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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토요 큐티 (2013. 6. 1.)
큐티 베이직 - 반태효 목사 (시카고 온누리교회)
1. 큐티를 해야 하는 이유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부터 하나님의 모든 기본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좀 더 보편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첫 단추입니다. 여기서 잘못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부분이 완전히 먹통입니다. 관심도 없고, 관계 성립이 안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힘이 없으니 모든 관계를 자신으로부터 풀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결국은 배신당하고 실망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관계를 갖습니다.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사랑하는 관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이 사랑을 잘 열매 맺고 온전하게 이뤄 가기란 불가능합니다. 또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관계가 세상 만물과의 관계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돈이겠지요. 돈과의 관계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부자라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편안하기는 하겠지만, 그 편안함이 행복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큐티와 적용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입니다. 바로 사탄과의 관계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점점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세상은 갈수록 불안합니다. 늘 시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험 때문에 싸웁니다. 정부를 탓하고, 노동자를 탓하고, 사주를 탓하고, 배우자를 탓합니다. 그러나 우리끼리 싸울 때, 정말 웃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는 묵상이 잘 진행되어야 우리 삶에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세상 만물과 사탄과의 관계에서 잘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늘 큐티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했을 때만 나머지 다른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습니다.
2. 큐티와 말씀 묵상
큐티라는 단어는 사실 오래된 단어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큐티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큐티의 원조는 사실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큐티라는 단어는 1882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영국은 요한 웨슬리 시대부터 200년 동안 엄청난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82년에 침체기가 왔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딱 그 위기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옥스퍼드 대학에서 청년 경건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 중의 일정한 시간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서 보내자는 경건 운동이었는데, 이것이 굉장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이들이 내세운 구호가 “quiet time, 이 quiet time을 기억하라”였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루 중의 일정한 시간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바로 큐티 운동이었습니다. 큐티는 말씀 운동의 기초가 되었던 단어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도 영국 출신의 데니스 레인 선교사를 통해서 큐티를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하 목사님의 설교가 강해 설교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많은 선교단체에서 큐티를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단체나 청년 중심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다 하나님 말씀으로 큐티를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 목사님을 통해서 주신 한국 교회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큐티를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하 목사님이 한국 교회를 위해서 한 일이 많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든 성도에게 큐티를 보급한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큐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큐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가, 큐티를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가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는 큐티가 묵상이라는 단어로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하나님의 말씀은 묵상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듣는 것입니다. 읽는 것과 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읽는 것은 내가 주체입니다. 내가 읽고 판단하고 분석합니다. 따를 것인지 아닌지 내가 결정합니다. 그러나 듣기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듣겠나이다”하는 것입니다.
귀로만 듣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사람은 생각이 있는 한 묵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꼭 말씀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묵상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무엇을 듣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악인의 꾀를 좇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것이 패턴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은 세상이라는 환경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사탄하고 박자가 굉장히 잘 맞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금방 악인의 꾀를 따라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의 생각은 세상 꾀를 따라갑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다림줄로 우리 삶을 세워 놓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10년, 20년 해도 절대로 세상을 못 이깁니다. 그래서 큐티는 꼭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느냐, 잘 하느냐 못하느냐는 나중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이 세대를 본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마음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큐티를 하는 목적입니다. 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 내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3. 큐티를 통한 회개와 치유
큐티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마음의 태도가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반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못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도 거역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큐티를 통해서 회개와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먼저 회개와 치유가 일어나야 합니다. 마음 밭이 돌밭 같고 길바닥 같고 가시밭 같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엉뚱한 열매를 맺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엉뚱한 적용을 합니다. 설사 적용을 잘 해도 삶의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면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계속 회개하고 울고 또 울면 마음에 치유가 많이 일어납니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못 듣습니다. 좋은 말씀을 받고도 상한 마음 때문에 삐딱하게 듣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큐티를 할 때는 계속해서 내 마음의 가시를 뽑고, 돌을 골라내고, 길바닥 같은 마음을 개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빨리 적용으로 나아가려는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 밭이 준비되면 적용은 정말 저절로 됩니다.
