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4. '수전절'은 무슨 절기인가?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엘 나무 강단 오늘 계속해서 성경의 어휘 연구를 하겠습니다. 성경 연구를 이미 한 33번 다른 주제를 가지고 했습니다만, 오늘은 34번째 어휘 연구 시간입니다. 오늘은 "수전절은 어떤 절기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수전절은 성경에 단 한 번 언급된 절기입니다. 보통은 모세오경 안에서 나오는 절기들이 주를 이루지만, 오경 밖에서 나오는 절기가 성경에 딱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바로 지난번 33번째 강의에서 다룬 부림절이고, 이것은 구약 에스더서에 나오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약에 언급된 '수전절'이라고 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이 수전절이 무슨 배경을 가지고 어떤 역사적 사건과 연관되는지를 공부하겠습니다.
수전절(修殿節)에서 '수'는 닦을 수(修), 즉 수확한다, 수리한다, 수선한다 할 때의 숫자입니다. 닦아서 고치는 것이죠. '전'은 전각 전(殿) 자를 씁니다. 즉 닦아서 성전을 수리하여 다시 봉헌하는 절기입니다. 영어로는 '페스티벌 오브 데디케이션(Festival of Dedication)', 즉 봉헌 절기, 헌신의 축제라고도 일컬어졌습니다. 또한 '빛들의 축제(Festival of Lights)'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그날의 행사와 빛이 깊은 관련이 있어 수많은 등불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전깃불을 켭니다.
이 수전절이 언급된 곳이 바로 요한복음 10장 22절입니다. 요한복음은 신약에 포함되어 있고 신약은 헬라어, 오늘날 말하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리스어로는 '엔카이니아(ἐγκαίνια)'라고 합니다. '카이니아'에서 '카이노스'는 영어의 '뉴(New)', 즉 새롭게 한다, 갱신(리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롭게 고쳐서 바치는 절기가 바로 엔카이니아입니다. 히브리 말로는 이를 '하누카(Hanukkah)'라고 부릅니다. 하누카라는 말 역시 봉헌(Dedication)을 뜻합니다.
시기적으로는 유대 달력으로 아홉 번째 달인 '기슬래월 25일'부터 시작하여 8일간 지킵니다. 우리 태양력으로 환산하면 대략 11월 말에서 12월 말 사이, 거의 연말에 해당하여 우리 식으로 하면 크리스마스 무렵이 됩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 계절인 연말이 되면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열광하고 기뻐하며 길거리마다 불을 켜놓고 지키는 축제가 있는데, 그것은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바로 수전절, 즉 그들의 말로 '하누카'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때 수전절 축제를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2절과 23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언급된 단 한 번의 수전절 기록입니다. 딱 한 번 나오는 단어이니 '하박스 레고메논'이지요. 때는 겨울이었고 주님은 성전 안 솔로몬 행각을 다니셨습니다.
여기서 '행각(각, Portico)'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건물을 잘 지어놓고 그 주변으로 돌아가면서 사람들이 쉴 수 있고 함께 모일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을 뜻합니다. 거대한 기둥들이 서 있고 기둥 위에 차양, 다시 말해서 지붕이 덮여 있어서 사람들이 비나 눈, 햇빛을 피해서 쉴 수 있는 주랑 시설을 행각이라 부릅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 도성의 모양을 재현해 놓은 모형이 오늘날 예루살렘 국립박물관 근처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축소해서 만들었지만 사람 모양이 아주 작게 보일 만큼 상당히 웅장하고 큰 규모입니다. 수많은 가옥과 왕궁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중 동쪽에 크게 자리 잡은 성전이 있습니다. 바로 헤롯 대왕이 짓고 있던, 거의 완성해가던 성전입니다.
