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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타락한 이 시대에 있어서 어린이들은 허약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부모들은 영아들과 청년들의 높은 사망률을 보고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럴까? 라고 말하며 놀라워한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각별히 돌보지 못했건만 아이들은 더욱 건강했으며 튼튼하게 자랐다. 오늘날 부모들이 정성을 다해서 자녀들을 돌보지만 저들은 더욱 약하게 자라며 몸이 허약해지거나 죽어버린다. 부모들의 그릇된 습관을 고집하는 결과로써 질병과 저능의 기질이 저희 자식에게 유전된다.
자녀들이 태어난 이후에 저희 인체의 법칙에 대해서 부주의하고 무관심하므로 더욱 건강 상태를 악화시킨다. 철저하게 건강을 관리하면 신체적인 건강을 크게 증진시킬 것이다. 저들이 자녀들에게 이미 물려준 비참한 유전을 고려해 볼 때 부모들은 갓난아이들에 대하여 거의 올바른 생활 습관을 따르지 않는다. 저희 자녀들에 대한 저들의 그릇된 생활 태도는 자녀들의 생명의 위력을 감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조사(早死)의 불운을 겪게 한다. 이러한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위한 사랑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잘못 응용한 것이다.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다루는 일에서 저지르는 한 가지 큰 과오는 아이의 몸을 튼튼하게 할 맑은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아기들이 잘 때에 어린아이의 머리를 무엇으로 덮어주는 습관이 있는데 더운 방이나 통풍이 거의 안되는 방에서 자는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해준다. 이런 한 가지 일만 가지고도 심장과 폐의 활동을 크게 약화시켜 온몸에 병해를 입히기에 충분한 원인이 된다. 물론 갓난아기에게 찬바람을 쏘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무슨 일에나 급작스럽고 과격한 변화가 없도록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아기가 맑고 상쾌한 실내 공기를 호흡할 수 있도록 각별한 조심을 해야 한다. 육아실이나 아기의 곁에 비위에 거슬리는 냄새가 없도록 해야 한다. 불쾌한 냄새는 어른에게 보다도 약한 체질을 가진 아기에게 더욱 위험한 것이다.
어머니 된 자들은 건강보다도 유행을 참작하여 갓난아기의 옷을 지어서 입히는 관습이 있다. 일반적으로 아기 옷을 준비할 때에 편의와 안락보다도 예쁜 모양을 위주로 하여 만든다. 갓난아기의 옷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옷에 자수를 놓으며 불필요한 수예로 장식하는 일에 막대한 시간을 낭비한다. 때때로 어머니 된 자는 자기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달린 아기의 건강까지 해치면서 이런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경쾌한 운동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어머니가 눈과 신경을 몹시 피로하게 하는 작업에 매달리게 된다. 따라서 어머니 자신의 건강과 그 자녀의 건강을 위하여 자기 몸의 기력을 보존해야 할 어머니의 엄숙한 책임에 대하여 각성시키는 일이 매우 힘든 일이다.
외모를 자랑하고 유행을 따르는 정신은 많은 미국 여성들이 저희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마귀의 제단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여러 주일에 걸쳐서 만든 유행적인 옷을 작은 아기에게 입히며 실상 그런 옷은 아기의 건강을 생각해 볼 때 전혀 이용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옷을 지나치게 길게 만들며 그 옷이 아기의 몸에 붙어 있게 하기 위하여 허리에 팽팽한 띠를 둘러 졸라매주어 심장과 폐의 원활한 활동에 큰 지장을 준다. 그 옷이 지나치게 길고 무겁기 때문에 갓난아기는 강제적으로 몸에 불필요한 압박을 받게 되고 어린 몸의 근육과 수족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어머니들은 팽팽한 띠로 감지 않으면 마치 아기의 몸이 부서지거나 변형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갓난아기의 몸에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짐승들이 태어났을 때 제멋대로 내버려두면 그 모양이 변형하는가! 어린 양의 허리에 팽팽한 띠로 졸라매주지 않으면 병신이 되는가! 저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양으로 몸매를 이룬다. 인간이 낳은 갓난아기는 창조주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완전하면서도 가장 무력한 존재이므로 어머니 된 자들은 신체의 법칙에 관하여 교육을 받아야 하며 신체적, 정신적 및 도덕적인 건강의 원칙에 따라서 자식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들이여, 자연의 능력은 졸라매는 끈이나 팽팽한 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형태를 아기들에게 부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기의 생명을 보존하고 체내의 섬세한 기능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대들에게 맡기기 이전에 이미 저희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충분한 골격과 근육을 공급해 주셨다.
