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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모던 포엠의 2016년 9월호에 서은 제1주기 추모특집으로 땅의 연가외 9편의 시와 함께 실린
엄창섭주간의 문병란에 대한 탐구를 옮겨 실어본다.
시적 변명의 추이(推移)와 따뜻한 서정성
— 문병란 시인의 투사(投射)된 해체와 시적 감응
엄창섭(가톨릭간동대명예교수, 본지 주간)
1. 서정성의 반증과 민족시인의 초상(肖像)
지난 밤 장대비 쏟은 뒤끝이라 푸른 솔숲은 더없이 푸르고 바람의 영혼은 더없이 자유로운데, 만개한 수련의 꽃잎처럽 『모던포엠』의 전형철 발행인을 통해 뜻밖에 날아든 부고(訃告)는 한순간 처연(情然)함에 느꺼운 심사(心事)였다.
조국의 격동기에 갈등과 대립, 그리고 진정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한 [투사된 헤체와 시적 감응-서정성의 반증과 민족 시인의 초상]은, ‘화염병 대신 선혈(鮮血)이 묻어난 현실 참여시를 통해 모순된 시대적 정황과 부당함, 그리고 ‘‘국가의 기강이 뿌리 채 흔들릴 때, 국가의 녹을 받는 공직자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공자의 지적 처럼, 집권층의 부패를 통렬하게 질타하며 특권층의 부조리로 병폐가 극심한 사회의 진정한 혁신을 절규한 특정한 시인이 암 투병으로 그 자신의 삶을 마감한 한스러움은 충격을 넘어 끝내 아연(我然)함으로 다가왔다.
일단 논의의 대상인 문병란(1935년 3월 28일~2015년 9월 25일) 시인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출생으로 1961년에 조선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2년 『현대문학』에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시단에 데뷔하였다. 한 때는『원탁시(圓卓詩)』동인으로 활동하고, 전남 문학상, 요산(樂山)문학상 등의 수상과 개인시집에는『문병란시집』(삼광 출판사,1971), 『정당성』(1973), 『죽순밭에서』(1977), 『땅의 연가』(1981), 『무등산』(1986) 등이 있다.
특히 시집 『정당성』을 출간한 이후 시적 노선이 더욱 분명해졌을 뿐더러 유신독재 정권과 가진 자들의 횡포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시대적 소임이며 존재 이유로 의식하고, 양심적인 시인으로서 홀연히 저항의 길에 투신하였다.
그의 시적 구도와 의미성을 [모던포엠 초대석]에서 심층적 분할 · 통합에 앞서 19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겨울 산촌〉,〈고무신〉,〈 살인자〉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부터 반체제 저항시인으로서 알려지게 된다. 까닭에 민중지향이라는 뚜렷한 시적 목표와 향방의 큰 틀짜기 에 일관성을 지녔기에 그의 시어는 민중의 언어로 변주되었음은 물론, 1970년대 이후의 시집 『죽순 밭에서』, 벼들의 속삭임』 등을 간행하면서 가일층 저항의식을 바탕으로 한 민중문학을 이채롭게 노래하기에 이르렀다.
순천고와 광주제일고 등에서 교사로 재임하며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연유로 해직된 뒤에 1980년 5 · 18광주민주화운동 배후조종자로 지목돼 수배를 당하고 농업협동조합에서 간행된 시집으로 마침내 구속되고 투옥되었다. 석방 후에도 현실의 안주를 거부하고 시로서 저항하였기에 마침내 뉴욕 타임지는 ‘화염병대신 시를 던진 저항시인’으로클로즈업 하였다.
어찌되었건 강직한 성품의 자존감을 지닌 문병란 시인은 군사독재정권에 한 사람의 투사로서 민중과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참여시를 꾸준히 발표하였고, 마침내 민주화운동의 추종자로서 이 땅의 민족문학작가를 대변하며 1981년에 시선집 『땅의 연가』를 묶어내었고, 조국분단의 아픔을 절절하게 읊어낸 그의 대표작으로는 자존과 개아(個我)의 형사(形似)가 보다 명증하여 대중에게 폭넓게 회자(膾炙)되는 〈직녀에게〉가 있다.
