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례성당은 박대식 빅토리노 (1812~1868년) 순교자께서 태어나셨던 곳을 관할구역으로하고 있다.

박대식(朴大植) 빅토리노는 경상도 김해 예동(현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 사람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로는 언제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68년의 박해 때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과 김해 포졸들이 함께 그의 집으로 몰려와
빅토리노와 그의 조카 박수연을 체포하여 김해 관아로 압송하였다. 당시 그의 조카는 아직 예비 신자였다.
김해 관아의 옥에서 빅토리노는 송 마태오와 박 요셉을 동료로 맞이하였다. 이후 그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한 뒤
3일 만에 대구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다.
대구 감사는 결국 빅토리노와 그의 동료들을 결코 배교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따라 빅토리노는 조카와 동료 2명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로, 당시 빅토리노의 나이는 56세였다.
참수형을 집행한 뒤 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명목 아래 그들의 머리를 높이 매달도록 하였다.
한편 빅토리노의 가족들은 그가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구로 와서 그의 시신을 찾아다 고향에 안장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의 홈에서)
명례성지 신부님께서 진례성당 미사강론 중에 이지역출신인 박대식 빅토리노 순교자를 위한 진례성당 교우들의
관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박대식빅토리노 순교자는 신석복마르코 순교자께서 순교하신 후 2년 뒤에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신석복마르코 순교자께서 진해웅천을 넘어다니면서 이곳을 지나셨을텐데 우리가 관심을 갖지 못했던 박대식빅토리노 순교자와
어떤 교분을 갖지 않았을까하는 부분을 이곳에 숙제로 남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