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뉴욕타임스는 11월 4일, 머키타 수하르토노(Muktita Suhartono) 기자가 쓴 “인도네시아 부족 언어에 한글이 알파벳으로 도입: 한국의 사례(An Indonesian Tribe’s Language Gets an Alphabet: Korea’s)”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찌아찌아 한글이 2009년 처음 보급되었을 때 국제적 관심을 끌었고, 15년 만에 미국의 주요 언론사가 그 실태를 심층 보도함으로써 그 성과를 인정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 기사는 수업 사진과 더불어 첫머리를 “수업이 시작되자 교실은 흥분에 찬 대화로 가득 찼다. 각 책상에는 해당 학생의 이름이 한글로 적힌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곧 학생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독특한 원과 선으로 이루어진 한글을 노트에 따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4학년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게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인 '찌아찌아어'를 배우고 쓰기 위해 한글을 사용하고 있었다.(Excited chatter filled the classroom as the lesson began. Every desk had a paper nameplate on it with the occupant’s name written in the Korean alphabet, called Hangul. Soon, the students were following their instructor’s lead and etching the distinctive circles and lines of the script in their notebooks. But these fourth graders were not studying the Korean language. They were using Hangul to write and learn theirs: Cia-Cia, an indigenous language that has no script.”라고 시작한다. ‘직선과 원만으로 이루어진 한글’이라고 하면서 한글의 체계를 설명하고, 이때의 한글은 한국어가 아닌 찌아찌아어를 적는 문자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찌아찌아어가 인도네시아의 토착 언어로, 자체 문자가 없어 수 세기 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고 현재 인도네시아의 많은 섬 중 하나인 술라웨시섬 남동쪽에 있는 부톤섬에서 약 93,000명의 찌아찌아 부족 사람들이 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면서 한글 표기 성과를 현지 취재로 자세히 전하고 있다.
이 기사에 나오는 찌아찌아 최초 한글 교사이자 지금까지도 한글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비딘은 2009년 무렵 서울대학교에 와서 훈민정음 학회 김주원, 이호영 교수 등과 더불어 찌아찌아 한글 표기체계를 만들고 현지에 활용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비딘은 2016년에 필자의 섭외로 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때 경주와 직접 와서 찌아찌아 한글 도입 배경과 원리를 영어로 자세히 발표한 바 있고 한국어 번역은 필자의 ≪한글혁명≫(2017, 살림터)에 전문을 실은 바 있다.
아비딘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한글을 배우고 나서, 찌아찌아어의 특정 음조와 발음을 한글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정말 비슷합니다.(“After I learned Hangul, I found that there are certain Cia-Cia tones and pronunciations that could be denoted by Hangul characters. It’s not exactly the same but it’s really close,”라고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 한글을 빌려옵니다. 옛날과 현대 알파벳을 혼합해서 고유한 찌아찌아어를 만들어냅니다.(“We borrow the Hangul to preserve our language. We mix and match the old and modern alphabet and that makes it uniquely Cia-Cia,” he said, referring to some Hangul characters that are rarely used in Korean these days.”)라며 한글을 치켜세웠다.
여기서 옛날 알파벳이란 현대 한국어에서 쓰지 않지만, 오랫동안 쓰여온 순경음비읍(ㅸ)과 반시옷(ㅿ)을 말한다. 이는 지금은 한국어에서 안 쓰이는 15세기 훈민정음을 활용하면 전 세계 모든 언어 표기가 충분함을 보여준다. 2011년에 나온 찌아찌아 한글 교재 ≪바하사 찌아찌아≫(신명시스템즈)와 2021년에 소라올리오 찌아찌아 원암문화재단 사전편찬팀(이문호 외)이 짓고 훈민정음세계화재단 지원으로 만든 ≪찌아찌아 ᄙᅡ뽀코어 인도네시아 한국어사전≫(역락)이 이를 잘 말해준다.
찌아찌아 한글 보급에는 훈민정음세계화 재단의 이기남 이사장의 남다른 노력과 지원이 있었고 그 공로로 그는 2023년 한글유공자 훈장을 받은 바 있다. 2009년 이래 많은 정치적 우여곡절도 있고 코로나 시련도 있었지만, 2023년부터 부톤섬에는 훈민정음세계화 재단이 후원하고 세종학당재단이 세운 바우바우 세종학당이 설립됐다. 우충환 바우바우 세종학당장은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뉴욕타임스 기사로 현지 분위기가 더욱 좋아졌지만, 아직은 한국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현지 재정이 어렵다 보니 2009년 무렵 세운 한글 표기 간판이 녹슬어 보기 안 좋은 현실이 그런 실태를 반영해 준다고 한다.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 정신이 널리 인도네시아까지 퍼졌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든다.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한글 보급 성과를 더욱 살리기 위해 찌아찌아 현지 한글 보급 사업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한 예로 2024년 원암문화재단이 찌아찌아부족의 교사 3명(Abidin, Ali, Rasyid )와 부족대표 주딘(Judin)을 한국에 초청하여 원암문해상을 시상하며 격려를 한 바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유엔은 무문자 언어와 문맹 퇴치를 위한 훈민정음 표기법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한국이나 유엔이나 뉴욕타임스의 한글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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