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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회상> 막스 뮐러
친구와 손을 잡고 티롤 지방의 산과 계곡을 누비며 다니노라면 인생의 신선한 활력소와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길을 홀로 외로이 온갖 상념에 젖어 걸어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푸른 산과 어두운 계곡, 푸른 호수와 웅장한 폭포가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난 한가로이 그런 풍경들을 즐길 여유가 없다. 내가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바라보며, 이 외톨박이의 모습에 의아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있기보다는 나와 같이 있고픈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한 것에 가슴이 메어진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고,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노랫가락처럼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 내가 여관으로 들어가 지친 몸으로 자리에 앉으면 방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해 모아지며 이 고독한 방랑자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어둠 속으로 나갔다가 밤이 깊어진 뒤에 다시 돌아와 살며시 내 방으로 올라가서 따뜻한 침대 속으로 몸을 던지곤 했다. 그리고는 슈베르트의<그대가 없는 곳에 행복이 있네>라는 가곡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하여 읊다가 잠들곤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환호하고 웃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낮에는 자고 달 밝은 밤이 되면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나의 괴로운 상념을 몰아내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공포였다.
밤새도록 혼자서 낯선 산 속을 헤매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눈은 비정상적으로 민감해져서 도저히 알아볼 수도 없는 먼 곳의 형체까지 보게 된다. 귀는 병적으로 긴장해서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잡다한 소리를 듣게 된다. 발은 바위틈을 뚫고 나온 나무뿌리에 채이거나, 폭포의 물보라로 젖어 미끄러운 길을 헛디딘다. 그리고 가슴에는 안타까운 황량함으로 가득 차서 우리를 따뜻하게 해줄 만한 추억도, 우리가 매달릴 만한 희망도 없다. 그러한 여행의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차가운 밤의 선율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느끼는 최초의 공포심은 신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일상이라는 것은 그러한 공포심을 몰아내 주고,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들이 우리의 고독을 위로해 준다. 그러나 인간의 위로와 사랑이 우리를 다시 떠나버리고 나면 우리는 신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이 어떤 느낌인지 깨닫게 되며, 자연조차 우리를 위로해 주기는커녕 말없는 시선으로 공로에 몰아넣는다.
예컨대 우리가 단단한 바위 위에 발을 확고히 디디고 서있어도, 그 바위는 그 본래의 형태였던 바다 속 먼지처럼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 눈이 빛을 찾아 헤맬 때, 전나무 숲 뒤에서 떠오른 달이 밝은 암벽 위로 뾰족한 나무 그림자를 던져준다. 그러면 그것은 한때 우리에게는 태엽을 감아주었어도 언젠가 멈춰버릴 죽은 시곗바늘처럼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는 별이나 드넓은 창공, 그 어느 것도 외로이 버림받아 떨고 있는 영혼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때때로 위안을 줄 뿐인데, 그것은 자연의 평안과 질서와 무한성, 그리고 필연성이다.
여기 폭포가 회색 바위 양쪽으로 짙은 녹색의 이끼로 뒤덮어놓은 곳, 그 서늘한 그늘 속에서 갑자기 한 떨기 푸른 물망초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지금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울과 모든 초원마다 피어 있는, 천지창조의 아침이래 끊임없이 만발하며 이 땅 위에 흩뿌려짐 수백만의 물망초자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꽃잎 하나하나의 모양, 꽃받침 속에 있는 꽃술 하나하나, 뿌리에 달린 섬유질까지 그 수가 정해져 있어 이 세상의 어떤 힘도 그 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는 없다.
우리의 둔한 눈을 예리하게 모아 초인적인 힘으로 자연의 신비에 더 깊이 들어가 본다거나, 현미경으로 씨앗과 꽃봉오리와 꽃잎의 감추어진 공장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새삼스럽게 그 미세한 조직과 세포 속에서 영원히 되풀이되는 형태와 그 미세한 섬유 속에서 자연의 질서가 갖는 영원한 불변성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이보다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해도, 우리의 눈은 이와 같은 형태의 세계와 마주치게 되어 사면이 거울로 된 방에 들어갔을 때처럼 시선이 그 무한성 속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다. 이 작은 꽃송이 안에 그러한 무한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보면 위성이 행성을 돌고, 행성이 항성을 돌고, 그 항성은 또 다른 항성 주위를 도는 영원한 질서를 보게 된다. 예리하게 뜬 눈에는 저 아득한 성운조차 새롭고 아름다운 세계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장엄한 천체가 상하로 운행하면서 계절이 바뀌고 그리하여 이 물망초의 씨앗이 다시 움터서 세포가 열리고 꽃잎이 돋아나 그 꽃들이 초원을 융단으로 장식하게 되는 것을 생각해 보라.
