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중독된 동생을 둔 형,
술주정하며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
매번 사업에 실패하면서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아들을 둔 아버지.
그들은 말한다.
내 문제라면 오히려 참고 견디겠는데 가족이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괴로운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겠지만 도망가봐야 남는 건 자책감뿐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가 없다.
마치 한 송신탑에 연결된 전깃줄 같다고나 할까요.
“저놈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여태까지 살았어요.”
속을 썩이는 자식을 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푸념이다.
어머니 죽지 말라고 아들이 속 썩이는 겁니다.
자식 때문에 부모 때문에 형제 때문에 내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고 우울해하지만 그런 가족이 있기에 놓아버리고 싶은 절망의 순간을 버틸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반듯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세상에서 나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
그만큼 생의 가치를 갖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누구나 다 사람으로 사는 것 아닙니다.
돌 봐야 할 부모, 서로 아껴야 할 형제, 오로지 희생으로 키워야 하는 자식이 있기에 이기적인 인간이 비로소 인격을 이루고 사랑을 배웁니다.
가족은 사람을 사람으로 살게 하는 기본값입니다.
미숙한 인간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내 것을 그냥 내주는 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남에게 단 하나도 내주는 법이 없던 사람도 자식에게는 나를 온전히 내어줍니다.
부족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성숙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겁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 사람은 한순간에 괴물로 변하기에 십상이니까요.
사람은 내 안의 사랑을 남에게 전할 때 행복하고 그로 인해 자기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타자와의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고달픈 인생 혼자서 잘살아보겠다고 아무리 마음먹어도 가슴속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것은 결국 사랑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너무 밉고 보기 싫은 가족이 어쩌면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 수 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버티는 겁니다.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당당히 바라봐야 합니다.
미움 대신 보듬어주려는 마음을 들여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답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견디는 힘입니다.
그렇게 묵묵히 견디다 보면 가족이라는 전깃줄을 통해 언젠가는 예기치 않은 기쁨과 보람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신이 우리 곁에 가족을 머물게 하는 이유입니다.
스물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를 바꾸어 놓겠다고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들 바꾸고 말겠다며 매를 들었고,
쉰에야 바꾸어야 할 사람이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그 가족 앞에 나를 세워두고 망치를 들어 깎고 다듬는 중이다.
얼마나 더 많은 각고<刻苦>에 아픔을 겪어야만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한 내 모습이 될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