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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제19대 숙종(이순)의 여자들 ㅡ
<김지미, 한 때 장희빈역도 했다.>
왕후!
아, 고지가 바로 앞이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인현왕후는 나보다 여덟 살 아래다.
좀 불쌍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냐?
나의 목표는 왕비가 되는 것이고,
그녀는 나의 길에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난 이번에 확실히 인현왕후를 제거하기로 독하게 맘을 먹었다.
먼저 숙종을 나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나의 기술로...
'소녀경'도 열심히 읽고 '방×술'도 익혔다.(이곳에는 미성년자도 있고 학생도 있으니 부언 설명은 생략한다)
숙종은 일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오로지 나에게만 탐익했다.
숙종, 정말 정신 넋빠졌다.^^
나는 두 번씩이나 궁에서 추방을 통하여 많은 경험과 지혜를 얻었다.
그중에 하나는 숙종의 절대 실세가 되어 나의 목표, 즉 인현왕후를 퇴출시키고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실수가 없도록 확실하게 숙종을 내맘대로 휘둘러야 했다.
실세!
실세가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야 한다.
2. 무슨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3. 오너가 그 말 중에 대부분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결정권자와 가깝게 있어야 하고,
모든 비밀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최모시기를 보면서 나름대로 도출한 실세의 정의다. ㅠㅠ
1688년(숙종14)...
내 나이 30세가 되었고 숙종은 28세가 되었다.
나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왜냐하면 내가 왕자를 낳았기 때문이다.
숙종이 얼마나 기뻤겠는가?
난 내 아들 왕자를 이용하여 인현왕후를 퇴출시키고 드디어 왕비에 올랐다.
드디어 나의 소원을 이룬 것이다.
"The dream has come true!"
현재 완료형이다.^^
내 아들?
그 긴 기간에 아들을 생산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왕자를 생산하게 되었는가?하고 리크라테스가 의혹의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왜냐하면?
.
.
.
나도 내 성격이 포악하고 숙종도 한 성깔 하는데 어떻게 이 둘 사이에서 난 왕자는 그렇게 온순하고 착했냐는 것이다.
? ? ?
리크라테스는 내 아들 경종을 보면서 머리가 갸우뚱했다고 한다.
"이거 진짜가 맞나?"하고...
판단은 당신들에게 맡기겠다.
내가 두번이나 퇴출 당하면서 얼마나 전략전술을 갈고 닦았겠는가?
리크라테스가 짱구(머리)를 너무 돌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목표, 왕후가 되는 것이었다.
16세부터 29세까지 난 노력했다.
왕자를 낳으려고...
왜냐하면 왕자는 나의 목표를 달성시켜 줄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목표만 달성된다면 그까짓 수단이야 얼마든지 정당화 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기회는 공평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이런 거는 나에게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와 같았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 아닌가?
.
.
.
!^^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
그래서 난 왕자를 생산했다.
나는 죄가 없다.
I'm innocent ! ! !
태어난 지 석달도 안 된 내 아들을 숙종은 원자로 책봉했다.
반대하던 서인의 영수 송시열과 그 일당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것을 '기사환국'이라 부른다.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남인들에게 보은을 했고, 그들도 5년간 잘 먹고 잘 살았다.^^
내가 왕비가 되자
나를 도와준 오빠 장희제는 *총융청의 총융사가 되었다. 지금으로 하면 수도방위 사령관이다.
오빠도 실세가 되었다.
수많은 파리들이 모여들었다.
뭐 싸들고...
* 총융청(摠戎廳)은 1624년(인조 2년)에 만들어진 조선의 5군영 중 하나이다. 도성 외곽의 방비를 위해 설치되었으나 수어청이 설치되면서 도성 북부의 방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여러 번 인원의 감축과 통폐합을 겪었다. 1846년(헌종 12년) 총위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849년 다시 총융청으로 되돌려지고, 1884년(고종 21년)에 결국 폐지되었다.
그리고
엄니의 애인 조사석도 이조판서를 시켰다.
그러나 좀 아쉬운 것은 울 엄니를 부부인이 됐는데 우습게 보다가 짤려 강원도 고성으로 귀양 가서 죽었다. 그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장렬왕후 조대비와 한 집안인 그의 도움이 컸다.
그리고...
폐비가 된 인현왕후를 완전히 제거해야 했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시행했어야 했는데 무당의 푸닥거리를 주로 이용했다.
미신을 너무 믿은 것이다.
인현왕후를 제거하지 못했다!
안국동 감고당에 있는 네 마리 개 때문에...
항간에는 이런 노래가 불리워졌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일세
철을 잊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닐으니
제철가면 어이놀까🎶🎵
제철가면 어이놀까🎶🎵
미나리는 민씨 인현왕후..
장다리는 나 장옥정이고..
호랑나비는 숙종이다.
열받아서 오빠 장희제에게 노래를 지은 작가를 찾아 없애라고 했다.
부작용만 생기고 나의 인기는 더욱 추락했다.
나의 앙탈이 점점 심해지자
숙종이 변심을 했다.
