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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주농업대학 원문보기 글쓴이: 이춘복
머리글에 실린 내용입니다.
최근에 옛친구가 선물로 사준 에쿠스(Equus)를 받고서 그 사연을
적어 학교신문에 싣자 그 글을 읽은 사람이"글이 감명 깊군요.
인터넷에 올리시지요" 하고 주위에서 권유하여 권위있는 계간 문예
지(문학사랑)에 신인 작품상으로 출품하였는데 심사를 거쳐 당선되
었습니다. 그야말로 내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고 나의 삶속에서
중요한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복 입니까?
세상에 이런일이! 수필집 “꽃뱀의 낙원” 62~66페이지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흔히 이 시대를 개인주의 이기주의 불신주의가 팽배한 비인간적인 사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풀어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정이 넘치는 행복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파란 하늘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땅에 움트는 조그마한 새싹, 숲을 이루는 녹음, 가을의 단풍, 나뭇가지에 머물다가 떠나는 한줄기 바람, 속삭이듯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풀 속에서 우는 벌레 소리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 주위에 지천입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곧 행복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느끼고 간직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눈을 들어 살펴보고 숨죽여 들어보면 주위에는 아름다운 것들, 사람들로 꽉 차 있습니다. 필자는 옛 친구가 내게 준 아름다운 선물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하숙을 같이하며 가장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졸업 후 나는 대학에 진학하여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가정 형편이 갑자기 악화되어 졸업비를 납부할 수 없어 실상 졸업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친구를 찾아가 애기했더니 자기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졸업비를 빌려주어 가까스로 졸업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대학졸업 후 서로 바쁘게 살다보니 만날 수가 없었는데 지금부터 5년 전에 친구가 찾아와 하는 이야기가 컴퓨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은행으로부터 5천만 원을 대출받아야 하니 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상의해 보니 아내가 하는 말 “여보! 그 사람이 고마운 친구인 줄은 알지만 성경의 잠언에 보증서주지 말라고 쓰여 있으니 친구가 어려우면 십분의 일인 500만원을 무상으로 주되 보증은 서주지 맙시다! 이 IMF에 일이 잘못되어 5천만 원을 우리가 갚아야 된다면 우리 형편에 평생을 갚아도 어려우니 친구도 좋지만 제발 보증을 서주지 말아요!”하고 다그쳐 말했습니다. 친구한테 그대로 애기했더니 “나는 5백만 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5천만 원이 필요하네! 어떠한 경우라도 절대로 떼먹는 경우가 없도록 할 테니까 옛정을 생각해서 라도 보증을 서주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아내 몰래 보증을 서주기로 결심하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3개월이 지났는데 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이 이자를 갚지 않아 보증인인 내가 갚아야 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만약 갚지 않으면 봉급 차압 들어 간다나요? 공무원이 봉급 차압되면 구조조정 1호라는 상식을 알고 있는 터라서 황급히 수소문해보니 내 친구는 부도내고 어디론지 도망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부랴부랴 연체이자를 갚고 몇 달 동안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실토하였습니다. 아내는 자기 말을 듣지 않아 이러한 변을 당했다고 펄펄 뛰면서 이혼하자고 난리를 피워 1개월간 별거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진통과정을 거친 후 할 수 없이 떠맡기로 결정하여 동산을 모으고 보험을 모두 해약하고 패물을 정리하여 2천만 원을 만들어 은행돈을 갚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연금에서 3천만 원을 대출받아 모두 갚았습니다. 은행돈이 해결이 됐으나 3천만 원은 빚으로 남아 있는 상태이지요. 여기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이때에 도망갔던 그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구세주 같이 반가웠던 게 아니고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을 할까 생각하고 걱정되어 겁이 왈칵 났습니다만 친구는 그 동안 미안했다며 나에게 사죄한다고 하였습니다. 부도내고 잠적할 땐 인사도 못하고 가서 가슴이 아팠노라고 ..... 해외로 피신하여 컴퓨터 사업을 계속하였는데 잘 되어 성공하고 돌아와 제일 먼저 내 돈을 갚는다고 5천만 원을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났을까? 