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역수(逆數)에 관한 논(論)
주역([易]) 스승들(:夫子)이 이르기를 "지나간 것을 헤아리는(:數) 것은 순(順)이고, 올 것을 미리 아는(:知) 것은 역(逆)이다. 그러하므로 주역([易])은 곧 역수(逆數)이다."
그 이치(理)를 묵묵히 헤아려(:會) 보니, 천인(天人)의 도(道)는 무궁(無窮)하여 쉼이 없으니(:無息), 이러한 역수(逆數)에 의지하지(:賴) 않을 수 없다
어째서인가?
태극(太極)에서 처음 나뉘어져(:分) 양의(兩儀)로 갈라지니(:判), 일동(一動) 일정(一靜)하여 음양(陰陽)이 나타나느니라(:見).
음양(陰陽)의 체(體)는 건곤(乾坤)이고 음양(陰陽)의 용(用)은 수화(水火)이니라.
건곤(乾坤)은 대대(待對)하여 교역(交易)하면서 정(定)하여지므로 하나는 상(上)에 있고 하나는 하(下)에 있느니라.
수화(水火)는 유행(流行)하여 변역(變易)하도록 흐르므로(:蕩) 하나는 강(降)을 주(主)하고 하나는 승(升)을 주(主)하느니라. 대개 이와 같이 그 순환(循環)은 끝이 없느니라(:無已).
이를 총(總)하면 천도(天道)가 되고, 이를 산(散)하면 인도(人道)가 되니,
대역(大易)의 뜻(:義)은 미미(微)한 곳까지 없을 수가 없다.
다만 다른 것들도 물론(:無論)이겠지만 단지 성리(性理)로만 이를 밝혀 보자면 총괄적(總)으로 변역(變易)하는 수(數)로 말미암는다.
변역(變易)하는 수(數)는 곧 승강(升降)의 수(數)
★ 변역(變易)이 무궁(無窮)한 까닭은 강(降)하여 승(升)하는 것을 위주(爲主)로 하기 때문
이것이 곧 소위 역수(逆數)
만약 이러한 역(逆)이 없다면 강(降)은 있지만 승(升)이 없으므로, 흘러가서 되돌아오지(:返) 않으니 고리(:環)와 같은 대도(大道)가 무엇에 의지(:賴)?
이로 말미암아 역(逆)과 순(順)이 교변(交變)하면 양(陽)과 음(陰)이 대(對)하고, 열(熱)과 한(寒)이 대(對)하며, 승(升)과 강(降)이 대(對)하고, 장(長)과 소(消)가 대(對)하며, 진(進)과 퇴(退)가 대(對)하고, 성(成)과 패(敗)가 대(對)하며, 근(勤)과 타(惰)가 대(對)하고, 노(勞)와 일(逸)이 대(對)하며, 선(善)과 악(惡)이 대(對)하고, 생(生)과 사(死)가 대(對)
이러한 일역(一逆) 일순(一順)의 그 변화(變)는 무궁(無窮)하다.
다만 ★ 역(逆)을 따르면 양(陽)으로 생(生)할 수 있고, 순(順)을 따르면 음(陰)으로 사(死)할 수 있다.
이를 불신(不信)한다면 복희(伏羲)의 괘기원도(卦氣圓圖)를 상세(詳)히 상고(考)하면 그 의미(:義)를 분명하게(:昭然) 알 수 있다.
양(陽)의 성(盛)이 극(極)할 때를 보면, 하지(夏至)에서부터 일음(一陰)과 처음 만난(:姤) 뒤에 오손(五巽) 육감(六坎) 칠간(七艮) 팔곤(八坤)을 지나면서 천도(天道)가 서(西)로 우(右)로 행(行)
양기(陽氣)가 날로 강(降)하고 만물(萬物)이 날로 소(消)하여지니, 이는 모두 순(順)하는 수(數)
순(順)하면 기(氣)가 거(去)하니, 곧 음(陰)으로 사(死)하는 도(道)
음(陰)의 박(剝)이 극(極)할 때를 보면, 동지(冬至)에서부터 일양(一陽)이 복(復)하니, 사진(四震) 삼리(三離) 이태(二兌) 일건(一乾)을 지나면서 천도(天道)가 동(東)으로 좌(左)로 선(旋: 돌다)
양기(陽氣)가 날로 승(升)하고 만물(萬物)이 날로 성(盛)하여지니, 이는 모두 역(逆)하는 수(數)
역(逆)하면 기(氣)가 래(來)하니, 곧 양(陽)으로 생(生)하는 도(道)
이는 천도(天道)로 징험(:徵)한 것
인도(人道)로 말하자면
인도(人道)는 곧 천도(天道)에 근본(本)하니, 천심(天心)이 곧 인심(人心)
다만 하늘에 먹구름(:陰霾)이 있으면 일월(日月)을 가릴(:蒙) 수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우매(愚昧)함이 있으면 그 총명(聰明)함을 이길(:勝) 수가 있다.