4. 결단과 헌신으로 큐티를 시작하라
큐티는 쉽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습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안 들립니까? 죽어 있거나 죄가 있으면 안 들립니다. 그리고 잘못 듣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 밭이 잘못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큐티 자리로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수없이 깨지고 또 깨져서 비로소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굉장한 사건이죠. 내 귀가 열리기 시작하고 내 마음에 하나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영이 깨어나고 살아나기 때문에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삽니다. 이미 큐티는 시작된 것입니다. 들리지 않아도 그냥 은혜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깨실지 모르니까요. 우리가 안 들어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삽니다. 그래서 말씀은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큐티는 결단과 헌신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큐티를 해야 하는지 아는데 왜 못합니까? 시험이 오기 때문입니다. 안 하던 일을 하려면 꼭 방해가 오고 시험이 옵니다.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큐티는 어려워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과 결단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큐티를 혼자 하려고 하면 힘듭니다. 영적인 일을 혼자 하면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큐티는 철저히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만남이지만, 큐티를 지속적으로 하려면 반드시 큐티를 체크해 줄 수 있는 영적 동반자가 있어야 합니다. 큐티를 나누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시간을 채우는 것입니다. 처음 큐티를 시작하는 사람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큐티를 잘할 수 없습니다. 기도와 큐티와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내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헌신입니다. 큐티하는 시간은 사실 시작일 뿐입니다. 묵상과 적용이 하루 종일 지속되는 것이 진정한 큐티입니다.
5. 어떻게 큐티를 할 것인가
이제 어떻게 큐티를 할 것인지 설명하겠습니다. 큐티를 할 때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듣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보게 하소서. 내 마음을 열어 주소서. 큐티를 하는 동안 함께해 주소서”라고 하나님께 임재를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함께 찬양도 해야 합니다. 큐티를 할 때 부를 찬양을 하나 정해 놓으면 좋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듣는 마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열어서 주님을 초청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세 번 정도 읽으라고 합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전체가 무슨 의미인지 보고, 두 번째로 읽을 때는 그 중에서 특별히 내게 다가오는 말씀을 보고, 세 번째는 다시 한번 그 말씀을 천천히 씹으면서 읽습니다. 그런데 큐티를 많이 해 본 사람도 세 번 정도 읽고 묵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 두 개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소리를 내서 하나님 말씀을 반복적으로 읊어 가고, 그러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 판에 확실히 새기려면 암송해야 합니다. 암송하는 것 자체가 묵상입니다. 암송한 말씀이 마음에 뿌리를 내려서 그것을 가지고 하루 종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삶에서 적용이 나옵니다. 말씀을 읽을 때는 듣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왜 잘 안 들리느냐면 내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편견과 선입견이 많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사람이 큐티를 잘 합니다. 자기 생각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들려와도 자기 생각에 사로 잡혀서 묵상을 못 해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속으로 쏙 들어가야 하는데 걱정이 떠오르고 여러 가지 잡념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는 잡념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잡념은 그것이 정리가 안 돼서 마구 생기는 것입니다. 정리만 해 줘도 잡념이 다스려집니다. 노트에 잡념을 기록하면 조용해집니다. 더 이상 나에게 소리를 안칩니다. 이것들이 너무 많아서 묵상으로 바로 못 들어간다면, 찬양을 하던지 하나님께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묵상이 됩니다. 이런 부분이 잘 되어야 묵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묵상에도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음에 와 닿거나 새롭게 깨달은 말씀을 삶과 연결해 집중적으로 묵상하십시오. 주님이 내게 왜 그 말씀을 주셨는지,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지 질문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묵상한 내용을 기록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내용이 잘 정리되고, 적용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앞뒤 본문의 의미를 고려해야 합니다. 묵상한 것을 삶에 적용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무조건 적용을 빨리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묵상입니다. 적용을 무리하게 찾다 보면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율법이 됩니다. 어떨 때는 적용 없이 끝나는 큐티도 있습니다. 적용 없이 그 말씀이 감동으로 남는 때가 있는데, 2-3년 뒤에 그 말씀이 적용으로 툭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큐티는 먼저 나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말씀은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출 때 가장 확실하고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큐티를 적용할 때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너희는 온 천하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듣고 ‘오늘부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적용이 아닙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구에게 찾아가서 전할까요?”라고 묻는 것이 적용입니다. 또한 적용은 실천 가능해야 합니다. 묵상을 하다가 어느 말씀에 두려움이 생기면, 그 두려움을 가지고 또 묵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왜 이 말씀에 두려워하죠?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는데 왜 이 부분을 두려워할까요? 제가 받았던 상처가 생각나서 그런다면 회복시켜 주세요.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 이 부분을 다스리고 만져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이 충분해야 무리한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실망해서 아예 큐티를 안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큐티를 해도 삶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묵상하는 과정에서 자기 발견이 안된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수준이 그 말씀을 적용할 수 있을 만큼의 영적 수준인지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을 할 때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면서 오늘 주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큐티의 마지막 단계는 나누는 것입니다. 나눔 그룹에 가서 귀동냥이라도 하고 앉아 있으면 큐티를 잘할 수 있습니다. 나눔을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큐티를 안 했는데도 나눔이 되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대부분 큐티 준비를 안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합니다. 큐티를 안 했는데도 모임에 나와서 나눌 것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큐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나눔을 통해서 풍성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