한편 반체제의 계열의 이시영 시인은, 문병란 시인의 시어 (poet一diction)에 관해 “별다른 지식 없이도 한번 읽으면 이내 그 뜻을 알 수 있는 평범하고 친숙한 언어이고, 그것은 민중의 생생한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강한 언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독자적인 그의 민중시는 1970년대에 내놓은 시집 『죽순밭에 서』(1977), 시문집 『호롱불의 역사』(1978), 농민시집『벼들의 속삭임』 (1980) 등에 다양하게 수록되었다. 이 중에서도 『죽순밭에서』는 도서출판 한마당에서 간행되었는데, 유신정권은 이 시집이 ‘‘외설스럽고 민족 정신을 부정했으며 일본 국기를 모독했다."는 부당한 이유로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며 판금조처를 취했다.
뒷날인 1988년에 조선대학교의 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민족문학작가회(1990)의 이사와 5.18기념 재단 이사(1996), 그리고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국민운동본부 대표를 역임하였다. 그간에 우연한 연(緣)으로 월간「모던포엠」의 고문을 역임하였고 투병 중의 마지막 공적활동으로는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사장 으로서 지역문화발전에도 기여했다. 아울러 그의 장례가 ‘민족시인 문병란 선생 민주시민장 장례위원회’의 주도로 치러져 유해가 국립 5 ·18 민주묘지에 안장된 것도 고통을 통해 이루어진 눈물겨운 결과이기에 결코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뿐더러, 김준태 시인이 추모의 글에서
‘‘살아서는 민족시인, 하늘에 가서도 영원히 통일시인으로 빛나소서!"의 기원은 더없이 눈물겨워 못내 목이 메일 뿐이다.
한편 평상시 화자(persona)인 그 자신이「작가의 말-민족문학의 나아갈 길에서 반복하여 천명하였듯이 ‘‘민족문학이라면 우선 우리민족 (한민족)이 한국의 역사 속에서 삶을 영위하며 한국어로 한국인의 생활 감정이 담긴 정서로 창작한 문학 작품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댜 .. 생 략 ... 1970년대의 민중문학, 노동자나 농민이나 도시빈민을 인식한 기층민중의 애환과 고난을 표현한 문학과 외세와의 갈등, 임제나 미국과의 문제,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도 있는 새로운 한반도의 분쟁이나 통일운동 남북한 혈연 잇기 동질성 회복의 책무를 띠고 있으며 계급모순의 연장인 지배계급의 횡포, 반공주의에 의한 좌익탄압 압살사건, 권력 장악을 위한 군부독재 그 부산물인 5.18 민중 살상과 항쟁, 지역갈등을 악용한 구정권의 낡은 정치청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데는 민족주의적 리얼리즘이 그 중요한 바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단의 장기화 속에서 남북한의 이질적 문학과 문학은 크게 거리가 생겼습니다. 북의 문학과 남쪽의 문학의 만남. 구미열강 특히 미국을 배경으로 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범람은 민족문학의 노선을 흔들고 있고 독자와의 이해관계 혼란으로 그 새로운 무장이 요구되고 있지요." 라는 그의 신념과 주의주장은 자존감을 지닌 시인이라면 다시금 유념 할 바다.
무엇보다도 자명한 점은 시각을 달리하여 인상 비평적이나 문병란 시인의 ‘시작품의 경향과 시 의식을 새릅게 탐색’하는 의중은, 비록 그 자신이 1980년대 『정당성』’ 『죽순 밭에서』’ 『벼들의 속삭임』 등의 시집이 판금조치를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정의의 붓 끝을 보다 날(刃)푸르게 곧추세워 무등산의 등신대, 또는 파수꾼’ 으로 생존하면서 동일한 시간대와 공간에 몸담았던 어느 시인보다 ‘남도인의 삶을 순수서정성을 살려 존재의 꽃으로 형상화 시킨 꺾임을 거부한 일관성에 관한 애정이다. "동시대에 삶의 치소에 문병란 시인 같은 지극히 정의로운 지사적 어른이 있어 행복하다."는 솔직한 술회(述懷)는 다소 뒤늦은 감이 있으나, 창조적 영혼을 지닌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 폭넓고 깊이 있는 다감함과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역사 앞에 엄숙하던 성찰(省察)의 삶을 반추(反器)하면 꿈인 듯 아득하고 가슴 뭉클한 하나의 감동이다.
