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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각 책의 기별과 신학, 오늘은 제30강입니다. 아가서의 기별과 신학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아가(雅歌)'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이지만, 성경의 한 책의 이름입니다. '아담하다', '우아하다' 할 때의 '아(雅)' 자로 '곱고 바르다'는 뜻입니다. 고운 노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영어로는 'The Song of Solomon(솔로몬의 노래)' 혹은 'Song of Songs(노래들 중의 노래)'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어 표제로는 '시르 하시림(Shir Hashirim)'이라고 부릅니다. '시르'는 노래이고, '하시림'은 그 노래들의 복수형입니다. 직역하면 '노래들 중의 노래(The best of songs)'라는 뜻으로, 노래 중에서 가장 최고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최상급의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왕들의 왕(왕중왕)', '주들의 주(만주의 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격식으로 최고의 가치를 표현하곤 합니다. 이처럼 아가는 수많은 노래 중 가장 아름다운 연가이자 사랑의 노래입니다.
헬라어 70인역 성경에서도 이를 그대로 음역하고 번역하여 '아스마 아스마톤(Asma Asmaton, 노래들 중의 노래)'이라 했고,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서도 '칸티쿰 칸티코룸(Canticum Canticorum)'이라 불렀는데 이 라틴어에서 영어의 '캔티클(Canticles)'이라는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독일어 역본에서 마르틴 루터는 이를 '호헤리트(Hohelied)', 즉 높고 최고의 노래(High Song)라고 번역했으며,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서는 모두 '아가' 혹은 '야그'로 한자 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어사전에도 아가서는 '구약 성경의 한 편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사랑의 관계를 읊은 노래'라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아하고 고상한 사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이 책을 누가 기록했을까요? 우리는 솔로몬이 기록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평주의 학자들 중에는 아가서가 솔로몬 시대가 아니라 훨씬 후대에 기록된 연애시이며, 솔로몬은 저자가 아니라 그저 주인공으로 등장할 뿐이라며 저작권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본문 내에 아람어나 페르시아어, 헬라어풍의 외래어 요소가 섞여 있다는 이유를 대지만, 솔로몬은 당대 대대적인 국제 무역을 전개했고 수많은 외국인 아내와 방문객들을 맞이했기에 이러한 외래적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자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저자임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구체적인 내적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1장 1절의 시작 자음 문구가 '리슐로모(Le-Shlomo)', 즉 '솔로몬의(By Solomon)'라고 명백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본서 전체에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총 7회나 직접 반복되어 저자성을 확증합니다.
둘째, 열왕기상 4장 32절에 솔로몬이 지은 노래가 1,005편이나 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가서는 그 수많은 노래 중 성령의 영감으로 정선된 최고의 노래입니다.
셋째, 본서에는 다양한 식물과 나무, 야생 동물들의 비유적 묘사가 가득한데(약 15종 이상의 수목과 동물 언급), 이는 천연계와 동식물에 해박했던 솔로몬의 지식 조건과 완벽하게 부합합니다(왕상 4:33).
넷째, 지리적 배경으로 남쪽의 엔게디와 예루살렘부터 시작해 북쪽의 길르앗, 헤르몬산, 레바논 산맥까지 영토 전역을 고르게 언급하는데, 이는 BC 931년 남북 왕국으로 쪼개지기 전 통일 왕국 시절의 광활한 조망을 반영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 책을 솔로몬의 저작으로 확증하여, 매년 가장 큰 절기인 '유월절 축제' 기간에 온 민족이 함께 이 아가서를 공적으로 낭송해 왔습니다. 아가서는 어휘와 사상 면에서 잠언 및 전도서와 깊은 유사성을 지니며, 전도서와 마찬가지로 본문 내에 '여호와' 혹은 '하나님'이라는 직접적인 신성 칭호가 쓰이지 않은 특징(8:6에 여호와의 불꽃을 뜻하는 '야'라는 약자 자음만 1회 등장)을 공유하여 동일 저자의 일관된 문학적 기질을 보여줍니다.
혹자는 솔로몬처럼 수많은 처첩을 거느린 사람이 어떻게 부부 관계의 순수한 신실함을 노래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지만, 이는 그가 잠언의 원칙을 범했으니 잠언의 저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억측과 같습니다. 아가서 6장 8~9절을 보면 "왕후가 육십 명이요 비빈이 아십 명이며 처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솔로몬이 비록 정략적·국제적 외교 관계로 많은 여인을 왕궁에 들였을지라도, 그의 가슴속에 전폭적인 순수한 애정을 쏟아부은 단 한 사람의 참된 연인은 바로 시골 출신의 '술람미 여인' 한 사람뿐이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구도입니다.
