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어 플레이 Fair play 란???
규칙상 정정당당한 경기정신에 입각하여 경기하는 것.
[체육사회학] 페어 플레이는 영국적인 관념이며, 교육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던 용어이다. 즉 16세기에 영국의 상류 계급 사이에서 유행되던 사교로서의 스포츠 매너에서 유래한 말인데, 뒷날 19세기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에서 성격형성의 수단으로서 스포츠가 강조되자 페어 플레이 정신이 강조되었으며, 이 개념이 점차 외국에도 보급되었다. 오늘날에는 사람에 따라 다소 내용이 다르지만 페어 플레이의 의미는 스포츠맨십, 스포츠 정신, 신사도, 기사도 정신 등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①성문화된 룰을 엄수하는 것, ②진실과 성실의 정신(spirit of truth and honesty)을 바탕으로 한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는 의미가 페어 플레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②는 일상적으로는 '공정한 행동', '정정당당한 싸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 등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어떤 경우든 페어플레이에 관하여 언급되는 것은 스포츠에 있어서의 '규범'의 문제에 관련해서이다. 예를 들면 아마추어 규정이나 경기규칙 등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그리고 어떤 권위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규제되는 룰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페어 플레이는 그들 룰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며, 또한 보다 내면적인 도덕적•윤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경험적으로는 이상과 같이 스포츠 규범의 한 유형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페어 플레이의 개념은 역시 불명확하며, 또한 추상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러 가지 행동에 관하여 그 구체적인 범주를 규정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일반 규범에서 볼 수 있듯이 페어 플레이가 의미하는 바 개개의 구체적인 행동과의 관련은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언뜻 생각해서 명백하게 느껴지는 페어 플레이나 스포츠 규범도 논리적으로는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거기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원리와 경쟁적 행동의 원리라는 서로 모순된 대립의 원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페어 플레이를 비롯하여 스포츠 규범에의 동조(同詞)는 절대적으로 보증된 것은 아니고, 현실과의 대응에 있어서 항상 일탈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소위 업적을 중시한다는 특색을 가지며, 스포츠 규범도 그러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 이상, 거기에는 일탈의 가능성이 이미 존재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스포츠가 정치적•이념적•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여, 혹은 선수들이 '승리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고 하여 그 일탈적 경향을 개탄하는 사람들은 페어 플레이의 옹호•부흥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규범이 이미 일탈에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선 어떤 역사적•사회적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일탈이 생겼는가, 어떤 기준에 의하여 그 행동이 일탈이라고 판단되었는가, 혹은 반대로 왜 적극적인 동조가 이루어졌는가 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 스포츠맨십, 스포츠 규범.
2. 페어 플레이의 의미
축구 경기에서 경기 시작 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페어플레이란 기(旗)가 있다. 규정을 준수하고 스포츠맨십에 입각해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는 태도를 뜻하는 페어플레이는 스포츠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요즘 경기도 스포츠계는 말 그대로 혼란스럽다. 그동안 4년간 회장을 맡아온 종목별 가맹경기단체 수장들이 최근 불어닥친 경제한파로 대거 자리를 내놓았고, 이 틈을 타 일부 종목에선 개인의 이익에 부합되는 새로운 회장 영입을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특히 집행부의 실세인 가맹경기단체 전무이사는 향후 4년간 협회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노릴 만한 자리다. 가맹경기단체 전무이사는 회장의 신임을 받아 협회 살림을 도맡아하며 전국체전·소년체전 도대표 선발전 및 강화 훈련, 그리고 도체육회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누가 어느 회장을 영입하느냐에 따라 실세의 판도가 바뀌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신이 내세운 회장이 경선에서 떨어지거나 당선되지 않으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총회 자체를 무산시키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이 총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대의원총회의 대의원 자격 시비다. 자격없는 대의원이 투표권을 행사했다며 총회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협회를 뒤흔든다.
또 총회의 적법성 여부도 논란거리로 등장한다. 총회 시기나 결정이 규정에 맞지 않거나 회장의 직인이 도용됐다는 등 다양한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모 단체의 경우 이번 대의원총회에서 경선을 통해 A후보가 회장에 선임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의원 자격 시비를 물고 늘어지며, 도체육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과연 이런 가맹경기단체에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고 있는 회장이나 전무이사, 대의원들이 앞으로 4년간 집행부를 맡게 된다면 제대로 된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을지. '항상 피해자는 선수들'이라며 외치고 있는 이들이 과연 페어플레이 정신을 알고 실천할지 모든게 의문이다.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때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에게 져 은메달에 그쳤던 루드비히 파이셔(오스트리아)의 멋진 장면은 지금도 우리의 뇌리에 남아있다. 당시 파이셔는 결승에서 한판패를 당하고도 최민호에게 손을 건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이런 것이 바로 진정한 페어플레이 정신이 아닐까 싶다.
경기도 스포츠계도 이제는 자성해야 한다.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더이상 망가져서는 안된다. 페어플레이 정신이나 스포츠맨십 입장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주위를 둘러본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또 유소년 시기부터 승부에 집착하는 '승리하면 그만'이라고 지도하기보다는 '얼마나 룰을 지키며 열심히 했는가'를 지적하며 페어플레이 정신을 일깨워주자. 물론 진정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선수들에게 주문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3. 유래 :
16세기에 영국의 상류 계급 사이에서 유행되던 사교로서의 스포츠 매너에서 유래한 말인데, 뒷날 19세기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에서 성격형성의 수단으로서 스포츠가 강조되자 페어 플레이 정신이 강조되었으며, 이 개념이 점차 외국에도 보급되었다.
