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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시리즈 (3)
성찬으로의 부르심
마 26:17~30
I. 서론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필요한 상상력은 우리가 마음대로 지어낸 상상이 아니라, 당시 문화를 토대로 한 상상을 말합니다. 그 좋은 예가 오늘 본문일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드신 마지막 식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월절 식사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만찬이 바로 유월절 식사였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듯이 유월절은 우리 나라의 광복절과 개천절이 함께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되면, 당시 예루살렘에 약 3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월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유월절 식사하면서 유월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유월절 식사는 단순히 가족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유월절 식사에는 음식의 종류가 정해져 있었고, 식사의 순서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히브리어로 “쎄데르”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순서”라는 뜻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드리면, 한국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믿는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한번도 차례를 지내지 않았지만, 차례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음식이 정해져 있고, 차례를 지내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월절 식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해야 오늘 본문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II. 본론
1. 첫째, 유월절 음식입니다.
17~19절,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본문을 보시면, ‘준비하다’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제자들이 준비한 것은 유월절 식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유월절 식사를 어떻게 준비했을까요?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시장으로 가서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이 겪었던 고난을 기억하게 해줄 쓴 나물을 사야 했다. 과일과 사과, 대추, 석류, 견과류를 구입한 다음, 한데 갈아서 이스라엘 백성이 벽돌을 만드는 재료였던 진흙을 닮은 반죽을 만들어야 했다. 온 집안을 뒤져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누룩을 제거해야 했다. 그런 다음,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 즉 납작한 무교병을 구웠을 것이다. 흘렸던 눈물을 상징하는 소금물도 만들어야 했다. 만찬 때, 나누어 마실 포도주 네 잔도 필요했다. 물론 그런 다음에는 성전에서 양을 사와서 도살한 다음, 저녁 식사를 위해 구워야 했다. 음식 준비를 마친 다음에는 그 큼직한 다락방에서 식사할 준비를 해야 했다. 식탁 주위에 U자 대형으로 방석을 놓았을 것이다.”
유월절 식사를 위해서 제자들은 이 모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는 해가 진 후에 시작됩니다. (20절, “저물 때에”) 대략 저녁 6시 정도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포도주 네 잔”입니다. 왜냐하면, 이 포도주 네 잔이 유월절 식사의 순서를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유월절 식사에서 포도주 네 잔을 마실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6장 6~7절입니다. 출 6:6~7,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네 가지 약속이 등장합니다. 1)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빼낼 것이다. (I will bring out) 2) 내가 너희를 노역에서 건질 것이다. (I will deliver) 3) 내가 너희를 애굽을 심판함으로 구원할 것이다. (I will redeem) 4)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 (I will take)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는 이 네 가지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식을 하는 이유도 이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유월적 식사 순서입니다.
1) 유월절의 시작은 초나 올리브 램프에 불을 켜면서 시작됩니다. 불을 밝히는 이유는 이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2) 그 다음, 포도주를 첫 번째로 잔에 따릅니다. 이 잔을 “The cup of Sanc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성별의 잔) 첫 잔을 마신 후,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을 것입니다. 이어서, 쓴 나물을 소금물에 찍어서 먹습니다.
3) 그 다음, 포도주를 두 번째로 잔에 따릅니다. 이 잔을 “The cup of Remembrance”라고 합니다. (기억의 잔) 이 시간은 가장이 자녀들에게 유월절의 의미를 교육하는 시간입니다. 이 때, 가족 중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4가지 질문을 합니다. (1) 다른 날 밤에는 누룩 있는 떡과 누룩 없는 떡을 함께 먹었는데, 왜 오늘은 누룩 없는 떡만을 먹어야 하나요? (2) 다른 날 밤에는 모든 종류의 나물을 먹었는데, 왜 오늘은 쓴 나물만을 먹어야 하나요? (3) 다른 날 밤에는 나물을 다른 것에 찍어 먹지 않았는데, 왜 오늘은 나물을 소금물에 찍어 먹어야 하나요? (4) 다른 날 밤에는 똑바로 앉기도 하고 비스듬히 눕기도 했는데, 왜 오늘은 비스듬히 누워 식사를 하나요? 그러면, 가장이 자녀들에게 이 질문에 답하면서 출애굽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1) 무교병을 먹는 이유는 출애굽할 때, 반죽을 부풀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셨기 때문에 그만큼 쫓겨나듯이 출애굽했었단다. 2) 쓴 나물을 먹는 이유는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힘들게 살았단다. 3) 쓴 나물을 소금물에 두 번 찍어 먹는 이유는 우리 조상과 이집트 군대, 둘 다 홍해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은 구원해 주셨단다. 4)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하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자유인이 된 것이란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서는 아마도 최연소자였던 요한이 이 네 가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설명해 주셨을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이 후에 두 번째 포도주를 마시게 됩니다.