본서가 기록된 역사적 배경과 시기는 대략 BC 960년경인 솔로몬의 치세 초년(청년 시절)일 것입니다. 이집트로부터 많은 말과 병거를 들여오고 북쪽 골짜기까지 왕실 포도원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던 강성한 시기였습니다. 그의 처첩 수가 왕후 60명, 비빈 80명으로 아직 1,000명(왕후 700명, 첩 300명)으로 늘어나기 전의 비교적 초기 단계였습니다. 앞선 강의에서 설명해 드린 대로 솔로몬은 청년 시절 연애의 뜨거운 격정을 담아 '아가서'를 썼고, 중년의 원숙기에 성품을 가르치는 '잠언'을 엮었으며, 노년기에 인생의 모든 수고의 허무를 성찰하며 '전도서'를 남겼습니다. 즉, 아가서는 솔로몬이 청년 연인(Lover)으로서 남긴 최초기의 영감 어린 작품입니다.
솔로몬의 음악과 노래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은 그의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부전자전의 유산입니다. 다윗은 시편의 절반을 지은 위대한 신앙 시인이자 음악가였고, 솔로몬은 이를 이어받아 수많은 시와 노래를 지었습니다. 기질적으로도 깊은 로맨스의 감성을 이어받았습니다.
본서의 무대는 언뜻 예루살렘 왕궁의 화려한 장면이 비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푸른 정원, 나무숲, 향기로운 꽃, 야생 동물, 골짜기의 샘물이 흐르는 평화로운 '목가적 전원(Pastoral Setting)'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남쪽보다 주로 북쪽 지방의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서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구가하는 서정적 분위기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결혼은 단순한 남녀의 결합을 넘어 온 마을 공동체가 한 주일 동안 왕과 왕비처럼 신랑 신부를 대접하며 축하하던 거대한 잔치(요한복음 2장의 가나안 혼인 잔치의 배경)였습니다. 아가서는 이러한 신성한 혼인의 기쁨과 사랑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문학입니다.
아가서가 지닌 종교적·신학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아가서가 남녀 간의 에로틱한 연애시일 뿐인데 무슨 신학이 담겨 있느냐고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2세기 초의 위대한 유대 랍비 아키바(Akiba)는 "이스라엘의 모든 성문서(케투빔)가 거룩하다면, 아가서는 지성소(Holy of Holies)와 같이 가장 거룩하다"고 확언했습니다. 아가서는 단순한 남녀의 정욕을 노래하는 세속 문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 백성(이스라엘), 그리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교회) 사이의 거룩한 사랑 관계를 표상하는 신성한 성경입니다.
이 때문에 유대 백성들은 매년 유월절 축제 때마다 이 아가서를 온 회중이 함께 낭송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 억압에서 구속함(Redemption)을 받아 나온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신부로 삼으시기 위해 베푸신 거대한 사랑의 구출 작전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 관계를 자주 '결혼 연합'으로 묘사하기 때문에(사 54:5,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결혼 기념일과 같았고, 그때 아가서를 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거룩한 신앙 전통이었습니다. 이로써 아가서는 당당히 정경의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아가서는 남녀의 부부 사랑을 신성한 차원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창세기 2장 24절의 결혼의 신성한 명령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찬양하는 책입니다.
아가서를 해석하는 데는 역사상 크게 세 가지 방법론이 대립해 왔습니다.
1. 문자적·자연주의적 해석
아가를 신령한 영적 의미가 배제된, 순수한 인간의 연애시나 결혼 축가로만 고지곳대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6세기의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루스(Theodore of Mopsuestia) 같은 학자는 아가서가 솔로몬이 이집트 바로의 딸과 결혼할 때 부른 세속적인 노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가, 당대 기독교 교부들에게 신성모독적 해석으로 정죄당하여 교회에서 출교당하기도 했습니다. 부부 사랑의 순수성을 인정하는 면은 지니고 있으나, 아가서가 단순한 남녀 상열지사에 불과하다면 거룩한 성경 정경에 포함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2. 풍유적(Allegorical) 해석
본문의 모든 단어와 서사를 직접적인 사상이 아닌 다른 영적 진리를 대변하는 철저한 '풍유(알레고리, Allegory)'로만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솔로몬을 하나님으로, 술람미 여인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매칭했고, 초기 기독교 교회는 이를 이어받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풍유적 해석은 교회사 전반에 걸쳐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 온 타당한 면을 지니고 있지만,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끌어다 맞추는 한계를 노출했습니다. 예를 들어 신부의 신체 부위(눈, 코, 치아 등)나 시골 연애의 모든 소소한 표현 하나하나를 교회의 특정 교리나 그리스도의 신성 요소에 일일이 억지로 뜯어 맞추려다 보니 성경의 본질적인 의미를 왜곡하고 오도하는 성경 해석학적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풍유 일변도의 해석은 경계해야 합니다.