또한 푸른 꽃받침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딱정벌레를 보라. 그것이 잠에서 깨어나 생명을 갖고, 존재를 향유하며, 생생히 호흡한다는 사실은 꽃의 조직이나 생명력 없는 천체의 기계적인 질서보다 몇천 배나 더 신비로운 것이다. 그대 역시 이 영원한 총체 속에 있음을 느껴보라. 그러면 그대와 함께 운행하고, 그대와 함께 살아가며, 그대와 함께 시들어 없어지는 무수한 피조물들에게 저절로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러나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까지, 지혜와 힘을 지니고, 현존의 기적과 기적의 현존 등 모든 것을 막론하고 모두가 어떤 존재의 소산이라는 것, 그리고 그 존재를 향해 너의 영혼은 두려움을 갖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과 무상함을 실감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가, 그 존재의 사랑과 자비를 느껴 다시 그를 향해 일어나는 것이다. 꽃의 세포나 별의 세계, 딱정벌레의 삶보다 더 무한하고 영원한 무엇이 네 안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면-그대의 마음속에 마치 그림자처럼 그대 주위를 비추는 영원한 자의 빛을 인식한다면-그대 내부에서도, 그대의 발밑에서도, 그대의 머리 위에서도, 그대의 가상을 실체화하고, 불안을 평안으로 바꾸고, 고독을 보편성으로 바꾸어주는 실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대가 대체 누구를 향해 인생의 어두운 밤 속에서 이렇게 외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창조주이신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시고, 땅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내게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러면 그대의 내부와 주위가 밝아지고, 새벽의 어둠은 차가운 안개와 더불어 흩어지며, 새로운 따스함이 약동하는 자연 속에서 가득 넘쳐흐를 것이다. 그대는 이제 두 번 다시 놓지 않을 손을 발견한 것이다. 산이 흔들리고, 달과 별이 사라져도 그대가 어디에 있든 그대는 그분 곁에 있으며, 그분 역시 네 곁에 있다. 이 세계는 꽃과 가시와 더불어 모두 그의 것이고, 인간의 모든 기쁨과 슬픔도 모두 그분의 것이다.
‘신의 뜻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그대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
나는 잠시 이런 생각에 잠겨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내 마음은 밝아졌다가 금세 어두워지곤 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평안과 평화를 찾았다 할지라도 이 성스러운 은둔 생활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찾은 후에도 곧잘 잊어버리고 평안과 평화로 되돌아가는 길을 알지 못할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몇 주일이 지났다. 그녀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영원한 안식 속에서 잠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말은 항상 내 입가를 맴돌며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다시 돌아오곤 하는 노래처럼 되어버렸다.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심장병을 앓고 있는 그녀를 매일 아침 찾아갈 때마다 이미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한다고 언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녀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또한 마지막 순간에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지 못하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다면-그런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다른 세상에서 그녀를 다시 찾을 때까지, 그리고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용서해 준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그녀를 쫓아가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어찌하여 인생을 유희로 여기며,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잃어버린 시간은 곧 영원한 상실임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하루하루 미루며 사는 것일까. 그러자 내가 의사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가 내게 했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갑자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은 전적으로 그분에게 나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고, 그곳에 머물러 그분에게 나의 나약함을 보인다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었기 때문이었음을 때달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지체 없이 그녀에게 돌아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막 돌아갈 계획을 세웠을 때 「가능한 한 빨리 마리아를 시골로 요양을 보내야겠네」라고 말하던 의사 선생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언젠가 그녀는 여름이면 주로 자신의 성에서 보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곳에,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면 그녀에게 갈 수 있는 길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즉각 행동에 옮겼다. 그리하여 동이 트자마자 출발해 저녁 무렵 그녀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
