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포니’는 ‘불어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극단 프랑코포니’는 이름 자체로 정체성을 드러낸다. 불어권의 희곡,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동시대의 희곡을 번역하고
공연하는 것이다. 2009년 창단 이래 열 번째 공연인 <두 코리아의 통일>은 조엘 폼므라의 2013년 작인데, 그 의미심장한 제목의
무게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절대 번역가나 연출가가 갖다 붙인 제목이 아니다. 원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작품은 17가지의 각기 다른 사랑의
순간들을 다양한 질감과 색깔의 조각들로 모자이크처럼 붙여놓는다. 군대 이야기만큼이나 많고 많은 것이 사랑이야기이지만, 구구절절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포착된 순간들을 위트있게 그려내니, 각각의 인상들을 통해 사랑에 대한 단상들을 새기게 된다. 사랑 없이 산다는 것, 사랑하지만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 돈과 사랑의 역학관계, 때로는 기다림과 엇갈림이 전부인 사랑, 사소한 습관들이 가져다주는 사랑의 결과 등… 6명의 남녀 배우가
쉴 새 없이 무대를 오가며 묘사해내는 사랑은 참으로 다채롭다. 그것이 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1. 이방인과 이방인의 만남, 연극이 되다
극단
프랑코포니의 창단은 두 사람의 만남에 의해 이루어졌다. 번역가이자 불문학자인 임혜경 선생, 그리고 대학에서 불어를 가르치면서 연출가로 활동하는
까띠 라뺑 선생이 그들이다. 자고로 연극은 만남으로 시작된다. 30년 전에 그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현주
그러니까 임혜경
선생님이 프랑스 유학 중일 때 만나신 거죠?
까띠
라뺑
그 때부터 친구였죠.
제가 한국연극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함께 한국희곡을 번역하면서 만났어요. 90년대 초반이었죠. 그러다 초청을 받아서 서울여대 불문과에 재직하게
되었어요. 한국으로 오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제가 먼저 온 거예요. 당시 임선생은 파리에 더 있고 싶어했죠. (웃음)
임혜경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하기 시작하더라구요. 다시 만나게 됐죠. (웃음)
함께
오래된 얘기죠.
서로의
모국에서 차례로 만나 친구에서 동료로 거듭난 두 사람. 한 사람이 번역과 드라마터지를, 다른 한 사람은 연출을 맡게 된 거다. 인터뷰 중에 까띠
라뺑 선생이 불어로 얘기하는 게 더 편한 순간이 오면, 임혜경 선생은 친절한 통역자가 되어주었다. 언제나 그래온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임혜경
함께 대학로 연극을
보면서, 각자에게 이미 걸려 있던 연극의 발동이 속력을 내기 시작하더라구요.
까띠
라뺑
2001년, 여성
연출가전에 <왕은 죽어가다>를 발표하면서 데뷔를 했어요.
임혜경
그때 페스티벌에 함께
한 분들이 박정희, 백은아 연출가에요. 박정희 연출은 그 뒤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쳐갔는데, 우린 힘들어서 더 못하겠더라구요. 주저앉아버렸죠.
(웃음) 그러고는 번역하고 낭독공연만 했어요. 한 해에 한 편씩 꾸준히 했는데, 그러다보니 공연에 대한 갈망이 자꾸만 남게 되더라구요. 결국
2009년에 창단을 해서 이 길에 발을 딛게 된 거죠.
연출가 까띠 라뺑(좌)과 드라마투르기
임혜경(우)
2. <두 코리아의 통일>과 만나다
한현주
작품을 어떻게
선택하시나요? 한국에 소개하면 좋겠다, 하는 마음?
까띠
라뺑
아니요. 그런
생각보다는 저 역시 한 연출가로서 작품에 매력을 느꼈을 때 선택을 하게 되죠. <두 코리아의 통일>은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작품의 형식이 특히 매력적이었어요.
임혜경
파편화된 텍스트를
옴니버스식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대해서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까띠
라뺑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쉽고 단순한 언어로 일상을 얘기해요. 하지만 아주 깊고 시적인 면들이 있죠. 아주 대중적이기도 하면서, 연극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죠.
임혜경
사실 배우들과 만나서
작품을 읽을 때도 처음에는 아주 쉬운 듯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아갔지요.