갓난아기의 옷은 품이 넉넉하여 음식을 잔뜩 먹인 후에도 옷으로 인한 압박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손님들의 귀여움을 받게 하기 위하여 유행을 따라 갓난아기에게 옷을 지어 입히는 것은 저들에게 매우 큰 해를 준다. 유행을 따라 지어 입힌 아기의 옷들은 품이 좁아서 아기에게 극심한 불편을 주며 모든 사람들의 귀염둥이가 되어 이 사람 저 사람의 품에 옮겨질 때 아기의 몸을 더욱 괴롭게 만든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모든 해보다도 더욱 해로운 점이 있다. 어른들의 강한 폐에도 거슬리며 해를 끼칠 더러운 공기에 갓난아기를 노출시키는 일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호흡에 의해서 오염된 실내 공기를 마시게 함으로써 갓난아기의 폐가 고통을 당하게 되며 병들게 된다. 많은 갓난아기들은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와 한 이불 속에서 자므로 구제 불능의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 폐와 피부의 기공에서 배출되는 독한 담배의 악취를 흡입(吸入)함으로 갓난아기의 체내 조직에 독소가 가득 차게 된다. 담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서서히 퍼지는 독소 같아서 뇌, 심장, 간장 및 폐에 방해를 주며 각 기관의 기능을 점차적으로 쇠약하게 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경련을 일으키게 하며 병적 발작, 마비 증상, 중풍 및 급사의 위험을 초래한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애통해 하면서 저들에게 잔인한 고통을 안겨준 신비스런 하나님의 섭리를 의아스럽게 여기나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는 이 아기들의 죽음을 바란 것이 아니다. 그 아기들은 담배에 대한 더러운 갈망 때문에 고통스러운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 저희 부모들은 무지스럽게도 구역질 나는 독한 담배를 피움으로 저희 갓난아기의 생명을 틀림없이 살해하는 것이다. 담배의 노예가 된 자들의 폐에서 내쉬는 모든 숨결은 자기 주위에 있는 공기를 오염시킨다. 갓난아기들은 신경 조직에 자극이 될 만한 모든 위험스러운 요소를 피해야 하며 깨어 있으나 잘 때나 밤낮으로 오염되지 않은 맑고 청결하며 건전한 실내 공기를 마셔야 한다.
영아와 청년에게 높은 사망률이 있는 또 하나의 중대한 원인은 팔과 어깨를 노출시키는 관습이다. 이러한 유행은 혹독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 유행은 수천 수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팔과 수족과 겨드랑이 주위를 감도는 공기는 매우 중대한 신체의 민감한 부분들을 냉각시키며 건전한 혈액 순환을 방해하여 질병을 유발시키고 특히 폐와 뇌질환을 발생시킨다. 손님들의 어리석은 아첨이나 낯선 자들의 칭찬보다도 저희 자녀들의 건강을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는 자들은 가냘픈 아기의 팔과 어깨를 가리우는 옷을 입힐 것이다. 어머니들에게 아기의 새빨갛게 된 팔과 손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주의를 주고 건강과 생명을 파괴하는 이 관습에 관하여 경계하는 말을 해주면 으레 저들의 대답은 저는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제 아이들에게 옷을 입혔습니다. 제집 아이들은 그렇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갓난아기들의 팔이 가리워 있는 것을 보면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구식이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들은 저들 자신도 감히 생각도 못할 그런 방법으로 가냘픈 아기에게 옷을 지어 입힌다. 저들은 자기 자신의 팔이 그처럼 노출될 때에 추워서 벌벌 떨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처럼 나이 어린 갓난아기가 상처를 입지 않고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아기들은 튼튼한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목숨을 잃지 않고도 그런 혹사를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몸을 띠로 감고 괴로울 정도로 두텁게 입히면서도 생명의 근원(심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슴과 폐 부위보다 더 잘 가려야 할 팔들을 벗겨놓음으로써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었고 수천 수만의 어린아이들이 일찍 죽었거나 병에 시달리는 생애를 살았다. 어머니들이 갓난아기들을 그렇게 다루면서 어찌 차분하고 건강한 아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수족과 팔들이 차거워지면 그 부근에 있던 피가 폐와 머리 부분으로 몰리게 된다. 