이 성전 뜰을 중심으로 방향을 보면 동편, 서편, 남편, 북편이 있는데 남쪽과 서쪽 뜰 주변으로 아까 말씀드린 행각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기둥이 쭉 서 있고 그 사이 공간이 넓으며 위에 지붕이 덮여 있어서 사람이 쉴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중 남쪽에 있는 거대한 행각을 '왕의 행각(Royal Portico)'이라고 부르고, 동쪽 벽을 따라 지어진 행각을 '솔로몬 행각(Solomon's Porch)'이라고 부릅니다. 솔로몬 행각은 사도행전 3장 11절과 5장 12절에도 언급되는데,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며 모였던 경험이 담긴 장소입니다. 또한 성전 북쪽 벽 위에는 로마인들이 지은 '안토니아 요새'라는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이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성전 안에서 유대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다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요새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중에 이 근처에서 심문을 받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동쪽에는 '황금문(Golden Gate)'이라는 유명한 문이 있었습니다. 동쪽 문을 통해 들어가면 성전 뜰과 이어지고 반대편으로는 예루살렘 시내로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솔로몬 행각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시는 장면이 요한복음 10장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남쪽 성벽 벽면을 보면, 과거 서쪽 벽 밖에서 사람들이 성전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계단을 타고 쭉 걸어 올라가도록 설계된 거대한 아치 구조가 있었습니다. 쑥 들어가서 안쪽 통로를 거쳐 성전 뜰로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성벽으로 오르는 이 계단 통로를 '훌다 문(Huldah Gates)'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올라가는 계단 구조물은 다 파괴되어 없어지고, 성벽 벽면에 그 계단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아치의 그루터기 흔적만 튀어나온 채 남아 있습니다. 19세기에 영국의 고고학자 에드워드 로빈슨(Edward Robinson)이 이 성벽을 조사하다가 "아, 이 남아있는 그루터기가 본래 성전으로 올라가는 거대한 난간 계단 아치가 끊어지고 남은 잔해구나"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이 흔적을 '로빈슨 아치(Robinson's Arch)'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예루살렘 성지순례 현장에 가면 안내자들이 이 로빈슨 아치와 훌다 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이 계단을 통해 성전 상부로 올라가면 바로 왕의 행각과 솔로몬 행각으로 연결되며, 예수님이 겨울철에 사람들을 만나셨던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이제 수전절에 얽힌 역사적 사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의 시대적 배경은 구약과 신약의 사이 기간인 '중간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약은 BC 5세기(BC 425년경)에 활동한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대언의 기록이 마감됩니다. 그 후 신약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이 넘는 영적인 암묵기 동안에는 성경의 정경 기록이 남지 않았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전절은 바로 이 성경 밖의 역사적 기간 동안 유대인들이 겪었던 극심한 고난과 전쟁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우리가 성경 기록을 통해 알다시피, 유다 백성들은 과거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지냈습니다. 그 후 바벨론이 망하고 고레스 왕이 페르시아 제국(바사)을 세웠습니다. 고레스 왕은 참으로 통이 크고 너그러운 군주여서 성경 이사야서에도 "그는 나의 목자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고,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들의 지휘하에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오랫동안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평온을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 그리스 대륙에서 위대한 영웅이자 장군 왕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입니다. 알렉산더는 영어식 이름이고 헬라어 본래 발음으로는 '알렉산드로스'입니다. 오늘날 세계 역사 교과서에도 알렉산드로스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나타나 전 천하를 정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의 다리오 3세와 치열한 전쟁을 벌여 승리했습니다. 당시 이 역사적 전투 장면이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유명한 모자이크 벽화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리스 사람들은 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데살로니가(오늘날 그리스 테살로니키)의 바닷가에 가보면, 거대한 석판 위에 말에 올라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기마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 동상 아래에는 헬라어로 '알렉산드로스 호 메가스(Ἀλέξανδρος ὁ Μέγας)', 즉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당시에 이미 동전 주화에 자기 얼굴을 새겨 넣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헬라 지역에서 출발하여 지중해 연안과 이스라엘, 애굽을 정복하고 고대 근동을 넘어 오늘날의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 접경 지역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멀리 오다 보니 병사들이 오랜 행군과 전투로 지쳐서 더 이상 전진할 힘이 없었습니다. 결국 군인들이 쓰러질 판국이 되자 군대를 돌려 바벨론으로 철군하게 됩니다. 돌아오던 중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 지역의 풍토병(엔데믹)에 걸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BC 323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바벨론에서 객사하고 맙니다.