따라서 순(順)을 따르는 것은 쉬운 것(:易)을 좋아하고 편안함(:逸)을 좋아하기 때문
역(逆)을 피(避)하는 것은 어려운 것(:難)을 두려워하고 노고(勞)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
그러나 대인(大人)들의 견해(見)는 그러하지 않다.
예로 존귀(尊貴)함은 제왕(帝王)보다 못하니, 그들은 안일(逸)할 수도 있고 게으를(:縱) 수도 있겠지만, 요순(堯舜)은 '(道心은) 오직 미미(微)하지만 (人心이) 오직 위태(危)하게 된다.' 고 하였다.
돌이켜 보건대 마음(:念) 속에 왜 이러한 간절(:諄諄)함이 필요(必)하겠는가?
지혜(智慧)로움은 성인(聖人)보다 못하니, 그들은 노고(勞)할 수 없고 두려워하지(:畏) 않을 수 있겠지만, 공자(孔子)는 '계신(戒愼: 경계하고 삼가다)하고 또 공구(恐懼: 두려워하고 염려하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마음(:心) 속에 왜 이러한 간곡(:卷卷)함이 필요하겠는가?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 천(天)의 공(功)을 대신(代)하여 인(人)이 그 극(極)을 주(主)하기 때문
총괄(總)하자면, 순(順)을 따를 수 없으니 순(順)을 따르면 유(流)하게 되고,
역(逆)을 버릴 수 없으니 ★역(逆)을 버리면 퇴(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
선비(:士)가 역(逆)을 버리면 굴복(屈: 안일하다)할 수는 있겠지만 신장(伸: 자신의 뜻을 펼치다)할 수 없고,
농부가 역(逆)을 버리면 파종(種)할 수 있겠지만 수확(穫)은 할 수 없으며,
장인(:工)이 역(逆)을 버리면 원자재(:粗 다듬지 않은 재료)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정(精: 정교한 작품)할 수는 없고,
상인(商)이 역(逆)을 버리면 산(散: 물건이 사라지다)은 있을 수 있겠지만 취(聚: 재물이 모이다)할 수는 없다.
다시 이를 더 널리 추구(:推廣)하자면 흔히 '수신제가(修身齊家)'라 하고 흔히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하니,
일보(一步) 나아가면(:進) 날로 이루어지고(:成) 일보(一步) 물러나면(:退) 날로 무너지게(:敗) 된다.
원(源)이 있고, 유(流)가 있다.
긴 흐름(:長逝)에 자신을 위임(任)하고 지주(砥柱: 굳세게 지조를 지키다)하는 것이 좋은 도모(圖)이다.
이처럼 인도(人道)와 관계(係)된 바가 이와 같다.
그런데 천(天)을 말하고 인(人)을 말하는 것은 총체적(總)으로 생(生)하는 도(道)를 말하는 것
생(生)을 보호(保)하는 도(道)에서 의학(醫)보다 앞선 것은 없다.
의(醫)가 생명(生)을 보호(保)하려고 할 때
양(陽)의 도(道)를 어찌 감히 위배(違)할 수 있겠으며,
그 역수(逆數)를 어찌 감히 거역(逆)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의(醫)는 원통(圓通)을 귀(貴)하게 여기니, 어찌 집착(:執滯)하는 것을 허용(容)하겠는가?
'결코 음(陰)을 따르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음(陰)을 따르는 것이 바로 양(陽)을 지키는(:衛) 것
'결코 순(順)을 사용(用)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순(順)을 사용(用)하는 것도 또한 역(逆)을 이루는(:成) 것
성명(性命)의 현문(玄關: 깊은 이치로 들어가는 문)에서는 이것이 제일(第一)
의사(醫)로 이름을 크게 떨친(:丕著) 무리들
오히려 이에 몽매(昧)하거나 도(道)를 어긋난(:左) 도(道)를 함부로 말하며, 지금(至今)에까지도 그것을 유전(留傳: 변치 않고 전하다)
이로 인하여 생(生)을 상(傷)하고 해(害)를 남김이 얕지(:淺) 않음
헌기(軒岐: 의학)의 마귀(魔)
아! 아! (나와 같이) 이러한 마음이 있는 자 누구이던가?