그리하여 혈액 순환이 방해를 받게 되며 인체의 섬세한 기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작용한다. 아기의 체내 조직은 혼란을 일으키며 아기는 한없이 울고 혹사로 말미암아 억지로 당하는 고통 때문에 몹시 보챈다. 어머니는 그 아기가 배고파서 우는 줄로만 생각하고 계속해서 젖을 물린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아기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고통을 더해 줄 뿐이다. 팽팽하게 몸에 둘러준 띠와 음식으로 가득 찬 위장은 서로 상극적(相剋的)인 작용을 한다. 그 아기는 숨쉴 기력을 잃게 된다. 그 아기는 비명을 지르거나 숨쉬기 위하여 애쓰며 헐떡거리게 된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원인을 몰라서 안절부절 못해 할 뿐이다. 만약 그녀가 아기가 우는 원인을 이해하였다면 최소한도 꼭 조여맨 띠를 풀어줌으로써 금방 고통을 풀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 아기가 큰 병에 걸린 줄 생각하고 의사를 부르게된다. 의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잠시 동안 아기를 내려다보고 나서 유독성 약물을 처방해 주거나 강장제인 듯한 약을 먹이라고 주면 그 어머니는 의사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기 위하여 혹사 당하고 있는 아기의 목구멍에 약을 부어넣는다. 실제에 있어서 그 아기는 병에 걸려 있지 않았으나 그 약을 먹게됨으로써 병을 앓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아기는 모든 질병보다도 가장 고질적이며 불치의 병인 유독성 약물로 인한 질환으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 비록 회복되는 경우에라도 체내에 남아 있는 유독성 약물의 영향을 입게 되며 경련, 심장병, 뇌의 수종증(水腫症) 혹은 폐결핵에 걸리기 쉽다. 어떤 갓난아기들은 소량의 유독성 약물마저 감당할 기력이 없으므로 인체가 침입자와 투쟁하기 위하여 생명력을 극도로 소모시키기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슬픈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날 병들어 죽어 가는 갓난아기의 구슬픈 신음 소리를 들으며 어린 생명이 꺼져가는 마지막 생명을 건지려는 고투를 목격하는 순간 고통 속에 있는 아기의 병상 주위를 서성대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번민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구경하기란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하나님께서 천진 난만한 자기의 아기에게 그런 고통을 주셔야만 하는 사실이 신비하게 여겨질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그릇된 생활 습관이 그런 슬픈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녀는 마치 독약을 먹여 죽인 것처럼 갓난아기의 안간힘 쓰는 생명을 분명히 살해한 것이다. 원인이 없는 질병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처음의 질병의 원인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건강의 법칙을 무시하면 질병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병으로 고통하거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교육하도록 맡기셨고 금생과 내세를 위한 유용한 인물이 되도록 훈련시키라고 위탁하셨다.
만약 어머니 된 자가 자녀의 신체적인 요구에 관하여 무식한 상태에 놓여있고 그 결과로써 자녀가 병에 걸리면 그녀의 과오를 시정해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죽지 않아도 되었을 수천 수만의 갓난아기들이 목숨을 잃었다. 음식, 의복 및 호흡하는 공기가 건강과 생명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부모들로 말미암아 아기들이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옛날의 어머니들은 저희 자식들을 위하여 의사의 역할을 했어야만 하였다. 아기의 옷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바친 아까운 시간에 그녀는 보다 고상한 목적, 즉 자기 자신과 자녀의 신체적인 요구에 관하여 교육을 받았어야만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생활 태도 여하에 따라 자기 후손들이 대대로 상처를 입거나 유익된 혜택을 받는 사실을 감안하여 자녀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최선의 방법에 관한 유용된 지식을 쌓아야 할 것이다.
