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이 나르
레이 나르 박사와 그의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수용소에는 유명한 안네 프랑크와 언니 마르고트도 수감되어 있었고,
두 자매는 1945년 2월경 발진티푸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면 나르 박사와 가족은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인 1945년 4월 13일, 미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같은 수용소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나르 가족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이후 레이 나르 박사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의 심리치료와 사이코드라마 발전에 기여했고,
202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레이 나르 박사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비 : 어둠에서 빛으로 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Rachamim: From Darkness Into Light) 2010년 출간
이 작품에는 어린 시절 살로니카에서 겪은 유대인 박해와 가족의 강제수용소 경험이 일부 반영되어 있으며,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회복과 구원을 담고 있습니다.
사이코드라마 창시자인 모레노도 유대인이었습니다.
모레노와 레이 나르 박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두 사람 모두 유대인이라는 공통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레노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레이 나르 역시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박해와 홀로코스트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레이 나르 박사(Ray Naar, PhD),
미국전문심리학위원회 인증 전문심리학자(ABPP)
공인 집단심리치료사(CGP),
사이코드라마 수련감독
터치, 만남과 집단심리치료
한 노련한 치료사의 개인적 기억
Touching, Encounter & Group Psychotherapy:
Personal Memories of an Old Therapist
(2015년 미국 사이코드라마학회 저널에 수록된 논문 기사)
신체적 접촉과 심리치료에 관련한 미국 사이코드라마티스트의 기록과 성찰
50년 전에는 신체적인 접촉,
특히 같은 성별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적 접촉이 드물었고,
종종 부적절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서로 가까운 아버지와 아들,
또는 친한 친구들조차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 애정을 악수나 팔이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는 정도로만 표현하는 모습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훗날 내가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슬픔과 공허함을 느낀 적이 있다.
친구들을 면회하러 온 가족들이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떠나면서도 서로를 끌어안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눈물이 단지 헤어짐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
어쩌면 서로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온전하게 표현하고 나누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
: [배운 점과 관찰]
사례 # 1 :
나는 모든 치료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즉, 인간의 신체적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배웠다.
사람이 외롭고 두려울 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낄 때,
단순한 신체적 접촉 하나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다.
30여 년 전, 나는 똑똑하고 강인한 한 의학 수련의 (전공의) 를 치료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가 일상생활을 마비시킬 정도의 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약물치료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고집스럽게 거부했고,
그의 불안 발작은 점점 더 잦아지고 심해졌다.
어느 날 상담을 하던 중, 그는 마치 자신 안으로 움츠러들며 점점 작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그가 우는 모습을 본 것은 두 번뿐이었는데,
그날의 상담은 그의 치료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나중에 집단에 참여했고, 그때 나는 그가 두 번째로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은 매우 깊은 감동을 주었고,
나는 그 일을 기억의 모음집에 실을 시의 형태로 기록했다.
사례 # : 2
나는 또한 신체적 접촉이 아무리 필요하고 간절히 원해지는 것이라 해도,
인간적인 따뜻함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가톨릭 수녀들을 대상으로 한 마라톤 집단을 진행한 지 일주일 후,
나는 참가자 중 한 사람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 당신이 코린 수녀님을 안아주었을 때, 저는 정말 너무나 질투가 났습니다.
저는 그 누구에게도 안겨본 적이 없었고, 아기였을 때 누군가가 저를 안아준 적도 없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당신이 저를 만졌다면 제가 죽거나 돌로 변해버렸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주제로 사이코드라마를 했을 때,
당신이 제 어깨에 손을 올렸고,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영원히 제 어깨에 손을 올려주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개인적 관점 : 레이의 논문 중에 표현된
이 수녀의 말 “ 내가 기억하는 한, 나를 안아주거나 따뜻하게 품어준 사람이 없었다” 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 표현은
실제로 아기에게 신체적 애정 표현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부모나 양육자가 정서적으로 매우 냉담하거나,
신체 접촉을 불편해하거나, 아이를 거의 돌보지 않는 환경 등이 있으니까요.
사례 # : 3
나는 또한 고통받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하는 것,
사랑을 표현했는데 그 사랑이 거부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삶에서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보람 있고, 가슴 뛰며, 놀라운 도전이 될 수도 있다.
그날 저녁 집단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고,
대화의 주제는 자살이었다.
대부분의 집단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살아오면서 한 번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한 순간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40대 초반의 집단원 패트릭이 단 한 문장을 말했다.
“저는 아직도 그렇습니다.”
집단은 충격을 받았다.
패트릭은 집단원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신부였다.
* (일반인 집단 치료에 성직자가 참여한 상황으로 보임)
집단원들이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패트릭은
자신이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데 지쳐 있었다.
정작 자신이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댈 어깨도 없었고, 약한 모습을 보여도 될 사람도 없었다.