하루는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친구! 고맙네. 이젠 빚도 다 갚았고 친구에게 사죄하는 의미에서 선물을 하나 줄려고 하네.” “무슨 선물?” “차 한 대 빼줄려고 해.” “무슨 차?” “에쿠스!” “에쿠! 농담하지 마!” “농담이 아니야. 진담이야. 영원히 나를 원망할 텐데. 그래서 제일 좋은 차를 선물하며 사죄하고 싶은 거야!?” 이것은 평생을 통하여 한번 밖에 없는 일이야. 내 성의를 그대로 받아 줘!“ 나는 아내와 상의한바 친구가 선물을 진정으로 주겠다고 하면 에쿠스가 아닌 EF소나타를 사달라고 합의를 보고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니 친구 왈 현재 에쿠스 값을 지불한 상태이니 서울에 와서 사인만하면 된다고 막무가내로 우겼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부부는 서울로 올라가 사인하며 팔자에 없는 에쿠스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관포지교를 알고 있지만 관중과 포숙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이 친구의 선물은 너무나 크나큰 충격이었고 많은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는 마치 소설속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고 이 세상에 이렇게도 아름다운 친구가 있을까? 라고 생각되어 그 친구를 원망했던 지난날의 내 자신이 부끄 럽기만 하고 이 선물을 통하여 친구의 우정이 고귀하고도 아름답게 승화되어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모자이크로 수놓아짐을 실감합니다. 나는 친구의 아름다운 선물에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그보다 더한 10배,100배..... 아니 수만 배의 우정의 선물을 그 친구에게 보낼 것을 마음속으로 꼴지어 봅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나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특히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나 전화 통화를 마칠 때에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가 저절로 나옵니다. 이 말 한마디는 돈을 들이지 않고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내 자신도 기뻐집니다. “이 교수 달라졌어!” “이 교수도 그런 말 할 줄 알아?” “과연 이 교수는 신사야!” 이런 말들을 듣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한 번 실천해보세요. 친구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참 재미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푸른 하늘은 아름답기만 하고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은 숱한 행복을 뿌리며 옆 마을로 달려갑니다. 첨부물:세상에 이런일이! (월간 엽서문학 산문부문 대상 수상작 2004.10)
이시웅(李時雄) 1944년 충남 논산시 강경 출생. 남성중·고등학교 졸업. 공주교육대학 졸업/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공학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건축미술과 미술학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공학박사. 대전 원동, 판암, 천동초등학교 교사. 서울천호중, 여의도고, 서울공고 미술교사. 국립 한밭대학교 교수 국립 한밭대학교 산업대학원 객원교수 국립 한밭대학교 산업대학원장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교환교수. 한국건축가협회 대전시지회 회장. 첫 번째 수필집 “꽃뱀의 낙원“ 두 번째 수필집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이 밤에”
친구는 폐암으로 투병을 2011.04.04 대전성모병원에서 별세 04.06 원광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한 아름다운 친구 영원히 기억될 친구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3회 靑谷 黃澤淳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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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시웅 교수님은 제가 한밭대 다닐때 교수님이었습니다. 사진으로 뵈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글의 내용은 참으로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입니다. 이와같은 사항이 저에게도 똑같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그에 대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참으로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잘되어서 제자리로 돌아오라는 기도밖에 할수가 없어요
두 가지일이 생각납니다. 하나는, 이시웅교수님께서 한때 한국농촌문학회를 이끌었던 어른으로 맴버로 함께
했던 분이었는데 그렇게 일찍 가실 줄 몰라 더 애잔한 마음이 들고, 두번째는 저도 직장동료 보증을 서주는
바람에 비슷한 일을 겪으며 마음고생이 컸는데, 결국 본인이 다 갚았지만, 엊그제 아들래미 결혼식을 한다길레
다녀오면서,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인생 항로가 참 어렵기도하고 오묘하기도 하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