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金鍾卨
교수님을 기리며
신동구 (순환기내과)
"사제동행(師弟同行)"이란 주제로 글을 부탁받고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제(弟)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 사제동행(師弟同行)"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스승(師)과 제자(弟)가 함께 간다는 의미로, 이는 스승과 제자가 지식 전달뿐 아니라 인격적인 교류와 상호 성장의 관계를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스승이 제자의 학문적, 인격적 성장을 위해 동행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던 초등학교 류익하, 김재동 선생님, 중학교 시절 정희영, 윤도은 선생님, 고등학교시절 이동기, 김대명, 문영희 선생님 등 여러 은사님들과의 배움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나 또한 나이 들어 스승(師)의 위치에서 그 분들처럼 제자들에게 영감을 준 훌륭한 스승이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기억하고자 하는 교수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것은 2021년 국립중앙의료원에서였습니다. 96세로 영면하신 장례식장이었습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많은 기억을 공유했던 까닭에 더 큰 회한이 밀려 왔습니다. 평소에 했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했던 죄책감으로......
저는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1회 졸업생입니다. 의과대학 강의실도 없었고 수련 받을 수 있는 병원시설도 물론 없던 상태에 입학을 한 것입니다. 학교도 환영해주는 선배도 없는 다소 초라한 입학식에서 긍정적인 위안을 받았다면 바로 입학식날 열정적이시던 교수님을 뵈었던 까닭입니다. 1979년 10·26사태가 발생하면서 당시 학교가 정권과 연관이 있던 터라 한창 신축 중이던 병원 공사가 한참 동안 멈추었습니다. 그때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공사자재 위에 걸터앉아 멈춰버린 공사현장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몇몇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찾지를 못하겠군요. 교수님께서 직접 설계하시고 막 기초공사를 마치고 건물 뼈대 사이를 헬멧을 쓰시고 공사를 직접 지휘하던 열정이 눈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나는 원래 다른 의과대학 동료들이나 선배들처럼 히포크라테스의 의업을 계승하고자 의과대학에 들어간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의과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원래 법학도 지망생이었다가 갑자기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으니 많은 자괴감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리셨던지 교수님은 저를 직접 불러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완성된 영남대학교 병원은 드넓고 높은 로비홀과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최신식 병원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로비가 이렇게 넓고 에스컬레이터가 필요 있느냐고 질책하신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런 점들이 바로 김종설 교수님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셨습니다. 당시에는 최고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좁아 보이지요? 그래서 폭넓은 경험과 견문, 그리고 이를 받치는 열정이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제가 본과학생 때에도 나를 부르실 때 “닥터 신” 하고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만큼 고무적인 말이 있었을까요? 본과 4학년쯤인가요? 특강이 있었습니다. 김종설 교수님의 후배이시고 당시 캐나다에서 의과대학교수로 계시던 이종구 박사님이 오셔서 저희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심전도 강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슬라이드 1장을 보여주시고 제일 앞에 앉아있던 저에게 질문하셨는데 제가 제대로 답을 못하여 영남대학교 의과대학의 위상을 실추시킨 듯 자책감에 크게 당황했었고 교수님께서도 앞에 앉아 계시다가 아쉬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에 관한 슬라이드였습니다. 참고로 김종설 교수님, 이종구 교수님 모두 심장내과이셨습니다. 지금 저는 심장내과를 공부하고 아직도 심방세동을 진료하고 연구하고 있으니 참 기막힌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곁눈질 할 틈도 없이 당연히 내과를 지원하였고 순환기내과를 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교수님의 영향이었습니다. 당시는 내과는 분과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회진을 돌 때면 요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모든 내과의 교수, 전공의, 학생들을 포함해서 20~30명씩 회진을 돌았습니다. 당시에는 요즘과 달리 의사가운이 롱코트여서 병동을 거침없이 다니며 펄럭이는 가운을 보는 회진시간은 멋진 장관이었습니다. 임상에서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심잡음을 들어보라고 일일이 권하시면서 질환에 대해 설명하시는 모습은 움직이는 도서관이셨습니다. 요즘 때로는 의과대학 학생들이나 전공의들은 지식을 찾으러 구글링을 합니다. 요즘은 분과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장관을 찾아보기 힘들지요.
