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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먹어도 될까? 전에 먹었던 차는 쓰고 맛도 없었는데.. ‘
한참동안 눈앞에 있는 차를 보며 고민을 하던 강운이 결심을 한 듯이
차를 홀짝 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와! 이 차는 맛있네? 전에 먹었던 차들은 다 맛 없었는데.. “
단숨에 차 한 잔을 비워버린 강운은 추남의 차를 몰래 마신 다음 눈치
를 봐가며 화린의 차 까지 순식간에 마셔버렸다.
“히히.. 배부르다. “
뒤늦게 사실을 알아차린 추남과 화린이 비어있는 찻잔과 빈 그릇을
보며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내꺼 까지 먹으면 어떻게 해? 어? 화린이꺼 까지 다 먹어버렸
네? 휴.. 누가 널 말리겠니.. “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으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추남을 뒤로한
채 강운은 노인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여기 뒷간 어디야? “
“아.. 공자님! 객점 밖으로 나가셔서 우측으로 조금 가시면 나옵니다.
음식 재료도 거의 다 다듬어 놨으니 금방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고개를 끄덕거린 강운은 객점 밖으로 나와 노인이 말한 대로 우측으로
조금 돌아가 보자 뒷간이 나왔다.
“후우.. 시원하다. 차를 너무 많이 마셨나? 어쨌든 빨리 돌아가야 겠
다. 추남 형이 음식 나오는 거 다 먹으면 안 되니까. “
강운이 객점 가까이 다가왔을 때 강운 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소녀
한명이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낑낑 거리며 객점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강운은 무슨 일인가 하여 멀뚱거리며 쳐다보다가 소녀가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처럼 보이자 얼른 달려가 소녀를 부축해 주면서 짐을 받아
들었다.
“이봐? 괜찮아? “
소녀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부축해 주자 깜짝 놀라 강운에게
서 몸을 멀리 떨어트린 후에 고개를 숙여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객점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럼 같이 들어가자. 나도 어차피 들어
가야 하니까. “
강운은 소녀가 힘겹게 머리에 이고 있던 짐을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
는다는 듯이 가볍게 한손으로 들고는 객점 안으로 들어갔고 소녀도 의
아한 눈빛으로 강운의 뒤를 따랐다.
객점 안으로 들어온 강운은 짐을 적당한 곳에다가 내려놓고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운아 왜 이렇게 늦었니? 난 또 뒷간에 빠졌는 줄 알았지.. 하하하! “
“치! 뭐가 늦었다고. “
강운은 추남의 말을 듣고는 입을 불퉁 내밀고 객점 입구를 바라봤다.
얼마 후 소녀가 객점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은 했었지만 낮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는 안색이 변했다.
소녀는 서둘러 노인이 앓아 누워 있던 방으로 뛰어가 방문을 활짝 열
어 젖혔지만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길한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던 소녀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목이 메여 울음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소녀는 몸을 파르
르 떨면서 눈물만 흘렸다.
노인은 마침 음식을 만들어 강운 일행에게 갖다 주다가 방문 앞에 주
저 앉아 흐녀껴 울고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는 음식을 내려놓고는
소녀에게 뛰어갔다.
“연아야! 무슨 일로 그렇게 울고 있는 게냐? “
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줄만 알고 있었던 소녀는 갑자기 들려오
는 노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는 고개를 홱 돌렸다.
소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어느 때 보다 건강해 보이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소녀는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 보였지만 입만 뻥긋 거릴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노인의 품에 안겼다.
한참동안 그들은 그렇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추남과 화린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지만 강운은 평소의 밝은 표정이 아닌
약간은 어두운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노인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된 소녀는 강운 일행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다가와 모두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말하고 싶다는 표정이 가득했으나 얼굴표정만 봐도 고맙다고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강운은 소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얼굴 표정이 더욱 더 어두워져만
갔다.
“할아버지.. 이 아이 말을 못하나요? “
강운이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물어보자 노인은 얼굴 표정을 굳히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예..공자님. 이 아이는 소인의 손녀딸인데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모
두 여의고 소인이 지금까지 키웠습니다. 어렸을 적 크게 앓은 적이
있었는데 소인이 능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치료를 해주지 못해..
말을 못하게 됐습니다. “
말을 하는 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소녀는 그런 노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으며 노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강운은 자신이 능력만 된다면 소녀를 치료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강운이라 해도 이미 발성 기관이 크게 손상되어 있는 소녀를 치료해
주기에는 너무 때가 늦어 있었다.
-할아버지.. 저는 괜찮아요. 할아버지 괴로워하지 마세요. 저는 한번
도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강운은 소녀가 말을 못하고 마음으로 노인에게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저 아이가 그러는데 자기는 지금껏 한 번도 원망해 본적이
없다고 너무 괴로워 하지 말래요. “
추남과 화린은 소녀를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가 강운이 또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어 쳐다봤고 노인도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강운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강운을 쳐다볼 때 소녀는 강운을 흠칫 놀
란 눈빛으로 쳐다봤다.
-제가.. 하는 얘기가 들리는 거에요?
혹시하는 마음으로 소녀는 강운에게 말을 걸어봤다.
-어! 잘 들려. 또 무슨 할 말 있는 거야?
소녀는 설마 했는데 강운이 진짜로 자신의 말을 알아 듣자 놀랍다는
눈빛과 함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떻게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죠?
-그거야.. 흠.. 그냥 들려. 너의 마음이 순수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소녀는 강운과 마음으로 얘기를 하던 중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소녀는 비록 못 먹어서 그런지 몸이 비쩍 마르고 옷도 거의 누더기에
가까울 정도로 볼품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눈 만큼은 강운과
비교될 정도로 매우 순수하고 맑아 보였다.