말썽을 부리고 보채기 잘하는 아기를 거느린 어머니들은 아기들이 안절부절못하게 괴로워하는 원인을 연구해야 한다. 그 원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저들은 아기들을 다루는 저들의 관습에 어떤 잘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어머니 된 자가 아기에게 나타난 병의 징후(徵候)들을 보고 놀란 나머지 서둘러서 의사를 부른다. 실제에 있어서 품이 좁은 옷을 벗겨버리고 손발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 품이 넓은 옷을 갈아 입히기만 하면 아기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들은 병의 원인과 결과를 깨달아야 한다. 만약 어린이가 감기에 걸렸다면 대개의 경우 그 어머니가 잘못 다루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잘 때 몸을 덮어주는 것처럼 머리 부분마저 덮어주면 얼마 안 있어 맑고 신선한 공기의 결핍으로 호홉하기에 애쓴 나머지 땀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아기를 자리에서 꺼내 찬 공기를 쏘이면 거의 틀림없이 감기에 걸린다. 두 팔을 언제나 노출시키면 항상 감기에 걸리기 쉽고 폐와 뇌 부분을 충혈되게 한다. 이런 노출은 갓난 아이가 병들기 쉽게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
자녀들의 신체적인 건강은 대부분 그 부모들에게 책임이 있다. 영아기의 혹사에서 생명을 건진 어린이들은 유아기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저희 부모들은 아직도 계속해서 자녀들을 그릇된 방법으로 키우고 있다. 아기들의 손발과 두 팔은 여전히 노출된 상태에 있다. 건강보다도 유행을 중히 여기는 부모들은 저희 자녀들의 허리에 버팀살(hoop=고래 수염이나 강철로 만든 것)을 차게 한다. 버팀살은 매우 불편하며 볼품이 없고 건강에 해롭다. 버팀살은 옷이 밑으로 홀러내리지 못하게 한다. 무명으로 만든 헐거운 긴 바지로 수족의 윗 부분만 가리우는 옷을 입힌다. 바지 끝이 무릎까지 내려오며 수족의 밑 부분은 얇은 융이나 무명으로 가리우며 발은 엷은 밑창을 댄 각반 모양의 장화를 신긴다. 아이들이 입은 옷은 버텀살에 의해서 몸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충분한 온기를 받기에 불가능하며 저들의 수족은 계속적으로 찬바람을 쐬게 되어 있다. 손발의 끝 부분은 언제나 시리며 얼어붙은 수족의 끝 부분까지 피를 공급하기 위하여 심장은 이중의 노력을 해야 하고 피가 온몸을 돌고 심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전과 똑같은 기운 찬 온기를 잃게 된다. 수족을 통과해서 돌아오는 동안에 피가 식어진다. 지나친 노동과 빈약한 피의 불충분한 순환으로 말미암아 쇠약해진 심장은 몸의 다른 부분처럼 다시 쉽게 더워질 수 없는 말초부분까지 혈액을 공급하기 위하여 더욱 고된 일을 하게 된다. 심장의 기능은 매우 저하되며 수족은 언제나 차갑고 말초 부분을 통과하는 동안 식어진 피는 폐와 뇌 부분으로 몰리게 되며 결과적으로 두 부분에 염증과 충혈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강요된 고통 때문에 생긴 자녀들의 질병에 대해서 어머니들에게 그 책임을 추궁하신다. 어머니들은 유행의 사당(祠堂) 앞에 절하며 저희 자녀들의 건강과 생명을 희생시킨다. 많은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옷 입히는 저의 관습의 결과에 대해서 너무도 아는 것이 없다. 엄청난 희생의 댓가를 치르어야 할 위기에 처하여 저들 스스로 배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닌가? 추리력을 가진 그대들에게 무지하다는 것이 충분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대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배울 수 있으며 그대들의 자녀들에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옷을 입힐 수 있다.
자녀들에게 소매 없는 외투나 털옷을 입히며 전혀 필요없는 옷들을 잔뜩 껴입히면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수족을 벗긴 채 버려두는 부모들은 자녀들의 건강에 대한 기대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심장에서 가까운 신체부분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생리 기관들보다 덜 덮어주어도 상관이 없다. 어깨, 폐 및 심장 부위를 두텁게 가리워주는 것처럼 손발을 더웁게 해준다면 말초 부분까지 혈액 순환이 활발하게 될 것이며 모든 중요한 생리 기관들이 보온의 덕분으로 건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나는 어머니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자녀들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성장이 위축되며 카타르, 독감, 위막성후두염(僞膜性喉頭炎), 안면과 목 부분에 나타나는 연주창의 부기(浮氣), 폐와 뇌의 염증과 충혈 등으로 고생하는 것을 볼 때 걱정되지 않으며 가슴이 아프지 않은가? 원인과 결과를 검토해 보았는가? 자녀들을 위하여 지방질과 조미료, 향료가 섞이지 않은 단순하고 영양가가 있는 음식을 먹여 왔는가? 유행의 물결을 따라 자녀들의 의복을 만들어 입힌 일은 없는가? 두 팔과 수족을 불충분하게 가리워준 것이 온갖 질병과 요절의 원인이 되어 왔다. 사내아이들을 따뜻하게 입히는 것처럼 여자아이들의 수족도 따뜻한 옷으로 가리워 주어서 안 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바깥 공기가 인체의 적성에 맞는 것이기 때문에 엷은 옷을 입고 밖에서 뛰어노는 습관이 있는 사내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는 감기에 걸리는 확률이 적은 편이다. 항상 실내에 갇혀서 더운 방에서 생활하는 습관을 들인 가냘픈 여자아이들도 더운 방에 갇혀 있는 것을 싫어하고 손발을 노출시킨 채 밖으로 나가노는 경향이 있다. 밖의 공기는 금방 손발을 얼게 하고 병에 걸리기 쉽다.
