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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와의 해후
1952년 6월 10일에 부산에서 김천으로 전근을 가니 쓸쓸하기 한이 없었다. 부산교회는 사람이 너무 많아 고생이 되어 김천으로 왔는데, 여기는 반대로 사람 만나기가 어려웠다. 세상은 참 고르지도 못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울적해서 상주나 방문해 보자 하고 나섰다.
상주에는 김헌 씨와 전민자 씨 등 몇 명의 신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상주 인구는 5만이라는데 우리 교인은 겨우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런 도시의 영혼들의 구원이 내게 달렸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 살피니 높은 산이 중앙에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 산 이름을 물었더니 왕산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상주 시가를 내려다보았다. 상주는 큰 도시였다.
“아! 이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 있단 말인가. 이 도시 안에 분명히 주의 백성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조용한 산상 숲속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아버지, 이 도성에 택함을 받은 백성이 분명히 있을 줄 압니다. 이 상주에 교회가 꼭 있어야 되겠아오니 오늘 이곳에 교회를 허락해 주십시오. 오늘 드리는 이 기도가 주님의 뜻이오면, 주님 응답해 주십시오. 아멘.”
이렇게 기도하고 고개를 드니, 내 뒤에서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내 머리에서 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렇게 하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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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다!” 하고 김헌 씨 댁으로 가서 “김 형님, 상주에 예배당 하나 세우지 않으시렵니까?” 하고 마치 예배당 지을 돈이나 한 짐 지고 온 듯이 물었다.
김헌 씨가 나의 묻는 말에 “암만요. 세워야지요”라고 대꾸했다.
“상주에 예배당 될 만한 집 하나 살 곳이 없습니까?”
“아, 왜 없습니까?” 김헌 씨는 정말 내가 돈이라도 꼭 가져 온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있으면 가 봅시다.”
나는 김헌 씨를 따라나섰다. 따라가 보니 25평쯤 되어 보이는 집인데, 우선 교회 주택으로 쓰일 만한 건물이었다. 30만 원쯤이면 살 수가 있다고 했다.
“김 선생님, 대구의 김관호 씨 잘 아시지요?”
“압니다.”
“그러시면 내일 모레 안식일에 김 전도사에게 가셔서 연금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을 하십시오. 지금 대구에는 피난민들이 많이 와서 우리 교인들이 돈을 벌고 있으니 틀림없이 연금이 나올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김헌 씨는, 내가 돈이라도 가져 와서 이야기를 꺼내는가 기대했다가 좀 실망하는 기색이다. 그러나 그는 쾌히 응낙하고 그날 자기 부인을 대구로 보내어 김관호 전도사에게 호소하였다. 김 전도사가 이 호소에 흔연히 응낙하여 연금을 거두니 더도 아니요 덜도 아닌 꼭 30만원이 나왔다. 이 연금으로 상주 예배당을 세우고 내가 전도회를 열어 새로운 주의 백성들을 얻기 시작하였다.
상주교회는 이와 같이 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상주에 나는 1960년 11월 24일에 도착하였다. 상주역에는 이창근 씨 부부가 나와 있었다. 첫 화요일 예배에 대여섯 명이 출석하였고, 금요일에 10여 명, 안식일에 세어 보니 꼭 19명이 참석하였다.
신자가 약 40명 된다는데 반밖에 나오질 않았으니 그날 오후에 즉시 심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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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하였다. 심방하는 집 거반이 빈민촌의 할머니 부인들이었다. 사연을 물어보았더니, 그 당시 교회를 통해서 밀가루가 구호 양곡으로 나왔는데, 며느리들이 집안에서 소일하고 있는 시어머니들을 교회에 내보내어 구호 양곡을 타게 한다는 것이었다. 밀가루를 타기 위해서 나오는 신자들이 교회의 구성원이니 부흥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꿈 같은 이야기이다.
아! 하나님께서 할 일이 있어 나를 부리시기 위해 상주에 보내셨구나 하고 나는 다시 용기를 내었다.