제가 전공의 2년차 때 저의 선친이 돌아가셨습니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장례식장이 보편적이 아니라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보편적인 장례문화였을 때 직접 비좁은 집으로 조문을 오셨던 것도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병원장으로 일개 전공의의 부친상을 찾아 위로를 주셨다는 것은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자상함도 본받을 부분이었지요. 제가 병원장을 하면서도 교수님처럼 그렇게 제자 후배들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존경할 분이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당시에는 내과 신년 하례회를 병원장이셨던 교수님 댁에서 하게 되었는데 아침부터 술잔이 오가다 보니 술을 하지 못했던 저는 술에 취해 교수님의 뒷방에서 잠이 들었을 때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시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덕분에 저는 모임이 끝나고 모두들 다 집으로 돌아간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도 무척 송구스러웠습니다.
장가도 못 갈 놈처럼 보였던지 저에게 인연을 맺어 주시기 위해 중매서기를 자처하셨습니다. 교수님 후배 교수님의 따님이셨는데, 물론 지금의 아내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인연만큼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불교에서는 스승을 선지식(善知識, kalyanamitra)이라고 한다지요? ‘화엄경’에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스승으로서의 선지식의 특징을 비유로 들어, 자애로운 어머니, 보호해 주는 양육자, 피안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인도자, 번뇌의 병을 고쳐 주는 좋은 의사, 밝고 깨끗한 지혜의 약을 키워 주는 설산(雪山), 두려움을 막아주는 용장, 생사의 괴로운 바다를 건너주는 뱃사공과 같은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과연 교수님은 선지식이셨습니다.
이제까지 제(弟)로서 이야기를 하였다면 이제 사(師)로서 이야기를 해볼 까 합니다
제가 과연 앞서 말한 대로 스승으로서 김종설 교수님과 같은 그러한 역할을 하였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스승으로서의 나를 평가하는 일은 앞으로 후배제자들의 일이므로 긴 언급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짧지 않은 지난 30여 년간의 여정을 큰 과오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잘 이끌어 주셨던 선배선생님과 동료, 그리고 후배제자들의 관심과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의학적, 학문적 관심사를 가진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크나 큰 행운이었으며,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이데아 그 자체였으며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장(場)이기도 했습니다
후배제자들과의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일이 있습니다. 제가 은연 중에 내뱉었던 모든 말들이 그게 좋은 말이었던 나쁜 말이었던 모두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때 무척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무쪼록 제가 기억 못하는 허튼 말이었더라도 제자들의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더욱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치 혀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현재의 MZ세대에서의 사제동행은 과거의 사제동행과는 물론 다르겠지요? 사제 간의 관계가 보다 평등하고 상호적인 관계로 변화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승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서 제자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서로 배우며 성장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여겨집니다. 현대 교육에서는 스승이 제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단순히 지식만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이로 인해 사제동행은 권위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스승과 제자가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딥러닝이며 머신러닝, 인공지능 등이 세간의 화제입니다. 우리의 생활전반에서 뿐만 아니라 진료와 연구영역에서도 활발한 최신기술의 개입과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료분야에서도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제 4의 물결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은 이러한 미래의 변화를 현명하게 예측하여서 여러분의 미래가 더욱 발전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가 이러한 변화와 미래에 대한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제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선지식이 될 수 없음을 느꼈기에 교육현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공축신퇴 천지도(功遂身退 天之道)"의 변(辯)이지요.
첫댓글 교수님, 고맙습니다. ‘의료사태’ 등등 하며 요란스러운 요즘, 바쁜 시간 쪼개서 귀한 글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병원 이야기는 또 다른 세계를 보게 됩니다. 더욱이 의과대학 1회이셨다니,..... 귀한 우리 병원 자료이기도 합니다. 또한 원고 청탁 때 말씀드린 대로 날자, 분량, 순서 등을 깔끔하게 맞추어 주신 글입니다. 네, Word를 사용한 첫번째 원고이기도 하네요.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