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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이상한 인질 교환 (6)
- 5개국 연합군 침공!
이러한 소식은 즉각 정(鄭)나라에 전해졌다.
당시의 전투부대는 크게 3개의 형태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나는 전차군단이라고 할 수 있는 병차부대요, 또 하나는 보병이라 불리는 갑사(甲士), 다른 하나는 오늘날의 화포부대인 궁병대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중 그 나라의 군세를 가늠하는 잣대는 병차였다.
병차는 융차(戎車)라고도 하였다.
병차를 전쟁의 주요수단으로 이용한 사람은 주나라의 태공망(太公望)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전에도 병차는 있었지만 운송 수단으로 사용되다가 태공망에 의해 처음으로 전술 전략면으로 이용되었다. 주(周)나라가 은왕조를 무너뜨린 것도 이 병차부대의 활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병차를 세는 단위는 승(乘).
1승은 곧 한 대의 병차를 가리킨다.
병차 위에는 모두 세람이 탄다. 가운데는 제후나 장수가 타고, 왼쪽에는 수레를 모는 마부, 그리로 오른쪽에는 제후나 장수를 보필하는 보좌관이 앉아 적과 싸운다.
아울러 병차마다 따로이 전투병들이 소속되어 있는데, 대체로 병차 1승(乘)에 70명에서 1백명의 병사들이 뒤따른다. 이들은 물론 갑사(甲士)라 불리는 보병과는 별개의 병사들이다.
천승국(千乘國), 혹은 만승국(萬乘國)이라는 말이 있다.
천 대의 병차, 혹은 만 대의 병차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라는 뜻을, 그 정도의 군사력을 가진 대국(大國)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
제후시대 중후기에는 1천 대 이상의 병차를 보유해야 강국으로 행세하지만, 이 시기만 하더라도 한 나라에 2백에서 5백의 병차를 가지고 있어도 상당한 강국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해, 위(衛)나라의 주도로 형성된 송(宋), 노(魯), 진(陳), 채(蔡) 등 다섯 연합국의 병력은 병차만해도 1천3백승 - 병차 한 대당 70명으로 계산해도 9만여명의 병력이다.
게다가 따로이 보병인 갑사(甲士)까지 보태면 어머어마한 병력이 아닐 수 없다.
이 무렵 정(鄭)나라의 병력은 넉넉하게 잡아도 병차 5백승. 연합군의 3분의 1 병력밖에 되지 않았다.
- 건국 최대의 위기!
정(鄭)나라는 발칵 뒤집혔다.
모두들 사색이 된 채 어찌할 줄 몰랐다.
"일단 신정을 내주고 피신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보다는 사자를 보내어 화평을 청하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오."
제각각 의견을 내세웠다. 일부 백성들은 벌써부터 짐을 꾸려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두려운 빛을 띠어야 할 정장공(鄭莊公)은 껄껄껄 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무리 정장공이 천고의 효웅(梟雄)이라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별 뾰족한 수가 없으리라.'
이렇게 판단한 신하들은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는 정장공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5개국 연합군이 태산 같은 파도로 우리 정나라를 덮쳐오고 있는 이 마당에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웃음을 터뜨리고 계십니까?"
신하들의 이 같은 말에 정장공(鄭莊公)은 다시 한 번 크게 웃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
"저들이 비록 연합하여 우리 정(鄭)나라를 치려 하고 있으나, 그 근본적인 까닭을 알아보면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것은 주우가 형을 죽이고 군위를 찬탈하였으나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네 나라의 군사를 빌려 자기네 백성들의 관심을 딴곳으로 돌리려는 수작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하오나 송(宋)나라나 노(魯), 진(陳), 채(蔡) 등도 군사를 내어 쳐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신하들은 여전히 걱정하는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정장공(鄭莊公)은 그러한 물음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또한 이유를 살펴보면 간단하다. 우선 노(魯)나라는 공자 휘가 뇌물을 탐하여 주공에겐 알리지도 않고 제맘대로 군사를 거느리고 왔을뿐이다.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싸울 리 없다. 그리고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역시 위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일뿐, 악착같이 싸워 우리 정나라와 원수를 맺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들은 총병력에서 제외해도 무방하다."
"..............................."
"다만 송(宋)나라가 문제인데, 그들이 이번 연합에 가담한 이유는 공자 풍(馮)이 우리나라에 망명해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자 풍(馮)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 걱정 마라. 나는 공자 풍(馮)을 추방하는 척 장갈(長葛)로 빼돌릴 것이다. 그러면 송나라 군사는 공자 풍(馮)을 쫓아 장갈로 옮겨갈 것이 틀림없다.
"그때를 기다려 성문을 열고 나가 싸우되 곧 패한 체 달아난다. 그러면 주우는 싸움에 이겼다는 명분을 세울 수 있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 되므로 이내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주우는 간특한 자이지만 정치를 아는 자이다. 본국이 안정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밖에 나와 있을 리 없다. 장차의 일이 이러한 데도 그대들은 계속 피신 운운할 것인가."
정장공(鄭莊公)의 폭포수와도 같은 웅변과 한 치의 틈도 없는 계책에 신하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주공의 신기묘산(神技妙算)은 귀신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5개국 연합군이 신정 50리 밖에 당도하여 진을 치고 있는 동안 정장공(鄭莊公)은 내부의 불안을 수습하고 계책을 실행에 옮겼다.
- 대부 하숙영(瑕叔盈)은 일지병을 거느리고 공자 풍(馮)을 장갈로 호송하라.