이 당시 영남대회 사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한담을 하면, “영남대회 안에서 도시 이름에 주(州) 자(字)가 붙은 곳에서는 교회가 발전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하기도 하여, 내가 “그런 말은 정감록쟁이들이나 하는 말이지 주(州) 자(字) 붙었다고 교회가 안 되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라고 일축한 일도 있다. 과연 주(州) 자(字)가 붙은 상주(尙州)에 와 보니 육신의 안목으로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나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단시일 내에 교회를 부흥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회에 쫓아갔다.
나는 대회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정 목사님, 저를 상주로 보냈으니 일을 시키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람 여나믄 명 데리고 십일금이나 먹고 있을까요?”
“반 목사, 소신껏 일을 해보시오.”
“그럼 전도회를 할 터이니 전도 비용 좀 주시겠습니까?”
“반 목사도 행정위원이니 의논해 봅시다.” 대회장의 주선으로 임시 행정위원회를 열더니 전도비로 5만 원을 주었다. 도와 줄 사람을 요청하였더니 정남석 전도사를 보내마 허락을 하였다.
상주교회 몇몇 신자들과 정남석 씨 부부의 도움을 받아 15일간의 전도회를 열고 외쳤으나 이 전도회로 꼭 한 명의 영혼밖에 얻지 못하였다.
전도회를 마치고 그 사람의 집을 찾아가니, 그는 방천 위에 세운 조그마한 판자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방안에 가득 차 있고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여인은 전도회가 시작하는 날부터 하루도 빠지는 일 없이 전도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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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하였다. 이름은 차을분이라 하였고 나이는 38세라고 하였다. 전도회 비용이 5만 원 들었는데 이 부인 한 명 얻었으니 5만 원짜리 신자인 셈이다. 차을분 씨는 전도회 끝난 다음날부터 계속 우리 집엘 찾아왔다. 성경을 배우는데 대단한 열심을 보였다.
하루는 차을분 씨가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왔다. 이 할머니는 20년간 천주교회에 다닌 천주교 신도로서, 나이는 65세요 이름을 문순희라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을 앉혀 놓고 매일 성경을 가르치는데, 이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서 굉장히 이해가 빨랐다. 3일 만에 안식일 문제를 깨닫고 안식일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1961년 2월 5일로 기억이 된다. 이 날도 차을분 씨와 문순희 씨 두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특별한 이야기도 없고 해서 나는 나대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문득 내 주의를 끌었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눈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문 : “어제 이 요안나를 만났지.”
차 : “전도를 좀 해보시지요.”
문 : “해보았지.”
차 : “뭐랍디까?”
문 : “당신이 뭘 안다고 나에게 전도를 합니까라고 하잖아?”
차 : “그 선생이 우리 교회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 : “그러게 말이야. 그 사람은 8개국 말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요안나가 끝말에, 나를 기구(祈求)해 달라고 하더라.”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귓전으로 듣다가 기구해 달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뒤로 돌리며 두 사람의 대화에 뛰어들었다. “그 사람이 어디 사는 사람이며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상주에 사는 천주교 수녀입니다.”
“그럼, 그 선생님 좀 만날 수 있을까요?”
“글세, 만날 수야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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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투가 좀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럼 오늘 나와 같이 그 선생님 만나러 갑시다.” 그러나 나의 이 제의에 두 사람은 좋다고 선뜻 나서질 않았다. 저들은 그 수녀를 만나서 이야기하기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이 때 마침 허소상 씨라는 여신도가 들어왔다.
우리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더니 허소상 씨가, 어디를 가기에 못 간다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제가 이 요안나 수녀를 잘 아니까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저와 같이 갑시다”라고 제의했다.
허소상 씨를 따라 집 밖으로 나오니 그날 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받고 따라가는데 여러 생각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천주교인 만났어야 욕만 얻어먹었고 성공해 본 일이 없는데 오늘도 가서 욕만 얻어먹고 오는 것이 아닌가.’ 이러게 생각하면서 “허소상 씨, 오늘 가서 뭐라고 말을 붙이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뭐라고 특별히 말할 것 있나요? 목사님 모시고 왔다고 하지요.”
“좋습니다.”