공정하게
1932 로스엔젤레스에서 주디 기네스는 펜싱 금메달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엘렌 프라이스를 상대한 결승전에서 놀라운 페어 플레이 정신을 보여줬죠. 자신이 앞서가던 상황에서 심판들에게 프라이스가 성공한 두 번의 공격이 채점되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점이 인정되며 기네스는 결승전에서 패하고 프라이스가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4년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이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상징적인 페어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는 멀리뛰기 예선 중 첫 두 번의 시도에서 모두 파울을 범해 실격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언스와 금메달을 놓고 경쟁하던 독일의 루츠 롱이 오언스에게 도움닫기를 좀 더 일찍 해서 거리를 넉넉히 두라는 조언을 해줬죠. 그 조언에 따른 오언스는 예선을 통과했고 결국 금메달을 따게 됩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뛰어 넘은 두 사람의 우정은 롱이 2차세계대전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Jesse Owens at long jump, Berlin 1936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일본의 야마시타 야스히로는 유도 +95kg급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오른쪽 종아리의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도 통증을 참으며 결승까지 올라간 야스히로는 결승전에서 이집트의 모하메드 알리 라시완과 맞붙었는데요, 놀랍게도 부상을 입은 야스히로가 결승전에서 이기며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공개된 이 결승전의 뒷이야기에 따르면 부상당한 다리에 대한 공격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한 라시완이 일부러 그쪽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말 멋지네요!
함께 나누는 영광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장대높이뛰기에서는 보기 드문 상황이 나왔습니다. 일본의 니시다 슈헤이와 오에 슈에오 두 명이 똑 같은 4.25m를 뛰어넘어 공동 2위를 기록했죠. 결국 성공한 시도가 더 많았던 니시다 슈헤이가 은메달, 오에 슈에오가 동메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게 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친한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은 받은 메달을 반으로 잘라서 합쳐놓은 특별한 은-동메달을 만들었고, 나중에 이 메달은 ‘영원한 우정의 메달’로 불리게 됩니다.
오에와 니시다 - "우정의 메달" 뒷 이야기
방법은 다르지만 숀 크로퍼드도 베이징 2008에서 받은 은메달을 나눴습니다. 미국의 스프린터인 크로퍼드는 200m 결승전에서 4위를 기록했지만 2위를 기록했던 츄란디 마르티나가 레인 이탈로 실격된데 이어 3위 선수도 실격되는 바람에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몇 주 후 크로퍼드는 순수한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은메달을 마르티나에게 우편으로 보냈죠. 이런 쪽지와 함께: “이게 그 순간을 대체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이걸 받아줬으면 해요. 제 생각에는 당신이 받는게 맞으니까.”
포기는 없다
다음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나왔던 상징적인 순간들 중 하나입니다. 400m 결승전에서 경기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데릭 레드몬드는 눈물을 흘리며 트랙에 멈춰서야 했죠. 관중석에서 좌절한 아들을 본 레드몬드의 아버지는 달려들어와 아들을 부축했고, 두 사람은 결승선까지 함께 걸어갔습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지금까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Play
Duration Time6:51
데렉 레드몬드의 감동적인 레이스 | 바르셀로나 1992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도 1968 올림픽 마라톤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경기 도중 넘어져서 무릎을 심하게 다쳤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다른 주자들보다 20분이 늦었지만 고통을 참으며 완주를 해냈죠. 기자가 왜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은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5000마일이 넘게 떨어진 이곳까지 저를 보낸 이유는 출발이 아닌 완주를 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아크와리, 부상 안은 채 믿기 힘든 마라톤 완주
서로를 도와
때로는 아주 작은 디테일이 선수의 올림픽 전체를 망칠 수 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50m 자유형 준결승을 준비하던 스웨덴의 수영 선수, 테레세 알스함마르가 바로 이런 경우를 경험했는데요, 운나쁘게도 경기 시작을 앞두고 수영복이 찢어지는 사고가 겪은 겁니다. 같은 종목에 출전하는 다라 토레스(금메달 후보)의 도움에도 수영복을 고칠 수 없었지만, 토레스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경기 관계자들을 설득해 시작 시간을 늦추고 알스함마르가 새로운 수영복을 입을 기회를 줬습니다. 그리고 알스함마르는 준결승에 참가할 수 있었죠.
리우 2016의 육상 5000m 경주에서는 안타깝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뉴질랜드의 니키 햄블린이 미국의 애비 디아고스티노와 충돌했고 디아고스티노가 넘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사고 직후에 자주 볼 수 없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햄블린은 경주를 멈추고 디아고스티노가 일어나도록 도왔고, 함께 결승선까지 뛰었죠. 그리고 디아고스티노는 전방십자인대와 반월판 파열의 부상을 입었지만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정신이 지배한 리우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요트 49er급에서 덴마크 팀(요나스 워러와 마틴 키르케테르프)은 크로아티아 팀(파블 코스토프와 페타르 쿠파치)의 도움으로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습니다. 파이널 레이스 시작 직전에 덴마크 팀 요트의 마스트가 부러졌고, 이미 탈락한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재빨리 자신들의 요트를 준비해 덴마크 팀에게 빌려줬기 때문이었죠. 덴마크 팀은 다른 팀들보다 4분 늦게 레이스를 시작했지만 결국 7위로 파이널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고, 이는 총점으로 금메달을 확정하기에 충분한 순위였습니다.
요트 종목에서 이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이야기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나온 캐나다의 로렌스 르미유 이야기입니다. 르미유는 핀급에서 치르는 총 7번의 레이스 중 5번째 레이스에서 2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싱가포르 팀이 물에 빠져서 위험한 상황을 목격하고 코스를 이탈해 두 사람을 구조했습니다. 르미유는 그 레이스에서 최하위를 기록했고, 전체 11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