그대들의 여자아이들에게 허리 품이 넉넉한 옷을 입혀야 하며 옷 모양은 어디까지나 편리하고 편안하며 수수한 모양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추운 계절에는 따뜻한 융이나 무명으로 만든 속옷을 입혀야 하며 그 위에 목이긴 양말을 신겨야 한다. 그 위에 발목 밑까지 가리우는 안을 댄 따뜻한 바지를 입히고 발목에 대님을 매어주거나 단추를 채우게 하거나 바지 밑에 끈을 달아 신발에 걸리게 해야 한다. 여자아이들이 입는 드레스는 무릎 밑까지 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드레스 스타일에 가벼운 속치마 하나를 입힐 것이며 혹 더 입힐 경우라도 둘 이상은 입혀서는 안 되고 허리춤에 단추로 끼워주도록 해야 한다. 신발은 밑창이 두꺼운 것이어야 하며 발이 편안한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옷을 입혀서 밖에 내보내면 여자아이들도 사내아이들만큼 찬 공기의 위험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겨울일지라도 난로로 덥혀진 밀폐된 실내에서 노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이 저들의 건강에 훨씬 좋을 것이다.
신령한 안목으로 볼 때에 부모들이 현재 행하고 있는 것처럼 자녀들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죄가 된다. 저들이 말하는 유일한 핑계는 유행을 따른다는 것뿐이다. 아이들에게 품이 좁은 옷 한 벌을 입히고 수족을 노출시킨 채 내버려둔다면 그것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그러한 의복을 가지고 건강에 좋고 실제로 매력적인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건강과 생명을 파괴하는 습관을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따른다고 하여 행동을 같이한다면 개혁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저들로서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에 해로운 유행을 따른다고 해서 그대의 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주거나 자녀들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어떤 보증이 되어주는 것도 아니다(건강한 생활 법칙, No. 4, 66-74).
제 6 장
나의 자매들이여, 우리들의 생활에서 의복을 개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여성들이 입는 드레스 스타일에 여러 가지 모순된 점들이 있다. 여성들이 코르셋이나 고래뼈로 만든 버팀살로 허리를 꼭 조이거나 복부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심장, 간장 및 폐장에 압박을 가하는 영향을 준다. 전신의 신체 조직의 건강은 호흡 기관들의 활발한 작용에 달려 있다. 건강하고 자연적인 몸매를 건강에 해롭고 부자연스런 것으로 만들려는 무모한 노력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여성들은 저희 건강을 망쳐놓았으며 온갖 질병에 걸리게 만들었다. 저들은 자연의 혜택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저희가 좋아하는 멋을 따라 자연스러운 몸매를 뜯어고치려는 애꿎은 노력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몸을 병들게 한다.
많은 여성들은 치마를 무겁게 만들어 입음으로 창자를 내리조이고 허리에 심한 압박을 가하여 왔다. 본래 이러한 부분은 무거운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솜을 넣고 만든 무거운 치마를 입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며 절대적으로 해로운 것이다. 여성이 입는 드레스는 어깨에 걸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자들이 보다 동일성이 있는 드레스를 입을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될 것이다. 과거로부터 친우(the Friends)라고 부르는 그룹에 의하여 드레스 스타일을 본받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지 못한 일이다. 저들 대부분이 신앙 생활에서 떠나갔으며 비록 저들이 색깔의 동일성은 유지해 왔으나 교만한 정신과 사치성에 방종하여 왔으며 저희가 입는 드레스의 옷감은 가장 비싼 종류의 것이었다. 아직도 저들 중에 유행하는 단순한 색깔의 선택과 수수하고 단정한 옷 모양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기에 손색이 없는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들과 구별하고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옷깃에 단순한 푸른 리본을 달도록 명령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저들이 입는 옷에 어떤 특별한 표시를 하라는 요구를 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본으로 참고하도록 지시하신 말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는 옷에 관하여 뚜렷한 지시를 말씀하셨다면 오늘날 이 시대에 사는 당신들의 백성들이 입는 옷에 관하여서도 어떤 주의의 말씀을 주실 것이 아닌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어떤 점이 저들의 옷에 나타나야 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귀중한 보물과도 같은 당신의 백성들은 저희가 입는 옷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닌가? 또한 저들은 옷 입는 점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모본이 되고 저들의 단순한 스타일이 자랑과 허영과 사치성 및 쾌락을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을 견책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점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교만을 견책하셨다.