그가 정복 전쟁을 벌이며 지나간 행로 곳곳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들을 건설했는데, 그것이 바로 애굽 북부의 유명한 도시를 비롯한 수많은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시나 세종로, 이순신 장군의 호를 쓴 충무로, 이황 선생의 호를 쓴 퇴계원처럼 위인의 이름을 따서 지명을 짓듯이, 당시 제국 곳곳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세워진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33세에 천하를 제패한 뒤 질병으로 허무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연세에 죽은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다 자기도 정복하지 못한 채 객사했지만, 예수님은 땅을 정복하지는 않으셨어도 인류의 심령을 정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영원한 족적을 남기고 하늘로 가셨으니 참으로 대조적인 두 인물입니다. 대왕이 임종의 침상에서 숨을 거두려 할 때, 휘하의 장군들이 모여 "폐하, 폐하께서 돌아가시면 이 넓은 제국을 누가 다스립니까? 후계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대왕이 남긴 유명한 유언이 있습니다. 바로 "가장 강한 자가 차지하라(To the strongest)"였습니다.
이 유언 한마디 때문에 제국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 휩싸였고, 결국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제국은 힘센 네 명의 장군에 의해 사분되었습니다. 카산드로스는 본토 마케도니아와 헬라 지방을 차지했고, 리시마코스는 소아시아(오늘날 터키 지역)를 분할 받았습니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는 남쪽 아프리카 이집트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으며, 셀레우코스는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등 광활한 동방 지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유대 땅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으로 남방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북방의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 끼어 있어서 양측의 잦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게 된 세력이 북방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입니다. 이 왕조는 유대 땅을 점령한 후 아주 악독하고 강력한 '헬라화(Hellenization)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마치 과거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일본식 의복과 교복을 입히며, 우리 문화와 말을 말살하려 했던 강력한 동화 정책과 똑같았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유대인들의 고유한 민족 의식과 성경적 문화,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말살하려고 획책했습니다. 이 왕조의 왕들은 스스로를 '안티오코스'라고 불렀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억압자'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또한 자신을 '에피파네스(Epiphanes)', 즉 '신의 현현(신이 인간으로 나타남)'이라고 칭하며 신격화했습니다.
그중 가장 악명 높은 왕이 바로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입니다. 그의 석상이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집니다. 그가 유대인들을 말살하기 위해 펼친 악독한 헬라화 정책의 핵심령 10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다인들은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매일의 제사를 전면 중단할 것.
안식일을 범하고 성경의 고유한 축제와 절기들을 절대 지키지 말 것.
성소에서 봉사하는 신실한 성직자들과 제사장들을 모두 쫓아낼 것.
성전 안에 이교의 제단과 신당(신상)을 새로 세울 것. -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 내 성소에 그리스 최고 신인 '제우스 신상'을 독단적으로 세웠고 음란한 여신상도 세웠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가증히 여기는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잡아 제단에 제물로 바칠 것.
태어난 사내아이들에게 절대로 할례를 행하지 말 것. - 아브라함 때부터 내려온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끊으려 한 것입니다.
음란하고 모독적인 이교 행위에 동참하여 스스로의 신앙을 더럽힐 것.
여호와의 율법 책(성경)을 발견하는 대로 모두 불태우고 폐기할 것.
성경의 모든 규칙과 하나님의 법을 헬라식 법으로 강제 교체할 것.
