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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일터 위에 충만하게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한다 할지라도 다 기록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찬송을 통해서 그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위대하고 높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담아서 우리 좌우에 계신 분, 앞뒤에 계신 분들하고 함께 축복하며 인사합시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치료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이제 마라를 출발해서 엘림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엘림이라는 곳은 마라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어요. 샘이 많고 종료나무가 무성하다. 나무가 무성하다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입니까? 물이 풍성하다는 것이죠. 그야말로 진짜 오아시스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그곳에서 장막을 치고 어느 기간 동안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그렇게도 염려하고 걱정했던 그래서 원망까지 했던 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그 놀라운 현장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물이 풍성한 지역 그곳에 장막을 치고 머무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들이 걸어온 여정, 출애굽에서 쭉 걸어왔던 여정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들에게는 항상 힘들고 어려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물샘 12과 종료나무 70그루가 있는 엘림을 예비해 두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아들 이삭을 바쳐라 그렇게 명령하신 후 그 고난의 걸음을 걷게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마치 어린 양을 미리 예비해 두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엘림이라는 풍성함을 예비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여정 가운데에는 쓴물 같은 힘든 상황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쉼과 평화와 위로를 얻는 엘림과 같은 상황도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번 주는 대림절 두 번째 주입니다. 두 번째 초를 밝히는 시간이죠. 첫 번째 초는 무엇이라 했습니까? 소망의 빛, 즉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으로 오셨다는 거예요.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소망 없는 자와 같이 살아간다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보면서 소망이 없다 말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품고 기대와 그 소망을 가진 자로 이 땅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참 빛된 자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평화의 빛으로 오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두 번째 조를 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만나주실 때에 참 평화가 임하게 된 것이죠. 즉 마라에서 하나님께서 만나주셨을 때 그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었던 것처럼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나서 참 평안을 누리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요. 이 땅의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태어날 그 당시에 수많은 천군이요 천사들과 함께 찬송하잖아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병화로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평화가 임했다라고 천군 천사들이 찬송했다라는 거예요.
또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마지막 이제 그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걸어가시기 위해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제자의 무리들이 뭐라고 찬송했습니까? 그들도 찬송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요.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의 영광이로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그들의 고백이었다는 거예요.
특별히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전에 미리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도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의 사건, 그 징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평화가 임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죗가를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하나님의 평화로 우리의 삶을 만지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의 죄가를 멀리 하시게 하시겠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한 주간 내 안에 이 평화의 빛이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이 평화의 빛이 세상 가운데 그들에게도 비춰지는 축복의 통로, 이 평화의 빛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엘림에서 안식과 평화, 그리고 위로를 얻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엘림을 떠나게 되죠. 그래서 엘림과 신의 산 엘림이라는 것과 신의산 사이에 있는 신광야가 있는데 그곳을 향해 갑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그 신광야를 거쳐야 했던 것이죠. 1절을 우리 한번 같이 보실까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네산 사이에 있는 신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15일이라 보신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달하고 15일이 지났다. 그렇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 사흘 길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길을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로 우회시켜서 인도하셨고, 그들의 걸음은 생각지도 못한 장애를 굉장히 많이 만나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치료하시고 고치시는 은혜를 그들에게 경험케 하신 것입니다. 또 그러한 시험을 통해서 점점 배워가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구나 우리가 불평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고 하나님이 일하시니 되는구나라는 것을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의 시간은 잠시였던 것 같아요.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광야에서 다시 한 번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게 됩니다. 그 원망하게 된 이유가 3절에 기록되어져 있는데 우리 3절을 같이 읽어보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여러분 이들이요. 앞서서 마라에서 무엇을 마실까에 대한 염려로 원망했다면 이제 오늘 본문을 보면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염려예요. 그것으로 인해서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생각의 문제예요. 즉 그들이 생각하는 그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것이 바로 그들이 기억했던 요소인 것이죠.
여러분 이들은 이미 12 제왕을 통해서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신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또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겸한 자들이지요. 뿐만 아니라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고 엘림이라는 곳을 예비하신 예비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 앞에서는 앞에서 일하셨던 하나님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완전히 없어져버린 거예요. 그리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을 지배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애굽 땅에서 애굽 땅에서 고기 먹고 그래도 우리가 종으로 살았지만 그 곁에서 떨어졌던 부스러기 고기라도 먹고 떡 먹었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역사는 사라지고 그 땅에 있었던 과거에 좋지 않았던 생활이지만 그들을 배불리게 했던 그것이 그들의 생각이 주가 되었기 때문에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여러분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죄 가운데 있었던 삶, 예수 믿기 전에 좋았던 삶, 그것을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이 올 때마다 그리워하고 동경해야 될 것이 애굽에 있었던 삶이 아니라 출애굽시켜서 순간순간 일하시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기대하고 사는 것이 이들이 살아야 할 삶이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을 마셔야 하는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무엇을 입어야 하는가 이것은 우리의 삶의 문제인 것이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갈등을 느끼게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지치고 고단할 때도 있고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문제로 인해서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방식과 방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기 전에 좋았던 그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컸던가 때마다 시마다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나의 삶 가운데 어떻게 작동하셨던가 그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이 걸어야 할 복된 걸음이라는 거예요.