고요하고 밝은 저녁이었다. 산봉우리는 저녁노을에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산허리는 불그레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골짜기에서는 회색빛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위쪽으로 떠오를수록 갑자기 환해지더니 마치 구름의 바다처럼 하늘을 향해 물결쳐 올랐다. 그리고 이 모든 색채 변화는 가볍게 물결치는 어두운 호수의 수면 위에서 반사되고 있었다. 호숫가에 있는 산들은 위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것처럼 보여서 나무 꼭대기나 교회의 첨탑, 그리고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현실의 세계와 호수 수면의 투영을 구분해 주는 경계선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오직 한 곳을 향해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바로 그 성이었다. 그러나 창문에는 불이 하나도 밝혀져 있지 않았고 황혼의 정적을 깨는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의 예감이 빗나간 것일까? 나는 천천히 첫 번째 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 성의 앞뜰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보초병 한 명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 보초병에게 달려가 이 성에 누가 머물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마리아 백작님과 시종들이 와 계십니다」라는 짧은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정문 현관 앞에 서서 초인종 줄을 당겼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내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깨달았다. 여기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내가 누구라고 밝혀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몇 주일 동안 산속을 헤맨 나의 행색은 마치 거지처럼 초라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누구를 찾아왔다고 할까? 그러나 미처 생각할 시간도 없이 문은 열렸고 제복을 입은 문지기가 나타나 나를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시녀인 영국 부인이 성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녀가 항상 마리아 백작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시중을 드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지기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나는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서 마리아 백작님의 건강이 어떤지 문안을 드리러왔노라고 편지를 썼다.
문지기는 곧 하인을 불러서 그 편지를 들고 올라가게 했다. 나는 긴 복도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 처지가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벽면에는 후작 가문의 옛 가족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다. 완전 무장을 한 기사, 옛날 복장을 한 여인들, 가슴 한가운데 붉은 십자가가 달린 하얀 수녀복을 입은 여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나는 예전에도 이러한 초상화를 여러 번 구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슴에도 인간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갑자기 그들의 표정에서 모든 뜻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들 모두가 나를 향해「우리도 한때 살아 있었고, 한때 고통을 당했었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 철갑 속에도 한때. 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들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이 흰색 복장과 붉은 십자가는 그들의 가슴속에도, 지금 내 가슴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갈등을 보여주는 산 증거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모두 나를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가, 고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너는 우리와 같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참담한 기분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갑자기 나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나를 이 꿈에서 깨워주었다. 그 영국 부인이 계단을 내려와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녀가 혹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눈치채고 있지 않나싶어 그녀의 얼굴을 탐색하듯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고 관심을 보인다거나 의아해하는 기색도 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마리아 백작님께서 오늘 상태가 한결 나아지셔서 30분 뒤에 만나시겠다는 말을 전했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은 멀리 바다로 헤엄쳐 나가서 팔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껴야 비로소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리고 허겁지겁 파도를 가르면서 감히 먼 바닷가를 쳐다보지 못하고 팔을 한 번 저을 때마다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머리가 멍해지고 전력을 다해 보지만 자기가 어디쯤 와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할 때쯤 갑자기 발이 땅에 닿고 팔은 해안에서 맨 먼저 닿는 아무 바위나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영국 부인의 말을 들었을 때 곡 이런 기분이었다.
새로운 현실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고 내가 받은 고통은 꿈이었다. 이러한 순간은 인생에서 극히 드물게 찾아오고, 이러한 희열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난생 처음으로 아기를 팔에 안아보는 어머니,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돌아온 외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 국민들에게 환호를 받는 시인, 사랑하는 애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을 때 더 따뜻한 응답의 악수를 받는 청년, 이들은 꿈이 현실이 된 기분을 알 것이다.
30분이 흘렀다. 하인 한 사람이 나타나 나를 안내했고, 여러 개의 방을 거쳐 어느 방의 문을 열었다. 이윽고 황혼의 어슴푸레한 빛 속으로 하얀 자태가 보였다. 그녀의 머리 위로 나 있는 높다란 창문을 통해 호수와 노을 진 산들이 보였다.