그 사람을 만나 깨달은 도(道)에 대해 같이 돌아가며 이야기하면(:談), '그러하다.' 하지 않겠는가?
첫댓글 주역([易]) 스승들(:夫子) "지나간 것을 헤아리는(:數) 것은 순(順)이고, 올 것을 미리 아는(:知) 것은 역(逆). 그러므로 주역([易])은 역수(逆數)."
천인(天人)의 도(道)는 무궁(無窮)하여 쉼이 없으니(:無息), 이러한 역수(逆數)에 의지(:賴)
수화(水火)는 유행(流行)하여 변역(變易)하도록 흐르므로(:蕩) 하나는 강(降)을 주(主)하고 하나는 승(升)을 주(主)한다.
이와 같이 그 순환(循環)은 끝이 없느니라(:無已).
변역(變易)하는 수(數)는 곧 승강(升降)의 수(數)
변역(變易)이 무궁(無窮)한 까닭은 강(降)하여 승(升)하는 것을 위주(爲主)로 하기 때문
이것이 곧 소위 역수(逆數)
역(逆)을 따르면 양(陽)으로 생(生)할 수 있고,
순(順)을 따르면 음(陰)으로 사(死)할 수 있다.
인도(人道)로 말하자면
순(順)을 따르는 것은 쉬운 것(:易)을 좋아하고 편안함(:逸)을 좋아하기 때문
역(逆)을 피(避)하는 것은 어려운 것(:難)을 두려워하고 노고(勞)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
대인(大人)들의 견해(見)는 그러하지 않다.
요순(堯舜)은 '(道心은) 오직 미미(微)하지만 (人心이) 오직 위태(危)하게 된다.'
공자(孔子)는 '계신(戒愼: 경계하고 삼가다)하고 또 공구(恐懼: 두려워하고 염려하다)하여야 한다.'
천(天)의 공(功)을 대신(代)하여 인(人)이 그 극(極)을 주(主)하기 때문
총괄(總)하자면, 순(順)을 따를 수 없으니 순(順)을 따르면 유(流)하게 되고,
역(逆)을 버릴 수 없으니 역(逆)을 버리면 퇴(退)한다
흔히 '수신제가(修身齊家)'라 하고 흔히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하니,
일보(一步) 나아가면(:進) 날로 이루어지고(:成) 일보(一步) 물러나면(:退) 날로 무너지게(:敗) 된다.
원(源)이 있고, 유(流)가 있다.
긴 흐름(:長逝)에 자신을 위임(任)하고 지주(砥柱: 굳세게 지조를 지키다)하는 것이 좋은 도모(圖)
이처럼 인도(人道)와 관계(係)된 바가 이와 같다.
그런데 천(天)을 말하고 인(人)을 말하는 것은 총체적(總)으로 생(生)하는 도(道)를 말하는 것
생(生)을 보호(保)하는 도(道)에서 의학(醫)보다 앞선 것은 없다.
의(醫)가 생명(生)을 보호(保)하려고 할 때
양(陽)의 도(道)를 어찌 감히 위배(違)할 수 있겠으며,
그 역수(逆數)를 어찌 감히 거역(逆)할 수 있겠는가?
의(醫)는 원통(圓通)을 귀(貴)하게 여긴다.
'결코 음(陰)을 따르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음(陰)을 따르는 것이 바로 양(陽)을 지키는(:衛) 것
'결코 순(順)을 사용(用)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순(順)을 사용(用)하는 것도 또한 역(逆)을 이루는(:成) 것
성명(性命)의 현문(玄關: 깊은 이치로 들어가는 문)에서는 이것이 제일(第一)
★ 음양에서 양은 역이고 음은 순이다.
끊임없는 (계신 공구 등의) 활동이 있어야 생을 잘 유지할 수 있다.
나태하게 가만히 있으면 죽음으로 향한다.
그렇다고 너무 양을 위주로 하면 음의 고갈로 죽게 된다.
그래서 음평양비(陰平陽秘)라 했다.
음은 적절하게(陰平) 있어야 양이 비밀스럽게 활용(陽秘)된다.
음은 많이 있어서도 안 되고 너무 적어서도 안 된다.
음이 모든 형체나 물질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비유) rpm(양)이 적절히 유지되어야 엔진에 좋다.
너무 과해서도 안 되고 너무 떨어져서도 안 된다.
그래야 할 일은 하면서 기름을 오래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