뿐만 아니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그 놀라운 생명의 가치만 생각해도 우리는요. 이 땅에 약간 불편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보장된 하나님의 나라가 있잖아요.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잖아요. 그러기에 이 땅에서 찾아오는 그 고난 염려 걱정을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열의 피로 다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이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하기 위해서 언제나 저와 여러분들 삶 가운데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신 예수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외면하게 되고요. 세상의 삶, 세상의 방법을 따라 살아가는 게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실제 지난 3년 동안 여러분 우리가 힘들게 겪었던 코로나가 있지 않습니까? 이 코로나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했던 초신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도 같은 어려움의 시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또한 감사하면서 우리의 신앙의 여정을 앞으로도 끝까지 경주해 나가는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요 한량없는 은혜를요. 과거에도 베풀어 주셨지만 오늘도 일하시고요. 내일도 모레도 우리 미래의 삶 가운데도 분명히 일 하십니다.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성도의 삶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이렇게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오늘 4절은요. 하나님의 반응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오늘 본문에 보니까요. 하나님께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주시겠다 그렇게 말씀하는 거예요. 이 비같이 내리겠다는 것은 억수같이 쏟아붓겠다는 하나님의 표현이십니다.
여러분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양식을 주는데 계속 줄 것이고 풍성하게 줄 것이다. 이것이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는 거예요.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요. 때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도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다는 거예요.
사실 여기 부모가 되어보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 되어 보신 분들이지 않습니까? 부모가 되었다면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때로는 자녀들이 부족하다고 원망을 합니다. 때로는 무엇을 갖고 싶다고요? 다른 친구와 비교하면서 이야기할 때도 있어요. 참 나쁜 자녀죠.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어떤 마음이 듭니까? 어떻게 하면 그걸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생각하는 게 부모의 모습입니다. 항상 다 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것 한 번만이라도 저 원망하는 소리를 내가 들어줘야겠다 이게요. 부모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하나님도 동일한 하나님이시다라는 거예요. 항상 원망의 소리를 하는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징계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비같이 내려주시겠다 약속하신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즉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원망 불평하고 있는 이들에게 양식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해결해 주시는 목적 두 가지가 있어요. 그냥 너의 원망 소리를 듣고 해결 짝 해주겠다 이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그 안에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이것을 통해서 율법을 준행하는지 안 하는지 내가 보겠다라는 겁니다. 시험입니다. 그래서 이 시험은 두 가지로 기록되어져 있는데 이 시험을 통해서 순종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첫 번째 명령은요.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두라 이게 하나님의 명령이었어요. 일용할 양식은 무엇입니까? 하루 동안 먹을 분량을 거두라는 거예요. 즉 하나님께서 양식을 비같이 풍성하게 주변에 보면 빼곡하게 쌓일 정도로 양식을 내려주시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야 그거 보고 하루치만 가져가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에 이들이 순종하는가 안 하는가를 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는 이들에게 아침까지 두지 말아라 아침까지 두면 변질될 수 있으니 두지 말아라까지 이야기하면서 하루치만 가져갈 수 있도록 명령했다는 거예요. 즉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을 따라 사는 인생인지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인지를 시험하고자 했다는 것이죠.
여러분 실제 우리에게 그러한 명령이 떨어졌다. 정말 쫄쫄 굶고 있다가 막 음식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근데 오늘 하루치만 가져가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뭐라고 하시겠어요? 얼마만큼 가져가시겠어요? 사실 우리 부페집만 가봐도 우리 성향을 잘 압니다. 부페집 가면 거기 동일하게 쓰여 있는 게 뭔지 아십니까? 남기면 얼마라고 써 있어요? 대부분 부페집에 가면 그렇게 쓰여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성향은 대부분 그렇잖아요. 가서 우선 와장창 가져와요. 그리고 막 열심히 먹죠. 이만큼 남았어요. 어떻게 합니까? 꾸역꾸역 먹는 사람이 있고요. 내가 모르겠다 하고 나가는 분이 있어요.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런 우리의 인생에 욕심이라는 것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요. 제한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 특색 가운데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욕심의 정욕 이것은 하고 싶은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 갖고 싶은 것 인생의 자랑 되고 싶은 것 여러분 실상 우리 인간에 있어서 우리의 삶을 보면요. 하고 싶은 건 많고요. 갖고 싶은 건 많고요. 되고 싶은 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삶의 인생의 욕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배를 쫄쫄 굶은 가운데 음식을 많이 내려주고 야 하루치만 가져가라고 하면 우리 안에 안목의 적용이 안 생길까요? 더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겠어요 사실 쉽지 않다는 것이죠. 그러한 실제 상황에서 말씀을 순종해서 일용할 양식만 취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시험이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시험 이 테스트라는 것은 무엇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순종을 확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죠. 여러분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사랑하는 독자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이 테스트를 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아브라함이 그 시험 가운데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100% 의지했다는 거예요.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함께 종들과 함께 올라가다가 종들과 나 너희들 여기 있고 내가 이삭과 함께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고 우리가 함께 내려온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같이 오겠다고 표현돼 있거든요.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또한 제단 앞에서 실제로 칼을 뽑아들 수가 없었겠죠. 온전한 신뢰가 말씀을 순종하는 길로 걸어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성하게 음식을 다 깔아놓고 이거 매일 줄 거야. 매일 준다는 그 약속을 믿는다면 오늘 하루치만 가져갈 수 있어요. 근데 내일에 대한 보장이 없잖아요. 내일 거 챙길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요. 일용할 양식을 줄게 먼저 그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일용할 양식을 줄 테니 그거 하루 거 챙겨가라.