얼마를 걸어서 큰 대문 앞에 섰다. 그 집은 천주교회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허소상 씨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으로 안을 보니 검정 옷을 입은 중년 여자가 나오면서 허소상 씨를 반겼다. “아이구, 어쩐 일로 허소상 씨가 오늘 우리 집엘 다 왔소. 어서 들어오시오. 웬 비가 이렇게 내리는지.”
“저 혼자 오지 않고 우리 교회 목사님이 좀 만나 뵈었으면 해서 모시고 왔습니다.” 허소상 씨가 뒤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말하였다. 이 말을 듣자 그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교회 목사든지 열교(裂敎) 목사를 내가 왜 만납니까? 어서 썩 물러가시오.”
안에서 옥신 각신 하며 떠드는 소리를 듣다가 나는 우산으로 앞을 가리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우산으로 앞을 가렸으니 내 얼굴이 보일 리가 없어서, 내가 그의 서 있는 마루 가까이 가기까지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도 일개 시민이 원하면 만날 수 있는 이 민주주의 시대에 자기가 무엇이관대 이렇게 우중(雨中)에 온 나를 만나 보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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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라는 오기도 내 마음속에 작용하고 있었다.
그의 코 밑에서 우산을 접으면서 나는 “실례합니다. 이렇게 불문 곡직하고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하고, 마치 나를 들어오라고 하기라도 한 것처럼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서니 당황하는 기색이다.
“우리 집은 아직 이불도 개지 않았습니다.”
“요사이 연탄 때는 집은 다 이불 펴놓고 살지요. 우리 집도 이불을 펴놓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 들어서니 그는 할 수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하였다. 내가 방에 앉자 수녀의 얼굴이 발개지더니 나더러 천주교를 믿으라고 권하면서 천주교가 옳다는 것을 횡설 수설 흥분하여 이야기하기를 아마 30분이나 퍼부었을까. 차차 말 소리가 낮아지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뜸해지듯 하더니 이윽고 끊기고 말았다.
그 때까지 죽치고 묵묵히 앉아 있다가 나는 머리를 들면서 “선생님, 말씀 다 하셨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 선생님, 오늘 저를 오해한 것 같습니다.”
“무엇을 오해했단 말이오?”
“이 선생님, 저는 전도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상주에 8개 국어를 구사하는 분이 있다 하기로 남자냐 여자냐 하니 여자라 하므로, 우리 나라에도 이런 천재가 있나 하여 사실일까 하고 한 번 면회차 온 것입니다. 선생님, 8개 국어를 한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화가 났던 수녀의 얼굴에 갑자기 화기가 돌기 시작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방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밖에 나가 한동안 있더니 커피를 끓여 가지고 들어왔다. 이제까지 나를 원수같이 대하던 분이 금시 태도가 달라졌다.
“실례지만, 8개국 말 중에 고등학교 이상 가르칠 수 있는 외국어는 몇 나라 말이나 됩니까?”
“중국어, 영어, 불어, 일어, 이 4개 국어는 대학 과정이라도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 외국에도 많이 다니셨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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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일본에도 있었고, 중국에서도 북경대학을 나오고, 이태리에서는 수녀대학을 나온 후 만주 하얼삔에 있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했습니다.“
“선생님, 아주 훌륭하십니다. 또 교회도 세계에서 제일 좋은 교회를 나가시고요.” 이 말이 떨어지자 그의 입에서는 너털웃음이 나왔다.
“선생님, 하나 묻겠습니다. 천주교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엇인데요?”
“알고 계신 줄 압니다만, 천주교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은 그 교회에서 번역한 성경이지요. 선생님, 그 성경 좀 구경할 수 있습니까? 그 성경 가지고 계시지요?”
“예, 있습니다.”
수녀가 들어가서 한동안 있다가 성경 한 권을 들고 나왔다. 그 책을 찾느라고 아마 사방을 뒤진 것 같았다. 그녀가 들고 나온 성경을 받으면서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성경은 꼭 원문대로 된 성경입니다. 선생님, 이 성경 좀 공부할 의사가 없습니까?”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라도 읽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가 하나 물어 볼 터이니 대답해 보시겠습니까?”