3) 그 다음, 포도주를 세 번째로 잔에 따릅니다. 이 잔을 “The cup of Redemption”이라고 합니다. (구원의 잔) 여기가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때, 가장은 무교병을 떼고, 축복의 말을 합니다. “땅에서 빵을 내시는 우주의 왕, 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고난의 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 후에,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26절,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부서진 무교병처럼 자신의 몸도 부서질 것을 예언 하셨던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무교병을 먹는 방법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쓴 나물을 무교병 사이에 넣고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에, 하로셋 소스에 찍어 먹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배반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21~23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요한복음 본문을 보시면, 조금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요 13:25~26, “그가 (요한)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예수님께서 무교병을 떼어 쓴나물을 넣고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하로셋 소스에 찍어서 가룟 유다에게 주셨고, 그 때 예수님의 손과 가룟 유다의 손이 함께 그릇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는 가룟 유다가 이미 예수님을 팔았고, 은 삼십을 받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마 26:14~16,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자신의 스승을 판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가룟 유다는 스승을 배신하고 뻔뻔하게 “나는 아니지요”라고 되물었던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 나치 정부에 저항하다가 한 사람이 체포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투옥되어 오랜 기간 독방에 감금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죄 자백을 강요 받으면서 지속적인 고문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몇 개월이 지나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영양실조까지 더해져서 몸은 지치고 극도로 약해졌지만, 나치 정부에 대한 그의 저항 의지는 전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석방된 지 불과 2주만에 이 사람은 자신의 다락방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어떻게 그의 용기와 의지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곧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석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을 나치 당국에 신고하여 체포되게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은 나치 정부의 잔혹한 고문도 무너뜨릴 수 없었던 사람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봐야 합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 (22절)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주신 무교병을 받고 어떻게 했습니까? 요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주신 떡을 받은 후, 곧바로 나가버렸습니다. 이후에 먹게 될 유월절 메인 식사인 어린 양고기를 먹지 않고,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는 결국 유월절 식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포도주 잔을 마실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잔을 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7~28절,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후에 세 번째 포도주를 마시게 됩니다.
4) 그 다음, 포도주를 네 번째로 잔에 따릅니다. 이 잔을 “The cup of Praise”라고 합니다. (찬양의 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네 번째 잔은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9절,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술 좋아하시는 분은 이 본문 말씀이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도 와인이 있다는 말이 되니까 말입니다. ^^ 그런데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겠지요? 크리스토퍼 라이트 교수님의 설명입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 잔은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이 잔은 남아있을 것이다. 내일 나는 죽어서 너희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다시 만날 그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새로운 출애굽이 정말로 이루어지는 날로, 모든 압제와 고통, 눈물, 죽음, 아픔이 사라질 날이다. 그 날을 고대하자!”
예수님 당시 유월절 만찬이 마치는 시간은 대략 자정 정도였다고 합니다. 만찬을 마친 사람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서 ‘할렐 송’이라는 시편 찬송을 불렸습니다. 할렐 송은 시편 113~118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때, 예루살렘 온 동네 사람들이 지붕 위에 올라와서 찬양했기 때문에 산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만찬을 드신 후, 제자들과 함께 이 ‘할렐 송’을 부르면서 감람산으로 올라가셨을 것입니다. 30절,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이번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후 부르신 시편 113~118편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몇 구절을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기 전에 십자가를 몇 시간 앞둔 예수님의 심정을 먼저 이해하고 읽어야 합니다. 제가 설교 초두에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십자가에 대한 고통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 교수님의 설명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십자가의 계산된 잔인함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십자가형을 보고할 뿐이다.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십자가형은 사람을 처형하는 가장 모욕적인 방식이었다. 로마인들이 최대의 수치와 모욕을 가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처형 방식이었다. 극심한 신체적 통증에 공개적 수치가 더해져 고통은 배가되었다. 남자들은 완전히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그 무력한 노출은 그 자체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다음 손목과 발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짓이기며 뚫고 들어오는 무거운 못의 충격과 고통 때문에 희생자들은 자신의 배설물로 범벅이 되고, 피와 땀으로 뒤덮인 채 파리들에게 고문을 당할 것이다. 그런 다음 소음과 함성, 비웃음, 모욕, 야유, 몸짓을 상상해 보라.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이미 매질과 십자가형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당하시고, 세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조롱을 당하시며 수치스러운 정서적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이 이제 무한하게 더 큰 고통, 하나님 아버지와의 분리라는 고통의 가장 깊은 어둠으로 들어가신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런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부르신 할렐 송을 읽으면 그 의미가 새로워집니다. 몇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시 115:1~3,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 116:1~5,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시 118:28~29,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시면서 이 말씀을 노래하셨을까요?
3. 셋째, 유월절의 의미입니다.
정현구 목사님의 설명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과거를 떠나 가나안이라는 미래를 향해 출발하도록 했다. 그래서 유월절은 노예였던 이들이 자유민으로서 살아가는 첫 출발점이 된다.” 유월절 안에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만약 유월절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이집트의 노예였을 것입니다.(과거) 만약 유월절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소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미래) 만약 유월절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현재) 한 마디로, 유월절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매년 유월절을 지킴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소망하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과거)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천국에 갈 것을 소망할 수 없을 것입니다.(미래)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현재)
III.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를 (성찬식)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눅 22장)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변화된 우리 자신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성찬식을 행하면서 우리의 과거, 미래, 현재를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에서 찢으신 예수님의 살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 때문에 우리는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고, 미래를 소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를 위해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성찬의 자리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다함께 묵상하면서 성찬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