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순종을 위한 시험이 있다면 먼저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을 때에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두 번째 명령은요. 여섯째 날에는 거둔 것을 준비하도록 명령했다. 5절을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5절입니다.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이 준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곱째 날을 위해서 준비하라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22절 23절을 통해서 기록되어져 있어요. 같이 읽어보실까요?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메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림에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서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운 것을 굽고 삶은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여러분 이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안식일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명령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요. 10계명을 받지 않은 상태 왜 시내산에 가야 되잖아요. 아직 시내산에 가지 않았거든요. 시내산에 가야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을 받는 그 명문화 작업이 일어나는데 아직 그전이란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원리를 알았던 거룩한 백성들은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 날 쉬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경건한 자들은 7일을 쉬면서 안식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400년이라는 생활 동안 애굽 종으로 살면서 안식일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거의 못 지켰다고 우리는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너희가 애굽 종이 아니다. 출애굽 했으니 하나님의 백성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너희가 과거에 그렇게 종으로 살았던 삶으로 살지 말고 7일째에는 거룩하게 쉼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 시험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이죠.
그리고 이 안식일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후에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를 통해서 10계명 중의 한 계명으로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10계명 중 4계명은 무엇입니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지켜야 할 것으로 선포해 주신 것이죠.
특별히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셨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창세기에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2장 3절 같이 읽어보실까요?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날을 안식하셨기 때문에 그날을 복되게 하셨다. 거룩하게 하셨다. 그렇게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안식일은 어떤 안식일입니까?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말씀하셨던 이 안식일을 저와 여러분들도 거룩하게 지켜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복을 누리며 사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목적, 시험 두 가지였습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서 매일매일 주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순종하는지, 또한 안식일을 하나님께서 구별했는데, 여섯째 날 정말 이들이 하루치 걸 더 준비해서 안식일을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사는지, 하나님께서 그걸 보시기 위해서 어떻게 했다고요? 비같이 양식을 우선 팍 주신 거예요. 다 먹으라고 주신 게 아니라 그걸 구분하기 위해서 두 번째 목적은요. 인도하신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6절 7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오.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먼저 저녁되면 인도하신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아침이 되면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인도하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냥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셨구나라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실감하게 될 것이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또한 아침에는 하나님의 영광 즉 능력을 상징하는 표현이죠. 영광이라는 단어는 카바드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하나님께 사용할 때는 초자연적인 현상, 즉 하나님의 이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그러한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 날 아침이 되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게 될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8절을 한번 보실까요? 어떻게 그것이 일어났는가 8절 같이 읽습니다.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으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오.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라 저녁에는 실제 무엇을 먹겠다는 거예요 고기 아침에는 입술과 같이 싹 내렸다가 딱 먹고 나면 싹 사라지는 신비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시는데 여러분 누가 누구를 위해서 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시겠다. 그래서 오늘 8절 가운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잖아요. 너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 하나님께서 공급하셔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 그것을 경험하겠다 하시는 거예요.
왜요? 그래야 이 과정을 통해서 그 신뢰하지 못한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라도 내가 여호와임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다. 사실상 여러분 그렇잖아요. 10가지 재앙에서 출애굽한 그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말할 수 있잖아요. 홍해가 갈라져서 내가 마른 땅을 걷는 그 현장을 경험했다면 하나님 부인 못하잖아요. 하나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할 수 있잖아요. 물이 쓴데 나무 하나 던졌다고 달라졌다.
여러분 이 사건만으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연약함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을 경험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생활 오래하신 분은 30년에 경험한 하나님 계실 거고요. 20년 전에 경험한 하나님 계실 거예요. 10년 전 아니 일주일 전에 경험한 하나님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문제는 왜 지금 내가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 가운데 나를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맞구나. 출애굽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오늘 이 자리까지 왔구나. 내가 구원받아 오늘 이 예배 자리에 선 것은 때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내 마음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외면했던 내 마음속에 또 찾아오셔서 속삭여 주시고 말씀하여 주시고 나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구나.
여러분 그 고백이 우리의 삶의 여정 가운데 순간순간 고백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하나님께서는요 신실하셔서 저와 여러분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의리의 길, 선한 길,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저와 여러분들도 때로는 힘든 여정이 있을 때 기억하십시오. 옛날 좋았던 생각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역사를 묵상하셔서 또다시 이기고 전진해 나아가는 거룩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