이와 반면에 사치와 의복에 대하여 쉴 새 없이 논평하면서 저들 자신의 차림새에 대해서는 전혀 부주의하고 더러운 옷차림이 마치 하나의 미덕이 되기나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때때로 바람에 날릴 듯하고 속이 훤히 비치는 초라한 옷을 입고 다니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저들의 옷은 언제 보아도 더러우며 사치를 책망하는 말을 하고 다닐 것이다. 저들은 단정하고 말쑥한 맵씨도 사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만약 저들이 시내산에서 들려오는 율법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인 군중들 속에 있었다면 의복을 빨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중들에게 쫓겨났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반포하신 십계명은 무질서하고 더러운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거할 수 없을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저희 의복을 빨지 않았을 경우 거룩한 율법의 선포를 감히 들을 수 없었거든 하물며 몸과 의복과 저희가 사는 집을 깨끗하게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거룩한 율법이 기록될 수 있을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저들의 신앙 고백이 하늘을 치솟을 듯이 고상한 성질의 것인지는 몰라도 저들의 실제적인 생애는 지푸라기보다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저들의 감화는 불신자들을 구역질 날 정도로 불쾌하게 할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들의 대열에 남아 있지 않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그러한 신앙 고백자들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하여 안식일에 모이는 모든 신자들은 가급적 단정하고 몸에 잘 맞으며 예배드리는 집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저들이 다른 옷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내내 농장에서 일할 때 입던 옷을 안식일에 그대로 입고 나오는 것은 안식일과 하나님과 교회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안식일을 주님의 거룩한 날이라고 공언하는 다른 신자들에게 욕을 돌리는 행위이다. 만약 진심으로 안식일의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존귀하게 하고 싶으나 바꾸어 입을 옷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유가 있는 다른 신자들이 그에게 안식일에 입을 옷을 한 벌 기증하여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집에 나타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의복에 있어서 보다 동일성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 비싼 의복이나 여분의 장식품을 사들이는 데 돈을 지출할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작은 극기의 정신으로 순결한 신앙심을 나타낼 수 있으며 오히려 자기 자신은 단순한 옷을 입고 과거에 긴요치 않게 지출하던 돈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형제 자매들을 도와 단정하고 우아한 옷을 사서 입게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교훈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여 신자들은 옷차림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믿는 자매들 가운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안식일에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하여 성도들의 집회에 나타날 때 일주일 내내 저들이 쓰고 있던 썬보넷(Sun-bonnet-여자용 해가리개 모자)을 쓰고 평일에 입던 옷을 입고 나오는 자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의복 문제에 대하여 이런 부류의 자매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이 있다. 저들은 옷에 먼지와 흙이 묻고 심지어는 찢어진 곳이 벌어진 그대로 지저분하게 걸쳐 입고서 안식일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타난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어떤 친구와 만날 약속이 있어서 나갈 때 저들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자기에게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그 자리에 나타날 것이다. 세상의 친구들은 만약 상대방이 머리를 빗지 않고 더러운 옷을 되는 대로 입고 나타날 경우 저들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은 안식일을 당하여 지존하신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나아갈 때 아무렇게나 입고 머리도 매만지지 않고 되는 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들은 저희 자신의 몸과 의복이 보여 주는 그대로 존경심과 경건한 정신이 결여된 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면접하는 장소가 되고 하늘의 천사들이 참석하는 교회에 나가게 된다. 저들의 전체적인 모습은 저희 자신의 품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용은 옷 입고 자랑하려 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단정함, 기호 및 질서 등을 허영에 속하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불쌍한 영혼들은 의복에 대한 저들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저희의 대화, 행동 및 저들의 대인 관계 역시 같을 것이다. 저들은 가정에서나 다른 형제들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부주의하고 때때로 저속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 사람의 입은 옷과 몸가짐을 보면 대개 그 남성이나 그 여성의 인격의 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 옷을 함부로 입고 그 매무새가 단정치 못한 사람들은 고상한 내용의 대화를 하는 경우가 드물고 저들의 감정은 거의 세련되어 있지 않다. 때때로 저들은 괴팍하고 조잡한 것을 겸손한 것으로 잘못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상징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원하는 감화력이 없이는 이 세상은 자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복과 몸가짐에 부주의하며 사업 거래에 정확하지 못한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부류를 바라볼 때 저들의 의복이 보여 주는 그대로 거칠고 예모가 없으며 태도가 단정치 못하고 대화의 내용이 저속하다. 