왕의 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즉시 사형에 처할 것.왕이 이토록 잔인하고 악독하게 유대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신앙 정절을 지키고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의로운 백성들이 본연히 일어나는 독립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마타디아(Mattathias)'라고 하는 신실한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스몬의 아들 시몬, 시몬의 아들 요한, 요한의 아들이 마타디아였으므로, 역사가들은 이 가문을 '하스몬 가문(Hasmonaeans)'이라고 부릅니다. 제사장 마타디아는 타락해가는 시세를 거부하고 청년들과 애국 동포들을 향해 피 끓는 호소를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애국 동포 여러분! 지금 우리 조국은 망했고 성소는 더럽혀졌으며,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완전히 말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굴복하여 후손들에게 이런 비참한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뜻이 있는 자들은 모두 나를 따르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은 유대 광야로 나가 지하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마을에는 안티오코스 왕의 군대들이 좍 깔려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므로, 메마른 광야 동굴에 텐트를 치고 게릴라 전투 훈련을 시작한 것입니다. 한창 독립 전쟁을 이끌던 마타디아가 고령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그의 다섯 아들(요한, 시몬, 유다, 엘르아살, 요나단)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았습니다. 그중 가장 용맹하고 신앙 사상이 투철하여 독립군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관이 된 아들이 바로 셋째인 '유다 마카베오(Judas Maccabeus)'입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민족과 신앙을 위해 떨쳐 일어난 청년들을 지도할 만한 강력한 능력의 사나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형제들의 조력을 받아 일사천리로 독립 전쟁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당시 시리아의 헬라 군대들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며, 안식일에는 무기를 들거나 싸우지 않는다는 신앙적 특징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헬라 군은 유독 안식일만 골라서 유대인들을 비열하게 공격했고, 초기에 유대인들은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안식일을 사수하다가 무려 1,000명이나 되는 무고한 생명이 처참하게 학살당했습니다. 이 뼈아픈 비극을 두 번 겪고 난 후, 마카베오 독립군은 군사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는 않되, 안식일에 우리를 죽이려 쳐들어오는 원수들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로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다"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결사전의 태세로 바꾸고 나니, 오히려 안식일에 방심하고 들어오던 헬라 군을 대파할 수 있었고 그 후 원수들은 안식일이라 해서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마카베오 독립 전쟁 과정 속에는 눈물겹도록 엄숙한 순교의 사연들이 외경 마카베오서에 가득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엘르아살(Eleazar)'이라는 노학자의 순교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90세 고령의 존경받는 성경 학자였습니다. 헬라 군인들이 그를 잡아다가 많은 유대 백성이 지켜보는 앞에서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던 지도자가 돼지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 다른 유대인들도 낙담하고 배교하게 만들려는 간악한 술책이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평소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헬라 관리가 몰래 다가와 정결한 소고기 조각을 건네며 귀띔해 주었습니다. "이보게 엘르아살, 자네가 고집을 부리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면 어떡하나? 내가 슬쩍 정결한 고기를 줄 테니, 사람들 앞에서는 왕의 명령대로 돼지고기를 먹는 흉내만 내시게. 겉으로 먹는 척만 해서 목숨을 건지란 말이네."
그때 엘르아살이 남긴 준엄한 답변은 오늘날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내 나이 구십이 다 되었는데, 어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려 신앙의 명예를 더럽히겠는가? 내가 만일 먹는 흉내라도 내면, 젊은 청년들이 '90세 노인 엘르아살도 배교했다' 하며 다 나를 따라 타락할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내 신앙의 나잇값을 하면서 명예롭게 죽겠네."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제가 원고 중에서 '나잇값'이라는 단어를 하얗게 강조해 놓았는데,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과연 나는 내 신앙의 나잇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깊이 자성하게 됩니다. 재림 신앙을 받아들여 교회에서 20년, 30년, 4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신 장로님들, 목사님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신앙의 나잇값을 올바르게 하고 있습니까? 침례 받은 지 수십 년이 지나 나이를 먹었음에도 여전히 영적으로 미숙하여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엘르아살의 장엄한 나잇값을 본받아 신앙의 품격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한 번은 일곱 아들을 둔 신실한 어머니가 자녀들과 함께 체포되어 왔습니다. 이 가문은 하나님의 법을 철저히 지키기로 이름난 신앙 명문가였습니다. 헬라 왕은 아들들을 차례로 불러 배교를 강요하며 위협했습니다. "너희의 고유한 신앙을 버리고 헬라의 사상과 문화, 종교를 받아들여라. 그러지 않으면 잔인하게 처형하겠다." 