“물으시오.”
나는 성경을 펴서 요한계시록 7장 1절을 읽기 시작했다.
“여기 보면 ‘네 천사가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는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글세, 그것에 무슨 별 뜻이 있습니까? 부는 바람을 잡는 것이지요.”
“선생님, 그럴 리가 있습니까? 거기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성경 공부입니다. 또 하나 묻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절에는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그랬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이 말이 이상해서 천주교 박사 신부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의 말이,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서 배울 책이 아니라 천국에 가서 배울 책이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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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그런 질문은 하지 마시오.”
“성경 책은 이 세상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 천국에 가서야 성경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
그는 내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듯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나와 이 성경을 연구합시다.”
“글쎄요. 시간이 없어요.”
“선생님, 하루에 5분도 못 내시겠습니까?”
“5분 동안에 무슨 공부를 합니까?”
“선생님이 초등학교 학생입니까? 선생님은 대학을 몇 개나 나오신 분이니까 제가 힌트만 드려도 벌써 무슨 말인지 아실 텐데요.”
“생각을 해보니 안 되겠습니다. 내가 만일 안식일교 목사에게 성경을 배우면 내가 안식일교로 넘어가야 되지 않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안식일교 목사에게 성경 좀 배운다고 해서 30년이나 믿던 종교를 옮길 수야 있습니까? 그런 말씀은 두 번도 마시고 성경이나 배웁시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성경을 배우시면 천주교회에서 써 먹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배워 볼까.” 망설인 끝에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수녀가 대답하였다.
“그러면 제가 내일 아침 9시 55분에 올 테니 10시부터 공부를 시작합시다.”
이튿날 나는 고우석 씨를 데리고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갔다. 그러나 사단이 밤 사이에 그냥 둘 리가 없었다.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식일교 목사와 공부를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오해를 하시네요. 안식일교를 공부합니까? 선생님 가지신 그 성경을 배우니 오히려 천주교를 배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염려 마시고 공부나 합시다.”
나는 망설이는 그를 앉히고 간단히 기도를 드린 다음에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생각한 것이었지만, 오늘 즉시 성패를 가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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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으로 다니엘서 7장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예언도를 펼쳐 보이면서 7장 1절에 나오는 사자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분은 바벨론 역사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자기는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이런 사실이 성경에 예언된 줄은 처음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짐승 곰, 즉 메대와 바사에 대해서 설명하니 그는 감탄을 발하였다. 셋째 짐승 표범, 헬라에 대한 역사도 그가 잘 알고 있어 나는 점점 신명이 났다. 넷째 무서운 짐승, 로마에 대한 설명도 아주 기쁘게 받았다. 그는 이 넷째 짐승까지 다 긍정을 했다.
이 열 뿔 중의 작은 뿔을 설명하니 그가 깜짝 놀라면서 “이 흉악한 짐승이 우리 교황님이란 말이오?” 하고 반문하였다.
“선생님, 서양사를 전공하셨다는데 이 사실은 역사에서 다 배우시지 않았습니까?”
“아니오, 교황 역사는 그게 아닙니다. 1대 교황은 베드로올시다.”
“역사 안 배운 무식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배우신 선생님이 그런 말씀 하시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선생님, 하나 물어 봅시다. 기원 300년 전의 가톨릭 역사가 있다면 한 번 내놓아 보시지요.”
“없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300년을 살았다는 말입니까? 베드로는 90년경에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은 사실이 나옵니다.”
“…?”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나 더 물어봅시다. 중세기에 수천만 명의 기독교인 학살은 누가 저지른 역사입니까?”
“악당들이지요.”
“그 악당이 누구입니까? 좀 대시오. 불난 집에서 ‘불이야’ 하는 것 아시지요?” 이렇게 말을 하자 수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대답이 없다. 5분씩만 공부한다고 하였는데 첫날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동안 재미있게 공부하고 간단히 기도한 후 기쁨으로 돌아왔다.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수녀는 성경이 예언한 기이한 사실과 성취를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부터 그 수녀는 닫힌 마음을 차츰 열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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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으며,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천주교의 교리와 사상에 젖은 수녀에게 성경의 참 진리를 소개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이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안목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체험하였다.
