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26
- 기업규제 3법·중대재해법
- '유한책인(有限責任)' '사업판단준칙(事業判斷準則)'이란 주식회사制 두 기둥 무너뜨려
- 내년 대선 앞두고 표(票) 계산(計算) 넘어 대안(對案) 내놓는 정치세력 나오길
'진보의 시대'를 이끌고 193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미국의 사상가 니컬러스 버틀러는 주식회사가 "현대에 가장 위대한 단 하나의 발견(the greatest single discovery of modern times)"이라며, 산업혁명의 총아로 얘기되는 스팀엔진이나 전기 등의 기술적 성취도 주식회사 없이는 "상대적 발기부전(comparative impotence)"에 빠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자는 작년 출간한 '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가상의 AI기업이 다국적기업을 넘어 다행성기업으로 발전하는 스토리를 엮으면서 "우주를 개척하다가 외계인을 만나 회사를 함께 설립하게 되면 외계인도 주식회사 제도의 장점을 단번에 이해하고 법인을 만들자고 할 것"이라며 "법인을 통한 주식회사제도는 전 우주가 받아들이게 될 인류의 독창적 발명품이 될 것"이라고 기술한 바 있다.
주식회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혁명적인가? 주식회사제도를 떠받치는 두 가지 기둥은 '유한책임'과 '사업판단준칙'이다. 사업 관련 자산을 모두 법인에 넘기고 창업자들은 법인이 발행한 주식을 갖게 되면서 주식 보유분에 대해서만 유한 책임을 지게 된다. 회사가 잘못되더라도 보유 주식만 날리고 다른 개인 재산은 지킬 수 있으니까 창업에 적극 나설 수 있다. 한편 사업 관련 자산을 소유하게 된 법인은 자연인과 달리 영속(永續)할 수 있으니까, 금융사로부터 장기자금을 공급받고 세대를 뛰어넘는 장기투자를 해나갈 수 있다.
법인의 영속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시장경쟁을 이겨내야만 실현된다. 이 책무를 지는 사람이 경영자이고 이를 지원해주는 것이 '사업판단준칙(business judgement rule)'이다. 경영자가 사익을 추구하다가 회사가 잘못되는 경우가 아니면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혁신을 하려면 그러지 않아도 뚫고 나가야 할 불확실성이 많은데, 최소한 법적 책임에 따르는 위험 부담은 줄여줘 창조력을 적극 발휘토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인류의 획기적 생산력 증대는 투자와 혁신을 영원히 지속하는 주식회사라는 '괴물'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지금 유한책임과 사업판단준칙이라는 두 기둥을 동시에 무너뜨리고 있다. '기업규제 3법'에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대주주에게 형사책임을 지우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과거에도 회사가 잘못될 경우 정부가 대주주에게 사재 출연을 강요해 유한책임 원칙을 흔든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법에서 유한책임을 아예 부정한다. 시행령 확정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법은 사업판단준칙을 정면 부정한다. 경영자의 실수에 대해 법적 처벌하지 않는 선을 훨씬 넘어 일반 범죄자보다도 가중해서 형사처벌한다.
이런 상황은 외국기업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2021 투자환경 보고서'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계 최고경영자들은 안전·노사·직장 내 괴롭힘 등 현안까지 일일이 챙기지 않으면 법정행(行)도 각오해야 한다"며 이 환경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뼈아프다. 전체 법률의 80%가 의원입법 형태로 법안의 영향평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통과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지 않고 정치적 혹은 당파적 목적에 의해 법안을 마구 쏟아내는 것은 입법 테러라고 할 수밖에 없다. 테러 당하는 당사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떨게 된다. 적극적으로 나서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인류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유산을 이렇게 훼손하고 나면 그 부담은 누가 질 것인가? 내년 대선을 놓고 정치의 계절이 더 깊어가지만 표 계산을 넘어 근본적 고민을 하고 대안을 내놓는 정치세력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신장섭 /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