「참으로 묘하게 만나게 되는군요.」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무더운 여름날 뒤에 내리는 시원한 빗줄기 같았다.
「사람은 참으로 묘하게 만나기도 하고, 묘하게 헤어지기도 하네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우리가 다시 만나 함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헤어지게 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에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언제나 음악처럼 말에 반주를 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어조로 바뀌었다.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건강은 어떤지 묻고 싶습니다. 저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은 건가요?」
「사랑하는 친구여」라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늘 몸이 아파요. 내가 몸이 괜찮다고 말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 의사 선생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에요.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오직 당신의 노력과 의술 덕분이라고 확신하고 계시니까요. 저번에 있던 성을 떠나기 전에 그분을 몹시 놀라게 한 적이 있어요. 어느 날 밤 갑자기 심장이 멎었거든요. 나 자신도 다시는 심장이 뛰지 못할 거라고 느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다시 얘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다만 한 가지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이 있어요. 나는 내가 언제든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의 고통이 이 세상과 작별하는 것을 방해하고 비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고는 자신의 손을 가슴에 얹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아무런 소식도 없었는지 얘기해 줘요. 의사 선생님은 당신의 갑작스러운 여행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유를 늘어놓았는데, 난 결국 그분의 말을 못 믿겠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나중에는 가장 믿을 수 없는 이유를 들지 뭐예요. 어떤 이유였는지 맞춰볼래요?」
「물론 믿을 수 없는 이유였겠지요.」
나는 그녀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중간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다 지난 일이고 이제 와서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어째서 그것이 지난 일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당신이 갑자기 떠난 것에 대한 궁극적 이유를 내게 말해 주었을 때, 난 그분에게 선생님이나 당신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난 병들었고,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지상에서의 나의 삶이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에 불과해요. 만일 하늘이 내게, 나를 이해해 주거나 의사 선생님 말대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보내셨다면, 그것이 어째서 우리의 평안을 깨뜨리는 일이 되는 걸까요? 의사 선생님이 내게 그런 고백을 했을 때, 나는 마침 내가 좋아하는 워즈워스의 시를 읽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표현할 말은 적기 때문에 한 마디 한 마디에 여러 가지 생각을 부여해야 해요. 만약에 우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의 젊은 친구가 나를 사랑한다거나,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는 로미오가 줄리엣을, 또는 줄리엣이 로미오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그런 사랑을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런 경우라면 선생님께서 저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당연해요. 그렇지만 선생님, 선생님도 저를 사랑하시고 저도 선생님을 사랑해요. 전 벌써 오래전부터 선생님을 사랑하면서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전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불행하다고 여긴 적은 없어요.
그래요, 선생님! 할 말이 더 있어요. 선생님은 저에 대해 불행한 사랑을 느끼고 계시며 그 젊은 친구를 질투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제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아침 저를 찾아오셔서 몸이 어떠냐고 묻곤 하셨죠? 그리고 선생님 댁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제게 가져다주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제 초상화도 달라고 하셔서 그것도 드리지 않았나요? 그리고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난 일요일 제 방에 들어오셨을 때 제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셨죠? 그래요, 사실 전 자고 있었어요. 적어도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전 선생님께서 한참이나 제 머리맡에 앉아 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때 저는 선생님의 눈길이 내 얼굴에 닿아 어른거리는 햇살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선생님의 눈이 급기야 흐려지면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알았어요. 선생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면서 마리아! 마리아! 하고 부르셨지요. 선생님, 그 젊은 친구는 결코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그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셨어요.’
내가 늘 그렇듯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나자 내가 그분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분은 아무 말도 못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부끄러워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마침 읽고 있었던 워즈워스의 시집을 집어들며 말했어요.