화린이 완벽한 미를 추구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소녀는 청초하면서
도 누구나 그녀를 보면 보호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가녀린
모습이었다.
“근데 왜 다들 서 있는 거야? 음식 다 식겠다. 빨랑 앉아서 먹자.
할아버지하구 너두 여기 앉아서.. 아! 맞다.. 아직 서로 소개도 안
했잖아? 난 강운이야. “
강운이 말을 하면서 자리에 철푸덕 앉아버리자 노인과 소녀도 주춤거
리며 자리에 앉았다.
“저는 장추남이라고 합니다. “
“소녀는 진화린이라고 합니다. “
강운 일행이 소개를 하자 노인은 어찌해야할 지를 모르다가 조심스럽
게 입을 열었다.
“소인은 채삼보 라고 합지요.. 그리고 소인의 손녀는 채수연 이라고
합니다. “
-수연이라고? 와.. 이름 이쁘네..
-감, 감사해요..
채수연은 얼굴이 홍당무 처럼 붉어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고 채삼보는
갑자기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손녀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수연아? 갑자기 안색이 좋아보이지가 않는 구나.. 무슨 걱정거리라
도 있는 게냐? “
고개를 숙였던 채수연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젖다가 강운과
다시 눈이 마주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채삼보는 손녀의 그런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알았다는 듯이 미소
를 지었다.
‘녀석.. 지금까지 자기 또래의 아이들과는 놀아 보지 못해서 그런가?
하긴..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그 모진 수모와 고통을 견뎌내야 했으니.
하지만 연아가 강공자에게 마음을 먹고 있다면 돌려놔야만 해..
연아가 상처 받는 모습을 볼 수 없구나.. 강공자는 우리들 같은 사람
들 하고는 다르신 분이다… ‘
채삼보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안타깝다는 듯이 채수연을 바라보다가
강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강공자님.. 음식이 다 식겠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저는 가서 몇 가지
음식을 더 만들어 오도록 하겠습니다. 연아야.. 너두 여기서 같이
강공자님의 일행분들과 있거라. 내 곧 다른 음식을 만들어 오마. “
“아니.. 괜찮은데.. “
채삼보는 강운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
을 만들기 시작했고 채수연도 뒤를 따라 가려고 했다.
강운은 채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손을 붙잡고는 그 앞에
음식을 갖다 놓아 주었다.
-수연아.. 할아버지 말대로 그냥 있어.
-아니.. 전 괜찮은데..
채수연은 강운과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
투명하면서도 맑아 보이는 눈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저분.. 눈이 참 맑으시구나.. 나 같이 미천한 것이 저런 분께 이런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되는데.. 정신 차리자.. ‘
채수연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는 자신 앞에 놓여있는 음식을 조금 씩
먹기 시작했고 강운은 그로부터 한참 동안이나 채수연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 눈이랑 닮았어.. 정말.. ‘
추남은 지금껏 강운이 누구에게 음식을 먼저 권한 적이 없었던 터라
오늘따라 안하던 짓을 하는 강운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얼마 후 채삼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 스러운 음식들을
잔뜩 들고 나오자 강운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정신없이 입에
쑤셔 넣느라 정신이 없었고 추남과 화린은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순식간에 비워지는 접시들을 보며 채삼보는 경악한 표정이 되었고
추남도 위기의식을 느꼈던지 강운만은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입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강운과 추남이 식탁에 차려져 있던 음식들을 다 먹어 버리
자 채삼보는 웃으면서 부지런히 몇 번을 더 왔다갔다 거리며 음식을
날랐다.
“후~! 배부르다. “
강운이 불뚝하게 튀어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며 기분좋은 듯 미소를 짓
자 옆에서 추남이 인상이 일그러뜨렸다.
“운이 너가 사람인지 의심스럽구나.. 괜히 너 따라서 먹다가 배터져
죽는 줄 알았다.. 으휴.. “
“그러기에 누가 따라하래? 아무나 따라하면 다친다고! “
“에휴.. 말이나 못하면.. “
말을 하던 추남이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는 채수연을 보고는 얼른 입
을 다물어 버렸다.
다행히 못 들은 모양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추남은 안심이라는 듯
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강운일행이 이곳에 들어섰을 때가 정오 무렵이었으나 객점을 찾아다
니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모양인지 식사를 끝내자 날이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
강운 일행은 그 동안 보름동안이나 제대로 씻지를 못했기에 일찍
방으로 올라가 씻고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는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강운은 보름만에 목욕을 하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창밖으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바라봤다.
‘엄마.. 오늘 엄마랑 똑 같은 눈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만났어. 엄마가
운이 외로울까 봐 하늘나라에서 그 아이 보내준 거지? 그렇지? 그럼 앞
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아이는 내가 꼭 지켜줄게.. 엄마랑 약속할
수 있어. 나 이제 강해졌거든. ‘
강운은 추남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침대에 얼굴을 푹 파묻어
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부터 골아 떨어졌을 강운이었지만 오늘 따라 유난
히 잠이 오지 않은 관계로 계속 뒤치닥거리기만 했다.
추남은 이미 오래 전에 잠이 들어 있었고 강운은 그 후로 한참동안이
나 잠이 오지 않아서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다가 창 밖에 높이 떠오
른 보름달을 보고는 누구의 얼굴을 떠올렸는지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버렸다.
-수연아 자니?
강운은 결국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혹시 모르는 마음에 채수연에게
마음으로 뜻을 전했다.
-아직.. 앗?
채수연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해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마음 속
으로 들려온 강운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듯 했다.
-아.. 미안. 놀라게 했구나. 그냥 잠이 안 오길래.
-괜, 괜찮아요. 그 보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나요?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