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유형분야
조선 |
개념 |
예술·체육/국악 |
요약 평조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통음악의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악조이다. 음계, 선율의 특징인 선법, 중심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조 등 세 가지 구성요소와 관련된다. 평조의 음계가 5음 음계임은 고려 시대 이후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오직 선법과 조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천되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쓰인 평조는 오직 선법명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평조가 조명으로도 사용된다. 『양금신보』 4조 중 평조계면조는 조명으로만 쓰였다. 같은 책 4조의 평조는 선법과 조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 악조명이다.
내용
우조(羽調)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사용되는 과정에서 복잡하게 변천되었다.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개념은 악곡의 구성음에 관련된 음계(音階)와 음계 안에 나열된 음들의 상호관계에 의한 선율의 특징을 나타내는 선법(旋法)이다. 그리고 선법에 나타난 중심음의 높낮이와 관련된 조(調) 등 세 가지 음악적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음계 · 선법 · 조의 세 가지 구성요소 중 선법과 조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평조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평조의 음계가 5음 음계임은 고려시대 이후 지금까지 변천되지 않았으며, 오직 선법과 조 개념이 변천되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쓰인 평조라는 악조는 오직 선율의 특징을 나타내는 선법명으로만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평조는 선법명과 조명으로 사용되는 변천과정을 거쳤다.
평조라는 악조는 통일신라 때 거문고음악에서 우조와 함께 쓰였고, 삼죽(三竹)의 음악에서도 다른 악조와 함께 사용되었다. 거문고나 삼죽의 평조가 어떠한 음악적 특징을 지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평조가 거문고음악에서 쓰인 점으로 보아서 우리나라의 악조로 추정될 수 있지만, 삼죽의 음악에서 평조가 월조(越調) · 반섭조(般涉調) · 황종조(黃鐘調) 이상의 세 당악(唐樂)의 악조와 같이 쓰여 의심스럽다.
평조라는 악조명이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와 『대악후보(大樂後譜)』에 전하는 고려향악곡에서 쓰인 점으로 보아서, 고려향악에서 쓰였음이 확실하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향악에 쓰인 평조는 모두 5음 음계로 되었고, 선법명으로 사용되었다.
선법명으로서의 평조는 『세조실록』 권48과 『악학궤범』 권1에 중국음악이론의 5조 중 치조(徵調)와 같다고 설명되었다. 선법의 뜻으로 쓰인 평조의 실례는 『세조실록』 권48에서 설명된 임종척자(林鐘尺字)평조라는 것과 『악학궤범』 권7 거문고 · 가얏고 · 향비파의 산형(散形)에서 설명된 낙시조(樂時調)평조와 우조평조이다. 평조의 선법이 중국 5조의 치조에 비교되었듯이 그것은 서양음악의 계명으로 부른다면 솔 선법 또는 도 선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 선법명으로만 사용된 평조가 임진왜란 이후 중심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조명으로도 사용되었다. 1610년의 『양금신보(梁琴新譜)』 4조 중 평조계면조(平調界面調)가 조명으로만 쓰인 평조의 실례이다.
한편 『양금신보』 4조의 평조는 선법과 조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 악조명으로 사용된 실례이다. 『양금신보』의 평조계면조나 평조는 모두 임종(林鐘)을 중심음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므로, 평조라는 악조는 『악학궤범』의 7조 중 삼지(三指)에 해당하는 임종궁(林鐘宮)의 조명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임종이 솔 황종 도
조명으로만 쓰인 평조, 또는 선법명과 조명으로 쓰인 평조가 현행 가곡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예지(遊藝志)』의 가곡 중에서 평우조(平羽調) 또는 평계조(平界調)의 평조, 그리고 『청구영언』이나 『해동가요』에 나타난 평조의 곡태(曲態) 설명으로 보아서 조선 말기까지 가곡에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오늘날 평조라는 명칭이 판소리나 산조(散調) 등의 민속악에서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가곡의 평조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이상 평조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정리하면 〈표〉와 같다.
시대(세기)통일신라 (7~10)고 려 (10~14)조선전기 (15~17)조선후기 (17~19)평조선명법조명
○(?) | ○ | ○ | ○ |
×(?) | × | × | ○ |
#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세조실록(世祖實錄)』 - 『악학궤범(樂學軌範)』 -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 『양금신보(梁琴新譜)』 - 『청구영언(靑丘永言)』 - 『유예지(遊藝志)』 - 『해동가요(海東歌謠)』 - 『한국음악연구』(이혜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낙시조樂時調
시대창작/발표시기성격유형분야
조선 |
조선 초기 |
음악용어 |
작품 |
예술·체육/국악 |
요약 조선시대 향악 악조(樂調)의 이론적 설명에 쓰인 음악용어의 하나.
내용
조선시대 향악 악조(樂調)의 이론적 설명에 쓰인 음악용어의 하나.
‘좌조(左調)’라고도 한다. 개념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조금씩 바뀌었다. 본래 낙시조는 조선 초기 어느 악조에서 쓰인 기본음 또는 중심음의 높낮이를 표시하는 조명(調名)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한때 평조(平調)와 같은 의미의 선법명(旋法名)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조선 초기 세종 때 박연(朴堧)이 올린 상소에 의하면, “향악에서 쓰인 악률인 낙시조는 중려 또는 임종 두 가지를 중심음인 궁으로 번갈아 사용한다(但鄕樂所用之律 則樂時調互用仲呂林鐘二律之宮).”라고 하였듯이, 원래 어느 악조에서 쓰인 중려·임종 두 중심음의 높이를 표시하는 조명으로 쓰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종 때 이르러 더욱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협종(夾鐘)에서 남려(南呂) 사이의 어느 음을 중심음으로 삼는 악조의 총칭으로 사용되었다. 즉, 협종이나 고선(姑洗)을 궁으로 삼은 일지(一指), 중려나 유빈(蕤賓)을 궁으로 삼은 이지(二指), 임종을 궁으로 삼은 삼지(三指), 그리고 이칙(夷則)이나 남려를 궁으로 삼은 횡지(橫指) 등 네 가지 조의 총칭으로 쓰였다.
성종 때 낙시조라는 명칭은 향악의 칠조(七調) 중 높은 음을 중심으로 하는 횡지·우조(羽調)·팔조(八調)·막조(邈調)의 네 가지 조를 모두 부르는 우조의 대칭어로 사용되었다. 당시에 낙시조라는 조명은 낙시조평조 또는 낙시조계면조(樂時調界面調)와 같이 선법명 앞에 붙여서 사용되었다.
낙시조평조는 우조평조의 대칭 악조로, 낙시조계면조는 우조계면조의 대칭 악조로 각각 쓰였는데, 이때의 낙시조는 우조에 비하여 낮은 음을 중심음, 즉 궁으로 삼는 조명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의 거문고 악보인 양덕수(梁德壽)의 ≪양금신보 梁琴新譜≫(1610)에 의하면, 낙시조는 오직 임종을 중심음으로 삼은 평조라는 선법명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조선 초기에 다양하게 쓰인 조명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요컨대, 낙시조의 개념은 조선 초기에 어느 악조에서 중심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조명으로 쓰였지만, 임진왜란 이후 한때 선법명으로 사용되다가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