‘여기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노신사 한 분이 있어요. 그분은 나를 이해하고 나도 그분을 이해하지만, 나는 그분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만나지 못할 거예요. 세상이란 그런 거니까요. 이제 그분의 시 한 편을 읽어 드리겠어요. 선생님도 이 시를 듣고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될 거예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맡에 조용한 축복을 남기고 축복의 우수를 지닌 채 길을 떠나는 사람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는 그분에게 워즈워스의 <고지의 소녀>를 읽어주었어요. 자, 이제 램프를 이리로 가까이 옮겨놓고 당신이 이 시를 다시 읽어주세요. 이 시는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쾌해지거든요. 이 시에는 마치 눈 덮인 산의 순결한 가슴을 향해 사랑과 축복의 팔을 벌리는, 고요하고 끝없는 저녁노을 같은 정신이 깃들어 있어요.」
그녀의 말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나의 영혼 속으로 울려퍼지는 동안 나의 가슴도 다시금 고요하고 엄숙해졌다. 폭풍은 지나가고,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은은한 달빛처럼 잔잔한 사랑의 물결을 타고 떠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사람의 가슴을 통해 흐르는 바다 같은 것이 아닌가.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그것을 자기의 사람이라고 부르지 있지만, 그것은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맥박인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점점 조용해지고 어둠이 깃든 자연처럼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워즈워스의 시집을 건네주었으므로 나는 시를 읽기 시작했다.
고지의 소녀
그대 사랑스러운 고지의 소녀여!
충만한 아름다움은 그대가 갖는 지상의 보물이어라!
일곱을 갑절한 세월을 흘러
풍요로운 봄의 선물이 그대의 머리 위에 내렸노라.
여기엔 회색 바위, 저기엔 조그만 빈터.
저기 저 나무들에 반쯤 드리워진 면사포.
잔잔한 호숫가에서
속삭이듯 쏟아지는 폭포수
여기 이 고요한 오솔길이,
그대의 보금자리를 안식으로 감싸노라.
실로 그대와 모든 것들은
꿈결에서 보는 듯 아름답구나.
세상의 근심이 잠든 틈에
은밀히 생겨난 모습이런가!
그러나 그대, 아름다운 소녀!
일상의 밝은 빛 속에서도
그대는 이렇듯 성스럽고 눈부시구나!
그대, 비록 환영이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그대를 축복하노니
그대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하고
그대를 아는 이들도 그대를 알지 못하네.
그러나 내 눈에 눈물 가득 고인다.
그대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라도
나 그대 위해 따뜻한 마음으로 기도드리리.
이제껏 그 누구의 모습에서도
그대처럼 순수한 자태와
온화하고 순진한 마음씨와
천진난만함 속에서 성숙해가는
그런 모습을 찾아내지 못했기에
그대는 바람에 흩어진 씨앗처럼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있나니
당황한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고
수줍음 또한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대의 맑은 이마 위에는
산사람의 자유가 깃들어 있나니
기쁨이 넘치는 그대의 얼굴!
온정이 우러나오는 부드러운 미소!
그대의 공손함을 보여주는
몸가짐마저 서려 있노라.
그대에게 단 하나 속박인 것은
갑자기 격렬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대가 아는 몇 마디 말로
표현해 내지 못하는 것일 뿐.
아름답게 참아온 속박이여!
그대의 거동에 우아함과 생기를 준 노력이여!
그토록 바람을 거슬러 날갯짓하면서도
태풍을 사랑하는 새들과 같은
그대 모습에 내 어찌 감동하지 않겠는가.
그토록 아름다운 그대에게
꽃다발을 바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오, 얼마나 행복한 기쁨이겠는가!
꽃향기 그윽한 이 계곡에서 그대와 더불어 살 수만 있다면!
그대의 소박한 생활을 따라 그대처럼 소박한 옷을 입으면
나는 목동, 그대는 양치는 소녀!
그러나 엄연한 현실 속에서
내가 그대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그대는 내게 거친 바다의
파도에 지나지 않으니,
그대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그저 평범한 이웃의 부탁이겠지만.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그대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대의 오빠라도 좋고 아버지라도 좋다.
그 무엇이든 되어주리라!
이제 하늘에 감사드리리!
이 외로운 곳으로 나를 인도한 하늘의 은총에 감사드리리.
나는 이제 기쁨을 만끽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을 떠나노라.
이곳과 같은 장소에서
우리의 추억을 소중히 하며 추억의 시선을 느끼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니
내 어찌 헤어짐을 꺼리겠는가?