송나라가 추격해도 결코 맞서 싸우지 마라.
- 대부 영고숙(潁考叔)은 송나라 진채 앞으로 나가 공자 풍(馮)이 이미 장갈로 도망갔다고 알려라.
이어 말 잘하는 군사를 각각 노나라와 진, 채나라의 진채로 보내어 정나라 공격의 무익함을 설명해 주었다.
모든 것이 정장공(鄭莊公)의 계산대로 돌아갔다.
송상공은 공자 풍(馮)이 장갈로 도주했다는 영고숙의 말을 듣고 군사를 돌려 그 뒤를 추격했고, 노, 진, 채 세 나라 군사는 송병(宋兵)이 떠나가 버리는 것을 보자 싸울 의욕을 잃고 씨름과 사냥으로 시간을 보내는 형편이 되었다.
'바로 지금이다.'
정장공(鄭莊公)은 성루에 올라 적의 진채를 살피다가 공자 여(呂)를 불렀다.
"너는 병차 50승을 거느리고 나가 위나라 진채를 공격하라. 하지만 결코 이겨서는 안 된다. 적당히 싸우는 척하다가 패하고 돌아오라."
"저들의 군기가 많이 해이해졌습니다. 이 참에 아예 박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공자 여(呂)는 패하고 돌아오라는 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정장공이 정색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결코 이겨서는 안 된다.노, 진, 채 세나라 군사들은 위군(衛軍)이 이기는 것을 보면 움직이지 않겠지만, 만일 지는 것을 보게 되면 위군을 도우러 달려올 것이다. 그러니 너는 싸우는 척하다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공자 여(呂)는 정장공의 뜻을 깨닫고 물러났다.
이윽고 정성(鄭城)의 서문이 열렸다.
공자 여(呂)의 병차가 쏜살같이 위나라 진채를 향해 달려갔다.
정장공(鄭莊公)이 예상한 대로였다.
공자 여(呂)의 군사를 보았지만 노, 진, 채나라 군사들은 누벽에 올라가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했다. 다만 위나라 선봉 석후(石厚)만이 군사를 몰고 나와 공자 여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그 싸움도 싱겁게 끝이 났다.
싸운 지 수 합도 안되어 공자 여(呂)는 병차를 돌려 성문 안으로 달아났다.
석후가 뒤쫓았지만 성문이 닫히는 바람에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다.
석후(石厚)는 병사를 시켜 서문 밖의 곡식들을 모조리 베어 걷어가지고 돌아갔다.
"우리가 정(鄭)나라를 이겼다."
석후의 군사들은 신바람이 났다.
그러할 때 석후의 입에서 뜻하지 않은 명령이 떨어졌다.
- 본국으로 회군한다.
모든 장졸들은 귀를 의심했다.
그들은 주우에게 달려가서 물었다.
"우리 군사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회군령을 내리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주우도 금시 초문이었다.
석후를 불러 물었다.
"승리의 기세를 타 총공격해야 하거늘, 그대는 어째서 회군을 선포했는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좌우를 물리쳐주십시오."
밀담을 하자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석후를 잘 알고 있는 주우(州吁)는 손짓으로 좌우 사람을 물러가게 했다.
"무슨 얘기인가?"
석후(石厚)가 주우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정(鄭)나라는 원래 강국입니다. 더욱이 정장공은 왕실의 경사(卿士)입니다. 오늘 싸움에 우리들이 이겼으니, 이만하면 주공의 위엄을 천하에 떨친 거나 진배없습니다. 이제 주공께서 군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라안도 안정되지 않았는데, 오래도록 외방에 머물러 계시면 국내에 무슨 변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회군을 선포한 것입니다."
석후의 말을 들은 주우(州吁)는 불현듯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싸움은 민심 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공연히 욕심을 부리다가 공실 내부에 변란이라도 생기면 어쩔 것인가.
언제 형나라로 망명한 둘째 형 진(晉)이 귀국하여 정권을 탈취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공자 진(晉)과 주우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대부들이 손을 잡으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우는 자신도 모르게 석후의 손을 잡았다.
"경의 말이 없었더라면 나는 크게 후회할 뻔하였소."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노(魯), 진(陳), 채(蔡) 3국의 장수들이 몰려 들어왔다.
"이번 승전을 축하합니다. 과연 위나라 군대는 뭇 제후들이 두려워할 만 합니다. 아마도 이번 싸움으로 정장공(鄭莊公)의 간이 콩알만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우를 찾아온 진정한 목적은 딴 데 있었다.
"이제 우리는 본국으로 돌아가도 괜찮겠지요?"
주우(州吁)는 세 나라 장수들이 찾아와 한결같이 칭찬하는데다가 그 자신이 회군할 마음이 있었으므로 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귀국들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정성(鄭城)을 에워싼 5개국 연합군의 포위는 풀렸다.
신정을 포위해서 풀기까지 날짜를 헤아리면 불과 닷새.
이 소식을 들은 송상공도 공자 풍(馮)을 사로잡기 위해 장갈로 향하다가 맥이 빠졌음인지 그대로 군대를 돌려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4국의 군사가 모두 떠나가자 주우(州吁)도 석후의 호위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위(衛)나라로 돌아갔다. 위나라 백성들은 거리로 나와 주우와 석후가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이라고 어찌 귀와 눈이 없겠는가?
그들은 속으로 주우와 석후의 어리석은 승리를 비웃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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