이와 동시에 저들은 어처구니없는 특성들을 참된 겸손과 신앙적인 생애의 표시라고 믿고 있다. 만약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계셨다면 그러한 자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인가 상상해 보라.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고상한 내용의 대화를 해야 하며 비굴할 정도로 어리석은 아첨을 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예모 있고 친절하며 인정이 많은 정신을 가져야 한다. 저들이 하는 말은 성실하고 진실한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또한 저들은 저희 형제들이나 세상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에서 성실하여야 한다. 저들이 입는 의복 역시 사치와 과시(誇示)를 피해야 하며 어디까지나 단정하고 야하지 않은 것이어야 하며 우아하되 건전하고 기호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거룩한 안식일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관하여 신령한 관심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의복에 특별히 유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오해받지 않을 정도로 분명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 부주의하고 태만했던 사람들이 진리로 말미암아 생활이 고상하게 성화되고 단정한 습관을 지키며 의복에 있어서 건전하고 기호에 맞는 것을 택하여 입을 때 그러한 신자들의 감화는 열 배나 더할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어떤 면에 있어서든지 혼란과 불결함과 죄와 같이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옷을 입는다고 하여 저희 자신을 너무 돋보이게 하려고 애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저희가 신앙과 분수에 알맞게 우아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옷을 지어 입는다면 저들은 유행을 따르지 않게 될 것이며 세상을 닮기 위하여 저희 옷 모양을 바꿔서도 안 될 것이다. 비단 모든 세상 사람들이 저들과 다를지라도 바른길을 따르기 위하여 고결한 독립성과 도덕적인 용기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세상이 소개하는 드레스 스타일이 점잖고 편리하면 건강에 도움이 되고 성경의 원칙에 일치하는 것이라면 그런 옷을 입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관계를 변화시키거나 세상 사람들로 그런 드레스 스타일을 본받게 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저들은 극단적인 것들을 피해야 한다. 저들은 칭찬이나 비난에 관계없이 겸손한 정신으로 똑바른 길을 따라가야 하며 보람이 있는 바른 원칙을 고집해야 한다.
여성들은 건강과 편안을 고려하여 팔다리를 가리우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저들도 남성들처럼 팔다리를 덥게 해줄 필요가 있다. 유행을 좇는 여성들이 입는 긴 드레스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못마땅하다.
① 긴 드레스는 낭비와 사치를 조장하며 불필요하고 그런 치마는 행길의 인도(人道)에 있는 모든 먼지를 쓸고 다닐 것이다.
② 긴 드레스는 풀의 이슬과 길가의 먼지를 묻히고 다니기 때문에 항상 더럽게 된다.
③ 축축하게 젖기 쉬운 치마 자락이 감각이 예민한 발목에 닿아 별로 가린 것이 없는 발목 부위가 금방 차가워져서 카타르나 선병의 부기(연주창)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며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④ 필요치 않은 길이의 드레스는 허리와 내장에 필요 없는 무게를 더해준다.
⑤ 긴 드레스는 보행에 거추장스러우며 다른 사람의 보행마저 방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위 의복 개량을 주장하는 세상 사람들이 채택하게 될 또 하나의 드레스 스타일이 있다. 저들은 가급적 이성(理性)의 모습을 흉내내는 의복을 만들 것이다. 여성들은 남자들이 쓰는 것과 같은 모자, 바지, 조끼, 코트, 장화 등을 착용하게 될 것이며, 그 중 장화는 유행에 가장 민감한 것이다. 이러한 드레스 스타일을 채택하고 선전하는 자들은 소위 의복 개량 운동을 극단적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며 그 결과로 혼란을 빚어 놓을 것이다. 이러한 의상을 채택한 사람들의 건강을 참작한 견해가 일반적으로 옳을는지는 모르나 만약 저들이 의복 문제를 그와 같은 극단의 한계에까지 이끌고 나가지 않았다면 더욱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드레스 스타일은 하나님의 질서를 뒤집어 놓았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를 무시한 것이 되었다. 신명기 22장 5절에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이런 드레스 스타일을 채택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이것은 점잖은 옷차림이 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건전하고 겸손한 여성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남녀의 구별을 없이하는 것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가볍게 생각한다. 어떤 의복 개량주의자들이 취하는 극단적인 태도는 저희 자신의 영향력을 스스로 해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남녀가 입는 의복에 분명한 구분이 있도록 계획하셨고 그 문제에 관해서 분명한 지시의 말씀을 해주심으로써 문제의 중대성을 충분히 나타내셨다. 남녀의 의복을 혼돈해서 입을 때 혼란이 빚어질 것이며 범죄 사건이 크게 증가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만약 지금 생존해 있다면 경건을 부르짖는 여성들이 이런 드레스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견책하실 것이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딤전 2:9, 10).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허다한 무리들이 사도들의 교훈을 전혀 무시하고 금과 진주와 장식품으로 몸을 단장한다.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들은 세상의 빛이며 세상의 소금이다. 또한 저들은 자신이 끼치는 감화가 매우 고귀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만약 저들이 지나치게 긴 드레스나 극단적으로 짧은 드레스를 바꾸어 입는다면 저들의 신성한 감화력은 크게 소멸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야 하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만나게 해야 할 불신자들마저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여성의 의상은 건강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개량할 수 있으며 보는 사람들이 역겨워 할 정도로 지나친 변화를 보이지 않고도 될 수 있다.
