 3200여 년 동안의 깊은 잠에서 깬 1922년 어느 날 이후 올해로 꼭 100년째를 맞이한다. ‘화려한’ 마스크 속에서 짓누르는 ‘울음’과 ‘숨을 닫’고, ‘사자의 서(死者의 書·Book of the Dead)’와 우샤브티(ushabti)를 데리고 영생을 향한 끝나지 않은 여행길에 있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가까운 고향이었던 고대 이집트의 ‘울음’은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고 신비로운 땅이 아니다. 경제와 정치 숨을 닫는 경쟁원리의 ‘세계화’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평화 스토리에 동의해야 한다. 100일 넘게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의 ‘울음’은 갈라지는 세계로 ‘범람’하여 평화를 기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리움 하나’를 채우는 거대한 ‘나일’강으로 흘러야 한다.
안수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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