그 자신이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있음’ 을 후학들에게 삶의 교시로 일깨우며 지조와 강직함으로 격랑의 세월을 지켜낸 정신적 큰 스승이었다.
어디까지나 예리한 비판정신과 삶의 지혜, 그리고 화합과 통섭(通涉)에 온몸을 던진 의미심장한 삶’ 이었기에 이렇게 살아 숨 쉬는 존재인 오늘의 우리는 소외된 인간관계의 회복에서 기인된 순수서정성에서 발현된 시적 진실이 감미롭게 작동된 의 시편에 수용된 생명외경의 시법에 기인된 탐색작업을 통하여 언젠 가 ‘아 바오 아쿠(A Bao A Qu)' 라는 비록 가상적이나 가장 순수한 영적 동물을 운명적으로 필히 만날 것을 수긍할밖에 없다.
2. 감성의 빛남과 해맑은 꽃의 영혼
또 하나 특기할 바라면 매년 5월 27일, 희생된 사람들의 정신을 계승 하기 위해 광주시 중심가 ‘금남로 부활제’ 가 열리는 금남로 그 현장에서 문병란 시인의 비애감 사이로 초조감이 묻어나는 〈5월이여 다시 부 활하라〉가 낭송되는데, ‘‘민족 모순이란 의미는요?"라는 반문에 “외부 세력에 의해 민족이 분단됐다."라는 그 자신의 답변과 함께 ‘‘외부세력 은 민족통일을 방해하고 있어요. 1980년대 미국은 전두환 정권을 방치 했어요. 광주민주화운동 때 전두환이 군을 움직임 수 있었던 건 미국이 암묵적으로 승인해줬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군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미국은 직간접적으로 여러 의미에서 민족정신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힘을 합해 남북통일을 지원해야 해요. 이를 위해서 3국은 미국을 견제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3국 모두 미국을 꺼리거나 혹은 미국을 추종하고 있죠. 안타까운 일입니다."라는 뜨거운 음성은 인상적일뿐 아니라, 안타깝게도 그렇게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는사실이다.
그 같은 까닭에 ‘‘이별이 너무 길다/슬픔이 너무 길다/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 리,/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 올/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직녀에게)”라는 반문이 제기되는 다소 정감을 절제하며 이별의 통한을 시적으로 형사(形似)하여 지구상 마지막 분단의 참담함을 극적으로 읊어낸 〈직녀에게>는 명실공이 문병란 시인의 절창(絶唱)에 속하는 시편이다.
이처럼 민족의 오랜 전통에 의만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모티브로 연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발아(發牙)시켜 일회적이나 칠월칠석에 운명적으로 재회하는 견우와 직녀에 빗대어 겨레의 모든 반목과 대립을 말끔히 씻어내어야 한다는 통일에 대한 절박함이 묻어나기에, 전체적인 틀에서 그의 시에 대한 진정성에 의한 순수서정성의 깊이를 지닌 탐색은 결코 이탈 (離脫)하거나 배제될 수 없다.
하나의 사족이지만 대중적인 가수 김원중이 “〈직녀에게〉를 통해 문병란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고, 민주화운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역사의식과 통일에 대한 무게를 알게 됐다." 는 그의 소회(pfr懷) 또한 따뜻한 감동을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비교적 참여시와 더불어 삶의 고뇌를 담아내어 대중 의 사랑을 받는 시편들과 대조적으로 그 자신의 시편 중에는 미적주권이 돋보이는 순수서정성 짙은 시편 다수가 있다.
일례로 〈꽃씨〉는 단지 한 알의 작은 씨앗에 가을의 정취가 온통 응축돼 있다. 그 찬란한 무게 를 손바닥으로 감지하려는 속삭임 어쩐지 쓸쓸하다. 하지만 충만하게 마음에 꽉 차오르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어느 가을날 유년시절의 흘려 버린 기억 흔적을 되뇌이게 하여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내 마음 어 느 깊이에서도 고이 여물어가는 빛나는 외로움!' 그 슬픈 그림자는 아아(峨峨)한 정신풍경화의 또렷한 스키마로 대륙의 심장 깊이 간직될 것 이다.
