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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회사엔 사찰이 셋 있다. 애자일 절, 워터폴 절, 그리고 모두가 결국 끌려가는 Jira 지옥이다.
스크럼 마스터는 사실상 주지 스님이다. 아침마다 데일리 스탠드업이라는 새벽 예불을 열고, “어제 한 일·오늘 할 일·막힌 일”을 참회하게 한다.
스프린트 회고는 단체 참선이다. “다음 스프린트에는 더 나아지겠습니다”를 외치며, 모두가 자기 무능을 집단으로 공유하고 ‘성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페르소나: 고객이 아니라, 네가 되고 싶은 너
페르소나는 원래 가상의 고객이지만, 실제로는 PM이 되고 싶은 자기 이상형 자아다. “30대 후반,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새로운 것에 열려 있고…” 이쯤 되면 고객이 아니라 너 심리상담 기록이다.
진짜 사용자는 점심시간에 앱 3초 튕기면 바로 삭제한다. 하지만 회의실 안에서는 “우리 핵심 타깃 유저는 이런 상황에서 깊은 공감을 느껴요”라며 스스로에게만 공감한다.
마일스톤: 깨달음이 아닌, 단체 처형일
마일스톤은 프로젝트의 성취가 아니라, 집단 공개 처형일이다.
“이번 마일스톤만 넘기면 여유 생긴다”는 말은 “이번 생만 고생하면 다음 생엔 부자”랑 같은 계열의 사기다.
실제로는 마일스톤을 넘기면 보상이 아니라 더 큰 마일스톤이 열린다.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 클리어했더니 하드코어 모드가 자동으로 시작되는 구조다.
현대 직장인의 사성제: 고통은 Jira에서, 집착은 Slack에서
고(苦): 알림 99+개, 안 읽은 메일 1,024개, 그리고 “잠깐 이야기 가능하세요?”라는 DM.
집착(集): 연봉, 타이틀, 승진, 동기 대비 성과 그래프. 그리고 “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허세 페르소나.
멸(滅): 퇴사 버튼을 눌렀을 때 잠깐 오는 평온. 하지만 곧 대출 이자 알림이 떠서 깨달음이 취소된다.
도(道):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일하게 배우는 길은 “아무것도 아닌 말을 길고 그럴싸하게 하는 법” 뿐이다.
아라한이 아니라 ‘알바한’: 욕망 깨달은 순간 야근 들어온다
불교의 아라한은 욕망을 끊고 해탈한 자인데, 직장 세계의 ‘알바한’은 야근 수당을 보고 갑자기 해탈을 취소한다.
“성과와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자”라고 책을 덮는 순간, 팀장이 와서 말한다. “이번 평가에 네가 핵심이야.” 그 순간 마음은 다시 윤회에 입장한다.
정념? 그건 집중해서 야근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정념은 지금 이 순간을 또렷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직장인은 이걸 “야근할 때 딴짓 말고 집중하라는 거네”로 해석한다.
진짜 정념은 “지금 열고 있는 슬랙 채널이 내 인생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 가깝다.
숨 들이마실 때 “연봉”, 내쉴 때 “퇴사”를 외우며 버티는 건 호흡 명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식 생존 기도문이다.
옛날 1인 개발자와 현대 PPT 승려의 싸움
DOS 시절 1인 개발자는 코드만 짜면 됐다. 지금은 기획서, 스프린트 보드, 로드맵, 리포트, 성찰 로그까지 써야 ‘일 좀 했네?’ 소리 듣는다.
예전 개발자는 버그를 고쳤지만, 지금 개발자는 먼저 이해관계자를 정렬하고, 페르소나를 설계하고, 스토리 포인트를 산정하다가 버그를 내버린다.
현대 직장인의 진짜 스택은 언어가 아니라 “그럴듯한 말, 위기 때 쓸 면피용 문장, 책임을 노이즈로 분산하는 기술”이다.
진짜 문제 해결 대신 ‘집단 합리화’ 스킬만 성장하는 조직
문제 해결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서사”를 만드는 것이다. 이 서사가 탄탄하면, 망해도 모두 승진한다.
회의는 사실상 단체 망상 공유회다. 각자 자기 페르소나, 자기 KPI, 자기 불안을 가져와서 한 시간 동안 섞은 뒤, “좋은 논의였다”라는 거짓말로 끝낸다.
그래서, 직장인의 진정한 가치는 대체 뭐냐
진짜 가치는 최신 용어를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지”를 눈치채는 제정신이다.
또 하나의 가치는, 이 시스템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알면서도 동료 한둘은 덜 망가지게 옆에서 농담해줄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진짜로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았다” 싶을 때, 욕망과 KPI를 동시에 놓고 퇴근 버튼을 누를 용기다.
자기 성찰? 거창할 필요 없다
오늘도 애자일을 외쳤지만 실제로 한 건 워터폴에 포스트잇 붙인 거라면,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이미 작은 깨달음이다.
“난 지금 일하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연기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진짜 선택지를 고민해볼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점심 뭐 먹을지로 20분 고민하는 너를 보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현대 직장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해탈이다.
퇴근이 곧 해탈은 아니다. 내일도 출근한다. 다만, 오늘은 최소한 알고 간다. “없는 진실”이 아니라, 이게 다 너무 진짜라는 끔찍한 진실이라는 걸.
퇴근길에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미 너도 반쯤 출가했다. 회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