그때 맏아들이 당당하게 응수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신문해서 무엇을 알아내겠습니까? 우리 조상의 거룩한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우리는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분노한 왕은 잔인하게 그의 혀를 자르고 사지를 절단하여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광경을 지켜본 둘째, 셋째를 비롯한 일곱 아들 모두가 형의 믿음을 따라 조금도 굴하지 않고 차례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막내아들까지 처형대 앞에 섰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귀에 대고 눈물로 격려했습니다. "내 아들아, 너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법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거라. 네가 신앙 정절을 지키고 죽으면, 하나님께서 부활의 아침에 너에게 신성한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아들들을 차례로 순교의 자리에 기쁘게 내보내고 자신도 마지막에 순교한 이 위대한 어머니의 믿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한편 유대인들을 이토록 괴롭히던 악독한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왕의 최후는 어땠을까요? 그는 유대 땅의 정벌을 장군들에게 대리 통치로 맡겨두고, 자신은 동방 페르시아 지역으로 원정을 떠났습니다. 그곳의 신전들에 가득한 금과 은을 약탈하려는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한창 보물을 탈취하고 있던 중에 전령이 달려와 다급한 전황을 보고했습니다. "왕이시여, 큰일 났습니다! 마카베오 독립군에게 우리 시리아 군대가 대패하여 예루살렘을 빼앗겼습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당장 병거를 몰아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도성을 넓게 짓밟아 유대인들의 공동묘지로 만들겠다!"며 병거를 거칠게 몰아 질주했습니다. 그러다가 급하게 달리던 병거에서 내동댕이쳐져 굴러떨어지면서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그 역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처참하게 썩어가는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임종의 침상에서 남긴 통한의 유언이 역사의 기록에 전해집니다. "내 눈에서 잠이 떠났구나. 내가 예루살렘과 그 성소에 너무나 몹쓸 짓을 많이 해서 그곳의 금 기물들을 약탈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더니, 그 죄 대가로 내가 이 타향 객지에서 끔찍한 재난을 당해 고통 속에 죽어가는구나."BC 175년부터 BC 163년까지 12년 동안 예루살렘과 유대 백성들을 피비린내 나게 괴롭히던 악정의 독재자가 마침내 비참한 종막을 고한 것입니다.
유다 마카베오가 이끄는 독립군은 예루살렘을 성공적으로 탈환한 뒤, 북쪽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까지 진격하여 헬라 군대를 국경 밖으로 완전히 축출하고 마침내 조국의 주권을 기적적으로 회복했습니다. 승리한 독립군들이 눈물을 흘리며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성소 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 헬라 신전의 관습을 따라 성전 안이 음란한 '신전 창녀들의 소굴'로 전락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헬라의 우상 신전에는 음란한 여인들이 상주하며 예배하러 오는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는 음행의 풍습이 있었는데,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을 그런 가증한 소굴로 더럽혀 놓은 것입니다. 번제단은 모독당했고 성소의 거룩한 일곱 가지 등대(메노라)도 약탈당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독립군들은 부서진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고 제단을 새로 쌓았으며, 성소의 등대를 다시 제작하여 불을 밝히려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 등대에 불을 켜려면 정결하게 성별된 감람유(올리브유) 기름이 필요했는데, 성전 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대제사장의 직인이 찍힌 정결한 기름병은 딱 하루 분량(하루 용량)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기름을 급히 씁면 안 되느냐 하겠지만, 성전에 쓰는 성유는 율법의 엄격한 레시피와 제조 방법이 정해져 있어서, 기름을 새로 제조하여 성별하는 데 무려 '8일간'의 기간이 소요되었습니다. 8일 동안 기름을 만들 동안 등대의 불이 꺼질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남아있던 하루 치 기름을 등잔에 붓고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꺼졌어야 할 등대의 불꽃이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치 기름으로 불꽃이 무려 '8일 동안'기적적으로 타올랐고, 마침내 8일째 되는 날 새로 만든 정결한 기름이 도착할 때까지 성소의 불빛은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신 하나님의 신성한 응답이자 이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수리하여 다시 봉헌한 기쁨과 함께, 이 '8일간의 기름 기적'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새로운 절기를 제정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BC 165년 기슬래월 25일에 성립된 '수전절(하누카)'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특별한 8일간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성소의 일반적인 일곱 가지 등대와는 구별되는 특별한 수전절 전용 등대를 제작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양옆으로 4개씩 총 8개의 가지가 뻗어 있고, 그 가운데 불을 붙이는 기준 기둥(샤마시)까지 합쳐 총 '9개의 등잔'을 가진 등대입니다. 이를 '하누키아(Hanukiah)'또는 수전절 메노라라고 부릅니다. 일반 성소 등대는 7개이지만, 수전절 등대는 8일간의 기적을 상징하여 9개의 등잔으로 만듭니다. 수전절 축제가 시작되면 첫날에 중앙의 보조 초를 켜서 첫 번째 칸에 불을 붙이고, 둘째 날에는 두 번째 칸에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8일 동안 매일 하나씩 불꽃을 늘려가며 마침내 9개의 등잔을 환하게 밝힙니다. 이 장엄한 이적을 기념하는 명절이 바로 수전절입니다.