3. 표상적(Typological) 해석
앞선 두 가지 방법(문자주의와 풍유)의 장점을 결합하되 함정을 피해 가는 올바른 성경 해석학적 방법입니다. '표상(타입, Type)'이란 구속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대속 사역을 상징적인 제도나 인물을 통해 나타내는 기법입니다. 아담이나 모세가 특정 구속사적 국면에서만 제한적으로 그리스도를 표상했듯이(아담의 범죄나 모세의 실수는 표상에서 제외됨), 아가서 역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열렬한 결합과 사랑의 대서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가장 친밀하고 끊을 수 없는 거룩한 사랑의 국면을 완벽하게 표상(예표)합니다. 세부 기사들을 억지로 꿰맞추는 풍유를 배제하고, 부부 사랑의 신성함을 매개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헤세드 사랑을 발견하는 가장 건전한 표상학(Typology)적 해석입니다.
아가서의 구조와 세부적인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아가서가 지닌 독특한 특징과 영적 기여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성경 최고의 '허니문(Honeymoon) 책'입니다. 인간 삶의 가장 깊고 은밀한 영역인 부부 관계의 성(性)과 사랑을 가장 눈부시고 품격 있게 묘사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을 뜻하는 단어는 '도드(Dod)'인데, 구약성경 전체에 나오는 46회 중 무려 33회가 오직 아가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도디)"라는 후렴구가 끊임없이 흐릅니다. 부부간의 육체적 사랑은 타락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에덴동산에서 친히 재정하시고 축복하신 신성한 영역임을 선포합니다.
둘째, 젊은 청년들을 향한 성결의 메시지입니다. 구약 사사기 시대 이후 중간사 시대의 유대 랍비들은 이 책의 격렬한 애정 표현 때문에 30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아가서를 읽지 못하도록 규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아가서는 성적 개방주의와 방종에 노출되기 쉬운 젊은 청춘들을 위해 기록된 최고의 성교육 교과서입니다. 본서에 수없이 반복되는 가락은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우리 주님이 원하시기 전에는 이 사랑을 격동시키거나 깨우지 말지니라" 하신 파수꾼의 외침입니다. 혼인 예식을 치르고 정당한 부부의 언약을 맺기까지 성적 순결과 처녀성을 온전히 지켜내라는 엄숙한 절제의 권고입니다. 성의 즐거움을 조악하고 거칠게 다루지 않고 진실되게 수호하도록 이끕니다.
셋째, 신약의 참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아가서에 나타난 솔로몬 왕은 우리를 향해 "돌아오라, 나와 함께 가자" 애타게 부르짖으며 찾아오시는 선한 목자이자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더 큰 솔로몬)를 완벽하게 예표합니다. 교회는 주님 앞에 점도 흠도 없는 정결한 처녀 신부이며, 주님은 십자가의 피 값으로 교회를 사서 신부 삼으셨습니다(마 25장 열 처녀 비유). 아가서 8장 7절의 "홍수라도 이 사랑을 삼키지 못하리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라도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하신 기별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의 모든 가산과 보좌를 다 내어 던지시고 십자가 죽음의 홍수 속으로 뛰어드신 예수 그리스도의 타오르는 신성한 사랑의 불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최근 고대 성전 음악과 아가서의 신학적 기능을 700~800페이지 분량으로 방대하게 주석해 낸 리처드 데이비드슨(Richard Davidson) 박사의 저서 『여호와의 불꽃(Flame of Yahweh: Sexuality in the Old Testament)』이나 『앵커 성경 주석 시리즈』 등을 참고해 보시면 본서의 거룩한 가치를 한층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국내 오영석 목사님이 아가서 전체의 연인 대사를 우리 정서에 맞추어 시조 한 수 한 편으로 정교하게 엮어낸 시조집 『내 사랑 고별하여』 같은 작품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을 받는 거룩한 연애의 대상입니다. 아가서를 읽으실 때 세속적인 방종에 물들지 마시고,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 된 우리 교회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시고 눈부시게 사랑하시는지 그 헤세드의 온기를 가슴 깊이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으로 욥기부터 아가서까지 구약의 지혜와 영성을 담은 문학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다음 시간부터는 역사의 경종을 울리는 선지서 이사야서의 장엄한 기별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