얼음장 밑에서도/고기는 해엄을 치고/눈보라 속에서도/매화는 꽃망울 을 튼다/절망 속에서도/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사막의 고통 속에서 도/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보리는 뿌리를 뻗고/마늘은 빙점에서도/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절망은 희망의 어머니/고통은 희망의 스승/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멀리 반짝이는 별빚을 따라/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인생항로/파도는 높고/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희망가〉에서
한편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대에 현실의 안주를 주저함 없이 거부하고, 역사의 정체성(Identity)과 민족의 정서를 발아(發芬)시킨 인용한 시편 〈희망가〉에서 그 자신이 ‘시적 형상화의 본질을 짚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두근거렸음을 해명하다 끝내 손이나 꽃과 같은 작은 대상에서 민주나 통일과 같은 광활한 대상으로의 확장성을 추구하고 있음’ 은 결코 간과치 말아야 할 바다.
이 점에서 유추되어지듯이 그 자신의 〈손편지 13〉에서 "올해도 계절은 빠르다/ 70세 넘은 뒤로 세 번째 가을/나는 헌 책 사이에 누워/가을 풀벌레처럼 늙어간다/오 외로움이여/ 외로움이여/외로움이여.
冊의 보기처럼 ‘외로움이여’ 의 반복적 기법 에 의해 시각적이고도 여운의 조율이 보다 선명해지듯이, 새삼 ‘감성의 빛남과 해맑은 꽃의 영혼’ 에 관한 심층적인 논의는 삼가더라도, 평자의 조심스런 전제(前提)는 ‘아직은 사유하되 멈추지 말라.' 라는 교시적(敎 示的)인 경계이다. 그 점은 하나 같이 자신에게 허락된 소중한 삶에 있어 숨져간 이들이 질박한 심정으로 “하루만 더 살았으면 ... 하던 그 시간의 끝자락에서 오늘은 내 삶의 최초이며 최후의 날이라."는 그 초조와 응축된 긴장감으로 존엄한 목숨의 의미를 새삼 절감해야 하는 까닭에, 그 자신은 최루탄이 빗발치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도 자연의 이법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생명의 씨앗을 파종하는 농부의 보폭(步幅)으로 느림의 시학’ 으로 부조리와 부당함을 절대적 고독과 ‘외로움’ 앞에서도 오염된 정신세계를 정화시켜주는 맑은 영혼과 담백한 품격을 지닌 당당한 자존감의 시인이기에, 화려한 장식을 거부한 담백한 시격의 발현이야말로 평상심을 유지시켜주는 지순한 선미(禪美)로 성채(城碧)처럼 견고하다.
또 하나 사유(思惟)의 그물망과 시적 감응(感應)에 견주어, ‘‘바람 같은 목마름을 안고/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랑이여/이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여.(호수)”를 통해 문병란 시인의 아바타와 같은 저항시에 견주어 〈호수〉는 'love song' 이지만 감미로운 서정성은, 그 자신이 “그의 시는 향토에 밀착된 우렁차고 뜨거운 가슴의 폭을 지녔으되, 바다를 향해 조용히 흘러가는 산골 개울물의 서늘함 같은 맑은 서정도 지니고 있다."는 시적 평가를 ‘나의 시세계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평이라’ 고 내심 만족하였음은 그의 시적 탐색과정에서 유념할 바다.
차지에 시의 틀을 받쳐주는 문맥에 의 한 변주로 아득히 흘려버린 세월에 대한 회감(會減)을 그 자신이 사유 의 깊이와 적당한 속도를 지탱하며, 즉물적인 질료에 관한 관심사를 시적 의미와 가치로 담아낸 인자(因子)로의 해명은 더없이 유의미하다.
여기서 매혹적인 그의 시적 정조(情調)가 빚어낸 자잘한 질료는 비정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현상에서 인간관계의 지속적인 일깨움으로 자존감 을 회복하는 결과물로 해명되기에,「푸른 꽃」의 노발리스가 ‘‘철학이란 본래 향수요, 어디에서나 고향을 만들려는 하나의 충동이라."고 역설하였듯 인간은 지속적인 정신작업으로 자신의 실존을 명증할 최소한 소임을 수행하여야 한다.