여성의 몸의 형태를 코르셋이나 고래뼈로 만든 버팀살로 조금이라도 압박을 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드레스는 품을 여유 있게 하여 폐와 심장이 활발한 작용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치마 끝이 목이 긴 구두의 끝부분까지 내려와야 하며 치마를 쳐들지 않고도 보행할 때 먼지를 쓸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짧아야 한다. 여성들이 집안 일을 할 때나 특히 밖에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을 위해서는 이것보다 더욱 짧은 드레스가 적당하고 편리할 것이며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이런 짧은 드레스에 속치마를 하나 혹은 많아야 둘 이상 입지 않도록 할 것이며 허리에서 단추를 채우는 형식으로 만들고 멜빵을 해서 달아야 한다. 무게 있는 옷으로 허리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이 무거운 치마를 입으면 그 무게로 허리와 창자가 조이며 그것은 고치기 힘든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병자들은 질병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허리를 조이며 무거운 치마를 걸치므로 건강의 법칙을 범하며 마침내 평생토록 병을 갖고 다니는 불쌍한 사람들이 된다. 고쳐야 할 점들을 지적해 줄 때 많은 여성들은 긴 드레스는 구식이 아니다. 고쳐 입을 필요가 없다! 라고 외친다. 구식이면 어떻고 신식이면 어떤가? 나는 여러 가지면에서 우리가 구식을 따르게 되기를 바란다. 만약 우리들이 옛날 구식 여성들의 특징을 본받을 수만 있다면 구식의 강한 점들을 우리들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여성들의 옷 입는 습관과 식욕의 방종이 현재 저들의 병약한 상태에 있게 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내가 말할 때 그것은 결코 경솔한 발언이 아니다. 팔과 다리를 제대로 가리우는 옷을 입는 자는 천 명 가운데 한 여성 정도밖에 없다. 드레스의 길이가 어떠하든지 간에 남성들이 팔다리를 잘 가리워 입는 것처럼 여성들도 그러한 옷을 입어야 한다. 이런 의복을 입으려면 안을 댄 바지를 입고 발목에 대님을 매거나 단을 쳐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바지의 끝이 구두 목에 맞닿아야 한다. 그리하여 발목과 팔목이 찬 바람에 쏘이지 않게 해야 한다. 손발을 따뜻하게 하면 온몸에 혈액 순환이 고르게 될 것이며 피가 몸에 도는 동안 식거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건강한 생활 법칙, No, 6, 57-64).
화잇 여사가 옷차림의 중대성에 대해서 교인들에게 말할 때 그리스도인의 단순성에 일치하여 건강에 좋고 보기에 점잖으며 경제적인 옷을 지어 입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화잇 여사는 이러한 원칙의 한도내에서 이 시대에 적당히 어울리는 옷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1897년 예언의 신의 교훈을 충실히 따르려는 어떤 재림 교회의 자매들이 1860년도에 채택한 독특한 스타일을 본따서 입어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화잇 여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한가지 특정한 스타일을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 자매들이 개혁 드레스(1860년도에 채택한 스타일)로 돌아갈 의무가 있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고 답변한다. 이러한 입장을 취한 이유들을 설명한 화잇 여사의 기록들은 D. E. 로빈슨이 저술한 우리 건강 기별에 대한 이야기(The Story of Our Health Message)라는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1955년도판, 427-431). ― 편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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