까띠
라뺑
조엘 폼므라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고민이 됐어요. 그의 스타일을 인정하면서도, 작품을 온전히 하나의 텍스트로 놓고 어떻게 나만의
연출적 요리를 할 것인지…
<두 코리아의
통일>(사진_강선준)
3. 옴니버스에 올라타다
‘옴니버스(omnibus)’는 라틴어로
‘모두를 위한’이라는 뜻이다. 1827년 프랑스의 한 교외에 온천장이 세워졌는데 도심에서 멀어 이동이 불편했다. 그래서 합승마차를 만들어냈고,
옴니버스라 이름 붙였다. 이후, ‘옴니버스 열차’나 ‘옴니버스 영화’ 같은 말이 생겨났다. 작가는 <두 코리아의 통일>의 옴니버스적
구성을 살리기 위해, 연출 과정에서도 영화적 기법을 활용했다.
한현주
원작의 영화적 특징들은
어떤 것인가요.
까띠
라뺑
근본적으로 조명을 매우
어둡게 사용하고, 대부분 배우들이 어둠 속에서 등장하게 만들어서 영화에서처럼 ‘컷 바이 컷’의 느낌이 들게 만들었죠. 즉 어둠과 밝음을 통해
영화적 기법을 쓴 건데, 저는 그와 달리 색색의 조명을 컷해서 그런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하나의 앵글 안에서 포커스를 이동하는
영화적 기법도 무대에서 표현해보려고 했죠. 예를 들면 무대의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포커스를 나눠보는 겁니다. 배우들의 동선이나 대도구의 배치로도
그런 효과를 전할 수 있지요.
임혜경
한 장면에서는 배우가
객석에 등을 지고 앉아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요. 누벨바그식이죠. 이를 테면 장 뤽 고다르의 영화 <비브르 사 비>의 첫 장면이
그런 예죠.
<두 코리아의
통일>(사진_강선준)
감독은
첫 장면에서 여주인공 나나의 앞, 옆, 뒷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마치 이 영화가 이 여자의 인생을 이야기할 것이라는 것을 꼭꼭 집어 말하듯이.
<두 코리아의 통일>에서는 이별의 원인이 되는 인물이나, 끝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상황을 관찰하며 긴장을 유발하는 인물들을 이런
식으로 무대에 위치시켰다.
까띠
라뺑
배우들이 이런 부분을
좀 힘들어하기도 했죠. 기본적으로 무대를 응시하려고 하니까요. 게다가 각 장면이 스타일이 달라요. 부조리적인 상황도 있고, 드라마적인 상황도
있고… 그러다보니 배우들과 각각의 상황들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죠.
한현주
작가가 연출을 할 때도
6명의 배우가 역할을 맡아서 했나요?
임혜경
아니요. 9명이요.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로 6명을 캐스팅했는데, 그래서 힘든 부분도 있었죠. 작가도 공연할 때마다 자신이 쓴 장면의 배치를 이리저리 바꿔 보는
시도를 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였어요. 장면의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다양한 리듬이 만들어지니까요. 어려운 지점이었지만 배우들과
함께해서 즐거운 면도 있었죠.
사실
이러한 작품의 특성 상, 관객이 각각의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어떻게 꿸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모자이크는 어떤 무늬나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각을 붙이는 것이니까.
4. 의미심장한 제목인가, 유머러스한 제목인가
한현주
제목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웃음)
임혜경
원제목이 맞습니다.
(웃음) 아마도 한국 작가라면 이런 제목을 쉽게 달지 못하겠지요.
한현주
그러니까요!
임혜경
작가가 우리나라의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영감을 받은 것 같아요.
한현주
마지막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분단에 빗대어서 얘기하잖아요.
임혜경
정말 사랑이 우리를
통일시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던 거죠.
까띠
라뺑
사실 작품 속 사랑은
대부분 실패하는 이야기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찾을 수밖에 없죠. 저는 사랑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라는 존재와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일치에 도달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잖아요.
사랑이
시작될 때의 무한한 상상력이 현실과 이성에 압도당할 때, 우리는 사랑에 실패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상상력도 노력의 산물이라고… 안타깝게도 잘 안 될 때가 더 많긴 하지만 말이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가 남편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린다. 그녀는 어젯밤의 섹스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고통을 넘어 상상력이 발동한다. ‘오늘의
그’를 통해 ‘어제의 그’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설렐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