수전절은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에게 연말 최대의 축제이자 명절(하누카)로 통용됩니다. 우리말로는 수전절 혹은 봉헌절이라 부르고, 영적으로 어둠을 걷어내고 빛을 회복했다는 뜻에서 '빛의 축제'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명절에 비유하면 잃어버린 주권과 빛을 다시 찾았다는 뜻의 '광복절(光復節)'과 그 신학적 의미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참으로 이름이 뜻깊지요.
유대인들은 이 8일간의 축제 기간 동안 온 집안과 거리에 환하게 등불을 밝히고 기쁨을 나눕니다. 아이들은 이 기간에 사각형 모양의 독특한 팽이를 돌리며 노는데, 이 팽이를 아람어로 '드레이델(Dreidel)'또는 히브리어로 '세비본'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각 팽이의 네 면에는 히브리어 알파벳 글자가 하나씩 적혀 있습니다. 바로 '눈(נ)', '김멜(ג)', '헤(ה)', '신(ש)'이라는 네 글자입니다. 이는 "네스 가돌 하야 샴(Nes Gadol Hayah Sham)"이라는 히브리어 문장의 첫 글자들을 딴 것입니다. 그 뜻은 바로 "큰 기적이 거기에 일어났다!"입니다. 팽이를 돌리며 놀면서도 과거 조상들이 성전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을 대대로 경축하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수전절 축제 기간에는 온 거리가 9개 등잔의 불빛으로 넘쳐납니다. 촛불의 형태도 나란히 세우거나, 알록달록 색깔을 입히거나, 쇠로 멋있게 조각하는 등 다양하게 만들어 축제를 즐깁니다.
그렇다면 이 수전절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첫째, '헬라주의(Hellenism)에 대한 히브리주의(Hebraism)의 승리'입니다. 강력한 무력과 군사력을 앞세운 세상 세력에 맞서, 무기 하나 제대로 없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 승리한 역사입니다.둘째, '제우스 신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성소를 더럽혔던 헬라의 최고 우상을 걷어내고,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통치권을 영광스럽게 회복한 사건입니다.셋째, '육체적·심미적 종교에 대한 영적·도덕적 종교의 승리'입니다. 마라톤이나 원반던지기처럼 인간의 육체미와 외형적 화려함을 숭배하던 헬라 문화를 파하고, 내면의 정결함과 도덕적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경적 신앙이 승리한 것입니다. 우상이 득실거리던 헬리콘산에 대한 거룩한 시온산의 승리이며, 음란한 체육관(짐내지움) 문화에 대한 거룩한 회당(시나고그) 신앙의 승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중간사 시대의 수전절을 기억하고 명상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제 수전절과 현대 우리 신앙의 관계를 정리하며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과거 헤롯이 지었던 눈에 보이는 돌 성전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했듯, 오늘날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우리 몸 성전'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수전절의 교훈을 바탕으로, 그동안 하나님의 전인 우리 몸과 마음에 세속적인 정욕과 음란한 우상들, 부정한 요소들을 은근슬쩍 투입하며 더럽혔던 죄악들을 깊이 뉘우치고 청소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가증한 제우스 신상과 창녀들을 들여놓았던 것처럼, 우리 몸 성전에 유해한 음식물을 함부로 집어넣거나 세상의 부정직한 생각들로 영혼을 더럽혔던 행동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정결케 수리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을 모독하고 세상의 편의주의대로 살아온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대청소가 필요합니다.