이곳은 그 소녀에게 전처럼 새로운 행복을 주고
그 행복이 항상 함께하도록 그 소녀를 위해서 만들어진 곳.
그대 사랑스런 고지의 소녀여!
나는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그대와 헤어짐을 꺼리지 않으리.
이 다음에 내가 늙어서도
지금 보는 것처럼
조그만 오두막, 호수, 평지, 폭포가
내 눈앞에 아름답게 펼쳐질 테니.
그리고 모든 것의 정신인 그대까지도!
나는 읽기를 마쳤다. 이 시는 마치 내가 얼마 전까지도 커다란 초록색 나뭇잎을 잔으로 삼아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셨던 신선한 샘물과도 같았다.
그때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꿈꾸는 듯한 기도에서 우리를 깨워주는 오르간의 첫 울림처럼 들렸다.
「나는 당신이나 저 나이 많은 의사 선생님이 이 시에 그려진 것처럼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랐어요. 모두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믿어야 해요. 내가 비록 세상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세상은 이런 사랑과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 땅을 인간이 우울한 곳으로 만들어버렸어요.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어떻게 호메로스(역주: 그리스의 시인)가 그처럼 사랑스럽고 건강하고 섬세한 나우시카라는 인물을 그려낼 수 있었겠어요?
나우시카는 오디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했어요. 그녀는 그 사실을 곧 친구들에게 말했죠.‘저 남자가 내 남편이 되어서 이곳에 머물러 있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와 함께 도시에 나타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당신처럼 잘생기고 늘름한 이방인을 집으로 데리고 가면 사람들은 신랑을 데리고 왔다고 말할 거예요’라고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죠.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행동인가요.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부인과 자식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는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다시 그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지요. 아마도 그녀는 이 잘생기고 근사한 이방인의 모습을 조용하게 찬미하며 오래도록 가슴속에 간직했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 시인들은 왜 이런 사랑을 알지 못할까요? 이처럼 즐거운 고백이나 이처럼 조용한 이별을! 오늘날의 시인이었다면 나우시카를 여자인 베르테르로 만들어버렸겠지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사랑이란 결혼이라는 희극이나 비극의 전주곡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그럼, 진정 다른 종류의 사랑은 없는 걸까요? 이러한 순수한 행복의 샘은 완전히 말라버린 걸까요? 사람들은 이제 흠뻑 취하게 만드는 사랑만 알 뿐, 활기를 주는 사랑의 샘을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이렇게 한탄하던 영국 시인이 생각났다.
이 믿음이 만약 하늘로부터 보내진 것이라면,
만일 이것이 자연의 성스러운 계획이라면,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놓았든
나는 슬퍼할 이유가 없네.
「시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들의 언어는 수천의 말없는 영혼들에게서 가장 깊은 감정을 불러내니까요. 그리고 그들의 노래는 가장 감미로운 비밀의 고백이 된 예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그들의 심장은 가난한 자의 가슴속에서도 부유한 자의 가슴속에서도 고동치고, 행복한 이들은 시인과 더불어 노래하고, 슬픈 이들은 시인과 더불어 눈물짓지요.
그러나 어떤 시인이라도 워즈워스만큼 내 마음에 드는 시인은 없어요. 내 친구들 중에는 그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도 있어요. 그들은 워즈워스가 시인이 아니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는 다른 시인들처럼 상투어며, 온갖 과장, 그리고 이른바 시적 감흥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피하는데 그 대신에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진실이라는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어요!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그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는 초원 위에 피어 있는 데이지처럼 우리 발 밑에 놓여 있는 아름다운 것에 눈을 뜨게 해줘요. 그는 만물을 본래 이름 그대로 부르고 있어요. 그는 누구도 놀라게 하거나, 속이거나 현혹하려 들지 않아요. 또한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는 다만 사람들의 손에 의해 비틀어지거나 꺾이거나 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려고 할 뿐이에요.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이 금에 박힌 진주보다 더 아름답지 않아요?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살아 있는 샘물이 베르사유의 궁전의 인공 분수보다 더 경이롭지 않을까요?
