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6:12~33 이삭의 우물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만나, 그에게 우물에서 생수를 달라고 하였을 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상종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생수를 달라고 하니, 예수님은 생수를 두고 영생을 말씀하셨는데,
요4:13~14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배를 우물로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최초의 예배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가죽옷을 입히셨을 때,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임과 동시에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가리킨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은 성령의 잉태를 가리키는데, 죄인인 남자의 씨가 아닌,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데로 성령으로 잉태되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짐승을 죽여 제사를 드렸으나, 그렇게 계속 제사를 드리다가, 다윗왕 때 이르러 성령께서 성자를 보여주셨는데, 곧
시40:6~7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다윗이 어느 날 메시아를 깨달았는데, 율법의 제사가 뒤로 물러나고, 둘째 것 곧 새로운 제물이 한 몸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말한다.
히10:9~14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는 메시아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였고, 신약의 제사는 오신 메시아를 감사하며, 재림하실 메시아를 소망하며 드리는 예배가 되었는데, 역사적으로 예배가 회복되면, 부흥이 일어났다. 어떤 목사님이 하나님 앞에서 찬송하며 춤을 추는데, 어떤 남자가 예배드리는 곳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호주머니에서 마약을 꺼내어 내버렸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인데, 예배의 자리에서 성령이 그를 만지신 것이다. 산 우물을 만날 때, 사람이 변한다. 교회는 우물을 파는 곳이다. 예배가 우물이다.
우물 근처에 수목이 우거지고, 물산이 풍부해지듯이, 하나님께서 이삭의 우물에 복을 주셨는데, 그는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블레셋의 방해로 우물이 막혔는데, 블레셋은 이삭을 시기하여, 그랄 땅의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은 다른 곳으로 옮겨 거기서 아버지 아브라함 때의 우물을 다시 팠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메운 곳이었다.
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그리고 샘을 팠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아 버렸다. 그래서 샘 이름을 에섹이라고 지었는데, 에섹이라는 말은 강도질, 압제, 빼앗다 학대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그리고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또 고소가 들어옴으로, 그곳의 이름을 싯나라고 하는데 사탄과 어원이 똑같다. 고소, 고소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도가 우물을 파려고 하면, 사탄이 고소를 한다.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그래서 또 옮겨 다른 우물을 팠는데, 이번에는 다투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하였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캐릭터가 달랐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블레셋에게 왜 그러하느냐고 꾸짖고 책망하기도 하고 전쟁도 하였는데, 이삭은 그냥 다투지 않고 피해다녔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성부와 성자를 닮은 것 같다.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그리고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하나님께서 블레셋에게 괴롭힘을 당한 이삭을 안심시키려고 나타나셨다.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예배는 아브라함 때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영원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삭의 우물은 믿음의 조상 아버지 아브라함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었다.
우물이 예배라고 하였는데, 우물을 막는 블레셋은 무엇인가.
그것은 잘못된 예배의 문제이다. 예배의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며, 주는 메시아 왕이라는 것이며, 그에게 승복하는 것이다. (W. 덤브렐) 로이드존스는 우물을 막는 장애물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였는데, 크게 보았을 때,
첫 번째로 기도의 부재이다.
두 번째로 기본교리를 믿지 않는 것이다. 덮어버리거나 무시해버리는 일이다. 오직 성경에 근거한 확신과 진리를 경시하고 부인하며 심지어 무시하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고 계시를 부인하며 성경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이 자신에 대한 진리를 명제와 진술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경우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내 이성이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혼합주의 곧 범신론 이신론처럼 혼합시키거나 개입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기도는 낭비가 되고 아주 우스운 일이 된다.
네 번째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처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죄를 점점 부인하고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다섯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려버리는 것이다.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는 것이다.
여섯 번째로 성령세례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일곱 번째로 죽은 정통신앙이다.
여덟 번째로 진리를 적용하지 않는,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슥13:1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블레셋 장애물을 피하여 우물을 잘 파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