수전절은 우리에게 "마음과 삶의 성전을 대청소하고 하나님께 재헌신하라"는 영적 기별을 강력하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와 신학 속에 깊이 침투해 있는 영혼불멸설이나 이원론 같은 헬라 철학의 인간적인 유산들을 복음의 말씀으로 말끔히 씻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생애를 환하게 밝힐 성령의 불꽃을 다시 회복하고, 오직 빛 가운데서 살아가기로 결심하며 새 출발 하도록 촉구하는 명절이 바로 수전절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의 수전절을 날마다 준수하십시다. 우리의 몸과 영혼을 거룩하게 보존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봉헌하십시다.
마지막으로 처음에 읽었던 요한복음 10장 22절과 23절을 다시 한번 엄숙하게 읊조리며 마치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이 짧은 한마디에 얽힌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연과 순교의 피 흘림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하누카 불빛을 밝히듯 외형적으로 절기를 지키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마음 성전의 거룩한 불꽃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유지하는 위대한 재림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강의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수전절(Hanukkah)의 정의와 성경적 위치: 구약 오경 밖에서 유래한 절기로, 신약 성경 요한복음 10장 22절에 딱 한 번 언급되는 '하박스 레고메논' 어휘입니다. (오경 밖의 또 다른 절기는 에스더서의 부림절이 있음). 닦을 수(修), 전각 전(殿) 자를 써서 '성전을 수리하여 하나님께 다시 바친 봉헌절'을 뜻하며, 유대 달력 기슬래월 25일부터 8일간(양력 11~12월 연말 무렵) 지내는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입니다.
역사적 배경 (중간사 시대의 시련): BC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제국이 네 왕국으로 분열된 후, 유대 땅을 지배한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특히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왕이 극심한 유대인 말살 및 헬라화 정책을 폈습니다. 그는 매일의 제사를 금지하고 안식일을 짓밟았으며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등 성소를 모독했습니다.
마카베오 독립 전쟁과 8일간의 기름 기적: 제사장 마타디아와 그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한 하스몬 가문이 광야에서 독립군을 조직해 결사 항전을 벌여 예루살렘을 탈환했습니다(BC 165년). 더럽혀진 성전을 청소하고 성소 등대(메노라)를 켜려 했으나 정결한 성유(기름)는 겨우 하루 분량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 기름을 만드는 데 필요한 8일 동안 등대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기적적으로 타오르는 이적이 일어나 성전 재봉헌을 완수했습니다.
수전절(하누카)의 고유한 전통 문화:
9구 등대(하누키아): 일반 성소 등대(7구)와 달리, 8일간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보조 불꽃을 포함한 9개의 등잔을 가진 등대를 만들어 8일 동안 매일 초를 하나씩 늘려가며 환하게 밝힙니다 ('빛의 축제').
드레이델(사각 팽이) 놀이: 팽이의 네 면에 히브리어 알파벳(눈, 김멜, 헤, 신)을 새겨 "큰 기적이 거기에 일어났다(Nes Gadol Hayah Sham)"는 역사의 교훈을 자녀들에게 전수합니다.
신학적·현대적 영적 교훈: 수전절은 외형적·육체적 헬라 문화에 대한 성경적·도덕적 여호와 신앙의 위대한 승리(우리 식의 '광복절')를 뜻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눈에 보이는 돌 성전 대신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의 몸 성전'을 대청소하여 세속적 이교 사상과 부정한 행실을 씻어내야 합니다. 순교를 각오했던 엘르아살처럼 신앙의 나잇값을 다하며,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재헌신(봉헌)하는 영적 불꽃을 밝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