집단원들은 말로 지지를 표현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패트릭은 고마움이 담긴 슬픈 미소로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단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깊은 외로움과 삶의 무의미함을 떨쳐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는 드물게도 집단이 상호작용의 ‘내용’ 만으로는 더 이상 다룰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했다.
그때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루어졌다.
티나: 왜 죽고 싶어 할까요?
그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정말 많잖아요.
할 수 있는 일도 정말 많고요.
조: 저는 그가 너무나 그리울 거예요.
제인: 무슨 일이든 나를 힘들게 할 때,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도,
그가 여기 있다는 사실만 알면 곧 괜찮아졌어요.
티나: 우리 모두 그를 정말 많이 사랑했어요.
리즈: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제대로 말해준 적이 없어요.
치료자 (레이 박사) : 리즈, 만약 기적처럼 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어요?
리즈: (울면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네, 말할 거예요.
치료자: 한번 해보세요.
리즈는 패트릭 곁에 무릎을 꿇고 그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흔들어주면서 울며 계속해서 말했다.
“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패트릭……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
그 순간 나는 조명의 밝기를 조금씩 높이기 시작했고,
다시 사람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패트릭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눈은 크게 뜨여 있었고 눈물이 맺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울면서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 그들이 나를 사랑해…… 그들이 나를 사랑해……
내가 이렇게 만들었어.
내가 이렇게 만들었어…….”
앞의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폴이라는 젊은 남자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매우 총명했지만 다소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폴은 몇 달 동안 이 집단에 참여하고 있었고,
모두가 그를 존중했지만 그와 다른 집단원들 사이에는 가까운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패트릭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폴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를 안아주었다.
집단원들은 상당히 놀랐다.
그런 행동은 평소의 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은 한동안 패트릭을 꼭 안고 있다가 우리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랫동안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어요.”
잠시 침묵한 뒤 그는 덧붙였다.
“ 살면서 처음으로 남자를 안아봤어요.
그런데 정말 괜찮은 기분이네요. ”
사례 # : 4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 가운데 하나는,
어떤 사람은 너무나 큰 상처와 고통을 겪고 있어서 자기 안으로 깊이 움츠러들고,
그때는 어떤 지지나 사랑의 표현도 그 무감각함을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고통의 강도가 너무나 커서 더욱 그렇다.
진부한 표현을 사용할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사람은 먼저 자기 안의 고통이라는 악마를 스스로 끌어안고, 느끼고,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다른 사람이 보내는 어떤 형태의 지지에도 반응하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말로 표현되는 지지든, 말이 아닌 방식으로 표현되는 지지든 마찬가지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 낸시다.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심리치료사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가슴 아픈 기억 가운데 하나다.
낸시는 매력적인 42세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운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이른 죽음을 이겨내고,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동생을 키웠으며, 스스로 대학과 대학원까지 공부했다.
그녀는 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매우 불행한 세월을 보냈고,
이 사건이 일어난 집단 회기 직전에 그와 이혼했다.
낸시는 몇 달 동안 이 집단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기에 평소와 달리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집단실에는 의자가 없었고, 바닥에는 편안한 쿠션들이 놓여 있었다.
몇 마디 피상적인 대화가 오간 뒤, 한 집단원이 낸시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낸시는 아주 무덤덤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 의사 두 명을 찾아갔는데,
두 분 모두 유방에 종양이 있다고 진단했고 양쪽 유방절제술을 권했어요.”
집단은 충격에 빠졌다.
몇 분간 침묵이 흐른 뒤, 따뜻한 위로와 걱정, 슬픔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낸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침묵한 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낸시의 침묵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 때로는 상처가 너무 커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
그러자 집단은 다시 조용해졌다.
몇 분이 지나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 무서운 일을 겪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답답하고 괴로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언제든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 각자가 어떤 생각과 상상을 하고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
하지만 내 말도 침묵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얼마 후 나는 집단 전체가 점점 더 깊은 우울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단순히 집단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어떤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때 다음과 같은 상호작용이 이루어졌다.
치료자: 낸시, 인생은 때때로 페넬로페의 베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율리시스와 페넬로페의 전설을 기억하나요?
율리시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갔고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러자 구혼자들이 페넬로페에게 결혼하자고 했지요.
페넬로페는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짜고 있는 베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낮에는 베를 짜고, 밤이 되면 일어나 그날 짠 것을 다시 풀어버렸어요.
당신은 학교를 마치기 위해 정말 죽을힘을 다했고,
어린 여동생을 키웠고, 남편이 수년 동안 당신에게 해온 온갖 힘든 일을 견뎌냈어요.
이제야 앞이 보이기 시작하고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런 일이 닥친 거예요.
낸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
: 이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의 오랜 43년간의 임상 경험을 중심에 두면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치료적 접촉, 인간중심치료, 사이코드라마, 모레노, 심리치료 통합, 등등의
치료자의 임상적 판단에 관한 문헌을 함께 참고하여 경험을 성찰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