워즈워스의 <고지의 소녀>가 괴테의 헬레나나, 바이런의 하이디보다 더 사랑스럽고 참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게다가 그가 사용한 언어의 평이함과 그 사상의 순수함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나라에 이런 시인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만일 쉴러가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에게 자기 자신의 대한 확신이 좀 더 있었다면, 그들은 우리의 워즈워스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만약 뤼케르트(역주: 독일의 시인)가 가엾은 조국을 떠나 <동방의 장미꽃> 아래서 위안과 고향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워즈워스가 가장 근접한 시인이 되었을 거예요. 참된 자기를 살릴 만한 용기 있는 시인을 그다지 많지 않아요. 그러나 워즈워스는 바로 그런 용기를 갖고 있어요.
대체로 우리가 귀 기울이는 것은 위대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처럼 조용히 자신의 사상을 길러, 무한으로 통하는 새로운 전망이 열릴 투명한 순간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과정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워즈워스의 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얘기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는 거예요.
위대한 시인들은 평정을 잃지 않습니다. 호메로스의 시를 읽다 보면 그다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시구(詩句)가 백 행 이상이나 계속되는 경우가 있어요. 단테(역주: 이탈리아 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는 핀다로스(역주: 그리스의 서정 시인)의 열광적인 문구의 표현은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지요.
나는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한여름만이라도 워즈워스와 함께 그가 시에서 읊었던 모든 곳을 찾아 다녀보고, 그가 시를 읊음으로써 도끼날로 잘리는 것을 구해 준 나무들에게 인사를 하며, 호숫가에서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단 한 번만이라도 그와 함께 그가 묘사했던, 아마도 터너(역주: 영국의 화가)밖에 그려내지 못했을 아득한 낙조의 광경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말투는 독특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을 할 때 말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묻는 것처럼 말끝을 올렸다. 그녀는 상대방에게 말을 할 때 항상 올려다보며 말을 했고, 절대로 내려다보며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의 어조는 마치 어린아이가 「아빠, 그렇죠?」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녀의 어조에는 간청하는 듯한 무엇이 있어서 그녀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워즈워스는 나도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 그를 더 좋아해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작은 언덕이, 힘들여 고생하며 올라간 몽블랑보다도 더 아름답고 풍요하며 생생한 경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처럼, 워즈워스의 시도 바로 그런 느낌을 줍니다. 처음에는 그의 시가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에 그의 시를 덮어놓고, 어째서 오늘날 영국의 지성들이 그를 그처럼 찬미하는지 의아해했지요.
그러나 어느 나라 언어를 사용하는 시인이든, 그 나라의 국민들이나 그 나라의 정신적인 귀족층이 그를 시인으로서 인정한다면, 우리들도 감상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찬미라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하나의 예술입니다.
대부분의 독일인은 라신이 마음에 안 든다느니, 또 영국인은 괴테를 이해할 수 없다느니, 프랑스인은 셰익스피어는 농사꾼이라고 말하지만, 대체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 건가요?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베토벤의 교향곡보다 왈츠를 더 좋아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각 나라가 자국의 위대한 인물을 찬미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해하는 것이 바로 기술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그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페르시아인들이 그들의 하피스(역주: 페르시아 시인)를, 인도인들은 그들의 칼리다사(역주: 고대 인도의 데표적인 시인, 극작가)에게서 어느 정도의 만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위대한 사람을 단숨에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힘과 용기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첫눈에 마음에 든 것은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하고 그녀가 끼어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시인들, 진정한 예술가와 영웅들한테는 그들이 페르아사인이든 인도인이든 이교도인이든 또한 기독교인이든 로마인이든 게르만족이든 간에 공통점이 있어요.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은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무한한 것, 영원을 바라보는 멀고 먼 시선, 작고 덧없는 것을 신격화하는 힘이에요. 위대한 이교도 시인인 괴테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달콤한 평화>를 알고 있지요. 그래서 그는 이렇게 읊었어요.」
모든 봉우리마다
안식이 깃들어 있고
모든 나뭇가지에
미풍의 기색조차
느낄 수 없으니
숲속의 새들도 침묵하노라.
기다려보라.
너도 곧 안식을 취하게 되리니.