나를 내친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더 조급해졌고 인현왕후가 죽으라고 더 무당굿을 했다.
인현왕후의 화상을 그려놓고 화살을 쏘았고, 엄니 윤씨가 가져온 인현왕후 인형을 찌르면 피가 나오는 짓, 소위 퍼퍼몬스도 했다.
그러다가 숙종한테 용코로 걸려 굿판이 개판이 되었다.
이런 일이 난 후부터는 숙종이 나를 아예 찾지 않기 시작했다.
진짜 열받았다.
남자가 여자를 찾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여자를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누군가?
나는 조선 최고의 미녀 장.옥.정.이다.
花無十日紅 權不十年
화무십일홍(열흘 피는 꽃 없고)이요
권불십년(십년 가는 권력 없다)이다.
난 그것을 몰랐다.
나의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이고
나의 권세도 오래 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고작 5년으로 나의 시대는 끝났다.(요새 정치하는 사람들은 명심해야 될 것인데 아이큐가 두 자리밖에 안 되어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에99!^^)
숙종에게 또다른 여자가 생겼다.
최무수리다.
제 21대 영조의 애미다.
원래 인현왕후 빨래담당 하녀였다.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나보다 나은 여자하고 그러면 좀 위안이 될 텐데
절세미녀인 나를 두고 빨래하는 무수리년이라니...
자존심이 엉망이 되었다.
내 기분이 어떤지 이쁜 여자들은 잘 알 것이다.
이런 된장고추장 같으니라고...^^
그래서 애를 밴 최무수리를 뜨거운 인두로 거시기를 지지고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그것이 숙종의 씨가 아니라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리크라테스가 너무 영민한 게 자꾸 맘에 걸린다. ㅠㅠ
드디어 1694년(숙종 20년),
나는 숙종과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넜다.
그리고 숙종은 내 오라버니 장희제을 하옥시키고, 남인 민암 등을 귀양보내고 서인들을 재등장시켰다.
이것을 갑술옥사 또는 '갑술환국'이라고 한다.
제정신이 돌아온 숙종!
나를 중전에서 희빈으로 강등시키고 취선당으로 내쳤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복귀시켰다.
진짜 열받았다.
인현왕후가 죽으라고 더 열심히 굿을 하고,
결국 인현왕후가 좋아하는 게장에다 꿀을 타게 해서 먹였다.
그리고 그녀를 죽였다.
쥐도새도 모르게 했지만 발각이 되었고 오라버니와 남인들이 다시 재기의 역모를 하다가 발각되었다.
그리고
나의 나이 43세가 되는 1701년
(숙종 27년)...
인경왕후를 질시 모함하고,
인현왕후에게 못되게 굴고,
인현왕후에게 게장에 꿀을 타서 독살 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남편 숙종으로부터 보약이 아닌 사약을 받았다.
이것만 보면 참 나쁜 여자였다.
당신들도 나 장희빈을 악녀로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난 목표의식이 뚜렷한 여자였다.
목표는 방향이다.
밤하늘에 북극성이 없다면 나침반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방향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나의 꿈과 목표, 북극성은 왕비였다.
그래서 미천한 신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다른 것은 차지하고라도
당신들은 나의 목표의식 만큼은 잘 평가해주길 바란다.
내가 비록 적당하고 적절하지 못한 수단을 사용했을지라도...
난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이 나를 배신(?)한 숙종과 원수인 인현왕후에게 젯밥 올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들 경종을 고자로 만들었다.
소심한 복수였다. <수감록>
이것이 나 장옥정의 삶이었다.
난 살면서도 마음의 평화가 없었다.
그놈의 집요한 목표의식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그대들은 툭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외치면서도 나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좀 과격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내 처지도 혜량해 주기를 바란다.
귀신인 나도 속얘기를 다 털어놓으니 홀가분해졌다.
내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리크라테스가 자주 쓰는 말이다.
지분ᆞ수분ᆞ안분이다!
(知分ᆞ守分ᆞ安分)
지 분수를 알고..
지 분수를 지키면..
지 분수가 안전하다!
다음 인원왕후에게 바톤을 님긴다.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
조선최고의 미인 장희빈으로부터...
*
지금까지 장희빈의 辨(변)을 들었다.
그대는 어떤 느낌을 받았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장희빈은 희대의 악녀였다.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장희빈 관련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장희빈도 불쌍한 여자였다.
욕망의 희생양!
욕망이라는 전차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욕심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모든 것은 인과응보요, 사필귀정이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
선한 業(업)을 쌓을 일이다!
장옥정의 길고 긴 변명을 들어봤다.
우리는 장옥정을 욕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장옥정이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느냐 이다.
목표를 크게 가지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그리고
과유불급을 깨달아야 한다.
너무 지나침은 차라리 부족함만 못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남에게 못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길!
우리 인간이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道(도)라고 한다.
짐승의 길에는 道(도)를 붙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무쪼록
우리 인간의 길을 따라가자!
차도는 위험하니...^^♡
리크라테스 배.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