3. 따뜻한 감성과 눈부신 삶의 편린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 즉물적 현상의 응시와 탐색의 과정을 걸쳐 독자적으로 그만의 담백한 시격을 심상(心象)의 깊이에 둥지를 틀어가며 관념의 본질을 끊임없이 규명하는 작업은 유의미하다.
이 땅의 충직한 독자로 하여금 착각이나 갈등, 그리고 몽유(夢遊)에 빠져들게 하는 매혹의 비법은 다소 경이롭다. 여기서 깊은 사유와 고뇌 끝에 그 자신의 시적 기법이 접합된 정신작업의 생산물이 소중한 삶의 잠언으로 기억 되기에, 시적 대상은 가시적이고 실제로 체득한 반짝이는 삶의 편린(片 隣)에 머물지 아니하고, 시적상상력과 가능한 추이(推移)에 의한 보편성을 가늠케 할뿐더러 시적 징조에 긴장감이 풀어져 그렇게 감흥(感興) 할 따름이다.
특히 문병란 시인의 시에 관한 몰이해나 선협적 지식 등의 통합적인 양상과 깊이, 그리고 다양성에서 기인(起因)된 차별화는 이 한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사(關心事)를 불러 모으기에 각별함을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시편에서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위대한 삶의 교시(敎示)가 되는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나는 국어선생이 되었다/.세계에서 제일간다는 한글,/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나는 배고픈 언문선생이 되었다./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윤동주(尹東柱)를 외우며 이육사(李陸史)를 외우 며/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식민지의 국어시간)”라는 시적변명은 영혼에 큰 울림을 주는 서정성이 시의 본말(本末)이듯 불세비키 혁명 당시에 러시아의 망명 성악가인 포도르 살리아핀이 “나의 조국 러시아에 돌아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던 그 절규는 아닐지라도, 세계화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역사성을 상실한 오늘의 우리에게, 만약 누군가 조국의 정체성을 물어온다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最古)의 철학이 담긴 천부경(天符經)을 소유한 국가이며, 세계 최고(最高)의 정치철학과 법률인 홍익인간(弘 益人間) 사상을 가진 나라로 세계의 지도자인 단군(檀君)이 건국한 나라이다. 모름지기 민족의 혼으로 세계적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알파벳 (한글)을 소유한 나라이기에,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선택할 것이다." 이 같은 정황에서 “나는 또 모국어인 한글 때문에 한반도에 다시 또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법정 스님의 유음(遺音)은 그 의미가 새롭다.
까닭에 ‘‘삶의 외로옴 나누는/목마른 어느 길목에서/나는 너의 조그만 미소를 구하여/이리도 간절히 발돋움해 애태운다./오라, 노을 지는 꽃 실 위에/종종 걸음으로 왔다가 스러지는/무수한 발자국 지우며/봄과 함 깨 꽃내음 타고 올/제비꽃 초롱 내 사랑하는 연인아!(꽃가게 앞을 지나 며)”는 따뜻한 정감과 서정성이 물씬 녹아 있는 연가류의 담백한 시격으로 칙칙한 어둠이 말끔 씻겨난 시적 형상화이다. "밤새도록 공허를 마시는 찻잔 속에/거룩한 죽음은 마지막 촛불을 끈다./먼먼 옛날에 물래방아는 멎고/무랑루즈 그 사랑의 노래는/이 저녁 빈 잔에 고이는 쓸쓸한/레퀴엠! 떨리는 G선상의 아리아처럼/식어가는 대지 위에 쌓이는 눈 처럼/그대는 어느 곳에 무릎 꿇고 눈을 감느뇨?(겨울 저녁의 시)”에 서의 시적 정감은 ‘그저 어둡고 쓸쓸한 추운 겨울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고 절감하는 보편적인 연정(戀情)으로 고려 속요의 질감이 전통적 연가의 시흥을 불러내어, 시적 응축미의 떨어짐을 배제한 전율(戰傑) 같은 긴장감이 묻어나는 작위(作爲)로 효용성을 수용하기에 아름다운 창조적 영혼이 꽃을 피우려면 삶의 일상에서 반복되어지는 자잘한 삶의 흔적들이 담백한 시격(詩格)의 형사에 결속된 시적 극대화에 의한 이 중거리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 민족의 화합‘을 위한 어떠한 빌미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한다.