「그가 이렇게 노래할 때 높은 전나무 가지 위로 이 지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무한한 공간과 안식이 열리는 것 같지 않던가요? 워즈워스의 경우에도 언제나 이러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비웃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거나 감동시키는, 이 지상의 모든 것을 초월한 그 무엇입니다. 미켈란젤로보다 지상의 아름다움을 더 잘 이해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지상의 아름다움이 곧 지상을 초월한 아름다움의 반영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가 쓴 소네트를 아시나요?」
소네트
아름다움이 나를 하늘로 향하게 한다.
(이 세상에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름다움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 있으며 영혼의 전당에 들어선다.
인간에게 그런 축복은 드문 것이다.
작품 속에는 창조주가 자리하고 있으니
나는 그로부터 영감을 얻고 그에게 다가간다.
그곳에서 내가 이루는 것은
아름다움에 취한 마음이 일으키는 온갖 상념뿐.
아름다운 눈에서 내 눈길을 떼지 못함은
신의 꽃밭에 이르는 길을 비춰주는,
빛이 그 눈 속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리니.
그 빛의 광채 속에서 내 몸이 불타는 것을 느끼노라면
천국을 지배하는 기쁨이
다시 내 고귀한 불꽃 속으로
부드럽게 비춰오리라.
그녀는 기진맥진해져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어떻게 그 침묵을 깨뜨릴 수 있었겠는가? 서로의 생각을 다정하게 주고받은 뒤에 만족을 느끼고 침묵한 상태를, 우리는 천사가 방안을 날아다닌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평화와 사랑의 천사의 희미한 날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무는 동안, 그녀의 몸은 여름날 저녁의 어스름한 빛 속에서 더욱 성스러워 보였다. 내가 잡고 있는 그녀의 손만은 오직 그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한 줄기 빛이 비쳤다. 그녀도 그것을 느꼈는지 눈을 뜨며 의아스러운 듯 나를 쳐다보았다. 반쯤 감긴 속눈썹이 면사포처럼 드리워진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마치 번갯불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달이 두 언덕 사이에서 성채를 마주보며 솟아올라 호수와 마을을 다정한 미소로 밝혀주는 것이 보였다. 그처럼 아름다운 자연, 그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또 그처럼 황홀한 평온이 내 영혼에 흘러 들어온 적이 없었다.
「마리아, 이처럼 행복이 깃든 순간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의 모든 사랑을 당신에게 고백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처럼 가까이 절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하도록 영혼을 결합하게 해주십시오, 사랑이 뭔지 잘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 또한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지만, 감히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그녀의 손에 가만히 입술을 갖다댔다. 그러자 그녀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급기야 단호하게 손을 뺐다. 내가 올려다보자 그녀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깊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키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만해 두세요. 당신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군요. 하지만 그건 모두 내 탓이에요. 창문을 닫아주세요. 어쩐지 낯선 사람의 손이 나를 건드리는 듯한 서늘한 소름이 끼치는군요. 이렇게 내 곁에 있어줘요. 아니, 당신은 가야해요. 안녕히 가세요. 하느님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하기를 기도해요. 우리 다시 만나기로 해요. 알겠죠? 내일 저녁에 기다릴 게요.」
아, 천국과 같은 평안은 돌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는 그녀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급히 이 자리를 떠나 영국 부인을 불러온 후,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걸어 마을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호숫가를 서성거렸고, 조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있던 불 켜진 창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침내 성의 마지막 불빛도 사그라들었다. 달은 점점 높이 떠올라 오래된 성벽의 모든 첨탑과 창문 그리고 모든 장식물까지 신비로운 조명 아래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 밤의 정적 속에서 나는 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치 나의 뇌가 본래의 기능을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다만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라는 것, 그리고 나를 위한 영혼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구는 관처럼 느껴졌고, 어두운 하늘은 관을 덮는 보자기 같았으며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는지 아니면 벌써 오래전에 죽어버린 것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문득 반짝거리며 차분히 그들의 궤도를 따라가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별들은 오직 인간들을 비춰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어두운 하늘에 떠오른 두 개의 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자 나의 가슴에서는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나의 수호천사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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