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완창무대 - <흥보가>
1. 2024년 국립극장에서 기획한 판소리 완창무대 마지막 작품인 <흥보가>를 관람했다. 연말이 가까워서인지 9, 10월 무대보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더 많았다. ‘흥보가’의 흥미로운 내용이나 공연시간이 약 3시간 정도로 <춘향가>와 <심청가>에 비해 짧은 점도 부담없이 참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소리꾼은 김차경으로 1990년대부터 창극단에서 활동한 60이 넘은 깊은 공력을 가진 여성명창이었다. 높게 질러대는 상성부터 낮으막하게 읖조리는 하성까지 소리의 진폭이 넓고 시원스런 힘이 느껴지는 좋은 소리꾼이었다.
2. <흥보가>의 내용은 다양한 매체나 각색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다. 내용 뿐 아니라 흥보가의 주요 소리대목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놀보의 심술장면, 돈 타령, 화초장 장면 등은 흥겹고 신나는 우리 판소리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별한 <흥보가>의 대목을 발견했다. 다리를 다쳤던 제비가 다시 흥부집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이 대목은 중국대륙을 지나 한반도의 곳곳을 상세하면서도 핵심적으로 묘사하면서 마치 한편의 한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듯했다. 상당히 긴 내용을 통해 표현되는 한국에 대한 지리적 개관은 그 자체로 당시 사람들의 인식 속에 담겨있는 한국에 대한 특별한 시선이었다.
3. <흥보가>는 박타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이 ‘진양조’로 노래한다. 그만큼 슬픔과 한의 내용이 많다는 방증이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민중의 고통과 신난한 삶이 절절한 음성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백성은 밥을 하늘로 여긴다’라는 말처럼 당시 민중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었다. 항상 굶주렸고 국가는 민중들의 배고픔과 기근을 방치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들에게 가장 큰 소망은 언제나 먹고사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흥부가 박을 탈 때 나오는 희망의 장면은 먹고(음식과 쌀) 입고(비단) 사는(집)으로 표현된다. 행복은 물질적 만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소위 선비들이 말하는 ‘안빈낙도’는 위선적인 언어인 경우가 많다. 벼슬을 하지 않고 자연에서 여유롭게 산다는 선비들의 무소유를 나타나는 말처럼 이해되지만, 결국 그들의 안빈낙도가 가능한 것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재산을 통해 민중들을 착취하여 얻은 수입으로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4. <흥보가>는 다양한 버전으로 현대적으로 해석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흥보처의 시각에서 본 관점이다. <흥보가>에서 흥보는 자신을 학대하고 멸시한 놀보에 대해 끊임없이 공경하고 예의를 지킨다. ‘아내는 의복이고 형제는 한몸이다“라고 말하며 아내의 불만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구박한다. 이러한 가부장적 유교적 관념은 지금 시점에서 흥보가를 접하면서 만나게 되는 불편한 장면이다. 상대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고 무작정 수용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다. <흥보가> 원전은 이러한 흥보의 태도가 결국 두 형제의 우애를 보존하는 힘으로 결론나고 있지만, 흥보처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실 <흥보가>에서도 이러한 흥보처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넘쳐난다. 흥부를 집에서 쫏아낸 것에서부터, 흥부처에 대한 놀부의 막돼먹은 행동, 특히 권주가를 부르라고 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도 흥부처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흥부처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성격의 여성이다. 흥부의 비참한 삶에 대해 무작정 남편 탓으로 돌리지 않으며, 뻔뻔스런 시아주머니의 행동에 침묵과 무대응을 통해 냉소적으로 반항한다. 이런 흥부처의 캐릭터는 현대에 더욱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5. 판소리의 내용 전개에서 핵심적인 전환의 키를 ‘승려’가 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심청가>에서 심학규가 물에 빠졌을 때, 승려가 나타나 ‘공양미 300석’이 있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감언이설을 통해 사건의 긴박한 전개가 일어났듯이, <흥보가>에서도 흥보가 매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에 빠졌을 때, 승려가 나타나 흥보가족에게 새집을 안내해주고 그곳에서 제비를 만나게 함으로써 새로운 사건이 전개된다. 승려가 사건 전환의 핵심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승려’라는 상징은 조선이 비록 유교적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민중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밝혀준다. 승려는 여전히 권위를 지니고 있었고,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흥보(박흥보)의 집이 “운봉과 함양‘이라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 있다는 묘사도 현대의 지역감정을 지워낼 수 있는 묘한 표현으로 읽혀졌다. 중간적 지대는 극단에 대한 쏠림을 완하시키는 변화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지.
6. <흥보가>를 들으면서 명창의 소리도 좋고 표현력도 훌륭했지만, 이 작품은 남성소리꾼에게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소리의 중심이 힘든 민중의 아픔과 고난 그리고 무력하거나 극단적인 남성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이다. 연말 좋은 판소리 무대를 만났다.
첫댓글 - 남산 둘레길에서 지나치는 국립극장...... 야경의 모습이 운치있게 다가온다.