이튿날 다시 고우석 씨와 함께 9시 55분에 갔더니 수녀는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 정중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위해 기구해 달라”던 요청은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있었다.
이 날은 요한계시록 13장을 가르쳤다. 수녀의 태도도 이 날은 함구하여 듣는 데만 열심이었고, 그 예언의 적확성(的確性)에 경탄해 마지 않았다.
방안 한편을 보니 하얀 석고로 예수의 상, 마리아의 상, 혹은 여러 상(像)들이 가득히 진열되어 있는데, 분명 이 수녀가 거기 절하는 듯했다. 이 우상들을 압수해야지 하고 결심했다. 이튿날 공부를 마치고 제일 작은 예수의 상을 집으며 말하기를 “이것 나 주시오”라고 요청하였더니 “가지시오” 했다. 다시 큰 예수 상을 집으며 “이것 나 주시오” 하니 “가지시오” 했다. 마리아 상을 집으며 또 달라 하니 달라는 대로 다 주었다.
예수의 상과 마리아 상은 키 높이가 두 자 반이나 되는 것이다. 이것을 그냥 들고 나오니 큰 보를 주어 이들을 싸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달음질 치듯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아내에게 잠깐 밖으로 나가 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고우석 씨와 함께 보자기를 풀고 이 “성물”들을 꺼내어 놓고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참으로 기뻤다. 하나님의 단순한 복음의 위대한 힘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 가서 성경을 가르치고 나니 “어떻게 해야 나도 안식일을 지킵니까?” 하고 물었다.
“집에서 그 날 일하지 않고 쉬면 됩니다.”
“교회 나가면 안 됩니까?”
“나와도 되지요.”
여섯 번째 공부를 마친 그 주(週) 안식일에 그가 드디어 우리 교회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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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했다. 그리고 참석한 그 자리에서 얼마나 우는지, “내가 오랫동안 길 잘못 들어 내 신세를 망쳤다”고 목을 놓고 울었다. 지나간 그 헛된 세월들이 무척 슬펐던지 그 수녀는 계속하여 울고 또 울었다. 예배당 안이 모두 눈물 바다가 되었다. 온 교인이 함께 울었다.
1961년 5월 27일, 수녀 이상복 씨는 다른 침례 후보자 17명과 함께 침례를 받고 재림교회에 입교하였다. 천주교회 부속 수녀원을 설립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일하던 중에 나를 만나게 되어 재림 신앙을 받아들였으니, 이 요안나, 아니 이상복 씨의 나이 54세 때의 일이다.
이 때부터 천주교회에서 10여 명이 나오고, 상주에 온 지 1년도 못 되어 30평 되는 예배당에 사람들이 차고 넘쳐 영남대회 안에서 손꼽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상주교회가 부흥하니 상주 인근의 여러 교회들이 함께 발전했다.
사역자와 평신도가 함께 일할 때 놀라운 영혼의 수확을 하나님께서 주심을 나는 깨달았다. 나 홀로 뛰었다면 그다지 큰 결과를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무리 사역자가 날고 기어도 상주의 고우석 씨 같은 신실한 평신도 청년이 없었던들 단시일에 그런 많은 사람을 인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는데, 이 때에 아론과 홀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 올리지 않았으면 이스라엘은 실패하였을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평신도 없이 사역자 홀로 설 수 없고, 사역자 없이 교회가 설 수 없다. 요한계시록의 14만 4천 명은 완전히 연합된 무리들이다. 오늘날 사단은 온 세계를 한끈에 묶는 일치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몇 사람만 모여도 분쟁이 일어나니 어찌 아니 한심한 일인가! 사역자와 평신도의 완전한 일치 단결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의 마지막 사업은 결단코 마칠 수가 없다.
이상복 씨는 내가 상주를 떠나서 광주로 갈 때에 함께 상주를 떠났다. 그리고 호남삼육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천주교에서 어떻게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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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는지 광주까지 찾아와서 그에게 돌이키도록 권했으나 그는 끝까지 진리에 굳게 서서 요동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