여기서 시대 소임에 층실한 시인의 경우,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때로는 저항시의 창작에 몰두할지라도 전체적인 시의 틀 짜기에 있어 서정시 혹은 비가(悲歌)라는 문학의 영토에서 결코 이탈하지 아니하고 시의 본말인 정서와 가치에 보다 층실한 점은 유념할 바이기 에, 문병란 시인의 비교적 시적 서정성 발화의 추이(推移)에 있어 초기 시의 시적 발화점은 시어의 조탁을 통한 사유와 감정이 절제된 언어의 예술적 형상에 관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적 보편성은 탄탄한 언어의식을 통해 미적 서정성을 추구한 점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재평가 되어야 한다.
이 같은 현상에서 '잡초도 풀이라’는 존엄한 생명의식을 지닌 황금찬 시인의 지적처럼 황혼이 붉게 타는 산그림자 속에서 화려함 없이도 ‘이 저녁 빈 잔에 고이는 쓸쓸함’ 을 정취로 자아내는 시적 응시와 감응은 본질적으로 견고한 고독 앞에서 빛나는 아득한 현상이다.
일단 박철영이「서정성에 대한 탐색과 확산_문병란 시인」의 끝마무리에 서 ‘‘비록 문병란 시인의 많은 창작시 중 서정성이 배제된 시를 쓸 수밖 에 없었던 시대적인 상황에서도 역설적이지만, 민중의 서정적 삶을 복원하려는 강한 의지의 지향과 시적 세계는 서정성과 결연하게 맞닿는다. 그러한 인식을 토대로 암울한 시대에서 치열한 서정시인으로 살다 간 시인임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된다."는 주의주장은 한번쯤 심도 있게 심사숙고할 바다.
이제 문병란 시인 추모 1주년을 맞으며「따뜻한 서정감과 시적 변명의 추이(推移)―문병란 시인의 존엄한 생명외경과 시적 감응」의 결론에 앞 서, 필자와 일면식이 없으면서도 감사하게도 전년도 문학상의 수상자 이기도 한 그가 [제2회 박인환시문학상 수상 시인 업창섭]에 관한 ‘심사평’ 에서 “일제시대, 유신치하, 개발도상국가가 겪는 여러 가지 수난 과 고통을 관통해 오는 그들의 삶 속에서 일견 모순 당착되면서도 매우 유사한 역사적 맥락을 통하여 고뇌와 생명의 숨결이 울리고 있음을 본다. '상’ 이라는 요식행위 속에서도 그 세 사람(박인환, 문병란, 업창섭) 의 미적 진실성은 시라는 특별한 장르 속에서 매우 끈끈한 어떤 힘이 연결되어 질긴 혈연 같은 곡진함을 느끼게 된다. 참으로 시라는 신비한 힘이 하나의 혈연처럼 서로 뜨겁게 포옹하고 굳게 손을 잡을 수 있음을 감탄하면서 다시 한 번 이 만남을 필연이라 확신한다."고 기술한 바는 한줄기 서정적 상통함을 유추함은 쉽게 확인되어지는 알상사, 그 이상 이다.
차지에 ‘시는 환상이고 환청’ 이라지만 서정의 정한(情恨)은 더없이 느껍기에 온유한 심성과 심세한 정감(情感)의 소유자인 그 자신이 고정 인식의 틀을 깨는 빛나는 인자(因子)로서의 확증은 새삼 놀라운 심적 층격이다.
글의 말미에서 ‘민족시인 문병란!' 이렇게 불러 봐도 공허 와 무상함이지만 국립 5 · 18민주묘역에서 귓가에 친숙한 〈직녀에게〉를 듣노라면, ‘강직한 성품과 깐깐한 육성’ 이 더없이 눈물겹다.
창조적 영혼은 날푸른 파도처럼 위대할 뿐더러 이 땅의 살아 숨 쉬는 자들이 일제히 손 흔들면 밝은 웃음으로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에 부족함이 없기에, 진정한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 일관되게 자존감을 수호하며 민족통일과 화해를 염원한 가르침은 [모던포엠 초대석]에 오래 기록되어, 꽃비 내리는 천상에서도 홀로 아득히 기억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에 못내 감사 할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