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름돌
최옥수
엄마는 김치 항아리에
묵직한 돌을 꾹 눌러 놓으셨다
둥글 넓적 엄마 얼굴 닮은 돌
고춧가루 소금물에 잠긴 채
겨우 내 항아리에 어둠을 누르고 있었다
항아리 속 한 겹 또 한 겹
오이지 등도 타고 눌러 앉아
간간해져라 짭조름해져라
주문을 외웠을 것이다
오이지 쭉 쭉 찢어
물 만 밥에 얹어 주시면
삼복더위도 저민큼 물러나던
시큼 새큼 맛난 오남매 밥숟가락
이제는 엄마냄새 큼큼 풍기며
마당 한구석 쓸쓸히 누워있는 누름돌
엄마 떠난 내 가슴 묵직이 누르고 있다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횡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였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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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 원고방
최옥수(누름돌, 옛날의 그집)
섬섬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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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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