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병화 시-산길을 간다
산길을 간다
설병화(해림)
숲을 헤쳐
기어가는 뱀 같은 길
산머루 멀뚱멀뚱
고개 내미는
아득한 길
구겨진 넥타이
펴 놓은 듯 흐려진 길
먹이 찾아 헤매이는
개미떼들 행렬인 듯
그들은 지치도록
이 길을 오고간다
길의 끝자락이
어딘지 조차 모르고
오늘도 래일도
산제비 날아드는
<詩評>ㅡㅡㅡ
*_ 앞으로 시공부 많이 한, 눈 맑은 조선족 평론가가 생겨난다면, 지은이 설병화시인을 한국의 박목월이라 불러도 조금도 손색없는 시인으로 칭하리라 본다.
그간 내가 보아온 조선족 시인 가운데 "조선어를 가장 압축된 언어로 정교하면서 운율을 잘 살려낸 서정시인"이라 보아도 무난하리라.
보면, 다음과 같다.
ㅡ숲을 헤쳐
기어가는 뱀 같은 길
ㅡ산머루 멀뚱멀뚱
고개 내미는
아득한 길
햐! 이미지 표현의 절창이다.
ㅡ구겨진 넥타이
펴 놓은 듯 흐려진 길
ㅡ먹이 찾아 헤매이는
개미떼들 행렬인 듯
역시, 설명이 필요없듯이 확실한 문장 표현이다. 흐트러짐 하나 없는 명료한 문장 구사가 돋보였다.
시적 형상화는 두 말 할 것 없다. '기어가는 뱀 같은 길', '산머루 멀뚱멀뚱 /고개 내미는 /아득한 길', '구겨진 넥타이/펴 놓은 듯 흐려진 길', '개미떼들 행렬인 듯' 에서 확인되듯이 적적한 산길의 정취를 아주 잘 살려주고 있는 대목이다.
ㅡ그들은 지치도록
이 길을 오고간다
바로, 인생길이 그러한 길이다. 인생길과 다름없는 산길이다.
ㅡ길의 끝자락이
어딘지 조차 모르고
ㅡ오늘도 래일도
산제비 날아드는
또, 분위기 창출을 위해 '산제비 날아드는'이 생략법을 통해 잘 보여주며 끝을 맺는 수법이 좋았다.
한국의 저명한 박목월시인의 시를 보는 듯 조선족 시에서 발견했으니, 누군가 기록해 두고도 남을 일이다.
다른 예를 한 가지 더 들자면, 한국의 수많은 국문학자ㆍ문학박사가 있어왔으나 너무나도 박식해 한국을 뒤흔들었던 양주동이란 분이 계셨다. 호까지 '무애(無涯)'라 칭했으니 거침없는 식견이었던 것이다.
내 학창시절 제2의 양주동이 되어야겠다는 포부를 가진 적도 있지만, 중국 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공자님같이 식견이 높으신 분으로 여겨진다. 뛰어난 국문학사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기도 하며, 그 시가 가곡으로 작곡되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바로 양주동 시 <산길>이다.
다른 조선족시인들은 몰라도 <시인대학>의 조선족시인들은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알아두면 자신이 좋을 것이다.
●양주동 시-산길
산길
무애(无涯) 양주동
산길을 간다
말 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해는져서 새 소리
새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그윽히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 없이
밤에 홀로 산길을
홀로 산길을 간다
고요한 밤
어두운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고요한 밤 어둔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별 안 보이는 어두운 수풀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멀다
<감상> -무에 양주동은 스스로 국보라 칭하며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3才라 부를 정도로 조선민족의 귀재였으며 국문학자, 영문학자, 시인이었다. 일제식민지 치하 암흑기를 살았던 우리 민족의 어두운 밤, 산길의 하늘에는 별도 안 보이는 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역사를 시에서도 배울 일이다. 이 시는 박태준 작곡으로 가곡으로도 널리 불려지고 있다. (글:서지월시인)
이처럼 조금도 손색없이 읽힌, 흑룡강성 해림시에 살고있는 설병화시인의 시 '산길을 간다'이다.
"조선어를 가장 압축된 언어로 정교하면서 운율을 잘 살려낸 조선족 서정시인"으로 남으리리.
(글:한국 서지월시인)
첫댓글 좋은 시 즐감하며 쉬어갑니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